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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친인척 관련서류

'전두환 비자금 관리' 한마디에 12억 몰려

CIA 출신으로 행세하며 여수 등의 개발계획과 전두환 비자금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끌어들여 수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노컷뉴스 5월 25일

2006년 서울 유명호텔 커피숍에 유모(67)씨와 신모(62)씨가 마주 앉았다. 단구(短軀)에 단단한 인상인 유씨가 입을 열었다. "미 CIA에서 암호해독 전문가로 일했소. 미군 중장까지 지냈소." 유씨는 계속 말했다.

"내가 CIA에 있을 때 알게 된 강택민 전 중국 공산당 주석의 장모 송미령의 재산 740조원이 내게 있으니 돈을 국내로 들여오게 도와주시오. 보답은 하리다." 송미령은 장개석 전 대만총통의 아내로 강택민과는 상관이 없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4/2010060401766.html?Dep1=news&Dep2=headline2&Dep3=h2_11

유씨는 맥아더 장군도 들먹였다. 미국에서 '독수리 훈장'을 받았는데 맥아더 장군이 7대, 자신이 8대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동판을 전전하던 신씨는 유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순천 집으로 내려가 동거녀 양모(51)씨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양씨는 "유씨를 도와 그 큰돈을 가져오면 우리는 신세를 고칠 수 있다"며 좋아했다. 이 순간부터 이들의 소설 같은 사기사건은 시작된다.

신씨와 양씨는 2007년 3월 여수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사무실 격이었다. 양씨 곁엔 무속인 정모(49)씨도 있었다. 정씨는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양씨를 떠나서는 내가 살 수 없다"며 수년 전부터 양씨를 뒷바라지해왔다.

유씨는 먼저 신씨와 양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수와 고흥 부근에 부동산 개발 계획을 알고 있으니 돈을 모아보라. 2011년에 엑스포도 개최되니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것이다!"

양씨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미국 장군 출신인 분이 하신 말씀"이라며 유씨가 한 말을 전했다. 그 뒤 자기 계좌로 1000만원씩을 받기 시작했다. 양씨는 17년간 의료기 다단계 판매업을 한 경험이 있어 사람 마음을 잘 꼬드겼다.

그래도 안 믿는 사람에겐 무속인 정씨가 다가갔다. 정씨는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땅에 돈을 투자해야 해"라고 말했다. 정씨는 몇몇 투자자들을 공동묘지로 데려가 신의 계시를 받는 척도 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속기 시작했다. 유씨는 다른 정보도 흘렸다. 자기가 해외에서 관리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믿은 사람들이 양씨 계좌에 돈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엔 공업 공단 직원, 사업가, 회계사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돈을 받아간 양씨는 다시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은 회계사였다.

이 회계사는 4000만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양씨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극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병상에서 회복한 회계사는 칼을 숨기고 일당을 찾아갔다. "돈 안 내놓으면 당신이나 나나 모두 죽는 거야."

회계사의 섬뜩한 협박에 일당은 돈을 토해냈다. 회계사는 경찰에서 "다른 투자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사기당하고 있다'고 외쳤지만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정도로 완전히 속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솔깃한 투자정보를 조금씩 흘리기만 하고 끝까지 돈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신씨와 양씨에게 "조금만 더 버티면 국내로 수백조원의 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다독였다.

이런 유씨의 허무맹랑한 말에 약 20명의 사람들이 총 12억원가량 갖다 바쳤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투자자 중 한 명이 경찰에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신고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씨의 정체는 뭘까. 여수서 배춘석 수사관은 "병무청에서 찾아보니 미군 근무기록은 없다. 1970년대에 '방위'로 전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유씨는 직업난에 '작가'라고 썼지만 실제로 소설을 썼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양씨가 계좌로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은 어떻게 됐을까. 경찰은 "양씨는 수억원의 돈을 투자자들에게 받았으나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2700만원을 유씨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그 뒤론 신씨와 양씨가 야금야금 그 돈을 자기들이 썼다. 둘이 유씨의 정체를 눈치 챘다는 뜻이다.

유씨는 작년 12월 신씨 자녀의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미국으로 간 뒤 들어오고 있지 않다. 신씨는 자취를 감췄고 양씨만 유치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