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안보문제전문기관인 '스트래트포'에 대한 해킹으로 국내 재벌2세, 전 외무부장관,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직원등의 신용카드정보와 이메일등이 인터넷에 공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4일 크리스마스에 이 사이트를 해킹한 해킹그룹이 인터넷에 공개한 2백20메가분량의 정보를 다운받아 조사한 결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NSC 직원등으로 확실시되는 가입자의 신용카드 정보가 모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고 특히 NSC직원은 스스로 NSC요원임을 밝히고 청와대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나 보안사고논란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09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방한때 통역으로 나서 화제를 모았던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은 아이디[유저네임]이 자신의 이름 영문인 KIMDONGKWAN@GMAIL.COM이었으며 암호화된 비밀번호도 공개됐습니다. 이메일은 유저네임과 동일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지메일이었습니다. 주소는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26층이었으며 이름은 박모씨의 이름으로 돼 있었고 2012년 5월이 만기인 신용카드번호와 신용카드 암호[CVV] 3자리도 유출됐습니다. 아마도 김실장의 비서등 참모진이 김실장을 대신해 가입을 하고 김실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이디로 스트레트포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화빌딩 26층은 구조조정본부등 한화의 핵심간부등이 근무하는 곳입니다
주미대사와 외무부장관등을 역임한 한승주 전외무부장관이 확실시되는 가입자의 정보도 인터넷에 모조리 노출됐습니다. 이 가입자는 자신의 이름을 HAN SUNG 로 기재했으며 아이디는 한승주의 이니셜을 딴 HSJKOR로, 이메일은 HSJKOR@****으로 표기했습니다. 주소는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으로 돼 있었으며 전화번호와 팩스번호도 공개됐습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을 역임했었습니다. 한승주장관의 신용카드 번호도 노출됐으며 만기가 2005년 12월인 것으로 미뤄 그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으로 있던 2002년께 이 사이트에 가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 이메일을 사용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직원의 신용카드정보와 전화번호등도 예외없이 노출됐습니다. NSCKOREA를 아이디로 사용한 이 가입자는 sang1221@cwd.go.kr 이라는 청와대 이메일을 자신의 이메일로 기록했고 이름은 NSC 세크리테리라고 밝혔습니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가로 기록했으며 이 주소는 청와대 주소입니다. 또 청와대 전화번호와 팩스번호를 남겼으며 2012년 12월이 만기인 신용카드를 제시했습니다.
NSC 직원이 국제안보관계사이트에 가입, 시시각각 민간연구소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직원은 매우 심각안 보안사고를 저질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NSC직원 스스로가 자신의 아이디를 NSCKOREA로 한 것은 물론 이름을 NSC 세크리테리라고 밝히면서 신분을 밝힌 것은 물론 청와대 전화까지 기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NSC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매우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곳임을 감안하면 내부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보안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국가정보원등은 부서명칭자체가 비밀로 분류되고 수년에 한번씩 부서명칭을 바꾸는 것은 물론 소관업무를 유추할 수 없도록 엉뚱한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
스트래트포측에서 가입자를 스크린하다 이 가입자정보를 봤을 경우 한국 NSC 요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것입니다. 이미 잘 알듯이 스트래트포가 국제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장사를 하는 사실상의 민간정보기관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정보가 역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가입자가 스트래트포의 어떤 정보를 보는지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며 이는 곧 한국정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익명의 해커그룹이 해킹한 정보는 유료회원과 무료회원등 약 87만여명에 달하며 이중 신용카드번호가 공개된 유료회원이 약 1만2천9백명에 달했습니다. TXT파일을 엑셀파일로 변환한 결과 백4만8천여개의 칼럼이 나왔지만 무료회원 86만백60여명만 한 칼럼당 한회원의 정보를 담고 있었고 그뒤로 부터는 만2천9백여명의 유료회원 정보는 1일당 약 10칼럼정도를 사용해 칼럼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재벌2세, 전장관, NSC 직원외에 KBS,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례와 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등 6개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유료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의 신용카드 정보와 주소등도 모두 드러났습니다. 기사의 질을 높이고 신속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가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비가 지원되지만 취재원 소주 한잔 사면 바닥날 정도여서 아마도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서 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료회원으로 가입한 기자들은 많았으나 신용카드정보를 제시하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확인된 언론사 기자는 위 6개사 6명이었습니다
이외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등이 유료회원으로 가입, 신용카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삼성이란 단어로 검색한 결과 모두 106개의 삼성닷컴 이메일등이 검출된 반면 현대는 단 6개의 관련정보가 검출됐으며 그나마 현대는 현대아파트등 거주지 이름이었고 현대카드의 이메일이 3개였습니다.
삼성이 이같은 민간정보기관도 예의주시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입자 정보중 네이버메일등 네이버란 단어가 1726개 검출됐고 한메일은 1201개, 다음은 168개 검출됐습니다
또 주한미국이 사용하는 미육군성 이메일도 84개 발견돼 미국방부등도 이 사이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김 상임고문 측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뇌정맥혈전증의 근본적 치료가 안 되고 폐렴, 신장염 등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김 상임고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의 청.장년 시절은 민청련 사건ㆍ전민련 활동 등으로 수배와 투옥을 되풀이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뒤 이듬해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내리 3선에 올랐으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고 “아름다운 꼴찌를 기억해달라”며 경선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오랜 동지이면서도 정책 등에서 이견이 있을 때 ‘할 말은 하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거치며 개혁성과 탁월한 논리력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진보세력까지 포함하는 민주세력 대연합을 시대적 과제로 삼아 통합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모색해왔다.
유족은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씨와 1남1녀(병준ㆍ병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국내 신문·잡지 등 매체의 발행 부수를 공식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한국ABC협회가 29일 발표한 ‘2010년 발행·유료부수’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발행 부수 181만112부로, 2·3위인 중앙일보(131만493부)·동아일보(124만8503부)와 각각 50만부와 57만부 정도의 차이로 1위였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동조사 결과 '캠프 캐럴'의 땅 속 토양에서 고엽제와 관련된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ㆍ미 공동조사단은 과거 이곳에 고엽제가 매립됐다는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짓고 퇴역 미군 스티브 하우스씨의 폭로 이후 7개월여에 걸친 조사를 마무리했다.
공동조사단은 29일 오후 경북 칠곡군청에서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조사단은 기지 내 86개 지점의 토양 시료를 채취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모든 지점에서 고엽제 성분인 2,4-D나 2,4,5-T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토양 시료는 기지 내 헬기장 구역과 D구역, 41구역, 스티브 하우스씨가 지목한 지역 등 모두 87개 지점에서 시추 조사로 땅을 파내려가는 방식으로 채취됐다.
고엽제 불순물인 2,3,7,8-TCDD의 경우 한국 측 분석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고 미국 측 분석 결과 2개 지점에서 각각 7.44pg/g, 0.57pg/g 검출됐다. 이는 미국의 주거지역 권고 기준(1천pg/g)의 100분의 1 이하여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고 조사단은 밝혔다.
2,3,7,8-TCDD는 상업용 제초제나 다른 화학물질에서도 유래될 수 있어 미량만으로 고엽제와의 관련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조사단의 설명이다.
다른 다이옥신은 상당수 지점에서 나왔지만 검출량이 0.002~10.087pg-TEQ/g로 국내 일반토양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들 성분 외에 발암물질인 TCE(트리클로로에틸렌)와 PCE(테트라클로로에틸렌)를 비롯해 비소ㆍ톨루엔ㆍ린덴 등이 일부 지점에서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
공동조사단은 "매립 의혹 지역에 대한 지구물리탐사와 토양시추조사 결과 드럼통이 매립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공동조사 결과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엽제 사용ㆍ매립 여부에 대해 공동조사단은 "과거 근무자 172명에 대한 인터뷰와 32개 기관에 대한 기록조사 과정에서 D구역에 매립돼 있던 고엽제가 아닌 살충제와 제초제, 솔벤트, 기타 화학물질 등이 미국 본토로 수송됐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했다.
미군은 지난 9월 중간 조사결과 브리핑에서도 "캠프 캐럴의 화학물질을 유타주로 옮겨 처리했다"면서 이 화학물질들과 고엽제의 연관성은 부정했었다.
공동조사단은 "공식기록에 따르면 1968년 380드럼의 고엽제가 한국으로 수송돼 한국 육군에 의해 DMZ(비무장지대)에서만 사용됐다"며 사실상 과거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가 사용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공동조사단은 "기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향후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환경분과위원회를 통해 조치할 것"이라며 "이번 고엽제 공동조사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긴밀한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약 15년전 YS재임시절, 최형우 당시 내무부 장관이 부산지역 모 관공서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다.
'나 최형운데' '나 내무부장관이요' 아무리 밝혀도 당직실에서는 그를 장관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니가 최형우면 난 YS다'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당시 주요신문 가십란을 장식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방본부 당직실 통화와 닮은 꼴이다.
항상 비서를 통해서 높은 분만 찾던 사람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니 긴가민가할수밖에 ---
모처럼 소통하려 했는데 불통된 까닭이다.
전화받은 소방공무원이 좌천됐다 원대복귀하는등 한바탕 난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최형우 전화를 받았던 부산공무원이 좌천됐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김문수와 최형우 전화소동이 닮은 꼴이건만 십수년지나도 권위주의의 골은 그때보다 더 깊어진 느낌이다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국제관계·남북관계·경제 등 국정(國政) 여러 분야에 걸친 '대선 과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또 야권의 현역 중진 의원 등이 여러명의 분야별 전문가를 소개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현실정치 참여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아온 안 원장이 사실상 대선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11월쯤부터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초빙해 대화형 학습을 해온 것으로 안다"면서 "학습 분야는 자신이 잘 아는 IT (정보기술) 분야를 제외하고 경제·사회복지·국제관계·북한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문제 전문가인 경남대 김근식 교수도 12월 초 안 원장을 만나 몇 시간에 걸쳐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이어 김정일 위원장 급사(急死) 후에도 다시 만나 북한 정세와 대북 정책의 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안 원장의 기부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강인철 변호사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방북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햇볕정책의 발전적 계승'을 주장하는 중견 학자다.
야권의 다른 관계자는 "안 원장과 가까운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이 안 원장의 대선학습을 돕고 있으며 이 외에 돕는 의원들이 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 1일 '안철수연구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당 창당설은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아 여러 관측을 낳았었다.
안 원장은 '대선 과외'와 더불어 내년 초 기부재단을 정식 출범시킬 예정이다.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 보유 주식(37.1%)의 절반을 투입해 설립키로 한 기부재단을 내년 초 가급적 이른 시기에 출범시킬 예정이다. 강인철 변호사는 "어떻게 하면 소액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재단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활동 중인 ‘나꼼수’ 팀은 19일 업로드한 ‘정봉주 BBK 사건 대법원 판결 기념 특별 호외’ 편의 도입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BBK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던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고 사안을 단순화해 일반 대중에게 소개했었다. 하지만, 실제 정 전 의원의 혐의는 방송 주장처럼 단순히 ‘이 대통령의 BBK 관련설 유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개입설 유포’에 관한 것이었다.
주가조작범 김경준이 BBK를 만든 시점은 1999년 4월. 이 후보는 2000년 초 김경준과 인연을 맺었고, 공동 사업을 진행하다가 2001년 4월 헤어졌다. 이 후보가 밝힌 결별 이유는 “김경준이 믿을 수 없는 인물이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김경준의 주가조작 행위는 2000년 말부터 시작됐고, 이 후보와 결별한 후에도 계속됐다.
관건은 이 후보가 김경준의 주가조작에 관여했는지 여부였고, 정 전 의원은 “알고 관여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근거 없이’ 또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것을 근거로' 퍼뜨렸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나꼼수 팀은 또 하급심의 법원의 판결 근거에 대해서도 “검찰 얘기는 이명박 후보가 아니라는데 왜 아니라는 걸 안 믿고 자꾸 허위사실을 유포하느냐는 것”이라고 희화화했지만, 실제 1·2심 재판부는 30페이지가 넘는 장문(長文)의 판결문을 통해 정 전 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었다.
원심 재판부는 "정 전 의원이 당시 입수한 자료만으로는 사실 확인이 어려웠고, 자신의 주장이 허위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틀림없다'는 등의 단정적인 표현을 써 유권자의 공정한 판단을 해쳤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었다.
선생님께서도 모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2001년 4월 18일이 MB와 김경준이 결별한 시점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본격적인 주가조작의 시점을 그 이후로 보고 있기 때문에, 4월 이후에도 MB가 BBK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주가조작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증거로 제출된 것이. 이장춘 전대사가 2001년 5월에 MB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BBK 명함과 증언. 그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서 명함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았다는 내용이 명함에 적혀 있습니다.
이 이장춘 대사와 MB는 오랜 시간을 사귄 친구 사이랍니다. MB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한 것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자식새끼라도 거짓말하면 용서 안 한다. 너 지금 거짓말 하고 있지 않느냐."
또한, 역시 2001년 7월에 신도리코와의 거래관계에서 발급된 BBK측의 세금계산서에도 대표가 MB로 되어 있다는 사실. 신도리코 측 증인은 법정에서 이런 경우 대표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기 나온 그대로 MB로 생각했다고, 보통 대표가 바뀌었어도 그대로 예전 대표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증언했답니다.
그리고 법정에 나온 BBK 여비서의 증언. "조금 이른 여름 휴가를 가 있던 중에 MB와 김경준이 결별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와 서류절차를 밟았다."는 법정에서의 증언. 이에 대해 판사가 "결별을 먼저 하고 이후에 절차를 밟았다는 말이지요?" 라는 식으로 증언을 곡해하려 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여름 휴가를 갔다는데 4월이 말이 됩니까.
김백준과 관련된 것도, 김백준이 교보생명 사장 취임식에 자기 이름으로 보낸 축하 화환 주문서에 BBK 부회장 김백준이라 적혀 있었고, BBK 관련 문서에도 김백준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 관계가 있다고 믿을 만한 개연성은 충분했고요.
뿐만 아니라 김경준이 주가조작을 위해 설립했다는 "워튼"의 은행계좌 예금주가 "김백준"으로 찍혀 나왔다는 기록도 김백준이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할만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정봉주 의원의 보좌관이 시험삼아 1000원을 송금해서 나온 결과라고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당시 구속당한 상태인 김경준에게 사실확인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런 증거들 자체가 사실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정봉주 전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측 변호사 사임에 대해서 그 원인을 "MB가 자칫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런 식으로 인터뷰에 말했던 것인데. 이게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법원에서 장문의 판결문을 쓰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는 것은, 개연성이 충분한 이러한 증거들을 전부 묵살한 다음에 하고 싶은 말만 한 겁니다.
만약 저런 증거들이 사실과 다르다면 그 이유를 들어서 반박해야 하는데, 그냥 증거로 불충분하다는 것이 끝이란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저러한 증거들을 입수했다면 충분히 관계를 짐작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한 가지. 정 전의원이 "확실하다" "틀림없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함으로써 자기 무덤을 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증명해야 하는데,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도 그 사실관계를 증명할 의지도 없었고 오히려 다 묻어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은 밝혀지리라 확신합니다. 저 대법관, 앞으로 어떤 길로 가는지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적지 않은 인센티브가 그에게 돌아갈테니까요.
원세훈 국정원장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 중이라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민주통합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의 질문에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최 의원이 전했다.
원세훈 원장은 당초 "2003년부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왔다"고 답했다가 '그 때부터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냐'는 최 의원의 질문에 "당시에는 비위 혐의가 있는 직원만 대상으로 실시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올해 초부터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했으며, 이 조사를 통해 현 정부 인사의 비리와 관련된 특정 정보가 국정원 직원을 통해 언론에 유출됐는지 여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한다는 사실과 이유 등을 직원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렸고, 직원들의 동의 아래 조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 의원은 "직원 전원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조직 통제가 안 되니까 이 조사를 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든 직원을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한다는 것은 인권유린 아니냐"며 "정권 말기에 혹시 있을지 모를 정보유출이나 정치권 줄서기를 막기 위한 조처가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원 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해군 특수전여단(UDT)과 특전사, 해병대 등 특수부대하사관 출신 직원 30여명을 채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왜 이들을 채용했느냐'는 질문에 "간첩 중에 무술 내공이 뛰어난 사람들 심문하다 다치면 안 되니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 "심각한 법률 위반"이라며 "국정원법상 내부에 준군사조직은 둘 수 없도록 돼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 지금 세상은 온통 뒤집히고 있소. 이 거세찬 소용돌이에 당신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이 휘말리지 않을 것 같소?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서도 막아 낼 수 없소. 이 무서운 격랑을 잠재울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이 세상에는 없다고 보오. 이런 격동의 시기에, 20대의 아들에게 평양성을 지키라고 넘겨주었으니….
당신이 그렇게도 믿었던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대외 사업 일꾼들과 간부들, 일반 주민들까지 2만 명 이상이나 벌써 당신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세계 여러 나라에 탈북 망명하였소. 이 세찬 탈북, 망명의 흐름을 당신은 언제까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평양성의 문은 이미 뚫렸고, 물막이 둑은 터졌소. 김 위원장, 이 스승의 진정 어린 충고를 귀담아듣고 어서 빨리 결단 내리길 바라오. 나는 스승으로서 제자인 당신이 제2의 후세인, 제2의 카다피가 되는 걸 원치 않소. 이웃나라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는 길을 따르면 어떨지요?
1970년대 초, 출장으로 평양-모스크바 국제열차로 중국 땅을 횡단할 때, 열차가 멈춰서는 역마다 헐벗고 굶주린 중국 사람들이 떼 지어 밀려와서 먹을 것을 구걸했소.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중국은 지금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이나 일본과 맞서고 있소. 그러한 급성장은 개혁 개방의 결과라고 생각하오. 북조선도 경제구조를 바꾸고 문호를 개방하면 이른 시일 내에, 중국을 따라 앞설 수 있을 것이오. 북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근면하고 슬기롭소. 당신의 조부모인 김형직 선생과 강반석 여사는 열렬한 애국자이고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소. 그들의 염원을 손자인 당신이 실현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당신 부친의 외국어 실력은 대단했소.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자유로이 회화했소. 다른 과목들보다 외국어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돌렸소. 그가 통치 50년 기간에, 단 한 번 학교에 나가 수업 참관을 했는데, 바로 그것이 러시아어 수업이었고 그 진행자가 사범대학 교수였던 나였소. 거기서 그는 외국어 교육에서는 회화를 기본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령적 교시도 남겼소.
나는 여기 미국에 와서 수많은 대학에서 북조선 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소. 5년 전부터는 버지니아에 ‘조선반도 언어연구소’를 세우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소.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하여 야단이오. 평양에 있는 재능 있는 동료 교수들, 실력 있는 제자들 생각이 간절하오. 그들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어서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평양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사람, 외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오가며 과학기술, 교육문화를 자유로이 공동으로 연구 발전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오.
▼ “내 품에서 엉엉 울던, 그때로 돌아가길 바랐는데…” ▼
김 위원장, 기억에 생생히 떠오르오. 당신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50년 전이라고 생각되오. 당신 부친이 나를 시켜 당신에게 러시아어 회화 개별지도를 하게 하였소. 반년 동안이나 우리는 매일 오후, 당신이 다니던 남산학교 교장실에서 회화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그리고 1960년 2월, 눈보라 세차게 몰아치던 어느 겨울 저녁이었소. 전국 러시아어 교원 협의회 참가자들을 위한 예술 공연에서 당신은 푸시킨의 시 ‘겨울 길’을 러시아어로 정말 멋지게 읊었소. 그날 저녁 날씨에 너무도 꼭 맞는 시였소. 당신의 시 낭송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모두가 일어서서 “김유라(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이름)” “김유라”라고 강당이 떠나갈 듯 환호하였소. 그러자 당신은 시 낭송을 지도했던 나한테 와락 달려와서, 내 품에 꼭 안겨 엉엉 울었소. 어린애처럼…. 나도 함께 울었소. 너무도 미덥고 감격스러워서….
그때의 그렇게도 순진했던 어린 학생으로, 미더운 제자로 제발 되돌아가 주기를 바라오.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전쟁 범죄자로, 독재자로, 당장 쳐 죽일 놈이라 규탄하고 있지만, 80세 된 나의 가슴에는 그때의 그렇게도 밝고 순진했던 미더운 제자 김유라만이 새겨져 있소. 김 위원장, 되돌아오길 바라오. 제발 그때의 그렇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제자의 모습으로, 이 스승 앞에 돌아오길 바라오.
―평양에서 수천수만 리 떨어진, 미국, 버지니아, 조지메이슨대학 연구실에서
옛 스승 김현식
2011년 12월 18일 밤 10시(한국 시간 19일 정오)
PS. 편지를 막 끝내려 하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아보니, 당신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오. 내 귀를 의심했소. 나이 예순아홉에 어찌 이런 일이? 당신이 그렇게 되기까지 그 숱한 장수연구소 일꾼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오. 당신이 더 늙기 전에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조국과 민족 앞에 못다 한 일을 하도록 편지까지 쓰고 있는데…. 김 위원장, 고이, 깊이 잠드시오. 당신이 저지른 잘못이 다음 대에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대위원은 11명 안팎이며 이중 6명은 외부인사로 구성됐다. 외부인사에는 김종인(71)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동성(62)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이상돈(60) 중앙대 법학과 교수, 이양희(55)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벤처기업 '비트컴퓨터'의 조현정(54) 대표, 벤처기업인 '클라세스튜디오'의 이준석(26) 대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석 대표는 서울 과학고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클라세스튜디오를 창업했고, '배나사(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봉사활동을 해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조동성 교수를 제외한 인사들은 박 전 대표와 별다른 인연이 없다"며 "각 분야 전문성과 청렴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인선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전 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정치권 경험이 별로 없다.
또 당내 인사로는 쇄신파 초선 의원인 김세연, 주광덕 의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박 위원장은 27일 국회에서 열리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비대위원 인선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비대위원 구성은 상임전국위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2003년 불거진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현 민주통합당 의원)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 당시 박 전 장관에게서 이 돈을 넘겨받아 관리했다고 주장했던 무기중개상 김영완씨가 이 돈에 대한 포기각서를 수년 전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검찰은 사건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2003년 3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8년8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귀국했던 김씨로부터 이 돈에 대한 포기 의사를 다시 확인했으며, 법률 검토를 거쳐 이 돈을 국고(國庫)로 환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시 미스터리로 남았던 150억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 전망이다.
당시 검찰은 "김씨가 150억원 중 30억원을 세탁해 박 전 장관에게 현금으로 건넸고 120억원을 보관하고 있었다"며 120억원을 압수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이 무죄를 선고받고,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내 돈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120억원을 돌려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은행 보관금 계좌에 보관해왔다.
이 돈은 2003년 3월 대북송금 특검 때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0년 4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서 현대건설 소유의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을 받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하면서 처음 실체가 드러났다.
이어진 검찰 수사 도중에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했으나, 검찰은 해외에 있던 김씨로부터 "박 전 장관에게서 150억원 CD를 받아 관리해왔다"는 자술서를 제출받아 박 전 장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자술서에서 "2000년 4월 박지원 장관에게서 서울 프라자 호텔 객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박 장관이 흰색 사각봉투를 내놓으면서, '현대에서 보내온 거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박 장관이 그 돈을 다른 돈으로 바꿔달라(세탁해달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알았어요 내가 바꿔 줄게요'라고 하면서 봉투를 받았다"며 "승용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봉투를 열어보니 1억원권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씨는 당시 40여개 은행 계좌를 동원해 150억원의 CD를 세탁, 박 전 장관에게 건넸다는 30억원을 제외한 120억원을 국민주택채권과 현금 등으로 나눠 보관해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법정에서 돈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박 전 장관의 측근들은 김씨가 박 전 장관 이름을 팔아 돈을 받아냈거나, 이익치씨와 짜고 배달 사고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 전 회장과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박 전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돈은 허공에 떠버렸다. 형사소송법상 무죄가 선고된 사건의 압수물은 제출자(김영완)에게 돌려주게 돼 있으나, 김씨가 자술서에서 "내 돈이 아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검찰은 앞으로 김씨를 상대로 돈의 실체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6일 귀국해 한 차례 조사를 받은 김씨는 검찰 조사에 계속 응한다는 약속을 하고 사흘 뒤 다시 출국했다.
22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성주의 지인이라 주장하는 사업가 A씨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지방검찰청에 "한성주와 측근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한성주를 민형사 고소했다. A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 혐의에 따른 형사고소와 동시에 집단폭행에 따른 위자료 및 피해보상으로 5억원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한국일보는 A씨의 법률 대리인의 인터뷰를 인용, "A씨는 지난 3월 한성주와 그의 오빠, 어머니를 비롯해 또 다른 남성 2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A씨는 한성주에게 준 고가의 선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A씨는 감금 당한 상태에서 약 8시간 동안 폭행당했다. 이후 보복을 당할까 무서워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크기 때문에 민사상 위자료 및 피해보상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한성주는 최근 MBC 창사 특별기획 '코이카의 꿈'의 녹화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방송 활동을 해왔다. <스포츠조선닷컴>
김정일이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사망했다고 보도되고 있으나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등은 오전에 사망했다고 발표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정일의 사망시간을 보도한 대표적인 북한매체는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으로, 조선중앙TV는 19일 낮 12시에, 노동신문은 20일자 신문 세개의 기사에서 사망시간을 언급했습니다
지난 19일 낮 12시 전파를 탄 조선중앙TV 특별방송을 반복해서 시청-청취한 결과 '김정일 동지가 12월 17일 8시 30분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고 밝혀 사망시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선중앙TV 12시 특별방송녹음
또 이튿날인 20일자 노동신문에도 2면에 김정일위원장의 사망을 알리면서 오전 오후 언급없이 12월 17일 8시 30분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숨졌다고 언급했습니다
20일자 노동신문은 2면외에도 3면에 장의위원명단을 게재한뒤 그 오른편 아래에 실은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서도 '발병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12월 17일 8시 30분에 서거하시었다' 고 보도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20일자 4면기사 '비분에 떠는 삼천리 강토' 라는 기사로 17일 8시 30분 서거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김정일의 사망시간을 17일 8시 30분이라고만 밝혔을뿐 오전 오후를 언급한 적은 없어 김정일이 오전 8시 30분이 아니라 오후 8시 30분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노동신문은 12시 정오의 경우 '낮 12시'등으로 시제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또 22일자 노동신문 5면에 게재된 '조의식장'에 나타난 산비둘기기사를 보면 '21일 오전 8시 30분'을 의미하는 부분에 '21일 아침 8시 30분'이라며 시제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전 8시 30분을 '아침 8시 30분'이라고 분명하게 표기한 것입니다
김정일 사망시간이 언제인지 의문이 증폭되며 오전 8시 30분인지 오후 8시 30분인지 우리정부가 알아낼 수 있는지 정보력등을 테스트한다는 의구심도 듭니다
한국관련 이슈에 대한 자료 수집과 공개를 통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합법적으로 입수한 자료를 무차별공개합니다. 원칙은 'NO EVIDENCE,NO STORY', 다운로드 www.docstoc.com/profile/cyan67 , 이메일 jesim56@gmail.com, 안보일때는 구글리더나 RSS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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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구식의원이...자신의 비서가 경찰에 구속되고, 정황이 거의 들어 났음에도...
2011/12/31 20:20 [ ADDR : EDIT/ DEL : REPLY ]언론에 자기는 자기비서를 믿는다고 ...흘리고 다녔는데...
이는 자기 비서가 ...비밀을 끝까지 지킬것을 믿는다...라는 의미로 들리더니....
검찰수사도... 아직 몸통들에게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귀하의 게시물을 참조 반갑습니다!
2012/12/12 04:0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