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주의 남친인 크리스 수[크리스토퍼 수;허중일]는 지난 2009년 9월 30일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뉴포트 비치의 고급 콘도미니엄 단지의 한 콘도를 1백84만달러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콘도는 1998년 건립된 것으로 건평이 백3평에 이르는 대형 고급콘도로 방이 4개, 욕실이 4개에 달합니다
오렌지카운티 등기소 조회결과 크리스 수는 매입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토퍼 C 수 로 기재했으며 독신 남성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로스앤젤레스내 작은 도시의 주택을 자신의 주소지로 기재했습니다. 이 주소지의 도시는 크리스 수의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크리스 수가 고급콘도를 구입한 것은 오렌지카운티내 손꼽히는 고급 주택지로 조현준 효성사장이 지난 2002년 효성아메리카에서 4백50만달러를 가져와서 4백50만달러 고급주택을 산 지역과 동일한 곳입니다, 조현준사장은 횡령혐의 재판에서 이 주택을 임대해 월 1만1천달러에서 많게는 2만5천달러의 수익을 올렸음이 드러나기도 했었습니다
전재용도 바로 2005년 9월 27일 이지역에 부인 박상아의 이름으로 주택을 구입, 장모 윤양자씨에게 관리를 맡겨 두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2월 17일 에어포스원 집무실에서 살라자르 내무부장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사진을 확인해 본 결과 오바마대통령의 책상에는 시스코 IP폰 7975G에 시스코 확장모듈 7916이 부착된 전화기가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진은 백악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것으로 인터넷에 공개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스코사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 전용기에 자사의 7975G 와 그 확장모듈 7916이 설치돼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시스코사는 이 7975G 폰이 705달러, 7916 확장모듈이 495달러라고 밝혔으나 현재 인터넷등에서는 두 모델 모두 각각 3백50달러 내외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폰은 음성, 동영상, 데이터등을 전송할 수 있는 통합커뮤니케이션 개념의 장비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에어포스원 집무실에는 시스코사 전화기외에도 다이알기능이 없는 직통전화기 2대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이 직통전화기는 에어포스원내 참모들 사무실과 회의실등에 연결된 전화기로 알려졌으며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램프등만 달려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외에도 에어포스원의 참모들 사무실과 회의실등에도 똑같은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은 이 전화기외에도 보안성이 좋은 별도의 비화기를 전용기에 비치,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사망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사진)이 일본의 한 언론인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 대화록을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이 입수해 보도했다. 이 대화록은 200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김정남과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요지(五味洋治) 편집위원이 주고받은 100여회의 이메일 대화와, 2011년 1월과 5월 두 차례 만나 나눈 이야기다. 고미 위원은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김정일과 나'라는 제목의 책을 낼 예정이다.
김정남은 고미 위원에게 "할아버지(김일성) 외모만 닮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얼마나 만족시킬지 걱정"이라며 "현재 김정은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기존 파워엘리트들이 권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일이 당초 "아들이 권력을 이어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세습은 나와 아버지 김일성의 업적을 망칠 것"이라며 3대 세습을 반대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결국 3대 세습을 결심한 것은 체제 유지를 위해선 '백두산 혈통(김일성 혈통)'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다고 했다. 김정남은 중국이 3대 세습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중국 정부가 세습을 환영한다기보다는 북조선의 내부 안정을 위해 후계 구도를 인정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3대 세습은 세상의 웃음거리"라고도 했다.
김정남은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북조선 군부가 자신들의 지위와 존재의 이유, 핵 보유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라고 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서는 "북조선 입장에서는 서해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핵(核), 선군정치 모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 개방 직언해서 멀어졌다"
김정남은 자신이 후계자에서 멀어진 이유에 대해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북한에 들어간 후 아버지에게 개혁·개방을 주장하면서부터 멀어졌고 이후 경계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유학 보내고 난 후 매우 외로워했다. 그러다가 이복 형제 정철, 정은, 여정이 태어나자 애정은 이복동생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오랜 유학 기간에 걸쳐 자본주의 청년으로 변하자 아버지는 동생들의 해외 유학 기간을 단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 계획 없이 직언한다. 과거 핵실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직언했다. 요즘도 주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매진하도록 동생(김정은)을 잘 교육시켜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강력한 후원자인 고모 김경희·고모부 장성택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지금도 좋은 관계에 있어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심 안(속)에 있다"고 했다.
"개방 안하면, 北이 무너지고개방 한다면, 北 정권이 무너진다" "김정은 한번도 안만났지만 北 주민 과연 만족시킬지… 北은 절대 핵 포기 안할 것 中은 날 보호하면서 감시, 그것이 나의 운명… 피할수 없다면 즐길수밖에… 고모 부부 김경희·장성택 아직도 내게 각별한 사랑"
◇"김정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성격과 관련해 "이복 동생인데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철의 경우 외국에서 몇 차례 봤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김정은 체제가 오래 못 갈 것"이라며, 김정은의 '어린 나이'와 '통치 무(無)경험'을 우려했다. 또 기존 권력 간 세력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김정남은 북한 체제와 관련해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고, 개혁·개방을 할 때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며 "개혁·개방이냐 체제 수호냐를 놓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동안에 시간이 지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남은 북한이 대외 강경 노선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생존을 위한 정치적 시스템"이라며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은 2011년 9월 14일 고미요지 기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최근 후계자(김정은)가 중시하는 군부 가족 아홉 명이 탈출해 북조선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언급한 군부 가족 9명은 지난해 9월 일본 영해에서 발견된 북한 인민군 가족 9명일 가능성이 크다. 일행 중 인솔자 격인 한 남성은 "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의 손자"라고 주장했다.
"왼쪽은 비서, 오른쪽이 내 아내" - 김정남이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2001년 5월 4일 김정남의 아내 신정희씨, 큰아들 금솔,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인(오른쪽부터)이 나리타 공항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인은 스튜어디스 출신의 동거녀 서영라씨로 알려져 왔으나 김정남은“여비서”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중국은 나를 보호하면서 감시"
김정남은 "중국 정부는 나를 보호하지만 감시하는 측면도 있다. 불가피한 나의 운명이다. 불가피한 운명은 즐기면서 사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마카오에 자주 가는 이유는 가족이 거주하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자유분방한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내가 여성편력이 있긴 하지만 나의 아내는 한 사람뿐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다. 2001년 일본 사건(불법 입국했다가 추방당한 일) 때 어린 아들(김금솔)의 손을 잡고 있던 여인이 바로 내 아내다. 안경 쓴 젊은 여성은 여(女)비서"라고 밝혔다.
김정남은 2001년 일본 불법 입국과 관련해 "위조여권으로 해외로 외출하는 것은 당시 (북한에서) 일반적이었고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해 도쿄의 유명 호텔과 음식점을 다녔다. 김정은도 브라질 여권을 위조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술을 좋아해서인지 통풍을 앓고 있으며 그 통증과 발작 증세가 있어 요산 조절제를 매일 복용한다"고 했다.
김정남은 2011년 10월 언론에 공개된 자신의 아들(김한솔·마카오에 거주하는 동거녀의 아들)에 대해 "아들은 모험심이 강해 스스로 분쟁 지역인 보스니아 모스타르 소재 국제학교를 선택했고 나는 그의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대화를 나눴나
고미요지 기자는 도쿄신문의 서울특파원을 거쳐서 2004년 베이징에 부임했다. 그해 9월 베이징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우연히 만나 첫 인연을 맺었다. 2004년 12월, 김정남이 고미요지 기자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면서 메일 대화는 시작됐다. 그러다가 몇 년간 소식이 끊겼는데 2010년 10월 고미요지 기자에게 '부탁' 메일을 보내면서 대화는 다시 시작됐다. 당시 김정남은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할 테니 내 생각을 잘 정리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메일을 보내기 한달 전 이복(異腹) 동생 김정은이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서울 강남 한복판이 몇 년째 재벌가의 땅 전쟁에 휘말려 있습니다. 청담동 이야기입니다. 보실까요?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재벌들이 사둔 땅이나 건물입니다. 2.33 제곱킬로미터라는데, 전체가 다 재벌 땅 같습니다. 큰손들이 달려들다 보니 땅값도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시가로 무려 1조 원에 달합니다. 재벌 중에서도 삼성과 신세계, 두 형제 기업의 경쟁이 가장 치열합니다.
TV 조선은 오늘부터 재벌가에 불고 있는 강남 땅 전쟁을 심층보도합니다. 먼저, 오늘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현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입니다. 국내외 명품숍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재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조용하지만 치열한 땅 전쟁, 특히 삼성과 신세계 등 범 삼성 재벌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이 지역, 청담동 70번지 일대입니다. 이곳에 가장 먼저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유통재벌 신세계, 2001년 인터내셔널 이름으로 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본격적인 땅 매집에 나섭니다.
2002년에는 이 건물, 2004년에는 그 뒷건물, 이번에는 그룹 오너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부사장 명의였습니다.
그런데 2008년이 되면서 묘한 상황이 시작됩니다. 신세계가 하나, 이명희 회장이 또 하나, 건물을 사들이면서, 이 지역 전체가 신세계 타운으로 변하려는 찰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등장합니다.
딱 하나 남은 빌딩을, 당시 시세보다 두 배 비싼 가격을 주고, 그것도 본인 이름으로 매입합니다. 그리고 아홉 달 뒤, 이 회장은 640억 원대인 이 빌딩을 추가 매입합니다. 그러자 신세계는 2010년 바로 뒷건물을 사들입니다.
재벌들의 '청담동 땅 전쟁'은 골목길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원래 1990년대부터 이 지역에 건물을 가지고 있던 신세계와 이명희 회장, 그리고 아들 정용진 부회장과 딸 정유경 부사장이 2004년과 2008년, 2010년 잇따라 부동산을 사들입니다.
그러나 2010년, 이건희 회장의 며느리였던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의 딸, 임세령 와이즈앤피 대표가 영화배우 김지미 씨의 소유였던 이 건물을 사면서, 신세계 타운은 또다시 무산됩니다.
경쟁은 학동사거리 등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녹취/박종복 미소 컨설팅 대표]
“아마 세계 브랜드는 이 블록 안에 다 들어갈 거예요. 그 청담동 아일랜드 블록은 명품브랜드가 들어간 종합타운이 될 겁니다. 삼성에서는 그걸 타 업체에게는 뺏길 수 없고, 독점으로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겠다는 거죠.”
아직까지는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한 상태, 구체적인 활용 계획은 밝혀지지 않은 채, 3년 사이 평당 1억 원대에서 3억 원대로, 전체 금액은 1조 원대로, 땅값은 벌써 3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TV조선 김현진입니다.
[앵커]
보신 대로 재벌들은 지난 10년 동안, 때로는, 법인 이름으로, 때로는 개인 이름으로 엄청난 부동산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왜 사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투자라고 보기에는 규모도 너무 큽니다.
한사람의 과거는 그사람의 대한 많은 답을 알려줍니다. 저 크리스 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용과 믿음을 심어주기위해 그동안 정직하고 올바르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전 숨길것이 없기때문에 앞으로 제입장과 진실을 인터뷰를 통해 밝힐 예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바라는건 진실이 밝혀져 법 아래 정의가 이루어지는것 뿐입니다.
제가 살아온 삶과 한성주가 살아온 삶을 보십시오. 전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하여 전교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학사를 받고 졸업하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얻은 열매들입니다. 졸업후 전 제가 설립한 두 회사의 CEO를 지냈습니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법을
어기거나 남을 해치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된적이 없습니다. 한성주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르는 폭력배로 보인 두남성의 손에의해, 타국
한국땅에서 폭행과 감금당한 일을 지어낼 이유가 저에겐 없습니다. 제 커리어에 큰손상을 입히면서까지 사실이 아닌 일들을 지어낼 리 만무합니다.
한성주와 그의 가족들에게 폭행당하면서 입은 부상 사진들과 경찰신고 진술서, 병원기록 등 증거자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한성주는 이미 폭행사건 6개월 이전부터 동거중이였으므로 집열쇠와 차열쇠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한성주와 사귀고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그와 그의 가족은 교제사실을 누설하면 절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저를 폭행하였습니다. 한성주는 가족들까지 동원하여
6개월 이상을 매일 매일 결혼하자는 말을 반복하였습니다. 제가 결혼을 졸랐고 폭행으로 교제를 강요했다는건 한성주의 거짓말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사실이라면 고소와 소송을하는데 아무런 주저함도 없는 한성주가 왜, 뭐가 두려워 절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한성주의 거짓주장들을 뒷받침해줄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법치국가에 사는 저희로서 폭행, 강제로 누구와 교제를 이어나갈 순 없습니다.
저는 31살의 미혼남이고 한성주는 37살의 이혼녀입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결혼하자는 압력을 넣었을까요? 한성주의 진실되지 못한
비도덕성, 늘 사람을 속이고 교활하게 조종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심각한 나르시시즘 등 때문에 도저히 결혼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한성주 이름 뒤에는 늘 따라다니는 석연치 못한 일들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그런것들이 하나, 둘, 셋, 계속 늘어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건 한성주라는 사람의 삶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것입니다. 한성주는 결혼한지 10개월만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성주의 외도가 이혼사유일 것이라고 합니다. 한성주는 대학도 승마특기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나운서가 될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서도 많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2005년 한성주와 그녀의 가족들은 제 3자를 사주하여 전 연인을 폭행 및 감금했습니다. 저 역시 너무나 흡사한 방법으로
폭행을 당했습니다. 늘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는 한성주입니다.
정말 한성주는 늘 죄없는 피해자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최근에도 한성주는 자신의 한남동 옆집 사람을 소송했습니다. 몇년 전에는 집에 도둑이
들어 상당의 금품들을 도둑맞았다고 했습니다. 한성주의 책에보면 자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전재산을 사기당했다고도 했습니다. 사실일까요?
그동안 한성주는 가슴성형 등 여러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해왔습니다. 분명히 성형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수년동안 한성주는 여러명의 금전적 스폰서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한성주보다 20살 가까이나 많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한성주는 늘 누군가와 마찰을 빚고 다툼을 일삼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한성주는 공인으로서 대중들에게 거짓을 일삼았습니다.
과거의 일들을 자세히 보아주십시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맏기겠습니다.
영빈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으로 순직한 수행원들의 유족에 대한 생계지원과 장학사업을 위해 일해재단을 설립하고 2년 뒤에 완공한 100평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또 3홀 규모의 골프장과 테니스장, 연못이 딸린 부속부지는 2만 6천여 평에 이르며 수령이 수 백 년에 이르는 노송들로 꾸며졌다. 전 전 대통령의 ‘호화 사저’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다 1988년 초 일해재단 기금 강제모집 파문이 일면서 그 해 4월 18일 취재진에게 단 한 차례만 공개된 뒤 폐쇄되었고 1991년 국가에 귀속됐다.
영욕의 역사를 간직한 영빈관은 이제 KOICA의 지구촌 체험관으로 다시 태어나 국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지구촌 체험관의 첫 번째 전시회는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전시 이다. 외형은 26년전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지만 고급 샹들리에와 수입 등나무 가구로 꾸며졌던 실내는 메콩델타와 수상시장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전통악기 체험, 전통 음식문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준비돼있다.
이영주 KOICA 지구촌체험관 수석기획관은 “영빈관이 이제야 제 모습을 찾아 국민들과 의미있는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고 말하고 “베트남을 비롯한 협력대상국과 우호증진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지구촌체험관으로 단장한 영빈관은 18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크리스 수는 16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난 숨길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내 입장과 진실을 인터뷰에서 밝힐 예정이다”고 말했다.
크리스 수는 “내가 살아온 삶과 한성주의 삶을 비교해 보라”며 긴 글을 시작했다.
그는 “나는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해 전교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학사를 받고 졸업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얻은 열매들”이라며 “졸업 후 내가 설립한 두 회사의 CEO를 지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법을 어기거나 남을 해치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 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내 커리어에 큰 손상을 입히면서까지 사실이 아닌 일들을 지어낼 리 만무하다. 한성주와 그의 가족들에게 폭행당하면서 입은 부상 사진들과 경찰신고 진술서, 병원기록 등 증거자료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 수는 “나와 한성주는 이미 폭행사건 6개월 이전부터 동거 중이었으므로 집 열쇠와 차 열쇠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성주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그와 그의 가족은 교제사실을 누설하면 날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폭행했다”고 충격적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어 “한성주는 가족들까지 동원해 6개월 이상을 매일 결혼하자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결혼을 종용했고 폭행으로 교제를 강요했다는 건 한성주의 거짓말이다. 한성주의 거짓 주장들을 뒷받침해줄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폭로했다.
또한 “나는 31살의 미혼남이고 한성주는 37살의 이혼녀다. 한성주의 진실되지 못한 비도덕성, 늘 사람을 속이고 교활하게 조종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심각한 나르시시즘 등 때문에 도저히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주 이름 뒤에는 늘 따라다니는 석연치 못한 일들과 의문들이 있다”며 이혼 사유와 학력 문제, 아나운서 입사, 성형 등에 관한 석연찮은 부분들을 지적했다.
이어 “2005년 한성주와 그녀의 가족들은 제 3자를 사주해 전 연인을 폭행 및 감금했다. 나 역시 너무나 흡사한 방법으로 폭행을 당했다”며 “수 년 동안 한성주는 여러 명의 금전적 스폰서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한성주보다 20살 가까이나 많으신 분들도 있었다”고 스폰서 연루설까지 제기했다.
대만계 미국인으로 알려진 크리스 수는 한성주와 그의 가족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형사 고소했으며 집단폭행에 따른 위자료, 피해보상으로 5억원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별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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