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회장의 장남 이명희씨는 지난 1993년 출판한 자신의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이병철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싫어했다고 밝히면서 대구대학등을 강제로 빼앗긴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맹희씨는 이 책 222페이지에서 '70년대 초반, 삼성은 대구의 대구대학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락씨가 어느날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를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이씨는 이때 '아마 대구에 대학을 하나 만들어서 박대통령이 은퇴후 그곳의 총장으로 취임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씨는 '지금 상식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지만 그대로 헌납할 수 밖에 없었다'며 대구대학을 억울하게 박대통령에게 빼았겼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씨는 또 '그들은 그후 당시의 청구대학이 부실 공사건으로 걸려들자 그걸 빌미로 청구대학도 차지했다, 오늘날 영남대학교는 그 두 대학을 합쳐서 설립된 것이다'라며 '그들은 권력으로 대구대학을 차지하고 상대의 약점을 빌미로 청구대학을 차지한 다음 둘을 합쳐서 영남대학교를 만들었다'며 영남대학교 탄생배경을 상세히 밝혔습니다
이씨는 '한때 516 재단에서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기재했습니다
김지태씨가 소유했던 부산일보를 강제로 헌납받아 516재단[정수장학회]가 소유함으로써 장물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대구대학을 빼앗겼다고 밝힘에 따라 또 다시 박정희 박근혜를 둘러싼 장물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지사의 정무 담당 보좌관(5급 계약직)이 김 지사에게 건의하기 위해 적어놓은 A4용지 4쪽짜리 문건에는 "4·11 총선 전후로 외부에서 들은 이야기 중 지사님이 이번 대선에 도전하셔야 한다는 의견만 모아 보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문건에는 "김문수의 최대 정치자산은 삶의 궤적으로 박근혜보다 절대 유리하다" "박근혜는 쇼윈도에 전시된 마네킹 같은 사람이다. 박근혜의 비전과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 "박정희의 긍정적 유산과 부정적 유산을 동시에 계승한 박근혜와 1970·1980년대를 가장 치열하게 산 김문수의 대결 자체가 '빅쇼'이고, 매치가 성사되는 순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5대5 또는 박빙의 게임이 될 것이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당내 지지세력이 미미할수록 의지를 일찍 밝히고 노무현처럼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문건을 만든 보좌관은 "출마를 해야 한다는 쪽 의견만 담은 것 같아 김 지사에게 따로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경기도 공무원 신분인 측근 보좌관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고 관건 선거를 하는 것"이라고 했고, 한 친박 인사는 "경기도가 대선 출마를 준비하는 조직도 아닌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11시10분께 대검찰청사에서 사전구속영장 집행에 앞서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말이나 행동, 몸가짐을 삼가 신중하게 한다'는 뜻의 '자중자애'를 언급했다.
최 전 위원장은 '왜 구속됐다고 생각하는가', '국민에게 한 말씀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한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뭐가 많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자중자애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최재경)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고향 후배이자 건설업체 사장인 브로커 이동율(60·구속)씨를 통해 시행사인 이정배(55) 파이시티 전 대표로부터 인·허가 로비 청탁과 함께 7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 2007년 5월~2008년 5월 이 전 대표가 이씨에게 로비 명목으로 건넨 11억5000여만원 중 일부를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 전 위원장은 이 전 대표로부터 요청을 받은 뒤 권재진(59) 법무부 장관(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권혁세(56) 금융감독원장에게 청탁 전화를 넣은 의혹도 받고 있다.
이날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박병삼 영장전담판사는 "금품공여자의 일관된 진술 등으로 미뤄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수사진행 경과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최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15분께 법원에 들어서며 '대가성 여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유구무언"이라고 했다. 또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괴롭다. (14일로 예정된 심장혈관 수술은) 급히 예약한 것이 아니다"라며 구속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건희회장의 병역논란은 재벌가의 병역기피논란이 일때마다 국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으나 이처럼 현역복무설, 면제설등이 엇갈리면서 베일에 쌓여있었고 적어도 현역복무는 아닐 것이란 주장이 많았습니다
이같은 논란속에 이건희 회장의 친형인 이맹희씨가 이회장의 병역문제를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맹희씨는 지난 1993년 출판된 자신의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동생 이창희씨가 아버지 이병철회장을 청와대에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무관함을 설명하면서 이회장의 병역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이맹희씨는 이책에서 '처음에는 아버지가 나도 이 일에 대해서 개입이 된 것으로 생각을 했던 듯 하다. ---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묵인은 했으리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그후 건희가 방위병입대를 할 때에도 나에게는 건희가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병철회장이 이창희씨의 청와대고발과 관련, 이맹희씨가 개입했다고 생각하면서 건희가 방위병으로 입대할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등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맹희씨의 이같은 언급으로 미뤄 이건희 회장은 적어도 현역으로 복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8월말 보도된 현역복무기사는 이회장의 결혼시기, 득남시기, 사회활동시기등을 역산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적어도 이건희씨의 방위병입대시기가 이창희씨의 청와대 투서파문이후임을 알 수 있으며 그렇다면 1969년 청와대 투서사건일 발생했으므로 이건희 회장의 입대는 빨라도 1969년 이후이며 1942년생인 이건희 회장은 1968년 6월 큰 아들 이재용씨를 얻은뒤 입대한 것이 확실시됩니다. 방위병제도가 생긴 것도 1969년 4월이라는 점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이회장은 아마도 병역의무를 차일피일 미루다 1969년 4월 방위병제도가 생긴뒤 입대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쨋든 현역복무설, 정신질환에 따른 면제설등 논란이 분분하던 이건희 회장 병역문제에 대해 이맹희씨는 이회장이 일단 방위병으로 입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맹희씨의 이같은 언급이 이건희 회장이 방위병복무를 온전히 마쳤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입대는 했지만과연 18개월정도의 방위병복무기한을 완전히 채웠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아마도 혼인과 자녀출산등으로 복무기간 단축혜택을 받거나 건강문제등으로 의가사 또는 의병제대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권력형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파이시티 사건의‘키맨(key-man)’인 이정배 대표는 “2조원이 넘는 사업을 MB정권이 강탈해 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파급력이 큰 것은 그가 정권 실세에게 어떤 식으로 돈을 전달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팩트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데이저널>이 확인한 결과 이정배 대표는 이미 지난해 11월 채권단인 우리은행과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의 소송이 의미가 있는 것은 사건이 확전되기 전 그가 가감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대표는 소장을 통해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권을 인수하기 위해 비밀협약서를 체결했고, 경영진 의사와 관계없이 파이시티를 파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0년 초 대우자동차판매 등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200억원에 모든 사업권을 양도하라는 협박을 받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같은 해 8월 채권은행단이 일방적으로 법원에 파이시티의 파산을 신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대표의 주장처럼 파이시티 사업권이 MB를 둘러싼 측근들의 공모에 의해 좌지우지 된 것이라면 이는 곧바로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정배 대표의 소송을 통해 이번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 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BEIJING -- When Hu Jintao, China's top leader, picked up the telephone last August to talk to a senior anticorruption official visiting Chongqing, special devices detected that he was being wiretapped -- by local officials in that southwestern metropolis.
The discovery of that and other wiretapping led to an official investigation that helped topple Chongqing's charismatic leader, Bo Xilai, in a political cataclysm that has yet to reach a conclusion.
Until now, the downfall of Mr. Bo has been cast largely as a tale of a populist who pursued his own agenda too aggressively for some top leaders in Beijing and was brought down by accusations that his wife had arranged the murder of Neil Heywood, a British consultant, after a business dispute. But the hidden wiretapping, previously alluded to only in internal Communist Party accounts of the scandal, appears to have provided another compelling reason for party leaders to turn on Mr. Bo.
The story of how China's president was monitored also shows the level of mistrust among leaders in the one-party state. To maintain control over society, leaders have embraced enhanced surveillance technology. But some have turned it on one another -- repeating patterns of intrigue that go back to the beginnings of Communist rule.
"This society has bred mistrust and violence," said Roderick MacFarquhar, a historian of Communist China's elite-level machinations over the past half century. "Leaders know you have to watch your back because you never know who will put a knife in it."
Nearly a dozen people with party ties, speaking anonymously for fear of retribution, confirmed the wiretapping, as well as a widespread program of bugging across Chongqing. But the party's public version of Mr. Bo's fall omits it.
The official narrative and much foreign attention has focused on the more easily grasped death of Mr. Heywood in November. When Mr. Bo's police chief, Wang Lijun, was stripped of his job and feared being implicated in Bo family affairs, he fled to the United States Consulate in Chengdu, where he spoke mostly about Mr. Heywood's death.
The murder account is pivotal to the scandal, providing Mr. Bo's opponents with an unassailable reason to have him removed. But party insiders say the wiretapping was seen as a direct challenge to central authorities. It revealed to them just how far Mr. Bo, who is now being investigated for serious disciplinary violations, was prepared to go in his efforts to grasp greater power in China. That compounded suspicions that Mr. Bo could not be trusted with a top slot in the party, which is due to reshuffle its senior leadership positions this fall.
"Everyone across China is improving their systems for the purposes of maintaining stability," said one official with a central government media outlet, referring to surveillance tactics. "But not everyone dares to monitor party central leaders."
According to senior party members, including editors, academics and people with ties to the military, Mr. Bo's eavesdropping operations began several years ago as part of a state-financed surveillance buildup, ostensibly for the purposes of fighting crime and maintaining local political stability.
The architect was Mr. Wang, a nationally decorated crime fighter who had worked under Mr. Bo in the northeast province of Liaoning. Together they installed "a comprehensive package bugging system covering telecommunications to the Internet," according to the government media official.
One of several noted cybersecurity experts they enlisted was Fang Binxing, president of Beijing University of Posts and Telecommunications, who is often called the father of China's "Great Firewall," the nation's vast Internet censorship system. Most recently, Mr. Fang advised the city on a new police information center using cloud-based computing, according to state news media reports. Late last year, Mr. Wang was named a visiting professor at Mr. Fang's university.
Together, Mr. Bo and Mr. Wang unleashed a drive to smash what they said were crime rings that controlled large portions of Chongqing's economic life. In interviews, targets of the crackdown marveled at the scale and determination with which local police intercepted their communications.
"On the phone, we dared not mention Bo Xilai or Wang Lijun," said Li Jun, a fugitive property developer who now lives in hiding abroad. Instead, he and fellow businessmen took to scribbling notes, removing their cellphone batteries and stocking up on unregistered SIM cards to thwart surveillance as the crackdown mounted, he said.
Li Zhuang, a lawyer from a powerfully connected Beijing law firm, recalled how some cousins of one client had presented him with a full stack of unregistered mobile phone SIM cards, warning him of local wiretapping. Despite these precautions, the Chongqing police ended up arresting Mr. Li on the outskirts of Beijing, about 900 miles away, after he called his client's wife and arranged to visit her later that day at a hospital.
"They already were there lying in ambush," Mr. Li said. He added that Wang Lijun, by reputation, was a "tapping freak."
Political figures were targeted in addition to those suspected of being mobsters.
One political analyst with senior-level ties, citing information obtained from a colonel he recently dined with, said Mr. Bo had tried to tap the phones of virtually all high-ranking leaders who visited Chongqing in recent years, including Zhou Yongkang, the law-and-order czar who was said to have backed Mr. Bo as his potential successor.
"Bo wanted to be extremely clear about what leaders' attitudes toward him were," the analyst said.
In one other instance last year, two journalists said, operatives were caught intercepting a conversation between the office of Mr. Hu and Liu Guanglei, a top party law-and-order official whom Mr. Wang had replaced as police chief. Mr. Liu once served under Mr. Hu in the 1980s in Guizhou Province.
Perhaps more worrisome to Mr. Bo and Mr. Wang, however, was the increased scrutiny from the party's Central Commission for Discipline Inspection, which by the beginning of 2012 had stationed up to four separate teams in Chongqing, two undercover, according to the political analyst, who cited Discipline Inspection sources. One line of inquiry, according to several party academics, involved Mr. Wang's possible role in a police bribery case that unfolded last year in a Liaoning city where he once was police chief.
Beyond making a routine inspection, it is not clear why the disciplinary official who telephoned Mr. Hu -- Ma Wen, the minister of supervision -- was in Chongqing. Her high-security land link to Mr. Hu from the state guesthouse in Chongqing was monitored on Mr. Bo's orders. The topic of the call is unknown but was probably not vital. Most phones are so unsafe that important information is often conveyed only in person or in writing.
But Beijing was galled that Mr. Bo would wiretap Mr. Hu, whether intentionally or not, and turned central security and disciplinary investigators loose on his police chief, who bore the brunt of the scrutiny over the next couple of months.
"Bo wanted to push the responsibility onto Wang," one senior party editor said. "Wang couldn't dare say it was Bo's doing."
Yet at some point well before fleeing Chongqing, Mr. Wang filed a pair of complaints to the inspection commission, the first anonymously and the second under his own name, according to a party academic with ties to Mr. Bo.
Both complaints said Mr. Bo had "opposed party central" authorities, including ordering the wiretapping of central leaders. The requests to investigate Mr. Bo were turned down at the time. Mr. Bo, who learned of the charges at a later point, told the academic shortly before his dismissal that he thought he could withstand Mr. Wang's charges.
Mr. Wang is not believed to have discussed wiretapping at the United States Consulate. Instead, he focused on the less self-incriminating allegations of Mr. Bo's wife's arranging the killing of Mr. Heywood.
But tensions between the two men crested, sources said, when Mr. Bo found that Mr. Wang had also wiretapped him and his wife. After Mr. Wang was arrested in February, Mr. Bo detained Mr. Wang's wiretapping specialist from Liaoning, a district police chief named Wang Pengfei.
Internal party accounts suggest that the party views the wiretapping as one of Mr. Bo's most serious crimes. One preliminary indictment in mid-March accused Bo of damaging party unity by collecting evidence on other leaders.
Party officials, however, say it would be far too damaging to make the wiretapping public. When Mr. Bo is finally charged, wiretapping is not expected to be mentioned. "The things that can be publicized are the economic problems and the killing," according to the senior official at the government media outlet. "That's enough to decide the matter in public."
미국 월간지 ‘와이어드(WIRED)’ 인터넷판이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였던 타블로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매체는 타블로에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한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회원들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와이어드는 24일 ‘다니엘 리(타블로), 한국의 힙합 슈퍼스타가 스토킹 당하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를 작성한 조슈아 데이비스 기자는 “타블로는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을 3년 반만에 졸업하고 두 개의 학위를 취득했다”며 “그의 학점은 재학기간 동안 상위 15% 안에 들었다”고 밝혔다.
조슈아는 취재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살고 있는 타블로의 동창 네 명을 만나 타블로에 대해 물었고 그들은 타블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다. 또 타블로가 매우 명석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고 전했다. 타블로의 전 룸메이트이자 현재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 콘래드는 “(타블로가 한국으로 간 것은)위험한 결정이었다”며 “당시 한국사람들은 힙합을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조슈아는 또 “사람들이 내세우던 다양한 증거들은 모두 거짓이었다”며 타진요가 오히려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타진요 회원 일부가 비버리힐스에 사는 변호사 존 생크를 찾아가 1만 달러(약 1140만원)를 주며 ‘타블로를 캠퍼스에서 본 적이 없다’는 문서에 서명해 줄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존 생크 변호사는 2001년 스탠퍼드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타블로의 학력위조 논란은 한 네티즌이 2010년 초 “스탠퍼드 졸업자 명단에 타블로의 이름이 없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불거졌다. 그해 8월 타블로는 논란을 주도한 ‘타진요’ 일부 회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이들은 현재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다음달 18일 오전 11시에 이들에 대한 공판이 열린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큰 형인 이맹희씨를 '꼴' 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비난하고 맹희씨는 동생을 원망하는등 삼성 2세들의 재산싸움이 막장드라마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5년전인 1987년 선데이저널 유에스에이가 게재한 이맹희 인터뷰 내용이 다시 한번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선데이저널유에스에이는 25년전인 1987년 9월 13일부터 3주간 이맹희인터뷰를 보도하며 이맹희씨가 이건희회장의 장인 홍진기씨를 불러다 무릎을 꿇게 했고 홍씨가 이후 맹희씨의 유배생활에 복수차원의 역할을 했다, 이건희회장이 어머니 박두을 여사를 다섯시간동안 야단쳤다, 이병철회장은 이건희씨와 이태희씨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로 부터 '비정한 아버지'소리를 들으며 소외당했다는 등 말그대로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선데이저널은 이 기사에서 한국비료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이병철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뒤 이맹희씨가 총수역할을 하는 와중에서 홍진기씨와의 불화설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비사건의 오욕을 우리가 씻자”는 기치를 내걸고 ‘삼성재건 5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삼성 경영체제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이병철의 측근 창업공신들은 강한 반발을 보였고, 자기들의 자리 안전 확보를 위해 반격에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한번은 맹희씨가 홍진기씨(전 중앙일보 회장, 86년 작고)를 불러다 무릎을 꿇게 하는 등의 사태도 일어났고 이에 악감정을 품은 홍진기가 그 뒤에 이맹희씨의 실각에 이은 유배생활에 복수차원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맹희 제거에는 홍씨를 비롯 현 삼성비서실 소병해 실장 등도 적극 가담했고, 심지어는 맹희씨를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고립, 매장시키기 위해 납치극을 벌이기도 했다
선데이저널은 이병철회장의 2남 이창희씨의 청와대 투서사건에 대해서도 홍진기씨의 삼성개입을 '삼성이씨에 대한 홍씨의 역성혁명'으로 간주해 이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투서사건을 일으켰다고 설명했습니다
1966년 한비사건으로 구속 되었다가 이듬해인 1967년 감옥에서 풀려나온 창희씨는 아버지 이회장의 애정이 자신에게서 벗어나 3남인 건희씨에게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중앙매스컴의 평이사였던 건희씨는 장인 홍진기씨의 적극 비호 아래서 이른바 이병철-홍진기-이건희로 이어지는 ‘3두 마차’의 주자가 되어 있었고, 이런 그룹의 흐름을 안 창희씨는 이를 “삼성 이씨에 대한 역성(易姓)혁명”으로 간주, 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하에 투서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이창희씨는 청와대 투서직전 형 맹희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맹희씨가 화가 나 창희의 벤츠승용차를 두들겨 박살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제보한 어느 취재원은 ‘창희씨는 일을 벌이기 직전, 형 맹희씨를 자기집으로 불러서 그 사실을 알렸다. 깜짝 놀란 맹희씨가 아우를 간곡하게 말렸으나 창희씨는 막무가내였다. 맹희씨는 화가 난 나머지 집 밖으로 나와 창희씨의 벤츠 승용차를 두들겨 박살내버렸다“고 전했다.
이 사건이 터진 뒤 최근 당시를 회상하며 맹희씨는 “다 지나간 일 누구를 원망해 본적도 없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 부친께선 나의 무고함을 아셨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그 투서사건으로 창희씨는 물론 맹희씨까지도 아버지 이명철 회장으로부터 ‘억울하게’ 파문을 당한다. 그룹내의 모든 직책이 박탈된 것은 물론 아버지의 주변에 일체 나타날 수 없는 중벌을 당한 것이다.
이병철회장과 일본인 부인사이에 태어난 태희씨가 큰 어머니격인 박두을 여사에게 인사를 가려다가 오해가 생겨 이병철회장이 진노, 박여사가 머물던 장충동 집으로 달려가 전화기, 화장대, tv등을 부셔버렸고 박여사는 신발까지 벗어들고 달아났다고 전했습니다
아내 박여사를 일으켜 세운 남편 이회장은 진노가 극도에 달해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화장대를 박살내고 TV를 집어던져 부셔버리는 등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 이회장의 난폭한 행동을 피해 박여사는 다급한 나머지 신발까지 벗어 들고 맨발로 집 바깥으로 달아나야 했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의 걸음을 장충동집의 23살 난 가정부가 못 쫓아갈 정도였다. 감히 누구도 못 말리는 상황에서 이회장의 실력 행사가 계속되자 이를 보다 못한 가정부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또 이건희회장도 어머니 박여사를 다섯시간동안이나 앉혀 놓고 설교를 했다는 것을 맹희씨가 직접 말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장남 맹희씨의 증언이다.
『어머니께서 그 일을 당하시고 몸이 더 편찮았습니다. 그런데 동생 건희가 찾아왔어요. 생전에 장충동 어머니께 잘 오는 법이 없던 건희가 웬일로 왔을까 궁금하게 생각했다고 해요.(그때 맹희씨는 자리에 없었다고 한다) 건희는 다짜고짜 어머니를 붙들고 설교하기 시작했답니다. 몸이 불편해 잘 앉지도 못하시는 어머니를 자식이 되어서 설교를 하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지…. 무슨 이야긴가 하면 “어머니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떠들어 집안 망신시킨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알아듣게 간단히 말하고 돌아가면 되었을 텐데 5시간을 어머니를 붙들고 횡설수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소리를 해 노인을 괴롭힌 겁니다. 세상에 우리 팔실 넘은 어머니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또 가장 사랑하는 딸로 알려진 막내 명희씨도 이병철회장과 재산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고 결국 이병철회장은 건희와 태희만을 제외한 나머지 3남4녀 자식들로부터 '비정한 아버지'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으며 소외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정재은 사장은 태휘씨가 오고나서는 건희 부회장의 공식석상에 대리 참석하는 일이 없어졌으며 그뒤 갑자기 온다간다 말없이 한달여 동안 출근조차 하지 않아 그룹 내외에선 그의 신상에 대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때 정사장은 시골에서 지내며 많은 생각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한편 정사장의 부인이자 이회장의 막내딸로 가족 중 가장 부친과 허물없는 사이였던 명희씨(신세계백화점 상무) 역시 이런 일이 있고나서 아버지 이회장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 일설에 의하면, 부친 이회장과 친하던 명희씨가 왜 부친과 멀어졌는가 하는 이유로, 삼성의 모 계열사 주식을 둘러싸고 명희씨가 이를 부친에게 요구하자 이회장은 이를 들어주기는커녕 “너는 신세계백화점을 줬는데 왜 또 달라고 그러느냐”고 처음부터 노여움을 보였다고도 한다.
가장 가까웠다는 막내딸마저 부친과 사이가 소원해지자 정작 가장으로서 이병철 회장은 건희와 태휘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남4녀 자식들로부터 ‘비정한 아버지’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 란 소리를 듣게 된다.
무려 25년전인 1987년 선데이저널유에스에이가 보도한 이 기사는 요즘 재산을 둘러싸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삼성 2세들간의 깊디 깊은 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데이저널은 올해로 발행 30년을 맞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주간지로 김영삼, 김대중등 역대대통령의 숨겨진 자녀들을 단독보도하고 '이명박대통령 혼외자녀 친자확인소송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24일 "(내가 서울시에 있던) 2007년 영준이 형(박영준 전 차관)이 전화해 '파이시티 사업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강 전 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알아봐달라고는 했지만, 뭘 어떻게 해달라는 압력이나 청탁으로 느끼진 않았다"며 "파이시티 대표인 이정배씨도 여러 번 나를 찾아왔는데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아 말만 듣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강씨는 박 전 차관과는 막역한 사이다.
파이시티의 인·허가 금품 로비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최재경)는 24일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조성사업 시행사였던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5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비자금 수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율(61·구속)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시중 전 위원장에게 2007년과 2008년 몇 차례에 걸쳐 5억원가량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맹희 전(前) 제일비료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 간의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한 푼도 안 주겠다는 (이건희 회장의) 탐욕이 소송을 초래 한 것”이라고 23일 말하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맹희씨는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라고 24일 바로 반박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출근하면서 "그 양반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 아버지를 고발했다"며 "이 사람이 우리 집에서 제사 지내는 꼴을 내가 못 봤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아버지는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이 아니다'고 했다"며 "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안 된다.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양반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맹희 전 회장의 이번 재산 소송에 동참한 친누나 이숙희씨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이숙희씨는 결혼 전에는 아주 애녀였다"며 "그런데 금성(LG)으로 시집가더니, 같은 전자 쪽을 한다고 그쪽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우리 집에 와서 떼를 쓰고, 보통 정신을 갖고 떠드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숙희씨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했다. 구 회장은 결혼하고 한동안 삼성에서 일했지만, 삼성이 당시 LG그룹이 선점했던 전자업종에 진출하면서 구 회장은 LG그룹으로 돌아갔다.
곽 위원장과 이 회장의 만남에는 신인 여성 연예인 5~10명이 접대했으며 술값은 이 회장이 지불했다. 둘은 이 같은 술자리에서 미디어법 등 정부 정책과 관련한 대화를 주로 나눴다고 동석한 여성 연예인이 말한 것으로 이 언론은 보도했다.
당시는 탤런트 장자연씨가 같은 해 3월 기획사 대표의 성 접대 강요 등으로 고민하다 자살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가 크게 대두됐던 때였다.
이에 대해 곽 위원장은 "이 회장과는 고교 시절 집도 서로 왔다갔다하고 대학(고려대)도 같이 다닌 막역한 사이여서 지금도 가끔 술을 마시지만 C룸살롱은 잘 모르고 그와 미디어법을 얘기할 처지도 아니다"면서 "더구나 여성 연예인들의 술자리 동석도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 위원장은 또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이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기사를 게재한 해당 언론사와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CJ 측 관계자도 "이 회장과 곽 위원장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라면서도 "그러나 둘이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술을 마셨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양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부 요직을 맡고 있는 대통령 측근이 여성 연예인과 함께 고급 룸살롱에서 기업체 회장과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사회 각계의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산 넘어 산을 만났다. 전직 청와대 인사들이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대선 자금과 관련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폭탄 발언’이 터진 것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최 전 위원장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청와대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겉으론 태연한 모습이지만, 속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바탕 몰아쳐서 이제 겨우 넘어가나 했는데 두 번째 밀물이 밀려오고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파이시티 대표 ㅇ씨로부터 받은 돈을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일부 썼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인허가 로비 의혹이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최시중 전 위원장이 지난 1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통위 사옥으로 출근하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 전 위원장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청와대는 충격이 큰 것 같다. 그는 대선 캠프를 좌우했던 이른바 ‘6인회’의 구성원으로,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현 정부 출범의 1등 공신으로 통했다. 부동산 개발업자한테서 받은 돈을 여론조사 등 대선 캠프에서 썼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청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사안의 전개에 따라 대선자금 전반의 문제로 번지면서 정권의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청와대 회의에서 “이번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점을 생각해야 한다”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돈을 받지 않고 집권했다는 게 자부심의 근거였는데, 이제 그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터진 불법 사찰 사건은 ‘노무현 정부도 사찰을 했을 수 있다’며 물타기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빠져나갈 구멍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청와대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 같다. 청와대의 운명은 오직 검찰의 손에 달린 형국이다. 더구나 검찰의 서슬에 시퍼런 날이 서는 임기 말이다. 검찰 수사가 최 전 위원장을 고리로 이 대통령의 대선 자금 ‘본체’로 육박해 간다면, 이 대통령은 권력누수(레임덕)를 넘어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 2004년 노무현·이회창 대선 후보 양쪽의 대선자금을 뒤져, 한나라랑이 ‘차떼기’로 수십억원씩 전달받은 사실을 밝혀진 바 있다.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청와대가 검찰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며 불안감을 비쳤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대검 중수부(부장 최재경)가 최시중<사진>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건설 인·허가와 관련해 시행업자 측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검찰은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사업의 시행업체인 ㈜파이시티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 전 위원장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이모(55) 전 대표의 부탁을 받은 브로커 이모씨로부터 2007~2008년 "인·허가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지사는 이날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과반 의석을 가져오는 성과를 보여줬지만, 여당의 대선후보를 '대세론'에 의존해 뽑는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대선 때의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지금 이대로 가면 (대선) 패배의 길로 간다"고 했다. 그는 "(나의 경선 참여로) 우리 당이 패배의 위험을 낮추고 승리를 하는 데 힘을 모으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선 참여 공식발표 시기에 대해선 "아직 주변의 얘기를 좀 더 들어봐야 하니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지사 측은 대선예비후보자 등록 첫날인 오는 23일 전격적으로 후보등록을 하고, 공식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 측은 "현행 당헌·당규상으로는 도지사가 대선 경선에 출마해도 되지만, 도지사직을 유지할 경우 경선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고 야당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이날 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을 만나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뽑는 방안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또 대선캠프 구성도 측근들에게 지시했으며, 차명진 의원이 실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퇴임을 앞둔 조현오 경찰청장이 국회의원들에게 인사청탁을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조 청장은 20일 발매되는 주간동아와의 단독인터뷰에서 “2010년 말 경찰 인사 때 여야 의원 10여 명으로부터 인사청탁을 받았다”며 “청탁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내 말에 대부분의 의원은 전화를 끊었으나 일부 의원은 억지를 썼고 지금까지도 나를 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2010년 말 청와대 수석들과 경찰관 승진인사를 두고 충돌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일부 수석들의 인사 개입에 ‘청장직 사퇴 불사’로 맞서 대부분 관철시켰는데,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황운하 총경(현 경찰청 수사기획관) 승진은 정무와 민정라인에서 강하게 반대해 무산됐다고 한다.
조 청장은 “악의적 보도를 한 조선일보와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밖의 발언도 했다. 조선일보와의 갈등은 지난해 10월 조 청장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 신문 사회부장의 칼럼으로 촉발됐다고 한다. 조 청장은 “당시 정철수(현 제주경찰청장) 경찰청 대변인이 조선일보를 방문하고 와서 내게 ‘사과’를 건의하기에 크게 화를 냈다. 이후 조선일보 구독을 중단했고 지금까지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당시 조 청장은 경찰청 간부들에게 조선일보 인터뷰와 기고도 금지시켰다.
조 청장은 또 경기경찰청장 시절 쌍용차 파업 진압작전을 세운 후 강희락 경찰청장을 제치고 청와대에 직보해 대통령 승인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선 “유족이 고소를 취소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뜻대로 안 될 경우 경찰조직을 위해 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현 현 서울시교육감으로 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박명기교수가 1심선고전인 지난 1월 8일 지인에게 보낸 옥중편지에서 '믿었던 곽노현등의 배신',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곽이 오해'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두사람간에 상당한 연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교수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된 1심 판결이 1월 19일 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편지는 1심선고 약 10일전에 작성된 것이며 박씨는 지난 17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로 감형됐습니다.
박교수는 남모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천교우회 선후배들에게 안부를 전한뒤 '굴곡없는 인생은 없다고 하지만,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해 한동안은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고 구속당시의 충격을 설명했습니다
박교수는 '게다가 사건의 기본 성격이 믿었던 사람들[곽노현, 양재원, 김진수등]에 의한 배신인지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았답니다'고 적어서 돈을 받을 당시에는 곽씨와 그 측근들을 믿었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박교수는 특히 언론의 왜곡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을 가슴하프게 생각한다며 반론권이 봉쇄된 상태에서 검찰의 무차별적인 피의사실 공표와 특히 '곽교육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오해한 '곽노현측근들이 '박명기 악당 만들기용'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이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박교수가 '믿었던 사람들 곽노현등의 배신' '곽교육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오해한' 등의 표현입니다. 박씨가 1심판결전 편지에서 이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박과 곽 양측이 적지 않은 신뢰관계가 있었고 특히 박씨가 곽씨를 자신의 가까운 동료내지 동지로 생각했었지 않나 하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박교수는 또 1심에서 자신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상당한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교수는 편지에서 1심선고가 19일로[1심선고는 1월 19일 이뤄졌음] 연기된데 대해 변호인이 나쁜 징조가 아니라고 말했다며 당초 무죄가능성을 최대 20% 정도로 예상했다가 지금은 50% 정도로 보고 있다며 무죄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박교수는 결심에서 피고인진술과 변호인 변론이 검찰측 구형논리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는 변호인의 판단을 언급하며 무죄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박교수는 '하늘은 사람이 감당할 만큼의 고난을 준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라는 말을 위안삼아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성찰과 자기수양의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박교수는 말도 되지 않는 오해속에 험한 꼴을 당하니 가족과 주위분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끼며 사람의 본성과 인간적 의리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다고 말하고 특히 이편지 수신인인 남씨의 우정과 동지적 연대감에 대해 고맙다고 밝혔습니다
편지 말미에는 '2012년 1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박명기드림'이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매수혐의 재판과 관련, 1심에서는 곽교육감에게는 벌금 3천만원이 선고된 반면 박씨에게는 징역 3년에 추징금 2억원이 선고돼 형평성논란이 일었으며 지난 17일 2심에서는 곽교육감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법정구속하지 않았고 박씨는 징역 1년6개월로 감형됐습니다
박씨는 이 편지외에도 1심선고뒤에서 옥중에서 1심판결에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편지를 작성했었습니다만 1심판결전 편지에서 '믿었던 사람[곽노현등]의 배신','곽교육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오해한 곽씨측'등의 표현은 이 사건 본질을 둘러싼 논란을 낳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의원회관 근처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떠나려했지만 기자들이 둘러싸자 5분간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그는 차에서 나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대의 입장을 보고 결정하자고 해 저도 국민대의 입장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탈당 안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당연하다. 제가 당과 박 위원장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 되겠는가"라고 답했으며, 탈당계 작성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었다"면서도 "안썼다. 탈당계는 무슨..저는 있는 지도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는 "제가 질문 하나 드릴께요. 제 논문이 표절이라고 말하는데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의 논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그것과 제 건이 별개인가"라며"그 분이 (책임지는 행동을) 한다면 저도 (책임지는 것을) 아주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며 발끈하기도 했다.
또 "원래 논문에서 이론적 배경은 인용을 한다"며 "뒤에 참고문헌을 안 달았는데, 그럼 참고문헌을 달았다면 표절이 아닌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논문 중 토씨, 오타까지 똑같은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도 "그 이론적 배경에 글씨가 틀린 것"이라면서 "운동과 병행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부분 아닌가. 항상 정확하신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일정 공간을 확보하는 손짓을 했던 그는 사진기자들이 밀려들자 "기자분들이 페어플레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초 그가 작성한 기자회견문에는 "저는 오늘 동아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국민대에서 재심사가 중립적 입장에서 엄격하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만약 야당의 압박에 의해 적법하게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저의 논문은 실험논문이며 그 실험을 본인이 직접 진행했습니다. 단지 인용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운동과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심함이 부족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는 문구도 있었다.
당 안팎에서는 문 당선자의 자진탈당 요구가 계속됐다.
총선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었던 현기환 의원은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처분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들"이라며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은 문 당선자의 입장 발표 후 트위터 글에 "진짜 본인의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도 모른다는 것인가"라고 적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7일 이병철 창업자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의 소송에 대해 "선대(先代) 회장 때 다 분재(分財·재산 분할)가 됐다"면서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소송을 제기한 형제들에 대해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니까, 내가 뭐 섭섭하다느니 그런 상대가 안 되네요. 각자들 돈들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CJ도 가지고 있고…"라고 평(評)하면서 "그런데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 그게 또 욕심이 좀 나는 거지"라고 했다. 그는 "자기네들이 고소하면 (나도) 끝까지 고소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고…"라며 타협을 통해 소송을 해결하지 않고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삼성가(家)의 유산 상속 소송은 고(故) 이병철씨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 이맹희씨가 올 2월 7666억원 상당(현재 시가)의 주식 분할 소송을 제기한 이후, 이병철씨의 차녀 이숙희씨와 이병철씨 차남의 며느리·아들이 잇달아 제기해 총액이 1조738억원대로 늘어났다. 이번 송사(訟事)는 한국 최대 재벌가 형제·후손들이 벌이는 소송 규모도 규모려니와, 소송 당사자들이 날 선 감정 노출을 서슴지 않고, 여기에 상대에 대한 미행(尾行)이란 미스터리 소설 같은 흥미 요소까지 더해져 웬만한 연속극은 저리 가라는 정도의 대중적 관심을 모아왔다.
이건희 회장은 이날 소송을 제기한 형제들을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라고 부르며 "돈들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 또 욕심이 나는 거지"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회장의 누나 이숙희씨도 지난달 "삼성이 (오빠 이맹희씨가) 무능하기 때문에 재산을 못 준다는 식으로 몰고갔다. 오빠에게 힘이 되기 위해 소송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 총수는 공인(公人) 중의 공인이다. 휘하에 종업원 수십만명을 거느리고 있고, 한 해 수백조원에 달하는 매출액은 웬만한 후진국의 GDP 규모를 웃돈다. 그들이 소유한 부(富)의 크기는 특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책임의 무게를 가리키는 지표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에서건 당대(當代)에 모은 재산에는 황금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남긴 핏자국도 채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2대(代), 3대를 거치며 사회적 자선과 기여를 쌓아가면서 이런 재산도 비린내와 핏자국을 씻고 그 위에 품위의 이끼가 내려앉는다. 자본주의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진화하는 법이다. 2대, 3대를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송사(訟事)에 매달리는 우리 재벌들의 모습에는 그런 부(富)의 진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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