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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폭로 이후 4년은 대한민국 성역을 확인한 과정” [한겨레21]


“X파일 폭로 이후 4년은 대한민국 성역을 확인한 과정” [2009.09.02. 제776호]
조혜정 류우종
[기획] <한겨레21>-진보신당 주최 노회찬·김용철·최상재 좌담회…
“잘못을 지적한 이들만 처벌받는 게 현실이지만 언젠가 바뀔 날 올 것”
2005년 7월22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대선자금을 나눠주는 심부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 전달하려 한 비자금은 100억원이 넘는다. 삼성과 홍석현 전 사장이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 때마다 1천만원~500만원의 ‘떡값’을 뿌리면서 검찰 인맥을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취재한 이상호 기자는 이런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스튜디오에 들고 나와 “이 테이프에 삼성의 전방위적 로비 실태가 담겨 있으나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사장이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 원음은 공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해 초부터 소문이 나돌던 ‘삼성 X파일’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삼성 X파일의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8월18일 국회에서 X파일 폭로 이후 4년을 돌아보는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달 뒤인 8월18일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보도자료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떡값’을 받은 김상희 당시 법무부 차관 등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과 X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석조(홍석현 회장 동생·당시 광주고검장)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신참 검사), 회장께서 전에 지시한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등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족벌언론, 정치권, 검찰 사이의 추악한 거래를 고발한 대가는 가혹했다. 이상호 기자는 보도가 나간 뒤 취재를 하지 않는 부서나 지방으로 전전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겪고 몇 차례 감봉까지 당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선고유예)을 받았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명예훼손·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면 ‘거래 당사자’는 건재하다. 2005년 12월 검찰은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전체를 무혐의 처리했다. ‘떡값 검사’들 역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그밖에 X파일에 들어 있던 내용에 대해선 X파일 자체가 ‘위법한 자료’라는 이유로 아예 수사하지도 않았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조성’ 양심선언을 하면서 특별검사팀까지 설치됐지만, 삼성은 또 실질적 처벌을 피해갔다.

옛 안기부 비밀도청팀 ‘미림팀’이 불법 도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도청 테이프를 불법 반출한 전 안기부 직원 공운영씨와 이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박인회씨 등이 처벌받는 데 그쳤다.

<한겨레21>은 X파일 폭로 4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진보신당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김용철 변호사, 그리고 미국 연수 중인 이상호 기자를 대신해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가 맡았다. 좌담회는 8월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이하 홍): 삼성 X파일 사건 공개 이후 4년을 되돌아보면, X파일에 담긴 추악한 내용을 밝힌 분들만 재판받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떻게들 지내셨나.

노회찬(이하 노): 피고인 노회찬이다. (웃음) 아침에 여의도로 출근하면서 4년 전 아침 법사위로 향하기 전에 엄청난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잠깐 마음을 정리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스스로에게 후회하지 않겠는가 물었다. 4년이 지났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재판에선 내게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녹취록의 주요 당사자인 이학수씨가 출석해 부실한 증언을 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2번 출석을 거부해 구인장이 발부됐다. 정치적 배경으로 자신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특별한 진술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불출석 사유였다. 어쨌든 내가 피고인이기는 하나, 법과 양심에 따라 (판사가)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 확신한다. (웃음)

지난 4년은 대한민국에 성역이 있음을 확인한 과정이었고,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간이었다. 민주사회냐 아니냐의 기준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성역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다. 재벌·검찰 등 권력기구와 정치권에 크고 작은 성역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성역은 공권력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성역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다. 일부 언론은 2005년 8월18일 내가 녹취록을 공개하기 전에 사태의 윤곽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또 김용철 변호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

김용철(이하 김): 빵집에서 일하는데 어찌 보면 한량, 백수, 폐인 같은 생활이다. 개인적으로는 못된 짓을 많이 하게 됐다. 아들 둘을 취직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빠가 누구란 걸 밝히고는 한국에서 기업에 못 들어가더라. 큰애가 의사인데, 그 학교 이사가 이학수더라. 눈치가 보여 학교에 못 남는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도 직장에서 잘리고,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긴다. 나는 변호사로서 일을 못하고 있다. 내가 변호하면 무죄도 유죄가 될 것 같고, 도울 수가 없었다. 무료 변론을 좀 해봤는데, 왜 그리 이혼 이야기가 많나. (웃음) (검사 때) 국회의원·재벌 수사를 하면서 폼나게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50대가 돼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벌도 받고 고생도 해야 하는 것 같다.

»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X파일 사건은 내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직접 도청을 담당한 사람이나 갈취범들(도청 테이프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공운영·박인회씨) 말고는 아마 내가 가장 먼저 X파일을 봤을 거다. 내용이 허위냐 사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홍석현·이학수씨가) 누군가 감청할 것을 예상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고급 호텔의 비싼 식당에서 이학수·김인주·홍석현 이런 분들이 모여 내 옛 직장(검찰) 선배들에게 얼마씩 나눠줄 것인가 참 신중하게 논의하더라. 500만원이라고 했으니 역시 기업 하는 사람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것 같다. 거기엔 정치인 얘기도 나온다.

(양심선언 이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을 여러 건 당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는 것 같다. 검찰도 내 말이 허위라고 입증할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여러 명이 같은 날 고소하고 같은 날 한꺼번에 취하하는데, 누가 배경일까?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홍: 루쉰은 ‘미친 개한텐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미친 개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 같다. 국가권력과 자본을 견제할 언론도 완벽히 한통속이 돼가는 상황에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방송의 재벌화, 조·중·동화가 언론악법의 지향점 아닌가.

최상재(이하 최): 언론악법은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시도했다가 무산됐다(언론노조는 재투표·대리투표 등 불법성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언론악법 표결은 무효라는 입장이다- 편집자).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반대가 많다. 국민은 이미 판결을 내렸다. 신문의 방송 진출이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파일 사건 등을 통해 국민이 (언론의 자본 종속이 빚는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이란 구호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역시 3부 못지않은 권력을 누렸고, 삼성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삼성그룹의 언론 광고 제공 비율이 전체의 10%를 넘는다. 기자와 PD들도 기업에 불리한 보도를 할 경우 해당 기업이 ‘청탁’을 해오면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삼성한테는 좀 다른 것 같다. 특종을 하고서도 곤혹스러운, 누군가 대신 터트려주길 바라는 대상이 삼성이다. 방송사 재원의 90%가 광고이고, 그 가운데 삼성이 3분의 1 정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압박을 느끼는 거다. 삼성이 모든 걸 갖고도 단 하나 못 가진 게 방송인데, 이것까지 주겠다는 게 언론악법이다. 막아야 한다.

» 김용철 변호사
김: 어쩌면 삼성이 방송을 갖느냐 안 갖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삼성이라는 영속불변의 권력 체계는 확고하다. 언론도 생존 문제 때문에 순치돼 있다. 삼성 광고비는 광고비가 아니다. 광고 단가에 비례해서 나가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배임이다. 진보 언론도 (삼성 광고비 비중이) 20% 정도 된다고 들었다. 삼성화재가 고객 계좌를 차명 계좌로 활용했지만 언론은 지적하지 않았다. X파일 검찰 수사가 끝난 뒤론 진보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는 걸 거북해한다.

홍: 삼성의 무소불위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우선 김 변호사는 ‘떡검’이라는 말을 듣기가 거북하지 않나.

김: ‘떡검’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떡을 그렇게 많이 사먹나. ‘떡값’이란 말은 죄의식을 약화한다. 정기적인 뇌물이다. 기백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인데, 국가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따로 받는 돈이 어떻게 ‘떡값’인가. 뇌물 받는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 가운데 50여 명 정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관행을 주류 사회로 편입됐다는 증거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X파일의 나머지를 다 공개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부정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재벌이 주는 정치자금은 주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그 돈으로 권력 체계를 유지하는 거다. 검찰도 삼성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좌천된다. X파일 사건은, 삼성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번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 사건) 판결도 그렇다. 저런 대형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어떻게 사법 권위를 세우나.

노: X파일 테이프를 들어보면, 홍석현 회장이 ‘홍길동에게 2천만원’ 이러면 이학수 부회장이 ‘홍길동 2천만원’이라고 복창한다. 그렇게 말하며 메모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유수 기업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 받아적는 광경을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 이런 걸 근절하고 삼성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삼성이 뇌물을 준 곳이다. 언론·검찰·법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곳을 바꾸면 삼성을 바꿀 힘을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왜 언론사의 소유와 편집이 분리돼야 하는지 국민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온통 불법적 모의가 담겨 있을 X파일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국민적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다. 다소 잊혀졌지만 끝난 사건이 아니다.

최: 노무현 대통령도 당시 사건의 본질은 뇌물이 아니라 도청이라고 했다. ‘차떼기당’뿐만 아니라 입법부 전체가 삼성에 종속됐던 것 같다. 언론은 이미 광고로 충분히 장악당해 뇌물을 줄 필요조차 없다.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각각의 현장에서 지금 현실을 우려하는 이들이 제 할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 특히 젊은 층을 많이 우려하는데, 요즘 10대는 다른 것 같다. 이들의 표현력과 사고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지금의 10대 후반은 다음 대선에서 투표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힘을 내자.

»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
홍: X파일 폭로 이후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부분은 없나.

노: 양심에 입각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수사받고 기소돼 재판까지 받는 상황이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간 잘못된 관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사태를 겪고 나서 뇌물을 떳떳이 주고받는 관행은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기대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배감을 조장하는 쪽은 문제를 일으키는 쪽이다. (X파일 폭로처럼) 끊임없이 용기 있게 바꾸려는 노력이 쌓일 때 사회도 변할 것이다.

최: 딸이 “전과 14범이 대통령 돼도 되냐. 난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부분에 둔감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뇌물을 받고 타락하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삼성도 기울 때가 있을 거다.

홍: 쉽게 말해 뻔뻔한 사회,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준 지난 4년이었다.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고, 인간답게 살려면 그에 도전하라’는 말이 있다. 정의·진실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권력’ ‘금력’이란 말은 써도 ‘정의력’ ‘진실력’이란 말은 안 쓰지 않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힘을 얻도록 할 것인지가 앞으로 과제인 것 같다.

‘삼성 X파일’ 첫 보도한 이상호 기자 인터뷰

“대법 판결 뒤 ‘취재백서’ 통해 전모 밝힐 것”

» 이상호 기자.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삼성 X파일’을 처음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는 지난 4년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한국기자협회 지원을 받아 지난 7월부터 미국 조지아대 부설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그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이 기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과 관련해) 법원이 스타일을 구겨가며 쓰다 만 판결을 공표한 건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쪽만 기능하는 미완의 공화국, 재벌이 지배하는 ‘금화국’(金和國)이라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X파일 보도로 사내에서 부당한 인사를 당하는 등 마음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내가 자초했고 예상했기 때문에 가혹했지만 견딜 만했다. 사람이 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공부했다. 한동안 일거리를 주지 않아 힘들었는데, 나중엔 침뜸 공부하랴, 밀린 박사 논문 쓰랴 오히려 바빴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진짜 ‘삼성 장학생’ 아니냐고 한다.

-보도를 전후해 삼성 등에서 협박이나 감시를 당한 적이 있나.

=삼성의 파상적인 보도 방해 공작과 로비가 있었다. 보도가 벽에 부딪혀 단식을 생각할 때였다. 회사 고위층에게 불려갔더니 내가 삼성생명에서 주택구입 자금으로 1억원을 대출받은 서류가 올려져 있더라. 그룹 차원에서 보도를 막으려고 개인정보가 든 서류를 통째로 외부에 빼돌린 것이다. 고위층은 내가 돈을 주고 X파일(제보자)을 매수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삼성이 나를 ‘저질 브로커’로 몰아가는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성이 이렇게 무서운 집단이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 ‘X파일 취재백서’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보도 결과 삼성과 법조·언론·정치계는 진일보했다고 보나.

=그 보도로 삼성 재벌의 부도덕한 심장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시간 맞춰 알람은 울렸지만, 단 한 차례 새벽을 흔들고는 이내 꺼졌다. 모두가 깨지 않기를 바라는 손이 알람을 눌러버린 것이다. 자본권력의 점령군이 한강 다리를 넘었다. 탱크를 뒤따르는 지프차 위에 홍석현 회장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무더기로 보인다. 이들의 가슴마다 언론과 국회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공로로 받은 훈장이 가득하다. 흩어졌던 떡값 검사들도 다시 모여 지지 가두행진을 벌인다. 보도 4년 동안 자본의 지배 질서는 더욱 제도적으로 공고해졌다.

-언론악법 날치기로 거대 자본과 족벌신문이 지배하는 방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안은 두 가지다. 기성 언론의 공익성 확보 투쟁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익적 탐사 보도를 위한 비정부기구(NGO) 설립, 이들을 지원할 공익 재단이 출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장 적응력을 갖추고 독자적 매체력을 확보한 ‘뉴미디어 레지스탕스 저널리스트’의 활동도 강화돼야 한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