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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

박인주 사회통합수석 좌파논란 - 도대체 뭘 보고 뽑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6월 10일 오후 5시 서울 혜화동 흥사단 대강당. 이날 이곳에서는 ‘6·15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겸 ‘6·15 공동선언발표 기념일제정 촉구 서울 선포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6·15 공동선언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주최로 열렸다. 행사장에는 6·15 남측위원회 서울본부의 김규철·박인주 상임대표를 비롯해 범민련, 민주노동당, 서울청년단체연합,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관계자 250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상세하게 보도한 곳은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민중의 소리’였다.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을 ‘민중의 소리’를 인용해 다시 소개해 본다.

“6·15를 국가기념일로 만들자” 주장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26/2010072601823.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5

김규철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6·15 선언이 있었기에 효순·미선 사건에 대해 미국에 사과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광화문 촛불 문화제가 열릴 수도 있었다. 6·15 공동선언은 우리에게 참으로 엄청난 힘을 주어서 국가보안법이 있어도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일을 마음놓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자주성과 반전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민족의 대단합이 필요하다. 6·15 공동선언을 기어이 지켜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

이어 ‘6·15 공동선언발표 기념일제정 촉구 서울 선포식’이 열렸다. 박인주 상임대표가 선언문을 읽었다. “경제협력과정에서 탄생한 각종 법과 제도들이 통일로 가는 과정을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것처럼 6·15 공동선언 발표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소중한 약속이 될 것이다. 기념일 제정은 6·15 공동선언을 제도화하는 첫걸음이며, 남북 간 화해 협력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고, 더불어 민족공동의 평화의지를 내외에 널리 선포하는 뜻 깊은 과정이자 7000만 겨레의 다짐이다.”   

이어 행사는 민중의례로 치러졌다. 알려진 대로 민중의례는 국민의례를 대신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대신 ‘열사에 대한 묵념’을 갖는 것을 말한다.

장면을 뒤로 돌려 1년 전으로 가보자. 2005년 6월 15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 산하 서울본부 발족식이 열렸다. 서울본부는 김규철, 장승학, 박인주 3인을 공동 상임대표를 선출했다.

김규철씨는 서울통일연대 대표(겸 통일연대 공동대표)이자 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연합명예의장이었다. 통일연대는 현재 월북 중인 한상렬 목사가 상임대표자회의 의장을 맡았던 조직으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진보연대로 흡수됐다. 통일연대는 2005년 9월 11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동상파괴 집회를 주최한 바 있다.

“서울본부, 從北 관계자들로 채워져”

범민련 남측본부 역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 등 김정일 정권을 노골적으로 추종하다 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이다. 또다른 상임대표 장승학씨는 한겨레평화통일협회 이사장. 장승학 대표는 이에 앞서 2003년 10월 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에 참여한 바 있다.

‘리버티 헤럴드’ 발행인이기도 한 김성욱 기자는 친북세력 연구 전문가다. 김성욱 기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6·15 실천 서울본부 실무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했다.

“놀랍게도 6·15 실천 서울본부 실무진은 종북(從北)정당·단체 관계자들로 채워졌다. 발족식은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서울 의장의 폐회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한청은 이적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산하 청년 단체로서 2004년 이적단체로 판시돼 있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을 다시 보자. ‘한청의 강령이나 소식지는 남한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주의혁명 등을 주장하고 있어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서울본부 상임대표의 한 사람인 박인주씨가 2010년 7월 16일, 대통령실 사회통합수석에 임명되었다. 청와대는 사회통합수석에 박인주씨가 내정됐다고 밝히면서 박씨가 경북 칠곡 출생에 경북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나와 흥사단이사장, 평생교육진흥원장 등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어디에도 노무현 정권 시절 박씨가 6·15 공동선언 남측위원회 서울본부의 상임대표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준비위원회 활동이 왜 문제가 되나?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발표한 합의문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의 결정체인 연방제 통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기 전에는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국가보안법이 있어도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일을 마음놓고 할 수 있다”라고 김규철 대표가 주장한 배경이다.

우파 “YS 시절 김정남 수석 연상된다”

박인주씨가 사회통합수석에 임명되자 국민행동본부 등 우파 진영 일각에서 즉각 반발했다. 친북반미 이적단체와 활동한 경력으로 미뤄 향후 활동이 우려된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당시 이동관 홍보수석은 사회 원로 7인이 연명한 ‘이명박 대통령님께 드리는 건의서’가 대통령의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사회원로는 송월주 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이사장, 김주원 원불교 교정원장, 손봉호 전 공명선거실천시민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임명진 바양노르솜호수연대 상임대표, 이광선 한기총 대표회장 7인이다. 하지만 이름이 올라간 이광선 한기총 목사는 박인주씨와는 알지도 못하고 추천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누군가 이광선 목사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도용했다는 얘기다. 

우파 일각에서는 박인주 수석의 임명에서 YS(김영삼 대통령)정부 시절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이 연상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김정남씨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되면서 권부 핵심에 좌파가 들어왔고 결국 권력이 좌파에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민주화포럼 이동복 대표(전 의원)는 7월 13일 프레스센터 강연회에서 박인주씨의 과거 경력을 언급하며 청와대를 비판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국 국무성이 소련 간첩들에게 점령 당해 많은 풍파를 일으켰다. 우리 정부 내에도 분명히 이런 세력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엔 6·15 공동선언 남측위원회 대표 출신 박인주라는 사람이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인사는 우리가 현 정부를 믿을 수 없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여러분 돌아가셔서 인터넷을 통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일제히 ‘박인주는 안된다!’는 의견을 보내 시민의 힘으로 이러한 인사를 막아야 한다.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는 계기를 마련하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박인주 사회통합수석과 관련해 “헌법을 지키는 사람들과만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박인주의 경력을 언급하며 “사회통합위원회가 아닌 좌파통합위원회가 될 것”이라며 사회통합수석 임명을 반대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이 7월 1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인주 수석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보수에서 의심할 정도로 중도좌파라고 하는데, 중도에서 평생을 잘 활동한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평했다. 한마디로 박인주 수석의 이념 성향을 좌파가 아닌 중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지난해 초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 노선을 천명하며 “좌파까지도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임삼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연구교수는 박인주 수석과 과거 오랫동안 흥사단 운동을 같이 해왔다. 누구보다 박인주 수석을 잘 아는 사람이다. 임삼진 교수는 “이념 성향으로 보면, 박 수석은 5.5 정도의 개혁적 중도우파”라고 말했다. 임삼진 교수는 박 수석이 이적 단체와 함께 활동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흥사단 이사장 산하에 민족통일운동본부의 대표를 맡다보니 자연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잠시 한두 번 행사에 관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삼진 교수는 “일부만을 보지 말고 전체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감아줄 수준인가 

기자는 개인적으로 박인주 수석을 모임에서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주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그는 시장조사기관인 월드리서치 대표로 있었다. 실제로 박인주 수석의 이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을 찾기 어렵다. chosun.com의 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박 수석의 이력을 보자. 고려대 정외과를 나와 경북대 교육대학원에서 사회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흥사단 본부, 코리아리서치 근무 등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92년부터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월드리서치 대표, 공명선거 시민실천협의회 사무총장,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 생활개혁실천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흥사단 이사장, 평생교육진흥원장 등을 역임했다.

박씨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친북·반미 인사들과 함께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4월 1일 서울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 그는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등과 함께 맨 앞줄에 서서 ‘미국의 對(대) 이라크 전쟁을 절대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읽었다. 박씨는 2004년에는 ‘Corea 국호변경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박씨가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원래의 색깔을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단지 시류에 편승해 행동한 것일까. 박씨가 친북반미 이적단체와 함께 활동한 기간은 노무현 정권 시절 5년여. 이 정도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눈감아줄 수 있는 수준인가.

문제는 그의 나이 50대 중반에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데 있다. 청와대가 이 사실을 모르고 인선했다면 청와대 검증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증명하는 것이고, 만일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다면 고려대-TK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는 지난해 친북 인사 1차 명단 100명을 발표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발표한 친북인사 1차 명단은 각계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 100명을 추렸다. 고영주 위원장은 박인주 수석과 관련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라크파병에 반대했다는 것과 친북반미 이적단체 구성원들과 함께 행동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한·미동맹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수석 임명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임명권자가 안보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