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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자들 마음이 떠나고 있는게 문제다 - 정성진 전 법무, 동아일보 칼럼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윤창중 사건도 이제 한편으로는 국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존감 때문에, 다른 한편으론 더이상 박근혜 대통령 정부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선의의 절제심 덕분으로 서서히 기억의 고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언론 보도만 보아도 윤 전 대변인의 상식을 넘어선 기행의 전말에서부터 시작하여 박 대통령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행정의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 만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번 사건은 특정인의 돌출성 행동에 의한 일과성 해프닝에 그친다기보다 아직 출범 초기인 이 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난, 어쩌면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지만도 않았던 춘사(椿事·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의 하나였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원본출처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30521/55288492/1

그것은 이번 사건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첫째 대통령을 수행한 방문단의 간부가 중요 행사를 앞두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개별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있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약 26시간 동안 대통령에 대한 보고 자체가 지연되었다는 점, 셋째 사건 후 세 차례나 청와대 당무자들의 사려 깊지도 않고 효율적이지 못한 기자회견 또는 사과문 발표로 오히려 국민적 불신감이 커졌다는 점 등 때문이라고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 아니고 공보업무를 담당한 언론계 출신의 별정직 신분으로, 그 업무의 속성상 행정적 규율에 썩 익숙한 편이 아니었으리라는 추론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에서의 비서실이 어떤 지위에 있으며 대변인이란 직책이 어떤 경위로 선임되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지만을 생각해 보아도 이런 변명성의 추론은 가당치도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돌발적 사건을 배태(胚胎)케 한, 눈에 띄지 않는 원인은 무엇이며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근본적 대응책은 무엇인가.

박 대통령 스스로도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심경의 한 자락을 피력한 바 있지만 사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부 인사시스템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과 정부에서 앞다퉈 강조한, 앞으로 인사검증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거나 공직기강의 확립이 긴요하다는 원론적 주장만으로 결코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으리라고 안도하는 국민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정작 걱정인 것은 공직자들의 복무자세와 능력 또는 보좌체계인데, 이러한 것들은 인사권자인 국정 최고책임자의 일련의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은 정부 수반의 말 한마디로 모든 공무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다. 국가주의적 연대감이나 충성심도 197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봐야 한다. 강제력을 발동할 수도 없거니와 개방된 시민사회에서 그러한 발상 자체를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은 개인적 호오(好惡)를 떠나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검증된 인물을 적소에 배치하고 공무원들의 마음을 밑바닥에서부터 움직여 모두가 바라는 국민행복시대의 개화를 위해 최대의 능률을 발휘하도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자세나 국정운영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 국가의 선진화 정도를 반영하는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지도자의 헌신적 열정과 국민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리더십에 의하여 끊임없이 개화되고 발전한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열정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뽑았다. 그리고 그 지지자 중에는 이념적 동조들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과 함께 20대에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고난 속에서도 탁월한 의지와 절제된 이성, 그리고 자기관리 노력으로 국가적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된 인간 박근혜에 대한 심정적 동조자도 상당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심정적 동조자들의 마음이 어느새 조금씩 떠나고 있음이 느껴진다면 이것은 분명 이 정부를 위한 작은 위기의 징조로 보아야 옳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만기친람(萬機親覽) 대신 국정 경험이 있고 생각의 균형이 잡힌 인사들로 하여금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위하여 공직기강을 다잡는 좋은 의미의 악역 또는 균형추의 역할을 담당하게 할 수도 있다. 이제는 수직적 리더십보다 수평적 리더십에 더 많은 성과를 기대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공직자들의 마음의 문을 진정으로 열게 하는 공직 분위기의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국가가 윤리적 이념적 공동체임을 강조한 철학자 헤겔도 사람의 마음의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린다고 한 바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국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