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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신요셉, 브로커에 '한' 유서 남기고 자살 - 조선일보

'미국 망명 1호' 탈북자 신요셉, 한많은 삶 자살로 마감 - 두리하나선교회 수사하라 http://andocu.tistory.com/1432

두리하나선교회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신요셉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으나 현재는 삭제한 것으로 나옵니다
http://www.durihana.com/board/view.aspx?b_id=282&tbname=share&pageIndex=0&searchIndex=False
위 블로그를 클릭하면 삭제전 두리하나선교회의 홈페이지를 캡쳐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비난하는,차마 입에 담기 힘든 살벌한 글을 보면 무엇이 신요셉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알수있습니다
제2,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조치를 촉구합니다

2006년 여동생 함께 탈북하고 2년 뒤 어머니도 美 데려온 신씨
'브로커에 恨' 유서 남기고 자살
신씨가족 "몹쓸짓·협박 당해" 당사자 "그들이 꾸며낸 거짓말"

지난 2일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젊은 탈북자(脫北者)가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2006년 여동생(30)과 함께 사상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난민(難民) 지위를 인정받은 신요셉(가명·35)이다.

원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16/2010041601607.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7

신씨는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 중국으로 탈출했다. 2006년 중국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간 뒤 한 탈북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여동생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미 정가의 이슈는 '북한인권법안'이었다. 그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을 무렵 신씨가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신씨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사는 탈북자는 94명이다.

신씨는 중·북 국경을 넘기까지 세 차례나 탈북과 북송(北送)을 반복했다. 그리고 2008년 어머니까지 미국에 데려올 정도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사선을 넘어'라는 그의 수기(手記)도 화제를 모았다.

그랬던 신씨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본지 취재 결과 신씨는 죽기 전 동영상(動影像)과 문서로 된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국내의 탈북지원단체 관계자를 거론한 것이다.

많은 탈북자가 인권단체 도움으로 자유를 찾아온다. 하지만 일부 인권 활동가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탈북자들에게 상처를 안기는 경우가 잦다. 사진은 2008년 조선일보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 장면. / 조선일보 DB
신씨의 어머니는 "요셉이가 (탈북을 지원해준) '탈북지원단체 A씨에 한을 품고 죽는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동영상에서는 두 살된 아들을 끌어안고 울먹이며 '나 죽으면 네가 대신 내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여동생은 "미국에 정착한 이래 A씨는 우리 가족에게 몹쓸 짓을 했고 오빠는 극도의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신씨 가족이 지적하는 A씨의 '몹쓸 짓'은 세 가지다.

첫째 성폭행 부분이다. 여동생은 "미국 정착 초기에 뉴욕 퀸즈에 있는 A씨측 합숙소에 머물렀다. 어느날 밤 늦게 귀가해 소파에서 자다 무거운 느낌이 들어 깨어보니 A씨가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고 했다.

여동생은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지만 입을 틀어막고 짓눌러 어쩔 수 없었다"며 "다른 방에서 자던 오빠가 뛰어나와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2007년에는 플러싱에 있는 식당 주차장에서 또 내게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다가 오빠한테 들켜 멈춘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기자회견에서 찬미씨는 A씨의 행위를 '강간 섹스'라고 말했다.

여동생은 "이후 우리를 피하던 A씨는 자기가 한 행동을 남에게 발설하면 영주권도 못 받게 하고 나중에 탈북해 태국에 숨어 있던 우리 엄마도 미국에 못 오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정 모르는 탈북자들에게 A씨의 말 한 마디는 하나님 말씀 같은 것"이라며 "태국에 있던 엄마를 다시 못 볼까 무서워 아무말도 못하고 지냈지만 그 때문에 오빠는 몇 번씩 자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여동생은 A씨로부터 성추행·폭행을 당했다는 다른 여성과 함께 A씨를 미국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미국으로 직접 가서 조사를 받은 결과 사건 자체가 기각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동생은 "통역의 실수로 협박·공갈 부분만 고소가 돼 '시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며 "성폭행 부분을 추가로 접수시켜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폈다.

두 번째는 돈 문제다. 여동생은 "미국 입국 당시 전국 교회에서 성금 1만2000달러를 모아 우리 일행 6명에게 줬는데, A씨측은 이 돈을 우리에게 한푼도 주지 않고 가져갔다"고 했다.

여동생은 "탈북자에게 2000달러는 귀중한 돈"이라며 "A씨는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우리를 이용해먹고 돈까지 챙긴 사람"이라고 했다. 여동생은 "훗날 오빠가 2000달러를 받아냈지만 내 몫인 2000달러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신씨의 어머니는 남매를 먼저 보내고 뒤늦게 중국을 탈출해 태국에 숨어 있었다. 여동생은 "뉴욕에서 1000달러를 모아 우리 엄마 구출해 달라고 돈을 보냈는데 그 돈이 엄마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A씨의 미국쪽 측근 B씨를 통해 전달한 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동생은 "당연히 엄마한테 돈이 간 줄 알았는데 몇 달 뒤 화상채팅으로 엄마랑 얘기를 해보니 못 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씨의 어머니는 "A씨에게 '아들이 보낸 돈을 달라, 탈북자 성금으로 내겠다'고 하자 며칠 뒤 1000달러를 주더라"며 "내가 한 말이 있는 만큼 손으로 한번 쥐어보고 그대로 성금으로 줬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어떻게 번 돈인데 가난한 탈북자의 귀한 돈을 그렇게 함부로 착복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2년 뒤 미국의 탈북자 지원 NGO인 링크(LiNK)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여동생은 "그렇게 우리에게 해코지를 해놓고, 우리 엄마가 미국 오니까 자기가 데려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더라"고 했다. A씨는 당시 "1원 한 장 받은 돈 없고 받은 돈이 드러나면 민·형사 처벌을 받겠다"고 홈페이지에 썼다.

지난 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재미(在美) 탈북자 신요셉씨. 유족 안전을 위해 모자이크 처리했다.
마지막으로 신상공개 문제다. 미국에 입국한 뒤 남매는 무차별하게 사진과 동영상이 찍혔다. 여동생은 "A씨에게 '북한에 가족이 남아 있으니 얼굴 공개 촬영은 안된다'고 요청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겠다'는 확약을 받았지만 전 매체에 우리 사진과 영상이 그대로 나갔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깜짝 놀라 A씨에게 항의했지만 '기자들이 맘대로 찍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심지어 A씨 본인도 자기 단체 홈페이지에 우리 동영상과 사진을 버젓하게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후 북한 고위층 가족을 포함해 평양에 살던 친척 12명이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신상이 공개되면서 잔류해 있던 가족들이 색출돼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A씨는 우리가 자기 단체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댓글을 달곤 했다"며 "이렇게 협박만 받다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던 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했다. 자살 직전에도 A씨를 비난하다가 가슴을 두드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 뒷모습이 이씨가 본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여동생 성폭행 부분에 대해 "우리에게 반감을 가진 탈북자가 신씨 남매와 꾸민 허구일뿐"이라고 주장했다. 돈 갈취 부분에 대해서는 "LA의 한 교회를 방문했더니 현지 분들이 1만2000달러를 내놓기에 탈북자 6명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나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다줬는데 지금 와서 돈을 빼앗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흥분했다.

신상을 공개한 것에 대해 A씨는 "남매에게 허락을 받고 LA타임스 기자가 촬영한 것"이라며 "당시 북한에 있던 남매 어머니를 뒤에 탈출시켰는데, 무슨 가족이 사라졌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A씨는 "도움을 준 탈북자들이 등을 돌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일일이 변명을 하는 것도 구차해 뭐라고 논평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