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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의 능력이 검사능력 : 믿기 힘든 슬픈 현실

검사님은 아우님, 회장님은 형님… 용돈 주고 회식비 내주고
"일 안하는 검사들 중에 많아최근엔 청빈한 검사가 대부분"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가 27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 조사에 나섰다. 연루된 검사들이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30/2010043001671.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3

25년간 검사 57명에게 술과 촌지 등을 후원했다는 기업인의 폭로가 나온 후 검찰 조직은 쑥대밭이 됐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내정자도 작년 청문회에서 스폰서 때문에 탈락했다. 스폰서 문화가 도대체 어떻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러스트=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작년 말 서울 강남의 룸살롱에서 검사 5명이 송년회를 열었다. 이들은 수년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1년에 2, 3차례 만나온 사이다. 접대부가 들어오고 폭탄주가 서너 잔 돌 무렵 50대 남자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모임 좌장 격인 검찰 간부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고 나란히 상석(上席)에 앉았다. 검찰 간부는 후배 검사들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사업하는 내 친구다.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다."

검사들이 차례로 일어나 자신의 현재 근무지와 이름을 댔다. 악수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다. 양주 몇 병이 더 들어오고 밴드가 흥을 돋웠다.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어느새 이들의 호칭은 바뀌었다.

'검사님'은 '아우님'이 됐고 '회장님'은 '형님'이 됐다. 세 시간 뒤 술자리가 끝나고 술값 250만원은 남자가 계산했다. 남자는 룸살롱 밖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 놓은 모범택시의 기사들에게 차비를 후하게 줬다.

남자는 택시에 오르는 '동생'들에게 "아무 때도 좋으니 꼭 연락하라"는 말을 전했고 검사들은 "오늘 즐거웠습니다"라고 했다. 검사들이 떠나자 남자와 검찰 간부는 남자의 외제승용차 뒷좌석에 동승해 어디론가 떠났다.

서울중앙지검의 평검사는 씁쓸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지난 인사에서 지방으로 발령난 선배 검사가 서초동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사겠다고 해서 나갔다. 약속된 자리에 가보니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대형 건설사 고위 임원이었다.

선배는 후배에게 "원래 지방 가기 전에 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좀 늦었다. 친하게 지내면 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고 임원을 소개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셋은 인근 강남구 논현동의 고급 유흥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30만원가량 나온 식대와 술값 150만원은 임원이 계산했다. 검사는 "선배가 있어 거절할 수 없었지만 건설업체 임원이 왜 날 만나려 했겠냐"고 했다. 검찰에 '볼일'이 많았던 임원이 서울을 떠나게 된 선배에게 아는 검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 마련된 자리였다고 한다.

기업인 등이 술값과 용돈을 대주는 스폰서 문화는 검사 세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한때 검사들 사이에서 스폰서는 '능력'의 척도로 받아들여졌다. 서울보다는 지방의 스폰서 문화가 더 심각했다.

지방 근무 때 한번 인연을 맺은 스폰서와 검사는 서울에 와서도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나 이번에 문제된 건설업자 역시 지방에 새로 온 검사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한번 엮어진 스폰서와 검사 사이는 어지간해서 떨어지기 어렵다. 스폰서가 검사를 통해 얻은 '대리 권력'을 놓을 리 없고 검사 역시 달콤한 돈맛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검사는 스폰서의 사건을 봐주는 것은 물론 스폰서의 친구 사건도 봐주고 나중엔 스폰서의 친구의 친구 사건까지 봐주게 된다. 이런 맛에 스폰서는 검사에게 돈을 쓰는 것이다.

지방 근무를 자주 하면서 전국에 스폰서를 뒀다고 해서 전국구(全國區) 검사라는 말이 회자될 때도 있었다. 일부 검사는 사소한 술자리까지 스폰서를 대동해 계산서를 떠넘기기도 한다.

기업인 김모씨는 "네댓 명 모이는 동창 모임에 법무부에 근무하는 검찰 간부가 스폰서를 데리고 와서 밥값을 계산했다"면서 "우리끼리 소줏집 가면 되는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차장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일 안 하는 검사들이 스폰서가 많다"고 했다. 수사를 많이 하는 검사는 처신을 잘못하면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사람 사귀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는' 검사는 시간도 많거니와 자신을 떠받드는 스폰서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챙겨줄 사람 많은 '스폰서 검사'가 수사도 부실하다고 한다. 문제는 스폰서 검사가 검찰 인사에서 오히려 출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유력 스폰서들은 통상 검사뿐 아니라 정치인도 후원을 한다. 이 스폰서를 통해 검사와 정치인이 안면을 트는 것이다. 실제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대통령 후원자'가 되자 자신이 관리한 검사들의 인사(人事)까지 적극적으로 챙겼다. 특수부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실력보다 연줄이 통하는 검찰 인사 풍토가 지속되는 한 스폰서 문화 역시 뿌리뽑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파문에 연루된 한 검사장이 스폰서와의 전화통화에서 누가 검찰총장이 되면 자기는 부산지검장이나 검찰국장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인사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면 검사들에게 수사는 뒷전이고 유력 스폰서 잡기에 더 신경 쓰게 마련이다.

검사들의 회식 문화도 스폰서 관행을 끊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검사들은 통상 최상급자가 식대와 주대를 모두 계산한다. '수사지휘'뿐 아니라 '회식지휘'까지 잘해야 유능한 간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비싼 술집과 고급 음식에 익숙한 검사들이 많아 회식비가 여간 드는 게 아니다. 본인 경제력으로 회식비를 감당할 검찰 간부는 그리 많지 않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결기있는 검사들을 쥐락펴락하려면 스폰서를 끼고 있어야 했다. 가끔 근사한 곳에서 술을 사야 부장다운 부장이란 소리를 들었다. 스폰서가 될 만한 친구가 없는 나는 부장 진급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월급과 수사비만으론 직원들 데리고 삼겹살 파티하기도 빠듯하다. 집에 돈이 많은 검사나 스폰서 있는 검사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사 월급은 얼마나 될까.

검사들의 급여 체계는 1~17호봉으로 나눠진다. 검사 1호봉은 185만원, 2호봉(210만6600원)부터 6호봉까지는 200만원대, 7호봉( 310만3600원)부터 11호봉까지는 300만원대, 12호봉(403만3200원)부터 13호봉은 400만원대다.

14호봉(516만4000원)부터 17호봉까지는 500만원대이고, 검찰총장은 월 594만6800원을 받는다. 여기에 직급보조비를 더하면 검사들이 받는 공식 연봉 액수가 나온다. 검찰총장의 경우 월 165만원, 20년 이상 검사는 95만원, 10년 이상 75만원, 10년 미만 검사는 매월 50만원의 직급보조비를 받는다.

10년차 검사의 경우 세금 등을 공제하고 집에 가져가는 돈은 대략 월 35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검사는 임용되자마자 정부 부처 3급(부이사관) 대우를 받아 다른 공무원보다 월급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검사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대형 로펌의 동기(同期) 변호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연봉을 받고 있다. 이번 스폰서 파문이 확대되자 서울남부지검의 한 평검사는 "모든 검사들의 아내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 폭로 내용 대부분이 오래전 벌어진 일인데 요즘 검사들이 다 그런 것처럼 과장돼 있다"고 했다.

이 검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폰서 검사'가 줄어들고 있고 '청빈한 검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검장급 간부 C씨와 A씨, 지방 검사장으로 있는 N씨와 K씨 등 일부 검찰 간부들은 스폰서와 거리를 두고 검사 생활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검찰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인, 경찰, 공무원 등 다른 권력기관 역시 빠른 속도로 투명해지고 있다. 오히려 검찰의 자정(自淨) 속도가 다른 기관보다 느리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사들 사이에서 스폰서 관행은 그 정도와 형태의 변화만 있을 뿐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그 관행을 고치려 하지 않고 문제 될 때마다 대충 넘어가려는 검찰 내부 분위기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