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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누가 이끄나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조사 결과를 못 믿겠다"는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는 1994년 9월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란 명칭으로 출범했다.

참여연대는 초창기 의정감시센터, 사법감시센터, 공익소송센터, 내부고발자 지원센터, 인권센터, 사회복지특별위원회 등을 구성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1997년엔 경제민주화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기업에 대한 감시활동도 펼쳐왔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5/2010061500133.html?Dep0=chosunnews&Dep1=related&Dep2=related_all

박원순(54)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996년부터 6년간 사무처장을 지내며 참여연대 1세대를 주도했다. 투쟁 일변도의 재야운동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으로 주목을 받은 시대였다. 그러나 김기식(44) 현 참여연대 정책위원회 위원장 등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로 세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대안보다는 이념이 지배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적 힘이 정점에 달했던 참여연대는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FTA 반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등을 주도했으며, 지난 2008년에는 한국진보연대 등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이번 안보리 서한을 주도한 인물은 이태호(42) 협동사무처장이다. 이씨는 김기식씨가 해외 유학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생긴 공백을 김민영(43) 사무처장과 함께 채우며 참여연대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이씨와 김씨는 모두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80년대 중후반 총학생회 간부를 지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절의 서울대 총학생회 주류는 주사파(主思派)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참여연대 조직부장·정책부장·시민감시국장을 지냈던 이씨는 평화군축센터 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평화군축팀은 이번 안보리 서한 발송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담당했고, 같은 팀의 김희순, 곽정혜 간사 등이 천안함 리포트를 함께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