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박정희가 김종필 누나와 혼인'-군내 공산세력 3백명제보 : 1961년 케네디대통령 브리핑자료 혼인관계 잘못 파악하기도

516 혁명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케네디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방미할 당시, 미 행정부는 케네디대통령에 대한 박정희의장 브리핑자료에서 박의장이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의 누나와 결혼했다고 잘못된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61년 11월 박정희의장의 방미와 관련, 미 행정부가 케네디대통령에게 사전보고한 브리핑북에 따르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김종필중앙정보부장의 누나와 결혼해 아들 1명과 딸 2명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브리핑북은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유양수 최고회의내 외교분과위원장[CIA-P-146666]등에 대한 인물정보를 담고 있으며 박의장에 대한 자료는 CIA 인물자료에 있는 사진등을 포함해 모두 3장으로 돼 있습니다 

박의장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박의장의 CIA 인물정보 등록번호는 142532[CIA-P-142532] 였으며 한국 육군의 장군으로 돼 있었습니다 
 
미 행정부는 1917년생인 박의장이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육사에 진학한뒤 가나가와의 일본육사로 전학해 1944년 졸업한뒤 1년남짓 일본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해방뒤 한국으로 돌아와 1946년 12월 육사 2기로 졸업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박의장은 남노당 당원으로서 1946년 대구폭동당시 경찰에 의해 처형당한 그의 형[박상희, 김종필의 장인]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로 기울었으며 1948년 여순반란사건직후 공산주의자임이 발각돼 군법행위에 회부됐으나 명석한 청년장교라는 점이 그의 구명에 도움이 됐다고 기록했습니다

박의장은 한국군내 약 3백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제공함으로써 사형을 면할 수 있었고 현재 주미대사인 정일권과 주프랑스대사인 백선엽의 도움으로 10년형으로 감형된뒤 한국전 발발로 사면됐으며 그 이후에는 공산주의적 행적을 보인 적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의장은 한국전당시 뛰어난 업적을 세웠고 그뒤 성실하고 정직하고 쳥렴한 이미지로 존경을 받았으며 1960년 315부정선거와 부정선거에 군이 개입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1960년 쿠데타계획을 세웠으나 419 학생운동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면서 쿠데타 계획이 연기됐다는 것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설명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뒤 장면정부가 수립됐지만 박정희와 추종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해 1961년 쿠데타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일부 정보가 누설됐음에도 불구하고 쿠테타를 성공시켰다고 기록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군당국은 1956년 박의장을 책임감있고 지적있고 과감하고 리더십있는 장교로 평가했으며 1961년 당시 주한미대사관도 그가 능력있는 지도자로서 한국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2페이지에서 미 행정부는 박의장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누나와 결혼해 아들 1명, 딸 2명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군인월급으로 살다 보니 매우 곤궁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이 브리핑자료대로라면 박의장은 김종필 부장의 매부이지만 실제로 김종필은 박정희 의장의 형인 박상희씨의 딸 영옥씨와 결혼한 박의장의 조카사위입니다

또 박의장은 적당한 정도의 음주와 흡연을 즐기지만 최근 몇달간은 음주량이 늘었으며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하고 요즘 매일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박의장은 1954년 미국 포트스틸 포병학교에 유학했으며 차가운 이미지라고 보고했습니다



박정희누구 케네디브리핑자료 19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