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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핵심인물 김한조 지난달 사망 - 펌


1970년대 일대 파문을 일으킨 한국의 대미(對美) 로비스캔들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김한조(91)씨가 지난달 26일 오후 11시 37분 서울성모병원에서 숨졌다. 심각한 영양실조 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 만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입원 당시 김씨는 이미 열흘 이상 굶어 위장 운동이 멈춘 상태였고, 입버릇처럼 '이제 죽을 때가 됐지'라고 말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씨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3/2012080300303.html?news_Head1 

1953년 화물선을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씨는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약회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화장품 회사 존 앤드 비 디(John & Bee Dee)를 설립한 김씨는 1973년 한 해에만 2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김씨는 이 시기 대미 로비스트로도 활동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주한 미군 감축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워싱턴을 기반으로 인맥이 넓었던 김씨와 재미 사업가 박동선씨 등은 미 의회 의원들과 관리들에게 암호명 '백설(白雪) 작전'으로 불리는 로비전을 벌였다.

김씨의 로비 활동은 1976년 10월 15일 워싱턴포스트(WP)지가 보도하면서 드러났다. 신문은 "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 들어 재미 실업가 등을 내세워 50명 이상의 전·현직 미 의회 의원과 미 정부 관리에게 매년 50만~100만달러의 금품과 선물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미 언론들은 닉슨 대통령의 몰락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 이 사건을 '코리아 게이트'라고 불렀다.

 지난달 26일 숨진 김한조씨의 생전 모습. 김씨는 1970년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회 등을 상대로 주한 미군 감축 반대 로비를 펼친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당시 위증과 매수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1979년 7월 앨런우드 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 같은 해 11월 28일 출감한 그는 주변을 정리하고 1981년 귀국했다. 그는 이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인근의 허름한 집에 홀로 살다 최근에는 조카와 함께 구로구의 아파트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미국에서 화장품 사업을 할 때 데리고 있던 직원만 8000명이었는데, 끝내 사업도 망하고 재산도 다 빼앗겼다"면서 "국가를 위해 내가 한 일이 묻힐 수는 있겠지만, 국가를 위해 개인만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5년 펴낸 자서전 '코리아 게이트'에서 "파출소 한번 가본 적이 없는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은 엄청나게 치욕적인 일이지만 4000만 국민을 생각할 때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보여주었던 애국심을 정부와 우리 국민이 높이 평가해 모든 국민의 애국심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조국에 돌아온 뒤 모함과 멸시, 무관심 혹은 외면으로 지내왔다"고 썼다.

김씨는 귀국 후 가족을 그리워하며 당뇨 등 병마와 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살던 아파트 경비원 김모(65)씨는 "할아버지(김씨)가 유창한 영어로 전화하는 것을 자주 봤다"면서 "아파트 단지 내 어르신들은 그늘에 모여 앉아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할아버지는 항상 혼자 멀찍이 떨어져 쉬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급히 귀국한 김씨의 아내와 큰아들은 김씨의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유족은 따로 빈소를 차리지 않고, 사망 이틀 만에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조씨와 함께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로비스트 박동선(77·사진)씨는 현재 런던에 본사를 둔 무역 컨설팅 회사의 국내 지사 회장 자격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0년에는 서아프리카 국가 관계자를 상대로 원전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재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계획과 관련해 25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미 연방 경찰에 체포돼 복역하다가 2008년 석방돼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