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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09. 12. 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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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형제 기업들인 CJ신세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진원지는 이미경 CJ그룹 미디어앤엔터테인먼트 총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의 장녀인 이미경 부회장은 CJ의 신(新)성장동력인 문화·콘텐츠 산업을 이끌며 그룹 내 '실세'로 평가받고 있고, 이병철 회장의 외손녀인 정유경 부사장은 지난 1일자 인사를 통해 조선호텔 상무에서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 신세계그룹의 경영 일선에 전면 등장했다.

'뚝심'으로 영상산업에 돌풍을 일으킨 이미경 부회장

CJ의 방송·미디어 사업은 올 들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엠넷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는 케이블TV 역사상 최고치인 8.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국내 가요제였던 '마마(MAMA·엠넷뮤직어워드)'는 올해 처음으로 일본·중국 등 아시아 10여개국에 동시 중계되며 글로벌 가요제로 거듭났다. tvN의 '남녀탐구생활'도 4~5%대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대박행진의 배경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있다. 이 부회장은 평소 "'나눠먹기식 복지' 수준인 국내 문화·콘텐츠의 산업화 여부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해왔다. 특히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슈퍼스타K는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프로그램이다. CJ 신동휘 상무는 "케이블TV 프로그램 제작비용이 많아야 수억원대인 상황에서 일개 계열사가 40억원의 제작비 외에도 CJ의 연수원과 CGV 영화관 등을 모두 동원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부회장의 '뚝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을 보좌하는 그의 '측근'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대중 현 ㈜CJ 사장. 1990년대 중반 이미경 부회장을 도와 CJ엔터테인먼트와 극장 CGV를 탄생시켰던 하 부사장은 메가박스 인수 실패로 그룹 밖으로 물러나 있다가 2004년 이 부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회사로 복귀했다.

그는 작년 9월 터진 '이재현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올 1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과 사업 경험이 많은 하 사장이 그룹 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비자금 의혹 사건이 이미경 부회장이 전면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CJ의 방송·미디어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는 평가다.

"나는 회사가 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

지방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숨은 조력자가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조선호텔 상무시절에 센텀시티점의 개발 콘셉트를 잡기 위해 일본, 두바이, 유럽, 미국 라스베이거스, 뉴저지 등 30여개 복합쇼핑몰을 누볐다. 외국 쇼핑몰에서 방문객에서부터 인테리어 내장재까지 샅샅이 조사한 '산 지식'이 센텀시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백화점의 정문 콘셉트를 잡기 위해서만 10여번의 회의를 열었고, 매장 계단 손잡이를 고르는 데만 3개월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꼼꼼한 성공 전략을 구상했다. 센텀시티에 50여개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샤넬이 롯데 센텀시티 대신 신세계 센텀시티에 입점한 것도 그가 직접 샤넬 본사를 설득한 결과다. 이제 조선호텔 상무에서 공식적으로 신세계그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의 '눈'은 본격적으로 신세계그룹으로 향한다. 앞으로 신세계백화점의 광고와 마케팅 부문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주변 경영진은 그를 "동물적인 감각이 있고 외형보다는 콘텐츠를 중시하는 인물"이라 평가한다. 사무실 안에 있는 것보다는 철저히 '현장'을 중시한다. 이는 정 부사장의 어머니인 신세계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정 부사장은 지금까지 이명희 회장의 '손발' 역할을 해 왔다. 이 회장은 선진 유통업체 시찰을 위해 적어도 1년에 3개월 이상은 해외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마다 그의 곁을 지킨 것은 바로 정 부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