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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박사 사망 및 핵무기개발관련 36년전 국회 질의 답변 -회의록 원문

이휘소박사 사망관련 36년전 국회 질의 답변 :

제97회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회의록 1977년 6월 30일

질의 고흥문의원 - 답변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

고흥문 :

그렇기 때문에 얼마전에 미국의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부장인 이휘소씨 미국이름으로 하면 벤자민 리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적에 그 이박사가 노벨물리학상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이러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핵이론에 가장 귀중한 존재로 있었다는 이 점에서 본 위원은 여러가지 지금 우리나라 사태로 보아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지 않느냐 ----------

또 우리나라가 핵을 개발하게 될 경우 어쩌면 제일 먼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이박사가 아니냐? 여기에 어떤 흑막이 개재되어 있지 않느냐 하고 나 혼자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서 최장관에게 묻는데 최장관은 그 보고를 어떻게 받으셨고 또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수두뇌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두뇌를 정부는 어떻게 보호하고 있으며 또 핵개발문제가 아니더라도 우수두뇌에 미치는 과학기술의 국내축적이라고 하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절실한 과제라고 보니다, 그런데 우연한 사고로 잃게 되는 것이 불가항력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이 사실상 교통사고냐, 그렇지 않으면 다소는 흑막이 있느냐 이러한 점에 대해서 조금 아시는대로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형섭 :

이휘소박사는 지금 고위원님이 말씀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이론물리학의 세게적인 권위자입니다, 만일 한국사람이 장래에 노벨상을 받게 된다면 제일 먼저 후보에 오를 사람이 바로 이휘소박사라는 것은 세게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분은 지금 펜실버니아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펜실버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뉴욕에 가서 노벨상을 탄 유명한 중국의 양박사와 같이 동료로서 그 분야의 일을 해왔고 그 뒤에는 시카고대학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물리학부장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이 분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데 대해서는 저희들 동료과학자는 물론 전 국민이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고 저는 저 나름대로 알아보았습니다.

이휘소박사가 사고를 당한 것은 콜로라도에 학회가 있어서 가족과 같이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도중 일리노이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상대방에서 오는 트레일러의 바퀴가 빠져가지고 트레일러가 이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가족은 부인하고 아이 둘입니다마는 모두 무사하고 이휘소박사만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고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원자력 개발에 있어서 한두사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이휘소박사가 그 분야에 있어서 이론분야에 있어서 권위자라고 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제가 재차 강조를 하지 않더라도 또 대단히 얻기 드문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는 것도 여기서 제 나름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히 재미 과학기술자중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학자들이 상당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게 될만한 학자는 거의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시민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미국시민으로서의 그 사람들의 여러가지 환경이 있지만 이휘소박사만 하더라도 재미과학기술자협회의 2대 부회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사람들에 대해서 무슨 현지에서 보호를 한다든가 이러한 것은 거의 가능하지를 않습니다마는 저희들하고 긴밀히 연락을 해서 거기에 있으면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사람과 또 한국에 나와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저희들이 긴밀히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남아서 저희들을 도와줄 사람들의 대부분은 특히 원자력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분야는 거대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런 거대한 시설은 최소한도 하나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5백만불 6백만불에서 3천만불이나 되는 그런 시설이 있는데 그런 시설은 저희들이 아직 가지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설이 필요한 사람은 당분간 거기에서 일을 하는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마는 그렇지만 우리의 원자력분야에 있어서 에너지문제를 주축으로 문제를 다루어가지고 평화적 이용을 하는데 있어서의 여러 최소 지식의 추적이라든가 또한 우리 나름대로의 필요한 지식의 공급 이러한 것은 비교적 긴밀한 연락아래 피차간에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러한 정도 저희들이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2012/08/19 - [분류 전체보기] - 미, 이승만정권때도 한국핵동향 엄중감시-1959년 해외서 핵전공 귀국학자 명단및 소재파악[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