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한상대(전 검찰총장) : "저는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검찰 개혁을 포함한 모든 현안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표표히 여러분과 작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또 한 명의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검찰을 떠났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검찰의 선거 중립 문제도 아니고, 고위 공직자나 유력 재계 인사에 대한 부실 수사 논란도 아닙니다.
부장 검사가 억대의 돈을 받았고,
<녹취> 김광준(전 부장검사) : "(검사 동료 혹은 국민께 한 말씀 해주시죠.)..." 초임 검사 한 명이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녹취>성폭력 피해 상담센터 관계자 : "아무래도 자기(피의자)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 (검사가)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 뉘앙스예요."
갈 때까지 간 모습입니다.
한 때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벌이고,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콧대 높던 대한민국 검찰.
그랬던 검찰이 최근 불거진 뇌물과 성추문 사건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검찰, 그 원인과 대안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이번 검찰 사태의 도화선은 김광준 부장 검사의 억대 뇌물 수수 사건이었습니다.
불을 댕긴 건 경찰이었습니다.
<녹취> 기자 리포트 :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유진그룹 관계자로부터 금품 6억 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 고등검찰청 소속 모 검사에 대해 내사를 벌여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수사 확대 계획을 내비치며 현직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자체 수사를 하겠다며 특임 검사를 임명합니다.
이른바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에 이어 세 번쨉니다.
이에 경찰은 사실상 수사를 포기합니다.
자기 식구는 자신들이 수사하겠다는 특임검사 제도에 대해선 논란이 많습니다.
<인터뷰>박용철(서강대 교수) : "경찰이든 검찰이든 그 신분이라는 이유 때문에 특별한 어떤 수사에서 특혜를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선 경찰들도 긴급 토론회까지 열며, 검찰이 사건을 가로채 갔다며 비리 검사에 대한 경찰의 직접 수사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인터넷에는 검사 비리에 대한 경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를 담은 패러디 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특임검사는 김광준 부장 검사를 구속했고, 검찰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서울 동부지검의 전모 검사가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은 또다시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사건은 지난달 10일 토요일 오후 2시쯤 전 검사가 검사실에서 여성피의자를 조사하던 중 일어났습니다.
40대 여성 피의자는 서울 강동구의 한 대형 마트에서 17차례에 걸쳐 400만 원어치의 물건을 훔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고 사무실에는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인터뷰>정철승(변호사) : "피해액은 전부 다 합의를 해야 한다. 이런 식의 강압적인 얘기를 했어요. 두려움 때문에 여성이 울음을 터뜨렸고, 그때 검사가 차를 권하면서 신체접촉이 이뤄지고 결국 성관계까지 이뤄지게 된 것이죠."
검찰은 전 검사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청구했지만, 법원이 이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지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도 검찰의 영장 청구가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녹취>석동현 (전 동부지검장/음성대역) : "위계,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다루는 것이 가장 적절한데, 당사자 간에 어떤 경위로든 합의가 먼저 이뤄졌다면 친고죄인 관계로 법리상 공소권이 없어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이, 위기에 빠진 검찰은 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라는 치부까지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검찰총장이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안을 추진하면서 공개적으로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지만, 중수부장이 부당한 조치라며, 역으로 검찰총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선 겁니다.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검찰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손광운(변호사) : "국민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황당한 싸움이었어요. 검찰 내부에서는 중수부장께서 인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검찰의 수뇌부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개혁의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돼요."
쏟아지는 비난 여론 속에 아군인 검찰 간부들마저 등을 돌리자, 한상대 검찰총장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녹취>한상대(전 검찰총장) : "먼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 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 드린 것에 대하여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
검찰총장이 사퇴했지만, 검사들의 비리 정황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엔 브로커 검사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박모 검사가 프로포폴 불법 투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자신의 매형이 일하는 법무법인에 사건을 맡기도록 소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박 검사가 뒷돈을 받고 '봐주기' 구형을 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상대 전 검찰총장에게 정면 대응했던 최재경 중수부장까지도 재벌 기업과 관련된 특혜의혹에 휩싸였습니다.
<녹취>서기호 (의원/진보정의당) : "최재경 중수부장의 부인께서 도곡동 타워팰리스 근처에 삼성엔지니어링 빌딩 지하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은 삼성의 특혜가 없으면 입주하기가 어려운 곳이라고 합니다. 이거 아십니까?"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관련 사항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권재진 (법무부장관) : "필요한 범위 내에서 조사하겠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5일 채동욱 대검차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해 검찰 지휘부 내분 사태의 책임을 물어 각각 서울고검장과 전주지검장으로 전보 발령했습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결국, 내부의 비리 때문에 검찰 개혁에 실패했다고 자인했습니다.
<인터뷰> 한상대(전 검찰총장) : "환부를 도려내면 다시 돋아나고, 적을 물리치면 또 다시 물밀 듯 다가왔습니다. 결국 저는 이 전쟁에서 졌습니다."
<인터뷰>이석민(서울 서초동) : "뇌물도 조금도 아니고, 몇억 대로 받는다든가, 성추문 뭐 그런 게 너무 지저분하게 하는 게 마땅치가 않고 깨끗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박창희(서울 종로구) : "정말 맘 같아서는 다 확 엎어, 완전히 송두리째 뒤집어 엎어야된다고 그렇게 생각도 되는데..."
<인터뷰>장용규(서울 개포동) : "당연히 개혁을 해야되고, 차기에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당연히 해야된다고 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연히 해야되고, 그래 봅니다."
연일 터져나오는 검찰의 비리, 과연 검사 개인의 자질 때문에 이런 황당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진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견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의 비대화가 검찰 윤리를 무디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제 검찰 스스로의 개혁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최근 벌어진 검사들의 비리 사건은 기존의 일반 범죄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계좌 추적이 쉬운 수표로 수억 원을 받고, 담당 사건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바로 통제받지 않는 권력에서 나오는 대담성입니다.
<인터뷰>이재근(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 : "내가 (뇌물)수수하는 것은 이것은 절대 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주 대담한 행태이고 검찰 권력에 대한 오만에서 비롯된 행태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뷰>손광운 (변호사) : "일종의 오만이죠. 그 오만의 출처는 통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에서 시작된 거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잖아요. 독선과 오만은 결국 고이면 썩게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검찰의 막강한 권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지난해 출간된 이 책에서 전직 검사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저자들은 한국 검찰에 대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치외법권 지대에 위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김희수 (변호사) : "수사 할 때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부실 수사, 편파 수사, 표적 수사, 이것을 시정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힘이 막강한 겁니다. 형 확정되고 나면 검사가 형집행 정지로 풀어주면 됩니다. 그러니까 사법부도 능가하는 권력을 갖고 있고."
<인터뷰>박용철 (서강대 교수) :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기소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 비해서 보다 막강하다고 느껴지는 것이죠."
또 검사들이 사실상 법무부까지 장악해 검찰 인사를 검찰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소신보다는 상명하복에 충실한 검사들이 대우받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 초기마다 검찰 개혁의 출발은 인사권이었습니다.
<녹취>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 "(인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처리, 어떤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혹시 잘못은 없었는지 특별히 공정한 수사를 한 어떤 업적은 없었는지 이에 관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 상황입니다. 오로지 상관이 체크한 복명표가 A B C로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12월 독특한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의 한 콘서트장에 모였습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상곤 경기 교육감,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검찰이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무죄로 풀려났던 사람들이 검찰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 콘서트 자립니다.
이름하여 '더 위대한 검찰'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지만, 뇌물수수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로부터 2차례나 기소를 당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녹취>한명숙 (전 국무총리) : "가슴이 저며 왔어요. 언제나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처음에는 분노가 치솟다가 나중에는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가... 반드시 이것은 고쳐야 한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두 사건에서 각각 1심과 2심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홍준형 (서울대 교수) :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소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무릅쓰고서도 계속 정치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런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결국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를 놓친 셈이죠."
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5년 동안 검찰권이 남용됐던 사건을 자체 조사하고 이에 관여했던 검사들에 대해 자진 사퇴 등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녹취>하태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검찰권을 오남용 해왔고, 정치권력에 맞서야 될 검찰이 정치권력의 도구화 돼 버린 것이..."
<녹취>임채진(전 검찰총장 36대 2009년 6월 5일 퇴임사) : "항상 건승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녹취>김준규(전 검찰총장 37대 2011년 7월 12일 퇴임사) :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988년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검찰총장 2년 임기제.
이 제도 도입 후 17명의 검찰총장 가운데 1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이 중 9명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꼬리, 아니 머리 자르기 식의 대처는 검찰 개혁이라는 목표에 크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인터뷰>홍준형 (서울대 교수) : "근본적인 구조라든지 권한 기능의 독점 문제라든지 인사의 정치적 독립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는 상태로 지속돼 왔고 따라서 검찰은 거의 개혁 무풍지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제 18대 대통령 선거.
각 후보 진영에서도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 권력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 폐지가 핵심입니다.
<인터뷰>박용철 (서강대 교수) : "어떤 특별하고 좀 중요한 수사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단지 어떤 그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 수사들이 중수부에 의해서 주도가 됐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 많이 실망했다고 할 수 있겠죠."
<인터뷰>박영수 (전 대검 중수부장) : "(검찰의) 직접 수사 활동은 정말 국민이 원하는 사건, 정말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수부에 대해서는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모두 폐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 검찰 권력 통제를 위해 박근혜 후보는 상설 특검을, 문재인 후보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심윤조 (의원/새누리당) : "현행 특별검사제는 그때그때 검사를 임명하는 데 여러 가지 잡음도 있을 수 있고 과정도 복잡하니까 상설 특별검사제를 둠으로 해서 자연히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리수사가 가능하다."
<인터뷰>김갑배 (변호사/민주통합당 반부패특위 위원장) :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독립적 기관으로 설치하고 그 처장은 국회청문회를 거치고 또 임기는 충분히 보장하면서 대통령 임기와 엇갈리게..."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검찰의 유혹과 저항 속에서 검찰 개혁을 이루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여야는 지난해 6인 소위를 통해 중수부 폐지를 합의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인터뷰>이재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 : "대검 중수부가 정치권들을 압박하니까 뭐 여든, 야든, 아이고야 아이고 뜨거워라 하면서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 뒤로 물러섰고...검찰들이 어쨌든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숨을 고르고 조직적으로 저항할 것이 뻔합니다."
이번 검찰 사태는 수십 년간 국민의 지탄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도한 권한과 권력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면 이제 검찰은 보다 낮은 자세로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생각해야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