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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3. 1. 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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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11월 비밀접촉 결렬→2010년 1월 해안포 발사→3월 천안함→11월 연평도포격

[MB정부 인사, 뒷얘기 밝혀]
"北 유화제스처 속뜻 알아야" 朴당선인 향한 메시지인 듯
"정상 회담 성사 조건으로 쌀·비료 5억달러 요구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부가 북한의 경제 지원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북한이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북한이 요구한 정상회담 '대가'를 거부하자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 도발했다는 것이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3/2013010300239.html?news_Head1 

정부 고위 관계자가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이후 북한의 의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 발언은 북한 권력자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다음 날 나온 것으로 북한에 대해 '유화 제스처의 속뜻을 간파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조만간 북한과 맞닥뜨리게 될 박근혜 당선인과 그 참모들을 향한 메시지 성격도 있다.

"정상회담 하려면 쌀·비료 내놔라"

이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여러 번 북한과 만나 얘기했다"며 "그러나 북한이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쌀 수십만톤, 비료 수십만톤을 요구했고 우리는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쌀과 비료 등 총 5억~6억달러 정도의 현물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뒷돈'으로 현금을 요구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남북관계에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며 "천안함 이후에도 대화가 이뤄졌지만 북한이 '천안함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중단됐다. 이 관계자는 "2011년 12월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로는 정상회담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북, 남측의 경제 지원 쉽지 않자 도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8·15 경축사에서 "언제,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 간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1주일 뒤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서울에 온 북한 조문단은 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해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측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비밀 접촉은 이런 분위기 속에 성사됐다. 이때도 북은 식량·비료 지원을 당연한 일처럼 요구했고 이것을 들어주려면 5억달러, 우리 돈으로 5000억원 이상이 필요했다.

그해 11월 7일과 14일 개성 모 여관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후속 비밀 회담은 최종 결렬됐다. 소식통은 "당시 북측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차관급)은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내밀었는데 정상회담 대가로 수십만톤의 쌀과 비료를 내놓으라는 내용이라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소식통은 "만약 북의 식량·비료 지원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정상회담까지 가는 단계마다 '현금' 같은 뒷돈 요구도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비밀 회담이 결렬되고, 더 이상 우리 측에서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직후인 2010년 1월 '보복 성전(聖戰)'을 거론하며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무더기 해안 포를 쏴댔다. 이어 두 달 뒤인 3월 26일 천안함을 폭침했고, 그해 11월엔 연평도 민간 지역에까지 포격을 퍼부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주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은 북쪽에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