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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김지태, 정수장학회 모체 부산일보-라디오등 헌납은 강압': 미국무부비밀전문

 

정수장학회의 모체인 김지태의 부일장학회 헌납과 관련, 강압성이 있었음이 법원에서 인정된 가운데 미국도 김지태의 부산일보와 라디오방송 포기등이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비밀전문이 발견됐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63년 6월 11일 미국무부에 타전한 '부산일보 - 반미의 표출구'란 제목의 전문에서 부산일보의 소유주는 김지태 전 국회의원으로 부정축재와 밀수혐의로 1962년 4월 체포됐다가 석방의 댓가로 부산일보를 포기한뒤 1962년 6월 22일 공소취하로 석방됐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이같은 판단은 국정원 진실화해위원회의 2007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진상조사보고서내용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국정원 진상조사보고서는 1962년 4월 중앙정보부가 김지태를 부정축재처리법위반등의 혐의로 구속한뒤 석방등 신변안전보장을 내세워 재산헌납압력을 행사했고 1962년 6월 20일 부산일보등 언론 3사 주식과 토지 10만여평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에 헌납한다는 기부승낙서에 서명, 날인한뒤 1962년 6월 22일 공소취하로 석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이 전문에서 1946년 창간된 부산일보는 부산지역에 4만여명의 독자를 가진 신문으로 최근 한국에서 대표적인 반미성향의 신문이라고 밝히고 전 소유주는 김지태 전 국회의원이지만 현재 중앙정보부가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김지태가 석방의 댓가로 부산일보를 포기한뒤 1962년 6월 22일 공소취하로 석방된 것은 물론 라디오방송국또한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황용주에게 넘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문은 부산에서 잘 알려진 좌익인사중 한명이며 박정희의 비공식 자문역할을 하던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에게 운영권이 넘어가고 1962년 8월 1일 황용주가 부산일보 사장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황용주는 사장이 된뒤 2천원의 대출을 받아 1963년 4월 한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인쇄시설을 도입하고 5층 신축빌딩을 마련했다며 이같은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정부에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이 전문은 1963년 5월 29일자 전문에서 김종필이 장악했던 중앙정보부의 강압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밝히고 김지태는 라디오방송국[부산mbc를 의미] 또한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황용주에게 넘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전문은 잘 알려진 반미주의자이자 좌익인사인 황용주는 장면정권때 주필을 맡으면서 장면정권에 반대하며 반미주의적인 톤의 사설을 실었다고 설명하고 황용주를 비롯해 좌익으로 의심받던 사람들은 516즈음에 체포됐으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또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개입으로 풀려난뒤 박정희와 김종필의 막후 조언자역할을 맡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은 황용주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위험스런 인물이지만 중앙정보부는 그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미국에 비밀리에 알리고 김용태, 장태화[김종필의 측근들]도 의심스런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산일보는 황용주의 지시에 의해 반미와 중립주의자적인 기사를 게재하고 있으며 미국과 미국정부의 행동에 대한 공격은 정부매체인 서울신문을 훨씬 능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사설을 통한 가장 극단적인 미국에 대한 공격은 박정희의 군정연장선언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밝힌 3월 25일자 링컨와이트선언에 대해 3월 27일자 신문 사설을 통해 '내정간섭'이라며 '한국을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볼모로 삼는 것은 물론 미국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넘기려고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지태부산일보헌납은 강압 미국무부비밀전문 by

 

정수장학회_국정원_조사보고서_1 by

 

정수장학회_국정원_조사보고서_2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