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지하에게 환호할 수 없는 마음 [최보식칼럼] 펌

노년에 접어들어 김지하씨는 젊은 날의 고초(苦楚)에 대해 보답을 받는 것인가. 이제 그는 정치·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 됐다. 그가 신문 지면에 좌파 진영의 '원로' 백낙청씨를 향해 "마르크스는 읽었는가" "벌린 입으로 지하실 고문을 견딜 수 있겠나"며 정면으로 공격했을 때, 또 안철수 후보를 '깡통'으로 표현했을 때 우파 진영에서는 "이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있나"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마 강원도 원주에 사는 그의 귀에까지 "역시 김지하"라는 환호가 들렸을 것이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0/2013011000892.html?gnb_opi_opi03

그의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은 대선판에서 상징적 효과가 컸던 게 틀림없다. 그때까지 김지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마 그가?" 하는 당혹과 허탈감을 줬겠지만. 그가 "아버지 어머니 모두 총탄에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18년 동안이나 고독 속에서 지냈다. 박근혜가 내공이 쌓였을 것이라고 결론 냈지"라고 이유를 밝혔으니, 더 이상 따지고 궁금해할 단계는 지났다.

우파 진영으로서는 그의 귀환이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왕왕대고 문재인 후보는 형편없다" "김대중씨는 내가 끌고 나오다시피 한 사람" "윤창중 인사는 최대로 잘 한 것" "이게 빨갱이 방송이오?"…. 그의 말과 글은 정곡을 콕콕 찌르고, 스스로 '욕쟁이 입'이라고 했듯이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통쾌하게만 들린다. 아마도 그만큼 공적으로 말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거와 정치판에서 잘 싸우는 역할은 그와 같은 시인(詩人)이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에서 절제란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구분하는 거야. 그런 것도 없는 사람(안철수씨)이 자기 전문 영역과 정치의 관계도 모르고"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로 그 자신도 그런 함정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초연한 위치에 있다고 믿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맨 앞줄에 전사(戰士)처럼 서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는 한 수 훈계를 한다고 여기겠지만,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언어는 단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는 시대와의 화해를 얘기했지만, 현실에서는 불화와 분열을 더 조장할 공산이 높다.

매스컴은 그를 찾고 우파 단체도 모시려고 한다. 그의 말문이 열릴 때마다 세간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동안의 고립과 소외감에서 그가 벗어날 때도 됐지 않았는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대접받는 날도 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에 빠질수록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부채 의식과 경외심, 시인다운 시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질 것이다.

좌파 진영에서 뭐라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는 그냥 흘려버려도 된다. 정작 귀담아들어야 할 것은 내 주변의 생각 있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말이다. "노년의 김지하가 왜 저렇게 됐을까." 특정 이념과 정파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이런 작은 목소리도 묻혀있는 것이다.

김지하씨가 거울 앞에 서면 그 속에는 황석영씨가 보인다. 황씨는 작년 연말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나이 일흔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만약 정권 교체에 실패한다면 프로방스 시골로 떠나 밥집이나 하겠다"고 말했으니, 열정과 가벼움은 나이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직접 나서서 야당의 단일화를 촉구했고, '국민연대'도 결성했다. 의식 있는 작가라면 사회적 발언에 의무감을 느낄 것이다. 독재 정권에서 작가들은 자유·민주주의·인권·평등 같은 '가치'를 위해 투쟁했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문단에서 수십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가 직접 선거판에 개입한 것은 흔한 구경거리는 아니다.

선거에 패한 뒤 그는 신작 홍보를 겸해 전국을 돌며 '선거 결과에 대한 박탈감과 상실감을 치료해준다'는 취지로 '힐링 사인회'를 연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반대편 지지자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은 올바른 시민 의식이 아니다"고 했다. 사실 이는 그가 그동안 입장이 다른 특정 언론 매체와 문인들에게 쭉 취해오던 태도였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정치권력 앞에서 그가 말을 바꾼 사례가 떠돌며 집중 공격을 받는 중이다. '구라'가 좋은 소설가에게 그까짓 말 좀 바꾼 게 무엇이 흠일까. 하지만 이제 그를 더 이상 작가로서 여유 있게 봐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한때 그의 독자들도 즐거운 마음만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순 없을 것이다.

김지하나 황석영씨쯤 되면 '독립된 개인'으로서 외로운 위치를 지켜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을까. 꼭 정치판에 휩쓸려야 사는 맛이 나는지도 만나면 물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