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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지하에 30미터 비밀통로 - 펌

영화 ‘이끼’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 유해국(박해일 분)이 지하실 비밀 통로 출입문을 열며 두려움과 호기심 섞인 눈빛을 빛내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마을 곳곳으로 연결된 지하통로는 마을이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지하 비밀통로는 군사시설이나 요새에도 많이 쓰였다.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는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청사에도 지하통로가 있다. 도대체 누가 왜 만든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15일 지하통로를 직접 찾아가봤다.

원본출처  
http://news.donga.com/Society/New/3/03/20111216/42651413/1 

○ 공무원도 모르는 시청 지하통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이 있는 서소문 별관 1동 앞 지하주차장 남쪽 벽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장과 바닥 벽면 등 4면이 견고한 콘크리트 지하통로가 나온다. 지상에서 50∼60cm 아래에 있는 이 통로는 너비 2.3m, 높이 2.2m로 어른 2, 3명이 한번에 횡대로 지나다닐 정도의 크기다. 서울시립미술관 쪽을 향해 30여 m 뚫려 있는데 중간에 서소문 청사 2동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갈림길도 있다. 갈림길을 지나면 5동 지하 1층으로 연결된다. 5동에서 서울시립미술관 쪽으로도 통로의 흔적이 있지만 2002년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때 콘크리트로 모두 채워 지금은 막혀 있다.

지하통로는 건물들 사이로 나 있어 S자 형태로 구부러져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쪽을 향해 있어 약간 오르막 형태다. 5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계단도 있다. 군데군데 조명이 있긴 하지만 어둡고 습한 게 으스스한 분위기도 감돈다.

○ 구속 피고인이 법정 향하던 호송로


시장과 공무원이 행정업무를 보는 곳에 비밀스러운 지하통로가 왜 필요한 걸까. 사실 이 통로는 시가 만든 게 아니다. 서소문 청사의 이전 주인이던 법원과 검찰이 만든 통로다.

지금 법조타운 하면 모두 서초동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 법원 검찰청사가 현재 서울시청이 자리 잡은 서소문에 모여 있었다. 1동은 대검찰청과 서울고·지검이 있었던 검찰종합청사였다. 2동은 서울고·지법이 있던 서울법원청사였고 5동 건물은 서울법원청사 별관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이다. 지하통로는 옛 검찰청사와 법원청사를 연결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용도는 뭘까. 정답은 구속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킬 때 쓰던 호송로다.
윤재윤 춘천지법원장은 “당시 서소문 법원 청사에는 피고인들을 잠시 가둬둘 장소가 없어 구속 피고인들이 검찰청 구치감으로 호송된 뒤 각자 재판 일정에 따라 옆 건물에 있는 법정으로 출석했다”며 “지하통로를 이용하면 도주 우려가 거의 없고 포승에 묶인 피고인의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지도 않아 인권보호 측면에서도 좋았다”고 말했다. 서소문에서는 ‘이철희·장영자 사건’(1982년), ‘5공 비리사건’(1988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고 당시 구속된 유명인사들이 이 통로로 법정에 출석했다.

이재홍 전 서울행정법원장은 “장마철에는 사건기록이 젖지 않도록 이 통로를 이용해 다른 건물로 옮기곤 했다”고 기억했다.

○ 지금은 제설도구 창고로

1995년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끝으로 법원과 검찰이 모두 서소문 청사를 떠나면서 지하통로는 별반 쓸모가 없어졌다. 시는 이곳에 제설, 청소 도구를 쌓아두고 있다. 유석윤 시 청사운영1팀장은 “2007년 2동 뒤편에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를 만들 때 공사지역 바로 옆 지하에 빈 공간(지하통로)이 있다고 해 깜짝 놀랐다”며 “콘크리트로 메우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역사적 의미도 있고 창고 등으로 쓰임새도 있어 지하통로 안에 철골구조물(H빔)을 세워 지반 보강공사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no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