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 박찬종 만나 입열다

'부산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사진>는 지금까지 신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그랬던 김길태가 부산교도소에서 본인의 삶을 말했다. 박찬종(朴燦鍾·71) 변호사를 두 차례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는 세상을 향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4/2010051401674.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양아들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나니 아버지에게 맞는 게 더 슬프고 서러웠다. 나는 부산 S중학교의 1회 졸업생이다. 상급생이 없던 중학교와 달리 K고에 진학하니 무서운 선배들이 많았다.

나는 두 달 만에 학교에 결석했다. 놀거나 벽돌공장에서 짐을 날랐다. 여름엔 빙수를 팔고 겨울엔 군고구마를 팔았다. 학교를 자퇴한 지 1년이 지난 1994년 10월 나는 친구와 함께 돈과 옷을 훔치다 한 달간 구속됐다.

그때 선고유예를 받고 나와 술집에서 심부름을 했다. 1995년 12월에 또래와 싸워 소년원에서 한 달간 살다 6개월간 보호관찰을 받았고 1996년 9월 또 싸워 45일간 구속돼 있다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나왔다.

나는 1997년 7월 아동강도강간 미수로 붙잡혀 징역 3년을 살았다. 당시 길가던 9세 여아에게 3000원을 빼앗고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발각됐다. 강간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경관이 마구 두들겨 패고 조서를 썼다.

3년간 공주·청송·안동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았다. 나는 2001년 4월 출소했다. 사회에 나와 다시 술집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나는 2001년 5월 당시 새벽기도 가던 여성(32)을 9일간 옥탑방에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8년을 살았다. 그것도 여자가 합의금을 노리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판사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당시 부모와 친구를 증인으로 신청해달라고 했지만 판사가 듣지 않았다. 나는 김해·청송·안양·진주교도소를 거쳤다. 안양교도소 시절 환영·환각·망상증에 시달려 진주교도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진주에 있을 때는 가끔 외부에서 의사가 와서 10초 정도 진료하고 약을 줬다.

그 약을 먹고 나면 사지가 늘어졌다.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늘 비몽사몽 했다. 약이 떨어지면 의사가 와서 또 약을 줬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교화되기는커녕 상황이 더 나빠졌다.

나는 2009년 6월 출소했다. 집에 머물다 8월에 경기도 의왕에 있는 이삿짐센터에서 잡부로 50일간 일하며 170만원을 벌었다. 10월쯤 내 전과가 탄로 나 직장에서 쫓겨났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뒤 나는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