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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의장 인터뷰 - 어뢰 확실했다면 잠수함기지 때렸을 것

이상의(59)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천안함이) 어뢰에 맞은 것이 확실했다면 적 잠수함이나 잠수정 기지를 때렸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월간조선 7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천안함의 최초 보고가 제대로 전파됐다면 우리 군의 대응태세는 어떻게 달라졌겠느냐’는 질문에 “의장으로서 제 조치가 확 달라졌을 것이다. 교전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8/2010061801497.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

이 의장은 ‘합참의장 권한으로 한미연합사와 별개로 북한 기지를 즉각 타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데프콘3’가 발령되기 전의 모든 작전권한은 합참의장에 있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 군은 강하고, 참모총장은 충분한 수단과 능력이 있다”며 “물론 당시 야간에 불의의 피격을 당해 살아남기 어려운 판에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잠수함 공격 가능성에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 의장은 “가장 아쉬운 점”이라며 “솔직히 군은 서북해역이 수심이 낮고 조류가 빠르고 탁류(濁流)라 잠수함 기동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청해전 이후 합참은 수상함에서 승산(勝算)이 없어 잠수함(정)으로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대비했다고 말했다.

합참은 2~3월 키리졸브 훈련을 마치고 4월 중 적 잠수함 대비태세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 검열(檢閱)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천안함은 3월26일에 기습을 당했다. 이 의장은 “만약 예하부대가 지침대로 준비를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천안함을 공격한 적 잠수함을 오히려 잡는 전과(戰果)를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감사원의 군 인사 25명에 대한 징계요구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이 의장은 “국방부가 요청한 취지는 시스템상의 문제점을 봐 달라는 이야기였지, 군의 작전을 감사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며 “감사원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군사전문가들이 전문지식 없이 작전운용 파트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버거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부서의 규정과 법령은 군대의 예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행정부는 법이나 훈령에 따라 적용하면 되지만 군대 예규는 상황, 여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권한을 가진 지휘관이 현장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동해안에 기관총을 장착한 10t짜리 선박이 출현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 상황은 뭘로 적용하느냐. 바로 현장 대응”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집무실 이탈, 문서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지휘통제실에서 화장실이나 식당에 가는 것도 이탈이냐”며 “지휘관은 교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전시에도 수면을 취하면서 지휘한다. 내 집무실에는 지통실보다 훨씬 더 많은 통신장비가 있고 집무실과 지통실은 3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통실로 복귀해 직접 서명한 문건(전군 군사대비태세 강화) 표지 두 장도 월간조선에 공개했다. 하나는 이 의장이 지통실을 비웠을 때 합참 합동작전본부장이 전결처리한 문건, 다른 하나는 이 의장이 지통실로 복귀해 직접 서명한 문건으로 이 두 문건의 문서번호는 모두 동일했다.

이 의장은 지통실로 돌아와 이전 문건에 2가지 내용을 삽입한 뒤 본부장이 연필로 써넣은 ‘전결’을 지우고 직접 서명해 재전파했다. 새로 전파된 문건에는 ‘본 문건 접수와 동시에 먼저 접수된 동명의 명령을 대체 파기(破棄)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 의장은 “보안규정에 따라 실무자 권한으로 비문(祕文)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라며 “마치 술 취한 채 자다 내려와 내가 조치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작전본부장이 전결한 문서를 파기토록 지시했다는 것은 저를 파렴치범으로 몰려는 시도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개인을 떠나 군 전체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천안함 공격의 결정적 물증인 '북한제 어뢰 파편'과 한글표기를 발견한 것에 대해 이 의장은 "5월15일 이정두 해군 제독(탐색구조단장)의 보고를 받고 눈물이 났다"며 "정말 신이 대한민국을 돕고 계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만일 어뢰 추진체를 찾지 못했다면 사고해역을 해군 특수전여단(UDT) 훈련장으로 만들어 끝까지 찾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1970년 사관생도로 출발해 40년간 군 생활을 해온 이 의장은 “전역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잠을 푹 자보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군 장병들에게 보내기 위해 손수 붓펜으로 쓴 ‘나의 전우이자 부하, 그리고 후배 여러분’이라는 글을 적었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미국 국민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침몰한 애리조나 전함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주만 깊은 바닷속에 그대로 수장(水葬)시켜 놓고 장병들의 전의(戰意)를 고양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천안함의 처참하고 참담한 모습을 우리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영원히 인양하지 맙시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약해질 때, 타성에 젖을 때, 교만해질 때, 다시 꺼내어 보고 산화한 천안함 영웅들을 기억하면서 조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영광스럽게 수호하는 전사(戰士)가 될 것을 다짐합시다."

※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