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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도 밀봉인사할 건가 - 조선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박선규 대변인은 30일 대통령직 인수위 인선에 대해 "언제 할지 모른다. 인사와 관련된 것은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박 대변인 말은 한마디로 "난 아무것도 모른다"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30/2012123000594.html?news_Head1

당선인의 오랜 '입'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前) 공보단장도 지난 24일 당선인 비서실장과 대변인단을 발표하면서 자신은 직책과 이름만 통보받았을 뿐 더 이상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 사흘 뒤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기자들 앞에서 무슨 의식(儀式)이라도 치르듯 밀봉(密封)된 봉투를 직접 뜯은 후 자신도 그때 처음 봤다는 인수위원장과 국민대통합위원회·청년특위 위원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인선 배경은 물론, 인수위 조직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설명한 게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국민대통합위·청년특위 위원들은 인수위원이 아니라고 했다가 한 시간 뒤엔 두 특위도 인수위 내 조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특위위원이 인수위원인지 아닌지는 "기사 쓰기 나름"이라고 하고 인수위원장과 두 특위 위원장이 상하 관계인지 병렬 관계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대선 후 당선인 주변을 보면 흑백필름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대변인단은 "추가 인사 내용도 밀봉해 주시면 발표할 것"(윤창중)이라며 자신들의 역할을 참모가 아니라 그저 '단순 낭독자'로 낮추고 있다. 자신들은 인사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선 당선인과 협의는커녕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실토한 셈이다.

역대 대통령의 인사 업무를 뒷받침해온 실무 책임자는 대개 비서실장이었다. 대선이 끝나면 당선인이 비서실장부터 인선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러나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인선 후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인사'가 아니라 '정책'일 것이란 관측이 곧바로 당선자 주변에서 나왔다. 과거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이들 역시 당선인이 인사에 개입하는 걸 싫어하는 걸 알고 당선인 주변엔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당선인 주변에 바른 소리를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당선인은 2인자가 발호해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할 위험을 차단하려면 본인이 인사권을 확실하게 움켜쥐고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인사를 혼자 다 챙길 순 없는 노릇이다. 유능한 인재를 널리 구하는 작업이나 이들을 검증하는 작업 모두 제도화해서 시스템으로 굴러가야지 당선인의 나 홀로 판단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있다. 당장 27일 발표된 청년 특위위원 중 2명이 '돈 봉투'와 '하도급 대금 늑장 지급'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켰던 인물로 밝혀졌다. '철벽 보안'의 장점만 보고 지금 같은 밀봉 인사를 계속 밀고 갈 경우 새 정부 첫 내각 인선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