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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73년 미국 도피에 앞서 71년 호화주택을 구입하고 72년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제반 계약서와 함께 공개했었습니다

오늘은 김형욱의 두번째 집 매입을 물론 김형욱 실종 직전인 79년 8월과 실종 50일뒤인 79년 11월 부인 명의로
나대지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계약서등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김형욱 실종 전후의 2건의 토지거래는 한국정부와 김형욱간에 타결됐던 회고록 포기의 댓가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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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

 

김형욱은 또 미국 도착 14개월뒤 1974 8 21일 뉴저지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27만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합니다

 

대지가 1.5에이커 천8백평 규모로 2009년 현재 이집의 공시주택가격은 220만달러상당입니다

 

27만달러짜리 저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비교대상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1976 11 30일자에 박정희가 권좌에서 내려올 경우 미국 피난처라는 소문이 있다고 언급했던 박정희의 큰 딸 박재옥의 뉴욕 저택입니다

 

뉴욕타임스에 중세 성모먕의 붉은 벽돌집으로 묘사된 이 주택은 김형욱일가 소유 쇼핑센터가 있는 웨체스터 스카스데일에 있으며 1976 8 17일 박재옥이 구입할 당시 매입가격이 205천달러였습니다

 

김형욱이 1974년 알파인에 구입한 주택은 27만달러, 박정희 딸 박재옥이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난뒤에 구입한 중세성을 방불케하는 주택이 205천달러였으니 가히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재옥 주택구입내역은 이미 이 블로그에 게재돼 있습니다]

 

이 알파인 하이우드플레이스에는 김형욱 집을 포함한 모두 7채의 주택이 있었는데 7채 주택모두 등기부 등본에 조차 하이우드플레이스라고만 기재돼 있을뿐 넘버는 없다고 돼 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집입니다

 

우편물은 우체국 사서함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일반인에게 익숙한 주소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등기부 등본에 정확한 지번을 알려주는 블록과 로트가 기재돼 있어 지적도를 통해서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화주택이기는 했지만 조국을 배신한 김형욱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김형욱과 잘 아는 한 재미동포는 이 하이우드플레이스 주택이 도로를 기준으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김형욱은 차를 타고 가다 누가 수류탄만 하나 굴려도 나는 산산조각이 난다며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망명 1 8개월여가 지난 1975 1, 김형욱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비운이 닥칠 것을 예감했음인지 자신의 사망 실종때 부인 김영순과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이 유언장의 주소가 60 트라팔가로드로 돼 있는 것을 보면 김형욱이 1974 8월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 주택을 구입했지만 적어도 1975 1월이후 새 집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고록 출판저지과정에서 돈거래 유추가능한 부동산 거래 발견

김형욱 실종 한달보름전 뉴저지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김형욱 실종 두달도 안돼 뉴욕주 라클랜드에 주택용지 7개 필지 매입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 회고록 출판 저지를 위해 돈이 오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도 회고록 포기에 따른 대가가 백50만달러라고 기재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2백만달러라고 서술된 부분도 있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형욱 사망선고 관련공판에서 유족들은 김형욱이 정태동 당시 주미공사와 1979년 7월 회고록 포기에 따른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관련 기록을 보면 결국 '회고록 포기대가는 2백만달러, 1979년 7월부터 10월까지 매달 50만달러 지급, 
마지막 50만달러가 지급되는 10월에 원고와 교환한다'가 골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관련 문서를 통해서도 김형욱이 돈을 받았음을 추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김형욱은 1979 10 7일 파리에서 실종되기 이전 그해 8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파리를 방문하고 이때 회고록 포기 대가의 일부분이 직접 또는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입금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9 8 10일 김형욱 파리방문뒤 8 24일 알파인 부지 매입

 

김형욱이 1979 8 10일 파리를 방문한 직후인 8 24일 김영순은 지금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 주택의 부지를 사들입니다

 

알파인 언덕의 한 도로 맨마지막 막다른 곳인 이 대지는 2에이커 2450평규모로 부지 매매가는 1725백달러였습니다

 

즉 김형욱이 1979 8월 파리에서 돌아오자 마자 땅을 사들인 것입니다

 

김형욱 실종 두달안된 11 29일 라클랜드카운티 주택부지 매입

 

이상한 거래는 또 있습니다

 

김형욱이 10 7일 실종된뒤 채 두달도 지나지 않은 11 29일 김영순은 뉴욕주 라클랜드 카운티 오렌지타운에 7필지의 주거용 부지를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양도세를 역으로 계산할 경우 2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남편 실종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또 다시 부동산을 구입한 것입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김형욱이 밀반출한 재산일 수도 있지만 회고록 포기댓가로 건네진 돈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1982년 한국서 재산몰수전후 미국 부동산도 일부 현금화

 

한국정부는 김형욱이 망명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1977 12월 반국가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1982 3월 궐석재판을 통해 김형욱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과 함게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합니다

 

김형욱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되자 김영순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미국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를 현금화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김영순은 가장 큰 부동산인 쇼핑센터의 매도에 나섭니다

 

1972 4월 구입한 그린버그쇼핑센터의 소유주였던 제심부동산회사는 1982 2 810달러에 이 쇼핑센터를 김영순에게 넘기고 김영순은 같은 날 이 쇼핑센터를 팔아버립니다

 

제심부동산회사가 대형쇼핑센터를 10달러에 김영순에게 넘긴 것은 김영순이 실제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쇼핑센터의 매도금액은 양도세를 역추적할 경우 백70만달러 현금에 모기지 375천달러를 넘김으로써 약 21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의 재산몰수분위기에 놀라 급하게 처분하면서 손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현재 이 쇼핑센터는 웨체스터카운티의 대대적인 재개발로 변두리 상권으로 전락했지만 버겐카운티가 2008년 고시한 공시가격만 천10만달러,

실제 가격은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한달여뒤인 3 30일에도 1979 11 29일 김형욱 실종 약 두달뒤에 매입했던 뉴욕주 라클랜드카운티 오렌지타운의 주거용 부지 7필지도 235천달러에 매각합니다

 

미국법원, 김형욱 실종 1 6개월만에 법적 사망 판결

김형욱 유족이 사망입증 결정적 증거 제시한 듯

한국정부 유족달래기 상속위해 사망증거 제공설도

 

이에 앞서 김영순과 그의 자녀 김정한 김정우 김신해등은 김형욱 실종 1 1개월만인 1980 11 18일 뉴저지법원에 김형욱의 법률적 사망 판결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소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 다음해 3 30일 공판을 끝내고 4 8일 김형욱은 법적으로 사망했음을 선고받게 됩니다

 

실종 1 6개월만에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미국 실정법상 실종자의 경우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나야 사망을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의 사망선고가 유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유산의 상속입니다

1975년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망선고가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법원은 어떤 근거로 실종 1 6개월밖에 안된 김형욱에 대해 사망을 선고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재판부가 김형욱이 사망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얻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이후 한국정부는 가족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여러가지로 고심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유산이라도 빨리 상속받게 해주자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형욱에 대한 법적인 사망선고가 필요했고 재판부를 납득시킬수 있는 사망증거를 한국정부가 김형욱 유족들에게 전달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은 철저히 숨기고 부동산 대부분을 부인명의로 구입했으므로

부동산 보다는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예금 때문에 사망선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박정권을 등졌던 김형욱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망명준비 만큼은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동백림작전만큼이나 철저했던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김형욱 실종이후의 알파인 대저택 신축, 크고 작은 콘도 매입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치용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