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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외교 최고 대통령은 노태우' -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
핫이슈 언론보도2009. 9. 1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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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전(前) 외무부 장관
본방: 11일 오후 9시50분 재방: 13일 오후 1시50분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고려대 명예교수)이 디지틀조선일보의 케이블채널인 비즈니스앤의 인터뷰 프로그램 '강인선 라이브'에 출연했다. 한 전 장관은 "미·북대화가 빠르면 1~2개월 내에, 늦어도 연내에는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미·북이 다 협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6자회담을, 북한은 양자회담을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호간의 욕구가 충족되면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제정치학자이기도 한 한 전 장관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는 주미대사로 현장에서 북핵문제를 다뤘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엔 한국이 북한에 강경하고 클린턴 행정부가 온건했고, 노무현 정부에선 우리가 북한에 더 융통성 있게 대처하고 부시 행정부가 강경했다. (나는) 그 중간에서 접점을 찾는 교량 역할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2차 북핵위기 때 한·미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미국이라크 전쟁에 몰두한 것이 북한에 핵보유국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게 한 계기"라고 본다. "그때 한·미가 좀 더 체계적으로 대응했으면 3차 북핵위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의 좌우명은“남의 말을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그리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학자와 외교관으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11일 밤‘강인선라이브’에서 들려준다./비즈니스앤 제공

한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 역할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미대사는 외교부 장관이나 국내 보좌관과 달리 정책에 영향을 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좌절감이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 때는 한·미 양쪽 정부가 다 이념적이고 교조적이라서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반면 김영삼·클린턴 행정부 시절엔 양쪽 다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이라서 한·미 관계에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한 전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 때 미국과의 협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양국 외교관들이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성격이 컸다면, 노무현·부시 정부 때는 한·미가 서로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협의보다는 협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한·미가 적대국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 후 주미대사의 주요 임무는 정상들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양측에 이해시키는 일이었다고 한다.

한 전 장관은 요즘 북핵문제는 이전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석한다. "북한이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지금은 어떤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들이) 북핵문제의 심각성에 면역이 돼 둔감해지고, 북한은 그것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했다.

북한이 요즘처럼 유화적으로 나올 땐 오히려 더 대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처하는 나라들 간의 합의나 공동보조가 어려워질 수 있고, 우리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미국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미국에 대한 이해는 높은데 체계적으로 정리, 활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정부 체제 내의 모든 것이 대통령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서 내부적으로 충분한 논의나 검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남북관계와 외교에서 최고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노 대통령 자신보다는 환경의 덕이 컸다. 북방정책을 통해 동구 여러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긍정적인 결과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관으로 일하는 동안 '듣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외교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이뤄졌다.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주범은 누구인가?

조선일보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