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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이메일대화록, 김정은 만난 적 없다. - 펌 조선일보

지난해 12월 사망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사진)이 일본의 한 언론인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 대화록을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이 입수해 보도했다. 이 대화록은 200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김정남과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요지(五味洋治) 편집위원이 주고받은 100여회의 이메일 대화와, 2011년 1월과 5월 두 차례 만나 나눈 이야기다. 고미 위원은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김정일과 나'라는 제목의 책을 낼 예정이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17/2012011700255.html?news_top 

◇"김정일,세습 반대했다"

김정남은 고미 위원에게 "할아버지(김일성) 외모만 닮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얼마나 만족시킬지 걱정"이라며 "현재 김정은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기존 파워엘리트들이 권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일이 당초 "아들이 권력을 이어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세습은 나와 아버지 김일성의 업적을 망칠 것"이라며 3대 세습을 반대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결국 3대 세습을 결심한 것은 체제 유지를 위해선 '백두산 혈통(김일성 혈통)'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다고 했다. 김정남은 중국이 3대 세습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중국 정부가 세습을 환영한다기보다는 북조선의 내부 안정을 위해 후계 구도를 인정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3대 세습은 세상의 웃음거리"라고도 했다.

김정남은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북조선 군부가 자신들의 지위와 존재의 이유, 핵 보유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라고 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서는 "북조선 입장에서는 서해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핵(核), 선군정치 모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 개방 직언해서 멀어졌다"

김정남은 자신이 후계자에서 멀어진 이유에 대해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북한에 들어간 후 아버지에게 개혁·개방을 주장하면서부터 멀어졌고 이후 경계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유학 보내고 난 후 매우 외로워했다. 그러다가 이복 형제 정철, 정은, 여정이 태어나자 애정은 이복동생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오랜 유학 기간에 걸쳐 자본주의 청년으로 변하자 아버지는 동생들의 해외 유학 기간을 단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 계획 없이 직언한다. 과거 핵실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직언했다. 요즘도 주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매진하도록 동생(김정은)을 잘 교육시켜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강력한 후원자인 고모 김경희·고모부 장성택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지금도 좋은 관계에 있어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심 안(속)에 있다"고 했다. 

"개방 안하면, 北이 무너지고개방 한다면, 北 정권이 무너진다"
"김정은 한번도 안만났지만 北 주민 과연 만족시킬지… 北은 절대 핵 포기 안할 것
中은 날 보호하면서 감시, 그것이 나의 운명… 피할수 없다면 즐길수밖에… 고모 부부 김경희·장성택 아직도 내게 각별한 사랑"

◇"김정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성격과 관련해 "이복 동생인데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철의 경우 외국에서 몇 차례 봤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김정은 체제가 오래 못 갈 것"이라며, 김정은의 '어린 나이'와 '통치 무(無)경험'을 우려했다. 또 기존 권력 간 세력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김정남은 북한 체제와 관련해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고, 개혁·개방을 할 때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며 "개혁·개방이냐 체제 수호냐를 놓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동안에 시간이 지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남은 북한이 대외 강경 노선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생존을 위한 정치적 시스템"이라며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은 2011년 9월 14일 고미요지 기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최근 후계자(김정은)가 중시하는 군부 가족 아홉 명이 탈출해 북조선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언급한 군부 가족 9명은 지난해 9월 일본 영해에서 발견된 북한 인민군 가족 9명일 가능성이 크다. 일행 중 인솔자 격인 한 남성은 "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의 손자"라고 주장했다.

 "왼쪽은 비서, 오른쪽이 내 아내" - 김정남이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2001년 5월 4일 김정남의 아내 신정희씨, 큰아들 금솔,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인(오른쪽부터)이 나리타 공항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인은 스튜어디스 출신의 동거녀 서영라씨로 알려져 왔으나 김정남은“여비서”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중국은 나를 보호하면서 감시"

김정남은 "중국 정부는 나를 보호하지만 감시하는 측면도 있다. 불가피한 나의 운명이다. 불가피한 운명은 즐기면서 사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마카오에 자주 가는 이유는 가족이 거주하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자유분방한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내가 여성편력이 있긴 하지만 나의 아내는 한 사람뿐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다. 2001년 일본 사건(불법 입국했다가 추방당한 일) 때 어린 아들(김금솔)의 손을 잡고 있던 여인이 바로 내 아내다. 안경 쓴 젊은 여성은 여(女)비서"라고 밝혔다.

김정남은 2001년 일본 불법 입국과 관련해 "위조여권으로 해외로 외출하는 것은 당시 (북한에서) 일반적이었고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해 도쿄의 유명 호텔과 음식점을 다녔다. 김정은도 브라질 여권을 위조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술을 좋아해서인지 통풍을 앓고 있으며 그 통증과 발작 증세가 있어 요산 조절제를 매일 복용한다"고 했다.

김정남은 2011년 10월 언론에 공개된 자신의 아들(김한솔·마카오에 거주하는 동거녀의 아들)에 대해 "아들은 모험심이 강해 스스로 분쟁 지역인 보스니아 모스타르 소재 국제학교를 선택했고 나는 그의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대화를 나눴나

고미요지 기자는 도쿄신문의 서울특파원을 거쳐서 2004년 베이징에 부임했다. 그해 9월 베이징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우연히 만나 첫 인연을 맺었다. 2004년 12월, 김정남이 고미요지 기자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면서 메일 대화는 시작됐다. 그러다가 몇 년간 소식이 끊겼는데 2010년 10월 고미요지 기자에게 '부탁' 메일을 보내면서 대화는 다시 시작됐다. 당시 김정남은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할 테니 내 생각을 잘 정리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메일을 보내기 한달 전 이복(異腹) 동생 김정은이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