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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부 비밀전문2011. 11. 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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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앙정보국은 유신헌법선포이후인 1974년초 '박정희 정권이 단명할 것'이라는 잘못된 예측을 했던 것으로 미국무부가 공개한 미국 국제관계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2011/11/01 - [미국무부 비밀전문] - 하비브대사, 박정희정권 원색적 비난 '김대중납치는 어리섞은 정부의 폭력행위' - 미국무부 38년만에 공개

1974년 2월 1일 CIA가 작성한 '한국, 박정희 계속 집권이 가능한가'[South Korea: Can Pak Hold On?]라는 정보메모[INTELLIGENCE MEMORANDUM]에서 이시기 학생과 지식인등의 항거가 특정정책이 아니라 박정희대통령 자신과 그가 만든 정부형태[유신체제]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당근과 채찍에 의한 박정희의 통치술이 먹혀들수도 있겠지만 반대세력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CIA는 이문서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최근 3개월여동안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에 따른 권위적 체제를 해체하라는 공격에 시달려왔다'면서'이같은 공격은 지난 1960년대 중반보다는 미약하지만 3가지 이유에서 박정희의 리더쉽에는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CIA는 이시기 학생과 지식인들의 항거가 지난 60년대보다도 더 박정권에 더욱 위협적인 이유는 첫째 비판이 박정권의 특정정책이 아니라 박정희 본인과 그가 수립한 정부형태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둘째로는 박정희 통치하에서 정치적, 경제적 불만을 표명하는 학생, 지식인, 목회자, 정치인등이 처음으로 심각할 정도로 늘어났다, 세째로는 비판세력을 통제하는 전통적 방식의 효율성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항거가 발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박정희대통령의 비판세력에 대한 통제방식이 안 먹혀들어가는 시점에서 심각할 정도로 많은 한국국민들이 박정희대통령과 유신헌법에 대해 저항하고 있으므로 60년대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당근과 채찍을 섞어 사용하면서 비판세력을 회유하거나 고립시키는 방법에 의지해 왔으며 비판세력이 광범위하지만 고도로 조직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아마도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습니다   

CIA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에 대한 분노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고 전했습니다

박대통령은 최근 동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하는 [봉기] 불꽃이 서울의 학생들에게 불길을 당기지 않도록 방지하려고 할 것이지만 정치적 안전장치가 결여된 현대화돼가는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의 상존할 것이며 박정권은 강압통치를 무기한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무부는 지난 3월 웹사이트에 2009년 비밀해제된 이 전문을 소개하면서 전문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CIA는 박정희 정권은 단기간 권력을 유지하겠지만 반대세력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The authors predicted that Park’s regime would remain in power in the short run, but domestic opposition to it would grow.]

그러나 이 전문 보고뒤에도 박정희정권은 5년9개월이나 더 지속된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CIA의 예측은 어긋나고 말았으며 결국 박정희정권의 정권유지능력을 과소평가한 셈입니다

이문서는 지난 1974년 1월 19일 헨리 키신저 국무부장관겸 대통령안보좌관을 대신해 스코크로프트박사가 CIA에 한국의 정치상황과 향후 2-3개월에 대한 전망[닉슨 NSC파일 박스 544, 한국편 7권에 편철]을 요구한데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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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74년초 박정희정권 단명전망

미국무부 비밀전문2011. 11. 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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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973년 김대중납치사건과 관련, 박정희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것으로 약 38년만에 공개된 미국무부 외교전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2011/09/08 - [위키리크스] - 김대중납치때 미국 개입, DJ 살렸다 - '선거임박 진상발표는 MB에 타격주려는 의도' 의혹도 : 위키리크스 한국전문
2011/01/12 - [미국무부 비밀전문] - 'DJ납치는 아마도 박대통령 승인하에 명백히 이후락이 지시' - 미 국무부 비밀전문[11]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대중 납치사건] - 김대중 납치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영화 'KT'
2010/12/29 - [미국무부 비밀전문] - 'DJ납치가담 유영복은 이후락 조카사위' - 미국무부 비밀전문[2]

2011/01/26 - [미국무부 비밀전문] - 이후락 해외도피전말 : 이후락, 육여사 장례식 참석하자 복권여부 관심집중 -미국무부 비밀전문[20]
2011/01/13 - [미국무부 비밀전문] - 이후락 해외도피전말 : 바하마정부에 합작사업제의-거액 떡고물입증? ; 미국무부 비밀전문[12]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1973년 8월 15일 국무부로 타전한 2급 비밀전문 1973SEOUL05409 에서 김대중납치사건은 한국정부의 소행이 확실하며 나는 이같은 행위가 '어리섞은 정부가 저지른 폭력행위[STUPID GOVERNMENTAL THUGGERY]'의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생각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전문은 32년이 흐른 2005년 비밀해제여부를 검토했으나 비공개결정이 내려졌으며 38년째인 올해에 들어서야 미국무부가 공개를 결정, 지난 3월 1973년에서 1976년까지의 미국의 외교문서들과 함께 국무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아마도 미국무부는 미국대사가 박정희정권을 '어리석은 정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내용이 공개될 경우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등을 고려해 38년간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비브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같은해 8월 7일 일본에서 납치돼 일주일뒤인 8월 12일 서울로 돌아온 이틀뒤인 8월 15일 작성한 이전문에서 '내가 김대중납치사건 초기에 아마도 한국정부의 소행이라고 규정했으며 여러 정황을 통해 이같은 추정이 맞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 지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 김대중납치사건발생직후 한국이 관여했음을 직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하비브대사는 김대중납치는 어리섞은 정부가 저지른 폭력행위의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생각한다며 박정희정권을 어리섞은 정권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하비브대사는 또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정부가 무관하다는 한국정부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소위, '구국연맹[SAVE THE NATION UNION]' '애국청년동맹[PATRIOTIC YOUTH FEDERATION]'등은 한국정부가 꾸며낸 상투적인 조직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는 이사건으로 김대중이 동정심과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며 김대중 전대통령은 이같은 입지를 이용, 해외로 나가고, 더욱 대담하게 직설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려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국내언론보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며 1968년 선거법위반에 따른 제재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므로 국내활동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비브대사는 한국정부가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다시 선거법위반을 문제삼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같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보고했습니다 

 

 


2005년 공개거부


미국무부 비밀전문2011. 10. 3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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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미국, 중국서 북한과 비밀접촉-박대통령에게 통보 : 미국무부 비밀전문

미국이 지난 1973년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직접비밀접촉계획을 세우고 이를 사전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통보했던 것으로 비밀해제된 미국무부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2011/01/24 - [미국무부 비밀전문] - 키신저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미북비밀대화 추진 - 미국무부 비밀전문[18]
2011/01/10 - [미국무부 비밀전문] - 김일성, 일본-세네갈 통해서도 미국 비밀접촉시도 - 키신저 '접촉설 문의오면 부인하라'지시 : 미 국무부 비밀전문[9]

1973년이란 시점은 미국과 중국의 수교,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남북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바로 이듬해로 이른바 데탕트 열풍을 타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북한의 교차 접촉이 시도된 것입니다 

지난 1973년 8월 24일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겸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2급 비밀전문에 따르면 '관련전문의 지시에 따라 박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북경접촉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대통령은 당신[키신저]이 제의한 1차 접촉에 동의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비브대사는 또 '중국이 한국과의 접촉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2차접촉[미북2차접촉]을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당신의 신념에 대해서 박대통령도 역시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키신저등 미국측 계획이 미국이 북한과 접촉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해 중국도 한국과 접촉토록한다는 상호교차접촉계획임을 암시합니다 

특히 박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의 접촉이 절대로 공개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박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한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한국정부를 당황시키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접촉상대방[북한]이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공개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답했고 박대통령은 이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비브대사는 미국과 북한의 접촉과 관련, 어느 정도 레벨에서 접촉하면 좋을 지 박대통령의 견해를 물었으나 박대통령은 '노련하게' 이에 대해서는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습니다 

미북접촉장소가 어디가 좋을 지에 대해서도 박대통령은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으며 다만 미북접촉결과를 지속적으로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하비브대사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비브대사는 '만약 내 견해를 말하라면 북한비밀접촉을 추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접촉레벨은 연락사무소[USLO : US LIAISON OFFICE]보다 낮은 수준으로 했으면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하비브대사는 또 미북비밀접촉이 공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잇다는 박대통령의 우려에 동의한다고 밝혀 보안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73년당시 이 계획대로 미북 비밀접촉이 이뤄졌는지는 이 전문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975년에도 김일성이 체코등 여러 국가를 통해 미국에 직접 접촉을 타진한 것으로 미뤄 73년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1973 미북비밀접촉 미국비밀외교전문

미국무부 비밀전문2011. 1. 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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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자료]미의회조사국, 북한핵관련 최근 보고서 3건 [원문] http://andocu.tistory.com/3432

[전문자료] 미국의 유럽활용 미사일방어계획-US MISSILE DEFENSE IN EUROPE [원문] http://andocu.tistory.com/3437

박정권, '청와대 도청설'에 항의는 커녕 '부인해달라' 미국에 통사정 - 미국무부 비밀전문[13] http://andocu.tistory.com/3408

미합참본부가 작성한 핵관련일지 비밀문서입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미국의 핵무기관련 주요내용을 날짜별로 정리한 것으로 3백50페이지에 이릅니다
저는 문외한입니다만 군사문제에 관심있는 아마츄어와 전문가들을 위해 올립니다


미합참 핵관련일지 1977-1979 비밀문서
미국무부 비밀전문2011. 1. 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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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미국과 어떤 관계 - 김재규 면담전문은 모두 비공개명령 : 미국무부 비밀전문[14] http://andocu.tistory.com/3407

 

 

2013/07/03 - [분류 전체보기] - 삼성 새전용기, B737기 비행속도 세계신기록 수립 - 보잉사 발표 [발표원문첨부]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2014/01/27 - [분류 전체보기] - 재외공관 기강해이 이정도일 줄이야!!- 영사가 공관장도 모르게 공관명의 소송: 뉴욕총영사 '나는 전혀 몰랐다' v 영사 '내 잘못'

2014/01/27 - [분류 전체보기] - 정신나간 뉴욕총영사관, 소송장에 피고회사-사장이름등 모두 잘못 기재- 고의냐? 실수냐?

 

지난 1970년대 박정희정권이 미국 CIA의 청와대도청설이 불거지자 항의는 커녕 이를 부인해 달라며 '애절할' 정도로 미국정부에 통사정을 했던 것으로 미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특히 박동진 당시 외무부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겁에 질려 있다'는 말까지 해가며 '공식 부인을 해달라'고 미국에 수차례 요청했고 미국은 '노코멘트'가 원칙이라는 끝까지 고수했으며 한국정부입장을 고려, 구두로 부인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의 청와대도청설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77년 6월말이었지만 이보다 8개월앞선 1976년 10월 28일 워싱턴포스트가
'코리아게이트'를 다루며 일부 정보가 도청을 통해 입수됐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미국무부 비밀전문에 'BLUE HOUSE BUGGING' 이라고 표현되는 청와대도청설은 1976년 10월 28일 미국무부가 아태지역 공관에 보낸 '보도요약'에서 시작됩니다

이 전문[국무부 265696]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에 청와대 도청설이 언급됐으며 이 신문은 한국 김포공항에서 압수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또 1976년 11월 1일자 미국무부발 보도요약 자료에도 '전 CIA요원이 전세계 30개 이상의 수도에서 도청을 하고 있지만 청와대를 도청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CIA가 도청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라는 보도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전체를 뒤흔들고 한미관계를 망가뜨릴 정도의 대형사건이 터지자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입장조율이 활발해지기 시작합니다

청와대 도청설이 처음 알려진뒤 약 닷새가 지난 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는 박동진 외무부장관을 만난뒤 국무부로 비밀전문을 보냅니다

청와대도청설 미국무부 비밀전문


이 전문[서울 8757]에 따르면 박동진 외무부장관은 스나이더대사를 불러 미국정부가 청와대 도청설이 사실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박장관은 이 자리에서 11월 4일 개최 예정인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박동선의 의회로비, 즉 코리아게이트와 청와대 도청설등이 논의될 수 있으며 코리아게이트는 쉽게 처리할 수 있으나 청와대 도청설은 정말 걱정거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나이더 대사는 박장관에게 미국이 한국의 우방임을 강조하며 청와대 도청설은 확인되지 않은 많은 추측성보도중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도청이 존재한다면 조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지만 박장관은 불만스럽게 이를 거절하며 국회나 언론에서 문제가 된다면 부인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박장관은 스나이더대사에게 국회에서 답변할 수 있도록 미국정부가 공식부인해달라고 다시 한번 강력히 요청하고 빨리 이 문제를 워싱턴에 보고해 내일[11월 3일]까지 답변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11월 4일 오전에 열리는 국회 외무위 회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박장관은 스나이더대사와의 면담에 배석한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대사를 잠시 옆으로 불러 오늘 [11월2일] 박대통령을 면담했다며 박대통령이 청와대 도청설로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이 공식부인하지 않으므로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의 공식부인요청을 검토할때 박대통령의 깊은 우려를 워싱턴에 분명히 전달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 업무공간인 청와대를 미국이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에 이를 강력히 항의하기는 커녕 사실상 미국정부에 매달리며 이를 부인해달라며 '애절하게' 통사정을 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나이더대사는 이 전문 마지막에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등의 활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이 부인하지 않는 것을 한국은 이해하지 못하며 사실상 대통령을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하려는 미국의 간접적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 문제가 있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공식부인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같은날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이 전문에 대한 답신[국무부 269983]을 통해 청와대도청설에 대한 공식부인여부를 한국정부입장에서 면밀히 검토했다. 그러나 언론의 특정기사에 대해 선별적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의혹을 부추길 수 있다'며 공식부인요청에 대한 명백한 거부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무부는 또 다른 나라의 그같은 요청에 대해서는 우리는 부인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스나이더대사는 이같은 지침에 따라 11월 3일 박장관 면담결과를 보고한 비밀전문[서울 8800]에 따르면 11월 3일 박동진장관에게 심각한 고려끝에 우리는 청와대 도청설에 대한 공식부인을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은 예외가 없는 미국부무의 정책[STANDING GLOBAL POLICY]이다, 만일 우리의 대화내용이 새나가고 질문을 받더라도 노코멘트 할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박장관은 [미국정부로 부터] 은밀하게[PRIVATE, 비공식적으로] 도청을 부인한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는게 알려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스나이더대사는 그 주장에 대해서도 노코멘트할 수 밖에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박장관은 한미우호관계를 고려해서라도 미국정부는 공개적으로 도청설을 부인해야 한다고 또 다시 요청했으나 스나이더대사는 다시 한번 거절하는등 '웃지 못할 광경'이 계속됐습니다 

스나이더대사는 박장관이 지난번 만남때보다 더 불안해 보이고 차가워졌으며 내 대답[미국정부의 공식부인 거부입장]에 대해 대단히 놀랍다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이전문에는 뉴스위크 크리스퍼기자가 우리[미국정부]의 비공식 도청부인통보사실을 알고 컨펌요청을 해왔지만 노코멘트했다, 앞으로 우리 대화가 더 많이 새나갈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보고했습니다

미국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 76년 12월 9일 미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전문[국무부 299568], PRESS GUIDELINE, 즉 보도대응지침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언론이 주한미국대사관에 청와대 도청설에 대해 시인또는 부인을 확인할 경우 오로지 노코멘트로 답하라고 돼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정부의 공식부인입장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흘뒤 한국정부는 또 다시 한번 간절하게 요청합니다


지난 76년 12월 11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미국무부에 보낸 전문[서울 9791]에 따르면 박장관은 다시 한번 스나이더대사를 만나
미국정부는 청와대도청설보도에 대해 한미양국관계를 고려,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고 한국정부의 요청을 전달합니다
 
박장관은 또 명예훼손적이고 추측성 보도는 한미 양국관계를 훼손하는 것이며 종종 이같은 보도내용은 미국정부관리를 통해
유출된다며 미국측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정부가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했고 청와대도청설의 발설자 또한 미국정부관리임을 잘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정권의 12월 11일 요청에 대해서도 미국정부는 구두로 부인입장을 전달했다며 공식부인을 거부합니다
미 국무부는 12월 16일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비밀전문[국무부 305442]을 통해 청와대 도청설에 대해 우리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해주라, 지난 10월 29일 함병춘 주미한국대사에게도 대통령 대화에 대한 도청이 없었음을 묵시적으로 전했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마침내 닷새뒤에는 키신저 국무장관까지 나섭니다
미국무부는 12월 21일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비밀전문[국무부 308063]에서 국무부고위관리들은 '국무부장관과 상의한 결과 문서로 된 공식부인입장표명은 불가하며 한국정부는 스나이더대사로 부터 구두공식입장을 통보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고 키신저국무장관은 공식부인문서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고 통보합니다

한마디로 한대 얻어 맞은 피해자가, 그것도 급소를 얻어맞은 피해자가 자신을 때린 가해자에게 '제발 때렸다고 하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사정하는 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같은 청와대 도청설은 정부통제등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미국정부는 12월 16일 전문에서 한국에서는 왜 이 문제가 보도되지 않느냐 이상하다는 전문도 오고 갔습니다

이시기는 프레이저청문회가 본격 시잠됨으로써 박동선을 통한 의회로비, 청와대 도청설과 거의 동시에 터진 김상근 망명사건등에다 주한미군철수를 부르짖던 카터대통령이 당선되는등 한미관계가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청와대 도청을 당한 피해자인 한국이 도청을 안했다고 부인해달라는, 미국으로서는 더 없이 달콤한 제의를 받고도 왜 거절했을까요,
예민한 외교문제에 대해 노코멘트를 외치는 것이 미국의 기본입장입니다만 다른 요인은 없었을 까요

아마도 그시점이 바로 미국의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점과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카터행정부가 출범, 행정부가 개혁된뒤 CIA가 청와대를 도청한 증거가 발견되고 일부 관련자들의 증언이 있기라도 하면
'청와대 도청설 공식부인'요청을 받아들여 이를 공식부인한 공직자들은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위증의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청와대 도청설을 공식부인하지 못했으며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한 것은 사실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결국 청와대 도청설은 이보다 8개월정도 지난 1977년 6월 19일 뉴욕타임스의 1면보도로 다시 한번 이슈화되고 국내언론도 1977년 6월 21일부터 이를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은 경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8개월전 청와대 도청 안했다고 부인해 달라고 미국정부에 매달리며 통사정한 사정은 34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들은 오늘 또 한번 '불편한 진실'앞에 가슴이 '뻥' 뚫립니다 

  



청와대도청 서울 8757-761102 시크릿오브코리아 안치용
청와대도청 국무부 269983– 761102 시크릿 오브 코리아 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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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부 비밀전문2010. 12. 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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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김종필을 불신했다?-73년 신장치료차 일본행요청 불허 : 미국무부 비밀전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4월 미국무부 관리를 만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종필씨를 불신하고 있으며 윤필용사건의 본질은 이후락후계자옹립이 아니라 이후락 제거작전이었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미국무부 비밀전문에서 드러났습니다

1973년 4월 3일 미국무부 관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뒤 1973년 4월 4일 김대중 면담록을 작성하고 이 비밀전문을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냅니다
4개월뒤 김대중 납치사건때 DJ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L 레나드 한국과장등에게도 이전문이 전달됐습니다 

이 전문에서 DJ는 미 국무부관리에게 윤필용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박정희전대통령과 김종필간의 관계를 언급했습니다
DJ는 김종필이 신장 치료차 일본에 가기를 원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밝혀 박대통령이 
김종필을 불신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DJ는 또 윤필용사건이 이후락과 박종규의 세력약화를 노린 사건이라고 밝혀 윤필용사건을 결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를 위한 친위쿠테다로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윤필용이 3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DJ는 주장한 것으로 전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윤필용이 1973년 3월 7일 연행됐음을 감안하면 연행 이틀전 박대통령을 만난 것입니다

이 비밀전문에 나타난 DJ의 윤필용사건에 대한 언급은 '윤필용이 노쇠한 박대통령의 후임으로 이후락을 옹립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라는 윤필용사건에 대한 일부 인식과 견해를 달리 하는 것이지만 이 사건이후 1년여사이에 결과적으로 이후락, 강창성, 윤필용, 박종규등이 사임하고 권력내부에서 멀어진 점으로 미뤄 DJ의 판단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윤필용사건 상세내막 http://blog.naver.com/hjsun0404?Redirect=Log&logNo=12379096

이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면 권부내 핵심인사는 반이후락세력의 음모라고 말했고 이후락자신도 표적은 나였다라고 
말한 것도 DJ의 판단이 비교적 정확한 내막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전문은 DJ의 정보력이 간단치 않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윤필용은 이사건과 관련, 1973년 3월 7일 연행돼 3월 27일 구속되고 4월 17일 기소돼 4월 28일 선고공판을 받게 됩니다 

일반국민들은 4월 28일 선고공판을 통해 이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게 됐으며 그 이전에는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권부핵심의 깊숙이 숨겨진 쉬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DJ가 미 국무부 관리를 만난 것이 1973년 4월 3일, 이 전문이 작성된 것이 4월 4일인 것을 감안하면 DJ는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인사로 해외에 체류하며 박해받던 시절에도 권부내 역학관계를 정확히 꿰뚫을 수 있는 정보라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DJ는 또 이날 만남에서 미국에서 계속 체류하고 싶다는 뜻도 국무부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문이 상세합니다만 일부내용만 발췌했으며 관심있는 분들이 전체를 살펴주시기를 바라며 전문 전체를 첨부합니다 

앞으로 미국무부 비밀전문을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살피고 전문도 첨부하겠습니다

 

김대중 면담록 197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