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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가정교사 김현식편지, '김 위원장, 지금 세상은 온통 뒤집히고 있소.' - 동아일보

김 위원장, 지금 세상은 온통 뒤집히고 있소. 이 거세찬 소용돌이에 당신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이 휘말리지 않을 것 같소?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서도 막아 낼 수 없소. 이 무서운 격랑을 잠재울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이 세상에는 없다고 보오. 이런 격동의 시기에, 20대의 아들에게 평양성을 지키라고 넘겨주었으니….

원본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Politics/New/3/00/20111227/42889441/1 

▶ (영상) 김정일의 가정교사 김현식 “그 때부터 사람이 변했지”

당신이 그렇게도 믿었던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대외 사업 일꾼들과 간부들, 일반 주민들까지 2만 명 이상이나 벌써 당신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세계 여러 나라에 탈북 망명하였소. 이 세찬 탈북, 망명의 흐름을 당신은 언제까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평양성의 문은 이미 뚫렸고, 물막이 둑은 터졌소. 김 위원장, 이 스승의 진정 어린 충고를 귀담아듣고 어서 빨리 결단 내리길 바라오. 나는 스승으로서 제자인 당신이 제2의 후세인, 제2의 카다피가 되는 걸 원치 않소. 이웃나라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는 길을 따르면 어떨지요?

1970년대 초, 출장으로 평양-모스크바 국제열차로 중국 땅을 횡단할 때, 열차가 멈춰서는 역마다 헐벗고 굶주린 중국 사람들이 떼 지어 밀려와서 먹을 것을 구걸했소.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중국은 지금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이나 일본과 맞서고 있소. 그러한 급성장은 개혁 개방의 결과라고 생각하오. 북조선도 경제구조를 바꾸고 문호를 개방하면 이른 시일 내에, 중국을 따라 앞설 수 있을 것이오. 북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근면하고 슬기롭소. 당신의 조부모인 김형직 선생과 강반석 여사는 열렬한 애국자이고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소. 그들의 염원을 손자인 당신이 실현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당신 부친의 외국어 실력은 대단했소.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자유로이 회화했소. 다른 과목들보다 외국어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돌렸소. 그가 통치 50년 기간에, 단 한 번 학교에 나가 수업 참관을 했는데, 바로 그것이 러시아어 수업이었고 그 진행자가 사범대학 교수였던 나였소. 거기서 그는 외국어 교육에서는 회화를 기본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령적 교시도 남겼소.
나는 여기 미국에 와서 수많은 대학에서 북조선 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소. 5년 전부터는 버지니아에 ‘조선반도 언어연구소’를 세우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소.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하여 야단이오. 평양에 있는 재능 있는 동료 교수들, 실력 있는 제자들 생각이 간절하오. 그들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어서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평양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사람, 외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오가며 과학기술, 교육문화를 자유로이 공동으로 연구 발전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오.

▼ “내 품에서 엉엉 울던, 그때로 돌아가길 바랐는데…” ▼

김 위원장, 기억에 생생히 떠오르오. 당신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50년 전이라고 생각되오. 당신 부친이 나를 시켜 당신에게 러시아어 회화 개별지도를 하게 하였소. 반년 동안이나 우리는 매일 오후, 당신이 다니던 남산학교 교장실에서 회화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그리고 1960년 2월, 눈보라 세차게 몰아치던 어느 겨울 저녁이었소. 전국 러시아어 교원 협의회 참가자들을 위한 예술 공연에서 당신은 푸시킨의 시 ‘겨울 길’을 러시아어로 정말 멋지게 읊었소. 그날 저녁 날씨에 너무도 꼭 맞는 시였소. 당신의 시 낭송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모두가 일어서서 “김유라(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이름)” “김유라”라고 강당이 떠나갈 듯 환호하였소. 그러자 당신은 시 낭송을 지도했던 나한테 와락 달려와서, 내 품에 꼭 안겨 엉엉 울었소. 어린애처럼…. 나도 함께 울었소. 너무도 미덥고 감격스러워서….

그때의 그렇게도 순진했던 어린 학생으로, 미더운 제자로 제발 되돌아가 주기를 바라오.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전쟁 범죄자로, 독재자로, 당장 쳐 죽일 놈이라 규탄하고 있지만, 80세 된 나의 가슴에는 그때의 그렇게도 밝고 순진했던 미더운 제자 김유라만이 새겨져 있소. 김 위원장, 되돌아오길 바라오. 제발 그때의 그렇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제자의 모습으로, 이 스승 앞에 돌아오길 바라오. 

―평양에서 수천수만 리 떨어진, 미국, 버지니아, 조지메이슨대학 연구실에서
옛 스승 김현식
2011년 12월 18일 밤 10시(한국 시간 19일 정오)

PS. 편지를 막 끝내려 하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아보니, 당신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오. 내 귀를 의심했소. 나이 예순아홉에 어찌 이런 일이? 당신이 그렇게 되기까지 그 숱한 장수연구소 일꾼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오. 당신이 더 늙기 전에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조국과 민족 앞에 못다 한 일을 하도록 편지까지 쓰고 있는데…. 김 위원장, 고이, 깊이 잠드시오. 당신이 저지른 잘못이 다음 대에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