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에 대기업 대표들은 불참했다. 회의 전날 일제히 "바쁘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자는 '이익공유제'의 논의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9/2012012901447.html?news_top
총리를 지낸 정운찬(65)씨가 빈자리가 많았던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동반성장위원장이 된 뒤로 '체면'을 좀 구기고 있다.
―정권 초기이고 정 위원장이 실세였다면, 이랬을까?
"신라호텔에서 빵가게를 안 한다는 뉴스를 봤다. 대통령은 한마디하면 금방 되고, 동반성장위원장은 일년을 해도 잘 안 된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도 들었나?
"뭐 그런 생각은 안 했고…. 점잖은 표현을 하면, 이런 행태는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도전이다. 인구의 99%가 재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재벌의 어떤 모습을 볼 때 가장 참을 수 없는가?
"재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와 안하무인을 볼 때다. 정권은 5년이지만 재벌은 오래간다. 교체되지 않는 오만한 권력이다. 마음먹으면 못 하는 게 없다. 자기들 돈벌이에만 열심이다. 늘 자기들만 옳지,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옹호하는 '재벌장학생'도 너무 많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9/2012012901447.html?news_top
총리를 지낸 정운찬(65)씨가 빈자리가 많았던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동반성장위원장이 된 뒤로 '체면'을 좀 구기고 있다.
―정권 초기이고 정 위원장이 실세였다면, 이랬을까?
"신라호텔에서 빵가게를 안 한다는 뉴스를 봤다. 대통령은 한마디하면 금방 되고, 동반성장위원장은 일년을 해도 잘 안 된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도 들었나?
"뭐 그런 생각은 안 했고…. 점잖은 표현을 하면, 이런 행태는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도전이다. 인구의 99%가 재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재벌의 어떤 모습을 볼 때 가장 참을 수 없는가?
"재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와 안하무인을 볼 때다. 정권은 5년이지만 재벌은 오래간다. 교체되지 않는 오만한 권력이다. 마음먹으면 못 하는 게 없다. 자기들 돈벌이에만 열심이다. 늘 자기들만 옳지,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옹호하는 '재벌장학생'도 너무 많다."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통령 한마디에 재벌이 빵가게를 철수했지만 나는 일년을 해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나 자신을 나름대로 관리해왔다. 나는 고위관료나 재벌 쪽 사람은 안 만나려고 했다. 이들을 자주 만나면 이해하게 돼서 객관적 사고를 하는 게 힘들어진다."
―정 위원장도 재벌을 '개혁 대상'으로 보는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가 경제대국이 되는 데 대기업의 역할은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특혜 속에서 자랐다. 1960년대 수출신용장만 갖고 오면 대출해줬다. 당시 대출받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양키본드'(미국시장에서 외국인이 발행하는 달러화 채권)를 발행할 때도 정부가 혜택을 줬다. 그렇게 커왔으면 이제 '동생'(중소기업)을 돌봐줘야 하지 않나. 착한 형이라면 그래야 한다. 오히려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을 위해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해왔다. 그런 식으로 이익을 많이 남겼으면 보상적 차원에서 돌려줘야 한다. 그것 하나 안 하려고 한다."
―요즘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재벌을 때리고 있다. 갑자기 재벌이 맞을 만한 짓을 많이 했나, 아니면 포퓰리즘에 편승하고 있나?
"상황이 굉장히 나빠진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 수년간 10대 대기업은 닷새가 멀다 않고 기업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다 나자빠지는데. 삼성·현대차·LG·SK 4대기업의 매출이 GDP(국민총생산)의 53%다. 30년 전에는 20% 선이었다. 대기업이 안 하는 업종이 없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존립할 수 있겠나."
―재벌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이 유행처럼 됐다.
"균형을 위해 약한 쪽을 편드는 것이다. 1997년 경제 위기, 2008년 글로벌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경쟁'밖에 없었다. 경쟁, 경쟁하다가 경쟁에서 유리한 대기업의 독식이 심해졌다. 물론 양극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갑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자본주의 제도가 안정돼야 계속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 하고 기부도 한다."
―정 위원장이 '이익공유제'를 꺼냈을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 그런 말을 보지 못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회장은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이 회장이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학 공부를 했다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1960년대일 것이다. '스톡옵션(임직원들에게 자사 주식을 나눠주는 것)'이라는 단어가 나온 지는 20년밖에 안 됐다. 그걸 놓고 공산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하겠나."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는 데는 시장경제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약육강식이 된다. 이익공유제가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내가 이 말을 꺼내자, 홍준표 의원은 '급진좌파적 사고', 어느 장관은 '비현실적이다', 고위관료는 '혁명적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시작은 이건희 회장이다. 그의 한마디로 모든 게 스톱됐다. 여러 차례 삼성 사람들을 만나 설득해도 '회장님이 한 번 말씀했기 때문에 못한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이 공식석상에 딸들의 손을 잡고 아들, 부인과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교체되지 않는 권력, 요즘 시절의 황제 아닌가."
―대기업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의에서 '이익공유제'를 통과시킬 건가?
"위원들은 그렇게 하자고 한다. 나는 끝까지 합의를 해보려고 한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기구인데, 설령 통과시키더라도 강제성이 있나?
"국민의 눈이 법보다 더 무섭다."
―이익공유제를 관철하지 못하면 거취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내일의 일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
―당초 동반성장위원장 자리를 원했나?
"총리 시절 한 협력업체 사장이 '대기업이 후려치기를 너무 한다. 때려치우고 이민이나 가야겠다'고 했다. 내가 '그러면 이민가시라'고 농담하니, 내가 정말 사정을 모르는 줄 알고 '총리께서 이러면 되는가' 하더라. 그 뒤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사업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중소기업 상황이 굉장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 뒤 청와대에서 '동반성장 대책회의'가 열려 이 기구를 만들었다. 내가 발제한 사람이니 맡아달라고 한 것이다."
―동반성장위원장은 비상임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로 그냥 놀리기보다 모양새로 준 자리였다. 그런데 정 위원장이 날마다 출근해 본격적으로 일하니까 청와대에서는 약간 당황했다고 들었다.
"건성건성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열심히 하니 정부와 여당이 부담을 느낀다고 들었다."
―한때 정부와 여당의 공격을 받자 사표를 던질 것처럼 비쳤다.
"A4용지 다섯 장으로 사표를 썼다. 현 경제상황을 설명하고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측근을 보내 '뜻이 확고하다'고 했고, 또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만큼 적임자가 없다'고 해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정 위원장은 총리 후보 청문회를 시작으로 대중적 인기의 거품이 꺼져버렸다.
"청문회 때 스타일 다 구겼다. 청문회는 9분 동안 묻고 1분간 답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 많았다. '그건 아닌데' 하면 '다음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넘어간다.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몇 번의 말실수도 했고."
―결정타는 신정아씨와 연루된 것인데.
"대꾸할 가치가 없다. 말할수록 말려드니…. 내 말을 믿는가 신정아 말을 믿는가."
―'세종시 특임총리'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지만 결국 세종시 수정안에서 실패했다.
"표결에서 졌을지는 모르나,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세종시 안은 국회에서 결정된 것이어서 국회에서 다시 바꾸기는 어렵다고 봤다. 나는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대통령을 설득했지만, '투표율이 낮으면 어떡하나' '찬성률이 낮으면 어떡하나' 등의 이유로 못 하더라. 대통령을 잘 설득하지 못한 게 아쉽다."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나라의 일이 걸려 있으면 개인적 입장을 바꾸는 것이 옳지 않은가. 대표 정치인이라면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정 위원장은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화려한 생일잔치를 기다리는 철부지 처녀'라고 말했다.
"인신공격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그런 표현이 나왔나?
"박 전 대표가 국회에서 표 단속을 위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발언을 하는 걸 본 뒤로, 머릿속에 늘 이런 표현이 맴돌았다. 어떻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나."
―10개월 만에 총리직을 물러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세 번째 사표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지원이 없으면 어렵다'는 말씀을 했다. 나도 그걸 실감했다. 우리는 나쁜 관계로 끝난 것은 아니다."
―스스로 내리는 총리직 수행 점수는?
"낮게 주고 싶지는 않다. 기업채용에서 학력요건 완화, 대학 자율화, 소득세 감세 반대 등에 일조했다. 그 정도 일했으면 됐지 뭘 더 기대하는가."
―공직에서 얻고 잃은 것은?
"총리를 한 것에 후회하지 않고, 배운 게 많았다. 다만 공식석상에서 발언의 자유가 없었다. 나는 자유인인데, 말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함께 일해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던가?
"열심히 일하고 소탈하다. 장점이 많은 분이다.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 홍보가 왜 잘 안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OECD 국가 중에서 플러스 성장을 한 나라는 호주·프랑스·한국뿐이었다. 2010년에는 6.2% 성장을 했는데 그렇게 높은 성장을 한 나라가 없었다. 대통령은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소통을 못해 손해를 많이 본 셈이다."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인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그때는 '이명박 브랜드'로 당선되고서, 이제 인기가 없다고 탈당을 하라고 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 한나라당이 코너로 몰린 것은 디도스와 돈 봉투 때문인데 그게 대통령이 한 일인가. 한나라당이 한 일이지."
―이번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정치는 내가 안 가본 길이다. 지금껏 당원이 되어본 적도 없다. 내 주변에서 '나가라' '나가지 마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의견이 반반이다. 뭔가 하려면 정치적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성향상 민주당 쪽이 맞지 않는가?
"서울대 총장과 총리를 하면서 내가 많이 보수화됐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야당은 너무 오버하고 있다. 대학 교육에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반값등록금을 어떻게 하나. 그러다가 대학과 대학생을 다 망친다. '학생인권조례'는 또 뭔가."
―안철수씨를 어떻게 보는가?
"잘 모른다. 자기 재산을 환원하는 등 겉으로 드러난 걸로는 좋은 사람 같다. '재벌과 협력하는 것은 맹수동물원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발언을 보면 현실감각도 있다. 기회가 되면 의견을 나눠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과거 이맘때면 대선주자로 거론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조용하다.
"아까 말한 대로 청문회 때 스타일을 구겨서 그런가 보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