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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정승들의 연이은 자살과 조작된 실록,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의 기록
250년 전 조선 정치사 최대의 비극적인 미스터리가 공개된다.
2009년 늦가을 방대한 스케일과 놀라운 상상력의 매혹적인 역사 미스터리가 한국 소설 무대에 등장했다. 한 보험조사원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한 권의 책, 18세기에 쓰여진 <진암집>을 시작으로 조선왕조 역사상 유례가 없던 삼정승의 잇따른 자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편소설 <충신>은, 정사(正史) 속 인물들 위에 비사(祕史)의 인물들을 교묘히 끌어들여 소설적 상상력의 여지를 넓혔다는 매혹적인 장점을 갖추었다. 소설의 배경은 영조 시대로, 군주와 왕조 그리고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역사로부터 외면당하고 그 뒤쪽으로 숨겨져야 했던 이야기를 숨 가쁘게 추적해 나간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제는 너무나 많이 회자되어 모두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어찌 보면 낡은 소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 함싱크는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오해를 보기 좋게 비웃으며 지금껏 기정사실화 되었던 사도세자론에 탄탄한 논리적 구성을 무기로 제동을 건다. 우리가 당연한 듯 알고 있었던 사실을 뒤엎고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영조의 명에 의해 제거된 사초만이 증거하는 사라진 기억, 미싱링크이다. 즉, <충신>은 역사에 남겨져서는 안 되는 감춰진 기록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이다.
「빌어먹을 사관들, 다들 녹봉은 거저 받아 챙겼구나.」
송인준의 얼굴이 씰룩 일그러졌다. 사관이란 왕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물론 손짓, 몸짓, 용안의 세세한 표정까지 일일이 받아 적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틀 걸러 한 번꼴로 기록을 빼먹었단 말인가. …… 왕이 신하를 만날 때는 반드시 세 명의 사관이 자리를 잡는다. 한 명은 왕의 말을 적고 다른 하나는 신하의 답변을 기술한다. 또 한 명은 왕의 표정이나 몸짓까지 표기한다. 예를 들어 왕이 대화 도중 방귀라도 뀌면 통기(通氣)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지니 글만 보아도 왕의 안색은 물론 건강 상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의 3년간 사초는 마치 일곱 살 먹은 아이가 젖니라도 갈 듯 드문드문 빠져 이틀에 한 번꼴로 비워져 있다. 사관들이 단체로 입궐하지 않고 상소라도 올린 것일까. 그게 아니면 주상께서 환우 때문에 집정을 못하신 것인가. 여러 상념이 송인준을 괴롭히지만 뾰족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 <조작된 기록> 중에서
사도세자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권력 투쟁, 그리고 왕실을 지키려는 충신들의 사투
그들은 왜 끝내 자살을 선택했는가?
소설은 실록청의 한 사관이 사라진 기록의 공백을 거짓 사실로 꾸며 채워 넣으라는 명령에 불만을 갖고 영조 때의 사초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공백 부분에 무엇이 감추어졌기에 후대에 전해져서는 안 되는 것일까? 역사가 은폐한 ‘진실’에 대한 소설적인 상상력과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 생생한 문장으로 재생해 낸 <충신>이 그 해답을 가지고 있다.
<충신>은 여러 면에서 다양한 특이점을 갖춘 소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벨기에 인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의 중세 왕조인 조선의 영조 때 일어난 일을 다룬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의 글이 이질적인 문화의 외국인에 의해 쓰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는 벨기에 인에 의해 쓰였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인이나 한국 혹은 넓게는 동양을 다룬 외국인 저자의 작품은 간간이 있어 왔지만 그런 작품들에서 저자의 동양에 대한 이해의 폭은 현저히 떨어졌다. 외국인이 보는 시각에서는 문제가 없을지라도 동양인 당사자의 눈에는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충신>의 저자는 문화적 차이를 완벽하게 소화해 냄에 있어 어색함이나 무리가 없다. 저자는 단지 그에 그치지 않고 한학, 한의학, 한국 풍속 등에 대한 해박하고 정밀한 지식을 자랑한다.
충격적인 팩트, 드라마적 요소, 창조적인 작가
세 가지 요소의 완벽한 결합이 가져온 환상적인 역사 미스터리
소설 <충신>은 조선시대 삼정승의 잇따른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팩트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드라마적 요소가 창조적인 작가를 만나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충신>에서 독자들이 범인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역사를 뒤집고 새로운 시각을 들이대는 것은 그 자체로 강인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충신>은 허를 찌르는 결말이 주는 극적 재미와 함께 묵직하게 여운을 남기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공존하는 새로운 팩션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빠른 전개 뒤에 숨겨진 경악스러운 진실은, 깊어가는 가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추천사]
오랜만에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에 사로잡혀서 토끼잠을 자다가 일어나 누운 채 읽고 다시 토끼잠을 자다가 또 다시 읽었다. 어찌 이리도 재미있을까. 작가는 내게 '소설'에 대해 새삼스런 질문을 하게 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작가에게 우리말로 '경이롭다!'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련다. ― 이경자(소설가)
조선의 정승들이 자살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사도세자와 무관하지 않았다. 세자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아비가 아들을 죽였다. 이 드라마틱한 죽음들이 18세기의 고문서 <<진암집>>을 통해 벨기에 인 작가의 눈에 포착되었다. 250년 전 조선 정치사 최대의 비극적인 미스터리가 머나먼 바다를 건너가 실로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 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정치는 잘못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 박현욱(소설가)
<충신>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소설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재외동포의 소설이, 이토록 한국적일 수가 있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소재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의 진위에 상관없이, 서양문화의 토대 속에서 자라난 마르크 함싱크라는 입양아 출신의 여성이 썼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에 돌출된 하나의 사건이다. ― 하응백(문학평론가)
[줄거리]
삼복더위가 조금 비껴간 어느 늦여름 밤 조정의 최고 권력인 삼정승(영중추부사, 좌의정, 우의정)들이 비밀스런 회동을 한다. 몇 년 사이 깊어진 세자의 병과 증세에 대한 의논이 오가는 것을 영중추부사 이천보의 양아들 이문원이 엿들었다. 이문원은 글공부와 담을 쌓고 시중 건달들과 어울리기에 바쁜 한량이지만 타고난 총명과 바른 성정을 가진 약관의 청년이다. 다음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의를 만나러 간 문원은 사택에서 죽어 있는 어의의 시체를 발견한다. 죽은 장의삼은 세자의 병이 무엇인지 단서를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격자였다. 문원과 그 친구들은 장 어의가 자연사가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잡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이천보는 총명하고 어질던 세자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광증과 고통을 호소하자 이를 알아내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조정의 중신들은 모두 몸을 사릴 뿐 나서는 이가 없어 절망하고, 결국 평소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아들의 한량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문원의 친구인 서영우의 기지 덕에 발견하게 된 죽은 장 의원이 남긴 문서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들만이 가득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