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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항쟁 문건

[5월 광주]'내가 죽더라도 유혈사태 막겠다' 참군인있었다 - 보안사 내부문건


  

바로 30년전 광주민주화운동당시 군수뇌부회의에서 소탕작전 전에 광주에 들어가 목숨을 건 설득작전을 펴겠다고 주장한 육군장성이 있었음이 보안사령부 내부 문건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국군보안사령부 제701 보안부대장이 지난 1980년 5월 23일 보안사령관에게 '긴급보고' 한 '광주사태 소탕작전 회의동정' 이란
3페이지짜리 문서에 따르면 '전남 출신 박춘식 장군' 이 이같은 주장을 펼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타자기로 타이핑된 이 문건은 송화자, 수화자 이름은 물론 보고계통을 따라 각 책임자의 서명이 기록된 것으로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등에서 발견한 문건입니다

제701 보안부대장이 이날 오후 5시 20분 보안사령관을 수신자로, 기조, 정보, 조정, 통제, 보안처장등을 참조자로 해서 발송한 '긴급보고' 문서는 이날 총장, 차장, 작전참모등 각 참모, 계염사 참모장, 보급운영처장, 2군 사령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총장 접견실'에서 열린 2군 사령부의 폭도 소탕작전 수습, 대책회의 동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날 논의에서는 2군사령부가 보고한 광주지역에 대한 계엄군의 무력공격시도에 대해서는 전원찬동을 표하면서도 대체로 3가지 안이 제시됐다고 합니다

첫째안은 참모차장안으로 무력공격을 함으로써 평온을 찾더라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것이었습니다

들째안은 참모총장안으로 타지역을 먼저 소탕하고 광주시는 외곽 봉쇄해 완전 고립시키자는 안이었습니다

세째안은 2군 사령부안으로 타지역 즉 목포를 공격하더라도 사상자 발생은 마찬가지이며 광주시민들이 이를 알게 되면 감정이 더 격화되고 병력 분산운영은 폭도들의 전술에 말리는 것이라는 견해로 소탕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3가지 안외에 특이한 한가지안이 상세히 보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701 보안부대장은 '전남 출신 박춘식 장군 의견 제시'라는 '라'항목에서 '박춘식장군이 본인이 직접 침투하여 선량한 시민들을 이해시켜 폭도들의 세력을 와해, 시민들과 불리시키면서 계엄군 공격이 필요할 것이다' 라고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701 보안부대장은 '5. 참고사항' 이란 항목에서 다시 한번 박춘식장군의 제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춘식장군은 회의가 끝난뒤 총장, 차장, 지4부장등이 남았을때 2군안대로 무력공격한다면 24시간전에 홍보후 협상을 위해
본인이 현역장군신분으로 폭도가세지역에 들어가 광주시가 피바다가 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고향사람으로 이곳에 왔다면서 설득작전을 전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박장군은 또 나 하나 죽어서 유혈사태없이 평온을 찾는다면 그 이상의 영광이 없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즉 육사 5기생으로 육본 참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박춘식 장군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광주로 단신 들어가 광주시민들에게 군의 무력진압방침을 설명하고 시민들을 설득해 유혈사태를 막겠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지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701 보안부대장이 박장군의 주장을 기록하면서 '언동'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자세히 기술한 것은 박장군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즉 박장군은 말 한마디 한미디가 상세히 보고돼던, 그래서 서슬 퍼렇고 살벌하다고 묘사되던 이른바 '광주사태 소탕작전' 군수뇌부 회의에서,  어쩌면 미운 털이 박혀 목숨까지 위태로울수 있는 상황에서도 광주시민들의 희생을 줄이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박춘식 장군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안사령부 자신들이 기록했던 이 긴급보고 문건은 박춘식 장군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참다운 군인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kwangju korea secret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