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의 메일 전문
갑작스런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했던 점에 대해 조합원 동지 여러분에게 사죄하고, 또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상황의 진행이 급박했다는 이유로 저와 집행부의 판단에 대한 동지들의 평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MBC 사수라는 저희들의 추상적인 목표에는, ‘황-윤 두 이사 퇴진’, ‘김재철 낙하산 퇴진’, ‘김우룡 퇴진 및 방문진 개혁’, ‘정권에 대한 심판’이 구체적 목표로 존재합니다.
황희만 윤혁 출근저지 25일째, 그리고 김재철 사장 출근 저지 6일째였습니다. 휴일을 포함해서요. 어제 제가 김재철 사장과의 회동을 통해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써 두 이사 교체에 합의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가장 낮은 수준의 목표를 얻고서 ‘낙하산 김재철 사장을 인정’한 셈입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실체를 인정했으니까요. 말도 붙이지 말아야 사람과 협상을 했으니까요.
그에 대한 냉혹한 평가는 조합원 동지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전해지는 조합원 동지들의 평가를 조합간부들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피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과오라면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져야 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게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집행부에게도 같은 길이지요. 물리적 충돌에서 총파업 투쟁에 이르는 분명하고도 장렬한 길. 다른 길은 끈질기고도 오랜, 그러나 앞날이 어찌될지 잘 모르는 길. 그러고 보니 ‘이길지도 모르는 길’은 언뜻,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렬한 최후만이 그래서, ‘자랑스런 역사’이고 ‘승리’로 기록되는 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 개의 길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하거나 꺼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피할 것도, 어려워서 포기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집행부도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두 이사를 교체하는 것도 성과이고, 우리가 한 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당성이 작은 성과를 얻은 것이고, 대화를 하는 것도 투쟁의 한 측면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산화(散華)로써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합니다.
삶이 그렇듯, 투쟁도 다 과정이고, 그래서 모든 것은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고 이기는 것에 대한 평가를 매 시간 매 국면에서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요.
평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책임을 할 수 있는 날까지 다하겠습니다.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이고, 또 하루가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 앞의 현실도 분주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치욕도, 영예도,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행부와 함께 최선을 다해 닥쳐 올 날들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5일 이근행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