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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 미디어오늘 인터뷰 '육여사가 미의원이 혼자 쓰라고 준 25만달러로 정수훈련원 설립' 아이고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70

미디오오늘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70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한 첫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전두환 정권에게 받은 6억 원’에 대해 묻자 “당시 아버지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배려하는 차원에서 준다고 했을 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받았다”고 말했다. 6억 원은 청와대 비서실 금고에서 보관돼 있던 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파트 30채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거액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어린 동생들’을 이유로 들었지만 동생 박근령씨(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이사장)의 증언은 박 후보의 말과 달랐다. 박근령씨는 언니 박근혜 후보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면서도 돈의 용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근령씨는 이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밤 서울시 가양동 모처에서 만난 근령씨는 “언니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령씨는 6억 원을 ‘통치자금’, ‘눈 없는 돈’,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근령씨는 지난 68~69년께 패스만 미국 하원의원이 육영수 여사에게 25만 불을 줬지만 정수직업훈련원 건립에 사용했고, 박 전 대통령이 포항제철 건립 과정에서 받은 돈도 포항공대를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공(公)을 위해 사용하셨을 것인데 집행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6억 원의 사용 용처에 대해서도 박근령씨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근령씨는 돈의 사용처를 청와대에서 나올 때 ‘이사 비용’,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 정리 비용’으로 추정했다. 그는 “우리가 (청와대에서) 이사 나가는데 돈이 들었지 않았겠느냐. (이사하는데) 도와주는 사람 있었나? 아버지 기념사업, 모든 유품을 정리해야 하고… 그게 모두 경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린이회관 시설 보수에 사용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근령씨는 “언니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라면서 “돈의 성격에 따라서 (아버지의 기준) 거기에 준하는 사용처에 쓸 분인데 어떻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6억 원’은 “국민의 세금이라든가 그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로서는 가족 걱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언니가 바보인가? 돈의 성격도 모르고 가족이 쓴다(는 것은) 용납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1차 토론 이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은 박근혜 후보에게 6억 원의 용처에 물으며 사회 환원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6억 원을 재산으로 신고한 적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박 후보가 10일 2차 토론에서 사용처를 밝히고 사회 환원을 약속할지 주목된다.
다음은 ‘6억 원’ 관련 인터뷰 전문이다.

 

 

 
-이정희 후보가 ‘청와대 6억 원’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해한다. 박 후보는 토론에서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해서’라고 얘기했다.
“대통령은 통치자금이 있다. 통치자금 없는 대통령이 어디 있나? 말해보라. 아버지 보고 훌륭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통치자금, 정치자금을 얼마나 자기 주머니로 넣지 않고 사회로 환원시키느냐, 사회를 위해 썼느냐, 거기서 아버지가 청렴하다고 듣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으면 그 6억을 사회를 위해 쓰실 것인데 그 돈을 다 집행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본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면 68년인가 69년도에 패스만 미국 하원의원이 한센인병 정착촌 찾고, 소록도도 가면서 좋은 일을 하는 영부인이 따로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께 ‘이건 당신이 혼자 알아서 써라’라면서 줬다. ‘눈 없는 돈’이라고 하나? 단체나 국가를 끼고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25만 불을 줬다. 거기서 1만 불도 안 남기고 그대로, 우리가 가난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대로 아버지와 의논하셔서 정수직업훈련원을 만들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축적해야 하는데 직업훈련원을 만들어 기술자를 양성하려 했다. 그때 ‘일인일기(一人一技)’라고 해서 아주 기술자 우대하던 시절이다. 어머니가 탈탈 털어서 그렇게 하셨다.
또 있다. 칼빈총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무기를 샀다. 무기회사에서 아버지에게 ‘고맙다’면서 ‘이건 공식적으로 나가는 커미션이니 유용하게 쓰라’면서 얼마를 줬다. 처음에 아버지께서 그걸 사양하셨다. 그랬더니 그 사람(군수업체)이 ‘너한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 돈을 내가 받을 테니 이만큼에 해당하는 무기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감명을 받아 어딘가에 인터뷰를 했다. 그게 그대로 알려졌다.

 

중략, 생생한 인터뷰가 매우 깁니다,

아래 미디어 오늘에서 직접 인터뷰 원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미디오오늘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70

 

2012/12/10 - [분류 전체보기] - '육영수 용돈 25만달러로 정수직업훈련원 만들었다'- 천만에, 그돈은 USAID의 ASHA 원조자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