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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별세 - 아 안타깝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산이 낳은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최동원(53)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14/2011091400291.html?news_Head1

경기도 일산병원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1980년대 프로야구를 풍미했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코치가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14일 발표했다. 향년 53세. 그는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 코치로 있던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한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왔다.

특히 지난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서 경남고 대표 자격으로 오래간만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최동원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었다.

당시 그는 "살이 너무 쪄 식이요법으로 감량했는데, 체중을 너무 뺐다. 다음에 꼭 던지겠다"며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고인의 친동생인 최수원 KBO 심판위원은 “최근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잠시 눈을 뜨면 ‘괜찮다. 괜찮다’며 가족을 위로할 만큼 마지막까지 정신력을 보였지만 끝내 암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청아공원이다.

금테 안경에 150km를 넘는 직구가 트레이드마크였던 최동원은 1984년 7전4선승제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사상 전무후무한 ‘혼자 4승(1패)’을 기록한 인물. ‘무쇠팔’이란 그의 별명도 이러한 연투 능력에서 나온 것이다.

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최강’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해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으며, 이듬해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솎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했던 1981년에는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최우수신인상을 싹쓸이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병역 문제 등으로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이 불발된 뒤 1983년 프로야구 롯데 유니폼을 입은 그는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기록을 남기고 1990년 은퇴했다.

특히 프로 통산 248경기 중 80경기를 완투했으며, 이 가운데 15경기에서 1점도 내주지 않는(완봉) 괴력의 투수였다.

한편, 30돌을 맞는 해에 일주일 간격으로 ‘타격의 달인’ 장효조(7일 별세)와 ‘무쇠팔’ 최동원을 잃은 프로야구계는 비통에 빠졌다.

두 선수는 1980년대 초·중반 ‘타자는 장효조, 투수는 최동원’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프로야구 초창기 인기몰이에 큰 기여를 했었다. 삼성과 롯데의 간판선수였던 장효조와 최동원은 1988년 각자의 소속 구단과의 불화 끝에 트레이드를 통해 서로의 유니폼으로 바꿔입은 악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