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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10. 1. 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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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2/2010011200988.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2&Dep3=h2_05

“核 봉투 2개 봉인해 최규하에 전달… 신군부가 美에 넘겼을 가능성”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전력이 총 건설비 200억달러에 달하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가 원전 개발에 착수한 지 40여년 만에 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은 것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6번째 원전수출국이 되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이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출발점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마련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의 감시와 견제 속에 원전 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이 원전 기술을 확보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지만 실제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과 관련 문서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노력은 박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중단됐다. 핵무기뿐 아니라 원전 개발 노력도 중단됐다. 한국이 다시 원전 개발에 뛰어든 것은 이후 10여년이 지난 노태우 정권 때였다.

‘원전 강국’ 한국의 초기 원전 개발사에는 상당한 우여곡절과 비밀스러운 사연들이 담겨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핵무기 개발이 실제 어느 정도까지 이뤄졌는지, 관련 성과물과 기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원전 개발의 총괄 책임자는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이다. 오 전 수석이 당시 핵무기 개발 비사(秘史)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주간조선과의 수차례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시 핵무기 기술과 관련해서 일본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임무를 수행했다”며 “그러나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핵무기 관련 문서는 (박 대통령 서거  이후)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오 전 수석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원전 초기 개발사와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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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09. 12. 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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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한 명이 숨지고 다섯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3일 오전 11시38분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다락대사격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이 시간까지 사망 1명, 중상 2명, 경상 3명 등이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총탄약시험장에서 155㎜ 자주포 고폭탄 성능실험 중 발생했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는 "업체에 용역시험을 의뢰해 시험을 하다가 탄이 포신 안에서 폭발했다"며 "현재 원인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는 60여 명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연구원 정모(40)씨로 전해졌고, 부상자 공모(33)씨는 두 팔 봉합 수술을, 김모(36)씨는 파편 제거 수술을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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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포 고폭탄 폭발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상자들이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구호 활동과 조사에 참여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은 “사상자들 옆에서 아무런 안전장구를 보지 못했다”고 잇따라 증언했다.

이날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국방과학연구소 다락대시험장 폭발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연천소방서 백의지역대 나홀로 소방관 이명철(48) 소방교는 “사상자 모두 사복 차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 등 다른 것을 착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당시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 소방교는 사고현장에서 불과 7∼8㎞ 떨어진 곳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어 사고 발생 10여분 만에 펌프차를 끌고 현장에 도착한 뒤 구조 활동을 벌여 현장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목격한 인물이다.

익명을 요구한 연천소방서의 또 다른 소방관도 “현장에 도착해 보니 쓰러져 있는 사상자들 주변에서 안전모나 방탄복 등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시험에 참가하는 인원들은 안전을 위해 안전모와 안전화, 방탄복 등 안전장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경찰관들도 안전장구 미착용에 무게를 실었다.

한 경찰관은 “방탄복을 입었다면 파편이 그렇게 깊이 박힐 수 없다”고 말했다.

중상자 김연웅(36)씨는 이날 오후 3시부터 3시간30분동안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파편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경과가 좋아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의 발표는 안전장구 미착용 가능성을 높였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사상자를 포함해 15명이나 있었고 현장 확인을 마쳤으면서도 사고 발생 3시간여만에 가진 브리핑에서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은 이날 오후 3시께 국방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사상자를 포함해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시험 당시 방탄복과 안전모, 안전화 등 안전장구를 착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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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기도 포천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총포탄약시험장(다락대시험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순직한 고(故) 정기창(40)씨는 작년 12월부터 이 시험장에서 근무해온 총포탄약분야 시험전문가였다.

ADD 관계자는 이날 “정씨는 화력체계 시험분야 중 가장 힘든 총포탄약분야 시험업무를 맡아 그간 묵묵히 책임을 다해온 모범직원이었다”며 “모든 동료들이 애통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작년 입사 때부터 육군기갑학교 출신으로 군 복무 시절 경력을 살리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 자신의 업무에 애정을 갖고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미혼으로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신 효자로 소문난 정씨는 궂은 일을 항상 도맡고 선배들에게는 믿음직한 후배로, 후배들에게는 존경받는 선배로 인정을 받았다고 ADD 관계자는 설명했다.

ADD 관계자는 “오늘도 다락대시험장의 고폭탄 시험발사 현장에 가정 먼저 도착해 시험발사 준비를 했다”면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동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씨는 다락대시험장 인근인 연천군 출신으로 연구소에서는 물론 퇴근 후에는 마을 일에도 적극 참여해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모범 청년이었다”고 전했다.

ADD는 고인의 장례를 국방과학연구소장(葬)으로 치를 계획이며 장례일정과 장지는 유족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고인의 시신은 포천의료원에 안치되어 있다.

정씨는 이날 오전 11시32분께 155㎜ 견인 곡사포를 이용해 고폭탄 실험을 하다가 포탄이 포신내에서 폭발한 충격으로 순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