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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CIA 한국지부는 본부에 전문을 보냈고 CIA본부는 각국 정보를 취합해 5월 18일자
전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CURRENT INTELLIGENCE WEEKLY SUMMAY' 라는 이 문서는 각국에서 활동하는 CIA 지부가
본부에 타전하는 '주재국 현안에 대한 주례 정보보고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모두 23페이지로 이뤄져 있으나 표지 전체와 2페이지 한국정부부분 일부, 그리고 5페이지만
비밀해제돼 공개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검게 칠해져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개인 신상 부분은 마지막 7페이지에 드러납니다
516에 대한 한국의 전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면서 두번째 문단에 박정희 신상이 언급됩니다

그대로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1946년 한국군에 합류했다. 2년뒤 좌익활동혐의로 체포돼 10년형을 받고 수감됏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되자 1950년 다시 복직됐다. 그가 다시 공산당 조직을 재건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09/17 - [대통령 후보] - [박정희X파일]'4대의혹' 재판도 사전조작- 박정희 승인하에 김형욱-길재호가 구형량 결정 :미대사관 면담보고서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2012/09/18 - [대통령 후보] - [박정희X파일] 1962년 월남군사고문단파견 사전통보하자 미국, '왜이러지?'갸우뚱-미국무부 비밀전문



얼마전 숨진 이후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시 이 비밀문서가 소개되고 CIA의 이러한 보고를 바탕으로
이후락이 박정희의 사상을 감시하는 CIA 의 첩자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 알려진 문서지만 원문을 누구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원문 전체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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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 으로 잘 알려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한 국무부와 CIA 전문. 즉 국무부의 비밀훈령,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 CIA 본부와 한국지부간의 문서등을 한번 정리하고 분석해 보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돼 극히 짧은 기간 10월 19일경부터 11월2일 정도까지의 전문들만 올려봅니다
글라이스틴대사가 11월 2일께 국무부로 보고한 '미국이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은 군사정권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라는 전문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또 박정희 사망, 박정희 암살등으로 사건을 표현했지만 '제거' 즉  'REMOVAL OF PRESIDENT PARK'라는 표현도 사용한 대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정부를 책임질 대통령대행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정일권 전총리도 물망에 오른다는 내용도 있네요
1026 전부터, 특히 약 1주일전부터 주한 미대사관 특히 글라이스틴대사의 행보가 빨라지며 박준규 공화당 당의장, 태완선 유정회회장, 이철승, 고흥문, 김영삼등을 빈번히 만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약간 '고집불통'으로 본 듯한 내용도 있고 한 야당정치인은 한국을 움직이는 4대 파워로
학생, 국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을 꼽았군요
전문을 원본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올렸습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26을 거쳐 1212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 승자의 기록을 전할 사람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지만
패자의 진실을 남길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212 당일밤 전두환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대통령을 압박해 정승화 총장 연행에 재가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재가 현장에 배석했던 사람은 전두환쪽을 제외하고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이 유일합니다 
사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안가도 최광수 비서실장의 처가쪽 집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중앙정보부에
매도한 집입니다
최광수 비서실장의 용기있는 증언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