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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2012. 1. 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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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검찰에 고소한 한성주의 남친 크리스 수가 조현준 효성사장, 전두환 전대통령의 2남 전재용등이 고급주택을 매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 고급콘도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2/01/16 - [분류 전체보기] - 한성주 남친 추가폭로 크리스 수 이메일 전문 - 펌
2012/01/07 - [기타1] - 한성주 남친, '폭행피해'시점에 펀드실적 악화 -연관성드러나면 거액소송 번질듯
2012/01/04 - [분류 전체보기] - [2보] 한성주 남친, 헷지펀드 사실상 폐업 - 블룸버그 통신 - 투자액 환불결정
2011/12/21 - [분류 전체보기] - 한성주 남친측 블로그 재개설뒤 글 자진삭제 : 삭제전 - 삭제후 캡쳐화면
2011/12/08 - [분류 전체보기] - 허중일 누구게? - 현재 홍콩서 펀드운영 확인 : 미증권거래위원회 서류
2011/12/12 - [분류 전체보기] - 허중일, 대만여권소지확인-홍콩고급콘도 'H' 52층에 거주

한성주의 남친인 크리스 수[크리스토퍼 수;허중일]는 지난 2009년 9월 30일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뉴포트 비치의 고급 콘도미니엄 단지의 한 콘도를 1백84만달러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콘도는 1998년 건립된 것으로 건평이 백3평에 이르는 대형 고급콘도로 방이 4개, 욕실이 4개에 달합니다

오렌지카운티 등기소 조회결과 크리스 수는 매입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토퍼 C 수 로 기재했으며 독신 남성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로스앤젤레스내 작은 도시의 주택을 자신의 주소지로 기재했습니다. 이 주소지의 도시는 크리스 수의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크리스 수가 고급콘도를 구입한 것은 오렌지카운티내 손꼽히는 고급 주택지로 조현준 효성사장이 지난 2002년 효성아메리카에서 4백50만달러를 가져와서 4백50만달러 고급주택을 산 지역과 동일한 곳입니다, 조현준사장은 횡령혐의 재판에서 이 주택을 임대해  월 1만1천달러에서 많게는 2만5천달러의 수익을 올렸음이 드러나기도 했었습니다

전재용도 바로 2005년 9월 27일 이지역에 부인 박상아의 이름으로 주택을 구입, 장모 윤양자씨에게 관리를 맡겨 두고 있습니다.

 
기타12012. 1. 1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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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사용하는 전화기는 시스코사가 만든 IP폰 7975G 인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2/01/15 - [기타1] - 오바마 집무실 전화기는 레이시온 IST-2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2월 17일 에어포스원 집무실에서 살라자르 내무부장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사진을 확인해 본 결과 오바마대통령의 책상에는 시스코 IP폰 7975G에 시스코 확장모듈 7916이 부착된 전화기가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진은 백악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것으로 인터넷에 공개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스코사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 전용기에 자사의 7975G 와 그 확장모듈 7916이 설치돼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시스코사는 이 7975G 폰이 705달러, 7916 확장모듈이 495달러라고 밝혔으나 현재 인터넷등에서는 두 모델 모두 각각 3백50달러 내외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폰은 음성, 동영상, 데이터등을 전송할 수 있는 통합커뮤니케이션 개념의 장비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에어포스원 집무실에는 시스코사 전화기외에도 다이알기능이 없는 직통전화기 2대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이 직통전화기는 에어포스원내 참모들 사무실과 회의실등에 연결된 전화기로 알려졌으며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램프등만 달려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외에도 에어포스원의 참모들 사무실과 회의실등에도 똑같은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은 이 전화기외에도 보안성이 좋은 별도의 비화기를 전용기에 비치,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스코 7916

시스코 IP폰 소개
기타12012. 1. 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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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내 집무실에서 사용하는 전화는 미군수업체 레이시온사의 통신장비 하청업체 텔리코어사가 생산한 전화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월 23일 백악관내 집무실에서 통화하는 모습등을 찍은 사진을 확인한 결과 오바마 대통령이 이용한 전화기는 텔리코어사가 생산한 IST-2 기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진은 백악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것으로 인터넷에 공개된 것입니다 

이 전화기를 생산한 텔리코어사는 거대 군수업체 레이시온사의 통신장비부분 협력업체입니다 


레이시온 디지탈교환시스템을 채택한 이 전화기는 단축다이얼버튼이 50개 장착돼 있고 사용자는 보안용 또는 비보안용 버튼을 통해 보안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암호화 통신도 가능합니다 

이 전화기는 일반전화는 물론 아이피폰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PCMCIA 슬롯, 아이피폰을 위한 이더넷포트, 데이터포트등이 장착돼 있고 확장모듈을 부착할 경우 최대 단축다이얼버튼을 최고 80개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이 전화기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집무실 책상위에 놓여 있어 사진 촬영등으로 일반에 공개돼 있지만 집무실에는 이외에도 3대정도의 전화기가 더 비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집무실책상에 놓여진 전화기로 나눌수 없는 비밀통화를 위한 보안성이 강화된 비화기는 바로 오바마 대통령의 책상 아래쪽 서랍안에 1대가 있고 집무실 응접실의 장금장치가 된 협탁 서랍에도 비화기 1대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IST-2폰의 가격등을 알아보려 했으나 인터넷등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타12012. 1. 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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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는 지난 2006년 9월 단독주택을 구입한 미시건주등 모두 2곳에 미주법인을 두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 미시건주에 설립된 다스법인의 소재지에는 '다스컴퓨터'라는 업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2/01/04 - [분류 전체보기] - 다스 미국집, 재산세 미납 2년연속 압류통보 - 도대체 누가 주인인가? [압류통보서류 첨부]
2012/01/04 - [분류 전체보기] - 다스 미국집 건평 백20평에 개인해변까지 - 집값은 40% 폭락

다스 미시건법인의 사장은 mb의 조카로 알려진 이동형씨이며 이 법인이 연례보고서를 뒤늦게 제출해 벌금을 물기도 했고 2010년부터 2년간은 연례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지 의혹이 일고 잇습니다

미시건주 국무부 조회결과 다스는 지닌 2004년 4월 9일 '다스 노스 아메리카 인크'라는 법인을 설립했으며 법인등록번호는 18669 D 였습니다 

같은날 미시건주 국무부에 신고된 다스노스아메리카 정관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체주식은 6만주였으며 법인주소는 24800 워너로드 였고 가브리엘 트리컬레스큐 라는 사람이 회사를 대신해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약 4개월뒤인 2004년 8월 3일 윤준호 라는 사람이 이 회사의 부사장이며 회사주소는 24800 워너로드라고 신고했지만 윤부사장은 이 회사앞으로 미시건주 국무부가 우편물을 보낼 경우 엉뚱한 주소로 보내달라고 신고했습니다 
부사장 윤준호씨가 우편물을 받는 주소는 30100 텔리그래프 로드의 한 사무실로 다스의 미국법인 사무실 주소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부사장 윤씨가 다스에 근무한다면 다스 주소로 우편물을 받을 것이며 만약 집으로 우편물을 받고 싶어서 집주소를 기재했다면 이해가 됩니다만 윤씨가 우편물주소로 기재한 곳은 오피스빌딩, 즉 사무용빌딩의 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윤씨가 실제로 이 회사의 부사장인지 의심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미시건주 국무부는 미시건주 설립 법인들에 대해 매년 한차례씩 5월 15일이전에 연례보고서를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스는  2005년 3월 12일, 2006년 5월 2일, 2007년 4월 30일, 2008년 12월 1일, 2009년 4월 29일등 2012년 1월 7일까지 모두 5차례의 연례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중 2008년 보고서는 2008년 5월 15일이 보고마감기한이었지만 기한을 8개월넘긴 2008년 12월 1일 신고돼 벌금을 물었으며
이 연례보고서에서 다스노스아메리카법인의 사장은 이동형씨라고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등록대행자가 김정렬씨로 기재돼 있었으며 그의 주소는 26200 타운센터 드라이브의 사무실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동형 다스노스아메리카사장의 주소도 바로 김정렬씨의 주소로 돼 있었습니다 
MB의 조카인 이동형씨는 미시건주에 거주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2009년 4월 29일 다스가 등록대행자 김정렬씨를 통해 미국무부에 제출한 2009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다스노스아메리카의 주소가 바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다스의 등록주소는 김정렬씨의 사무실 주소였습니다
 

다스 웹사이트 


현재 다스 홈페이지에는 다스 노스 아메리카의 주소가 39600 루이스 드라이브라고 기재돼 있지만 이는 미시건주 국무부 보고서류와 달랐습니다
이 회사가 미시건주 국무부에 보고한 서류에서 다스의 주소지는 다스홈페이지에 기재된 주소가 아니라 등록대행자인 김정렬씨의 주소였던 것입니다 

미시건주 보고서상 다스 노스 아메리카의 주소지는 설립초기에는 홈페이지에 기재된 주소였으나 적어도 2009년 4월 29일이후에는 김정렬씨 사무소가 회사소재지였으며 이는 다스가 과연 실재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특히 보고서에 기재된 이 주소지와 전화번호를 검색한 결과 이 주소지에는 다스노스아메리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스 컴퓨터'라는 회사가 있었고 전화번호또한 다스 컴퓨터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특히 다스노스아메리카는 2010년 5월 15일까지 주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2010년 보고서와 2011년 5월 15일까지 보고해야 하는 2011년 5월 15일 보고서를 일체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사실로 볼때 다스가 미시건주에 설립한 다스노스아메리카는 현재 유령회사화된것이 아닌가 의혹이 입니다 
미시건주 상공회의소의 해외기업체 명단에는 이 지역에 지사등을 가진 주요해외자동차업체 현지법인이 빠짐없이 등록돼 있었지만 다스노스아메리카는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미시간주 전화번호부에도 다스노스아메리카로 등록된 전화번호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스는 미시건주에 미국집을 왜 샀을까요 
미시건주에 설립된 이 법인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직원이라도 근무해야 직원을 위해 샀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의혹투성입니다. 

다스 미시간 법인서류 7건 ㄷ -
기타12012. 1. 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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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전대통령의 외동아들 노재헌씨가 부인 신정화씨와의 홍콩 이혼소송에세 패소했으며 즉각 항소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노재헌씨는 지난해 12월 21일 홍콩 항소법원에 신정화씨를 상대로 항소를 제기했으며 사건번호는 CACV 280/2011로 확인됐습니다. 홍콩항소법원 조회결과 노씨의 이름은 RO JAE HUN, 신씨의 이름은 SHIN JUNG HWA 로 표기돼 있었으며 가정법원의 이혼소송판결에 대한 항소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노씨와 신씨의 영문이름은 이들이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입할때, 그리고 홍콩법인 '브레이브 스카이' 관련서류를 제출할때 사용한 영문이름과 동일했습니다. 홍콩항소법원은 아직 항소심 첫 공판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홍콩법에 따르면 1심에서 패소할 경우 14일이내에 항소하도록 돼 있어 12월초 또는 중순 홍콩가정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나 판결문등은 당사자외에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씨가 항소를 한 것으로 미뤄 재산분활등에 있어 노씨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진 것이 분명합니다

항소를 제기하며 노씨는 자신의 법률대리인으로 홍콩의 유명로펌인 STEVENSON, WONG & CO를, 신씨는 이혼소송등 가정법으로 유명한 WITHERS HONG KONG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각각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신씨가 선임한 위더스 홍콩은 지난해 9월말 '아시안 리걸 비지니스'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가정법 로펌으로 선정되기도 하는등 홍콩 최고의 이혼등 가정법 전문 로펌입니다. 


신정화씨는 지난해 3월 31일 홍콩가정법원에 노씨를 상대로 이혼및 재산분할, 그리고 세자녀에 대한 양육권 청구소송을 제기했었고 지난해 9월 15일 첫 공판이 열렸었습니다. 또 국내에서도 노씨의 부동산과 주식에 대해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 법원으로 부터 이를 허락받았었습니다

남편 노씨도 아내 신씨의 홍콩이혼소송에 맞서 지난해 10월 17일 서울가정법원에 신씨와 신씨의 외도상대라며 재미교포 A씨에 대해 이혼과 자녀양육권인정, 위자료 1억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었습니다 

신씨측은 지난해말 한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씨가 재산을 공개하라는 홍콩법원의 명령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며 노씨가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홍콩등에 숨겨진 재산공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신씨측은 홍콩은 국내보다 숨겨진 재산을 찾기가 더 수월하며 노씨가 홍콩에 적지 않은 부동산을 숨겨놓았다고 밝히기도 해 이번 소송을 통해 얼마만큼이 됐던 노씨의 비자금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 확실시됩니다

홍콩법원은 이혼등 가정법의 경우 대부분의 판결문에 대해 일반공개금지명령[NOT OPEN TO PUBLIC] 명령을 내리지만 일년에 3-4건씩 특이한 케이스의 경우 소송쌍방의 이름 일부만 가린채 판결문 전체를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노씨 이혼소송도 홍콩과 한국 두나라에서 진행되는 드문 케이스인 만큼 홍콩법원이 재판이 모두 종결된 뒤 판결문을 전격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노씨는 한국과 마카오외에도 미국에 '브레이브 오션'이라는 법인을 세워 미국 뉴욕과 하와이에 콘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홍콩에도 '브레이브 스카이'라는 법인을 세워 노씨와 신씨 두사람이 번갈아가며 회사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타12011. 12. 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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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사망 코리안리퍼블릭 호외 - 19631123

기타12011. 11. 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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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평가
정일권평가W
기타12011. 11. 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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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1년 11월 케네디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뒤 2차례 케네디대통령에게 감사편지를 보냈습니다

박의장은 외국민항기와 미군 군용기등으로 4군데 중간기착지를 거쳐 14일과 15일 워싱턴 DC를 방문, 케네디대통령과 2차례 면담을 한뒤 11월 17일과 11월 28일 두차례 감사편지를 보냈습니다

2011/11/13 - [기타1] - 박정희, '케네디각하, 군정연장 팍팍 밀어주세요' 63년 박정희친서전문 첫 공개
2011/11/10 - [분류 전체보기] - 50년전오늘, 박정희 방미, 외국민항기-군용기 빌려타고 4번기착뒤 사흘걸려 워싱턴도착 : 미국무부 문서
2011/11/11 - [기타1] - 516 없었으면 장면총리도 61년 7월 미국방문 했었다 - 미국무부 비밀전문


11월 17일 박의장은 워싱턴 DC를 떠나 뉴욕에 머물면서 태극기가 그려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명의의 레터헤드지에 작성한 감사편지에서 친애하는 대통령에게 라며 시작한뒤 각하와 귀 정부 요원들이 본인과 본인일행에게 베풀어주신 따뜻한 영접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의장은 귀정부 요원들과 솔직한 의견을 교환한 것은 지극히 유익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됐으며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간의 이해가 세계평화와 자유세계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우리가 보다 낳게 일할수 있도록 더욱 증강됐다고 전했습니다

박의장은 워싱턴을 떠나는데 있어 워싱턴에서 본인의 체류와 훌륭한 사람들의 즐거웠던 추억을 간진하고 떠나며 케네디대통령에게 개인적 경의와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적었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존 에푸 케네디 각하'로 돼 있었으며 한글타자기로 작성된 친서에 박의장이 직접 서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의장은 또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인 11월 28일, 성공적이고 고무적인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밝히고 양국민간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진정한 우의의 증거를 다시금 목격하게 돼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의장은 우리와 미국국민이 공동이념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크게 동정적이며 동시에 우리의 국가재건 노력에 이어 우리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믐을 발견하였음은 감명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박의장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본인과 본인의 일행에게 베풀어준 따뜻한 환대에 대하여 본인의 사의를 적절히 표현할 바를 모르겠다며 각하를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고 글을 맺었습니다


박정희 케네디감사편지 19611117 W
박정희 케네디 감사편지 19611128 W
기타12011. 11. 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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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뒤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뒤 국정을 담당한 장면총리도 1961년 7월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딘 러스크 미국무부장관이 1961년 2월 28일 케네디대통령에게 장면총리[JOHN M. CHANG]의 공식방문에 대한 메모를 보냈습니다
2011/11/13 - [기타1] - 박정희, '케네디각하, 군정연장 팍팍 밀어주세요' 63년 박정희친서전문 첫 공개
2011/11/10 - [분류 전체보기] - 50년전오늘, 박정희 방미, 외국민항기-군용기 빌려타고 4번기착뒤 사흘걸려 워싱턴도착 : 미국무부 문서
2011/11/11 - [기타1] - 박정희의장, 1961년 방미뒤 케네디에 2차례 감사편지 - 원문


이 메모에 따르면 러스크 국무장관은 당신[케네디대통령]이 최근 승인한 장면 한국총리의 미국공식방문계획에 따라 장총리 방미일정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워싱턴 DC, 그리고 일주일정도 미국곳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습니다 

러스크장관은 당신이 승인한다면 한국정부가 원하는 빠른 시간에 장총리 방미를 공식발표하는데 동의하며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발표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장면총리의 1961년 7월 방미는 결국 516 혁명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한국 국정을 담당하는 국가원수가 취임하면 그 즉시 미국으로 초청, 의견을 교환하며 양국간 우호를 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면총리초청요청 19610228 W
기타12011. 11. 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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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 [분류 전체보기] - 미사일시험발사일정 꼬박꼬박 미국통보 - 김성용 현대사가 당시 주무 : 위키리크스 한국전문
2011/12/05 - [분류 전체보기] - 김재규, 김형욱 의회증언뒤에도 설득편지 '금번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 :1977년 7월 26일 김재규친필편지사본
 



2011/11/14 - [기타1] - 박정희의장, 1961년 방미뒤 케네디에 2차례 감사편지 - 원문
2011/11/14 - [기타1] - 516 없었으면 장면총리도 61년 7월 미국방문 했었다 - 미국무부 비밀전문


2011/11/04 - [분류 전체보기] - '박정희가 김종필 누나와 혼인'-군내 공산세력 3백명제보 : 1961년 케네디대통령 브리핑자료 혼인관계 잘못 파악하기도
2011/11/10 - [분류 전체보기] - 50년전오늘, 박정희 방미, 외국민항기-군용기 빌려타고 4번기착뒤 사흘걸려 워싱턴도착 : 미국무부 문서

2011/11/13 - [SK] - 'SK비자금 폭로하겠다' 5천만달러 요구 - SK, 최소 8백10만달러 보상 : 관련증거첨부-다운로드가능
2011/10/18 - [SK] - [SK비자금5억불]최태원, 5억불중 5천만불만 죄값 치렀다 - 이제 검찰이 나서라
2011/10/18 - [SK] - SK비자금5억불관련 증거를 다운로드가능토록 공개하며 SK 비자금 1막을 마무리합니다
2011/10/16 - [SK] - [SK비자금5억불]다니엘 윤, 비자금관리 숨기고 인터뷰마다 ‘정직이 최고’ 강조하며 수억불 유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63년 군정연장선언을 한뒤 케네디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자신의 군정 4년연장 선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박정희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3년 3월 16일 516 혁명뒤 발표한 63년 민정이양계획을 백지화하고 4년간 군정을 연장하겠다는 이른바 '316 군정연장 선언'을 한뒤 사흘뒤인 3월 19일 케네디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친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미국무부 공개자료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박의장은 이 친서를 작성한뒤 전달여부를 두고 고심을 한듯 실제로는 열흘뒤인 3월 29일 오후 6시 정일권 주미대사를 통해 케네디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미국무부 외교문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국내언론이 4월 8일 박의장이 케네디대통령에게 2차친서를 보냈다고 보도한 것으로 미뤄 박의장이 이에 앞서 한차례 더 친서를 보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친서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친애하는 케네디대통령각하'로 시작하는 박의장의 친서는 모두 13장분량으로 세계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한 케네디의 노력에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밝힌뒤 최근 한국정세의 진전과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의장은 공산분자의 침투로 부터 한국을 구출하고 부패와 무능한 정치질서를 일소, 자유민주주의의 소지를 확립시키키 위해 516 군사혁명을 일으켰다고 밝히고 1961년 8월 12일 밝힌 민정이양약속에 따라 1963년 1월부터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218성명, 227선서등은 민정이양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충정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의장은 그러나 정치활동허용뒤 정계혼란이 극심해지고 정치인들은 민심을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했다고 분석하고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것은 혁명당국으로서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결론에 도달, 최대 4년간 군정을 연장하는 316성명을 발표했다고 말했습니다

박의장은 개인적 안일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민정이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서 한국사태에 있어 현지당국과는 다소 의견차이가 있는듯 하다고 밝혀 주한미국대사관이 군정연장에 반대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박의장은 완전민정이양의 과도적 조치로서 4년간 군정연장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것이라며 케네디대통령이 316성명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기를 희구하여 마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박의장은 케네디대통령이 한국의 민주적 발전을 염원하는 만큼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민주적 성장을 희구하는 자신의 충성을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는 말로 글을 맺었습니다

한자 한자 붓글씨로 정성들여 쓰여진 이 편지가 실제 박대통령의 필체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미에는 '서기1963년 3월 19일 대한민국대통령권한대행,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육군대장 박정희'라고 쓰여져 있었으며 대통령도장과 박의장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미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실제 이편지는 작성 열흘이 지난 3월 29일 오후 6시 정일권 주미대사가 케네디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으며 이자리에서 케네디대통령은 '미국민들이 한국의 장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이 잘되기를 희망하는 만큼 민주주의 발전을 막는 정치적 불안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버거대사가 미국의 견해를 대신한다며 군부와 민간지도자가 스무드한 민정이양을 위한 타임테이블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일권 주미대사는 박정희 의장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군부지도자들이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케네디대통령은 재차 민정이양에 따른 제반문제에 대한 한국적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에 앞서 3월 25일 미국무부는 군사정부와 야권지도자들의 타협을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군정연장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고 박의장이 타협의사를 보이지 않자 4월 2일 케네디대통령이 민정이양을 촉구하는 친서를 전달하는등 강력한 반대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결국 박의장은 4월 8일 군정 4년연장안을 철회하고 다시 케네데대통령에게 2차 친서를 보내 이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박정희, 케네디친서 전문
친애하는 케네디대통령각하
본인은 국제공산주의의 위협으로 부터 세계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우방제국을 영도하시는 각하의 노력에 대하여 충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자유민주주의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으므로 이 기회에 최근 한국정세의 진전과 이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각하에게 알리고저 생각하는 바입니다
각하께서도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516 군사혁명은 당시 불안정한 정국을 이용한 공산분자들의 침투로 부터 한국을 구출하고 부패와 무능한 정치질서를 일소하여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켜 자유민주주의의 소지를 확립시키려는 목적으로 애국적인 군인에 의하여 취하여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혁명정부는 과감한 시책으로 온갖 성의와 노력을 다하여 이와 같은 혁명과업을 완수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국가로서 발전할 민정의 터전을 확립시키는데 전력을 다하여 왔던 것입니다
특히 정치적 안정의 기초가 될 경제적 안정달성을 위하여 의욕적인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미국을 위시한, 여러 선진 우방의 협력을 얻어 착착 성과를 거두어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설정하에 본인은 1963년까지에는 정권을 민간인에게 이양할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졌기에 1961년 8월 12일에 민정이양에 관한 약속을 하게 되었고 동년 11월 귀국방문시에도 각하에게 그러한 의향을 전한 바 있었으며 이와같은 민정이양계획에 따라 금년 1월부터는 정치활동을 허용했던 것입니다
지난 218성명이나 227선서는 모든 격동하는 정치정세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민정의 터전을 확립하기 위한 정부충정의 표현이었으며 또 평화적 민정탄생을 위한 정치적 체질개선에 최선의 인위적 노력을 다하겠다는 열망의 표현이었었음은 두말할 나위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활동이 허용된 후에 지난 수개월 동안의 추이는 결코 전도의 희망을 주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정치인의 추잡한 파쟁등 정계의 혼란은 극심하였고 이에 편승한 일부 극열분자들의 반국가적 음모등은 민심을 다시 없는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무질서하고도 불안한 분위기속에서 정치적 안정에 대한 하등의 보장없이 구태의연한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것은 국가적 안정을 위하여 위험한 일이며 또한 혁명당국으로서도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현 한국사태에 대하여 현지당국과는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는 듯 하나 본인의 개인적 안일을 위하여서는 지금 이순간이라도 민정이양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현재 정치적 안정과 국가의 장래에 직접적이고도 제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본인으로서 316 성명은 좌시할 수 없는 너무나도 절박한 사태에서 기인되었던 것입니다
본인은 완전하고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정부수립의 소지를 확립시키는 것이 혁명정부의 이념이며 또한 혁명정부가 실천하여야만할 책임인 줄믿고 있는 까닭에 완전민정이양의 과도적 조치로서 최대 4년간 군정기간의 연장에 대하여 그 가부를 국민투표에 부하여 국민의 의사를 묻기로 결정한 것이며 316성명은 이러한 결심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본인은 이와 같은 조처가 어디까지나 민의를 존중하여 군사혁명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과도적 조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저 하는 바입니다
각하께서도 전술한 대한민국의 실정을 참작하시어 본인의 316성명을 하게된 불가피성을 깊이 이해하시고 전폭적인 지지를 하여 주시기를 희구하여 마지 않는 바입니다
이에 있어 본인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의 대한민국의 건전한 민주적 발전을 각하께서 염원하시고 계심을 확신함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민주적 성장을 희구하는 본인의 충성 또한 각하께서 충분히 이해하여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본인은 이 기회에 각하에게 거듭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서기 1963년 3월 19일
대한민국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대장 박정희

박정희, 케네디에 군정연장 지지요청 친서
기타12011. 11. 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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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전용기 내부 투어 동영상 56분
기타12011. 11. 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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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전용기 동영상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