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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친인척 관련서류

'삼호그룹 해체사연' 뉴욕타임스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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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4년 삼호그룹 해체와 관련, 뉴욕타임스도 지난 1998년 3월 25일
조봉구 전회장 일가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78세[98년 당시]의 조봉구씨가 전두환 군사정권에게
약 20억달러의 재산을 빼앗기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쓸쓸히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1997년 12월 조 전회장 일가가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
D사와 C은행, 그리고 C은행 로스앤젤레스 지점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1984년 당시 한국정부가 은행빚이 많은 기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동공사에서 발생한 미수금등으로 은행빚이 3억5천만달러에 달한 삼호그룹이
정리됐다는 것이 삼호그룹 해체의 표면적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1993년 재판에서 국제그룹이 신군부에 미운 털이 박힌
일명 괘씸죄로 해체됐음이  입증됐듯 삼호그룹도 신군부에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하게 파산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삼호그룹 설립자인 조봉구 전회장은 1979년 당시 뇌출혈로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조전회장을 대신해 회사를 이끌던 아들은
1984년 8월 24일 김모부총리의 그룹 해체 통보를 받았고
뒷날 IMF협상을 주도했던 임모부총리도 당시 해체에 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조회장의 아들은 부총리 면담뒤 C은행 행장을 만났으며 이 행장으로 부터
'내가 최고위층에 로비를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뭐했느냐'를 말과 함께
3장의 백지서류에 서명을 강요받았고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조회장 아들은 당시 은행장실 옆방에 D사 관계자들이 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회장 아들은 아버지인 설립자 조봉구회장과 로비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충돌을
빚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조회장 아들은 호텔이든 리조트든 (신군부에게) 주자고 제의했으나 아버지는 이를
반대했다고 전했으며 1년에 3번 명절때 정부관계자들에게 약 70만달러의 돈을
뿌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조씨일가가 소송을 제기한 일주일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김전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국민통합을 명목으로 전두환을 사면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김모부총리, D사,C은행등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10여년전의 일이라 잘 모르겠다'는 등의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봉구 뉴욕타임스기사 1998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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