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핫이슈 언론보도

[양상훈 칼럼] 어느 재벌가의 원정 출산 - 조선일보 펌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이야말로
자유민주 최대의 적(敵)

국내 최대 재벌가의 한 사람과 TV 유명 여자 아나운서 출신 부부가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미국에서 낳았다. 첫째 아들은 결혼 후 유학차 미국에 가서 낳았다. 얼마 전 둘째 아들을 낳을 때는 출산 두 달 전에 미국에 갔다고 한다. 원정 출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정 출산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자는 것이다. 재벌가 부부가 미국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이 탐나서 원정 출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자식이 미국 시민권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지키려 모인 젊은이들이다. 6·25 전쟁 때 맨몸으로 적을 막다 쓰러져 이 땅 어딘가에 뼈를 묻은 20만 장병의 손자들이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청춘의 아들들이고, 서해 바다에 피를 뿌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동생들이다. 국군은 병역을 피하려 미국 시민권을 얻는 사람들은 필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들 부부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상류층 일부의 탐욕과 이기심, 교활함, 그 천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부가 첫 아이를 낳은 뒤 얼마 안 돼 귀국했고, 이번 둘째 때도 곧 귀국한다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살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대한민국이 위험하게 된다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이 부부일 것이다.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군이다. 그저 남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신체가 건강해서,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따져보지도 않은 채 군에 들어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다. 이 부부는 제 재산과 생명은 국가에서, 국군에게서, 남의 집 아들들에게서 보호받으면서 자신들이 나라에, 국군에, 다른 사람들에 해야 할 의무는 지지 않으려 만삭에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서 아이를 낳았다. 무엇을 더 챙기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남편은 최대 재벌 계열사의 대표이고 부인은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유명인이다. 이 공인(公人)들이 미국 가서 아이 낳으려고 계산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역겹기에 앞서 어떻게 이토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놀랍다. 공적인 의무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런 책임감 따위는 느껴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용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유력 대통령 후보의 자식도 원정 출산 논란에 휘말리고 전직 국방장관과 최고위 외교관의 손자들도 병역 비리에 연루되는 판에 뭐가 어떠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부 상류층의 돈에 대한 탐욕도 끝이 없다. 어느 또 다른 재벌가 3형제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 가치가 8년 만에 100배가 됐다고 한다. 같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돈 되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넘겨줬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돈다. 땅 짚고 헤엄치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작년엔 국내 여러 재벌들의 2세, 3세, 4세들이 주식 장난을 벌이다 모처럼 그 꼬리가 드러났다. 이들은 미공개 정보 이용, 허위 사실 유포, 치고 빠지기 등 갖은 방법으로 작게는 몇 천만원에서 크게는 수십억원까지 벌었다. 주식시장에선 재벌 자식들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몇 배가 뛴다. 두 재벌의 2, 3세가 투자했다는 철강회사의 주가는 한 달 만에 16배 뛰었다. 재벌로도 모자라 그 위세까지 이용해 돈을 번다.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원정 출산 부부에 관해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 중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 이 사람이 실제 원정 출산을 바란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야유로 들렸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외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의 홈페이지에 1만개의 댓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정 의원은 그중 하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외고에 가고 싶다고 하자 아내가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고 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일부 상류층은 이 정직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999섬도 모자라 1섬까지 더 가지려 갖은 수를 쓰고 있다. 이 것이 우리 사회 불안의 근원이다. 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최대의 적(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