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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박정희X파일] 1962년 월남군사고문단파견 사전통보하자 미국, '왜이러지?'갸우뚱-미국무부 비밀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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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정부가 1962년 4월 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에게 사전통보했으며 버거대사는 이 통보를 받은뒤 박정희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1962년 4월 28일 국무부에 보고한 4페이지짜리 비밀전문에 따르면 4월 27일 한국의 외무부장관이 베트남대통령의 요청으로 한국이 5월 11일부터 두달간 일정으로 17명의 군사전문가를 베트남에 파견한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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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이 경향신문의 특종보도로 베트남 군사고문단 파견소식을 접한 것은 1962년 5월 12일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그보다 2주일 앞서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셈입니다


이 전문은 국무부외에도 주베트남미국대사관과 태평양사령부에도 전달됐으며 버거대사는 외무부장관이 박정희의장의 지시를 받아 군사전문가 베트남 파견사실을 미국에 사전통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외무부장관은 한국의 시찰단이 군사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되며 5월 11일 베트남으로 출발, 두달간 머물 예정이지만 두명은 조기에 귀환할 수 있으며 일부는 결과에 따라 2개월이상 머물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시찰단은 전문가 8명, 보좌관 3명, 통역관 3명, 통신장교 3명으로 구성되며 반공조직, 정보기관, 게릴라의 전력평가, 야전진지의 상태[공병], 군수물자관리, 의료현황등 6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파견자 명단은 추후 전달한다고 돼 있습니다.


외무부장관은 또 베트남대통령이 수중폭파전문가, 건식[DRY FOOD]기술전문가, 대공방어전문가등도 요청했으나 이들의 파견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외무부장관은 베트남대통령이 월맹진영의 선전공세를 우려, 한국의 군사전문가 파견을 비밀에 붙여달라고 요구했다며 버거대사에게 보안을 당부하고 군사전문가중 일부는 군에서, 일부는 중정요원으로 구성되며 군인들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무부장관은 장관자신이 월남대사직 마치고 귀국하면서 베트남대통령에게 이임인사를 할때 베트남대통령이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고 최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동남아를 방문, 베트남대통령을 만났을때도 이같은 사안이 논의됐으며 김종필이 귀국뒤 멜로이유엔군사령관에게도 이 문제를 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버거대사는 이 전문에서 멜로이 사령관과 이 문제를 의논한 결과 한국군전문가를 월남에 파견하는 것은 유엔사 승인이 없어도 되며 내일 아침 김종필을 만나기로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버거대사는 한국인들의 잘 의도된 이같은 사전통보의 동기가 무엇인지, 우리의 승인을 원하는 것인지 여부를 모르겠다며 워싱턴 본부의 지시가 있을때까지 외무부장관에게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조간 '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조간 '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석간, 박병권국방장관 해명담화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석간, 박병권국방장관 해명담화


한편 경향신문은 1962년 5월 12일자 조간에 '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이라는 제목의 1면 탑기사를 통해 건군이래 처음으로 육군장성을 단장으로 한 고급장교 10여명으로 구성된 군사고문단이 11일 오후 2시 공군특별수송기편으로 월남으로 떠났으나 혁명정부는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특종보도했습니다.


또 경향신문 보도로 월남파병우려가 일자 박병권 국방부장관은 이날 오후 1시 군사고문단파견보도와 관련, 군사고문관이 아니라 상례적인 군사시찰을 목적으로 파견된 것이라는 공식담화를 발표하며 군사고문단이 아니라고 부인하게 됩니다.


월남파병은 박정희의장이 1961년 11월 케네디대통령을 만나 월남파병을 미국에 먼저 제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됐고 국방부장관이 단순한 시찰이라고 부인했지만 사실은 바로  이 시찰단 파견이 월남파병의 시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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