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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박정희X파일]'4대의혹' 재판도 사전조작- 박정희 승인하에 김형욱-길재호가 구형량 결정 :미대사관 면담보고서



박정희정권의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1963년 4대의혹사건 재판때 관련자들의 구형량을 검찰이 아닌 김형욱-길재호등이 결정했으며 박정희는 이를 알고도 승인했다는 미국무부 비밀문서가 발견됐습니다



2012/09/16 - [분류 전체보기]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윌리암 마지스트레티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1963년 6월 19일 작성한 비밀문서를 통해 6월 18일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이 4대의혹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격돌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스트레티 부대사는 6월 19일 자신의 집에서 김재춘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보좌관 한종호등과 오찬을 함깨 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재춘이 증권파동 관련자 재판에서 군검찰의 구형량이 검찰이 아닌 김형욱-길재호등에 의해 결정됐다고 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김재춘은 이날 마지스트레티를 만난 자리에서 증권파동사건 결심공판 하루전인 6월 18일 오전 증권파동관련 군법회의 재판관과 검사들이 김형욱에게 불려갔으며 이 자리에서 김형욱과 길재호등이 윤응상등 증권파동 관련자들의 형량을 결정,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형욱등은 증권파동 주범인 윤응상에게 징역 7년, 서재식에게 징역 5년, 유원식에게 징역 1년 6개월, 천병규에게 징역 3년 6개월, 강성원 5년, 이영근 1년 등을 구형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며 김재춘은 이같은 행위는 대한민국 군법회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마지스트레티에게 지적했습니다


김재춘은 이날 오후 이같은 사실을 알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찾아가 증권파동 관련자구형을 김형욱등이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구형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격력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또 김종필이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만큼 그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김재춘에게 조사를 약속했으나 다음날인 6월 19일 아침 박정희가 자신에게 전화해 검토결과 별 문제가 없다며 김형욱등이 논의한 대로 구형한다고 통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516 쿠데타이후 박정희군사정부시절 정상적 사법체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으며 재판이 쿠데타주체세력의 뜻대로 좌지우지되는 무법천지였음을 의미합니다. 당시는 계엄령상태였기 때문에 민간인도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며 그나마 군법회의 재판관이나 군검찰도 얌심과 법률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쿠데타주체세력의 지시를 앵무새처럼 피고인에게 전달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특히 박정희가 군검찰이 아니라 김형욱-길재호등이 구형량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승인했다는 것은 사법체제의 근간을 철저히 무시하는 박정희의 반민주적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며 이같은 박정희의 인식이 결국 사법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인혁당사건등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당시 김형욱은 최고회의 운영위원장, 길재호는 법사위원이었으며 이들이 증권파동관련자의 구형량을 결정한 다음날인 1963년 6월 19일 오전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는 증권파동사건 결심공판을 통해 윤응상에게 징역 7년, 서재식 징역 5년, 천병규 징역 3년 6월,  강성원 5년등, 전날 김형욱등이 결정한 대로 구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 김종필의 최측근인 이영근 중앙정보부 행정차장은 김형욱등이 전날 결정한 구형량은 1년이었으나 이날 결심공판에서 3년이 구형됐으며 이는 김종필의 측근에게 지나치게 낮은 형을 구형한다는 김재춘의 항의를 박정희가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재춘은 또 이날 면담에서 김종필의 4대의혹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으며 김종필이 새나라자동차수입등을 통해 해외에 부정한 자금을 축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권파동은 워커힐사건, 파친코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등 이른바 '김종필 중앙정보부'가 공화당 창당자금마련등을 위해 저지른 4대의혹사건의 하나로 중앙정보부가 증권업자 윤응상등과 공모해 통일, 일흥, 동명등 3개 증권회사를 설립, 주가를 조작함으로써 증권시장이 마비되고 5천여명의 개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은 사건입니다.


김재춘은 이날 자유민주당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민주공화당에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김재춘은 박정희-김종필의 자문역할을 하는 김용태가 공화당 재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한일은행 전무인 김종필의 형 김종락이 공화당 정치자금 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종필은 박정희가 이끄는 차기정부하에서 김종필이 귀국하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최고회의 내부의 온건론자들은 박정희가 이끄는 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1963년 6월 19일자 1면 증권파동 구형보도 경향신문 1963년 6월 19일자 1면 증권파동 구형보도


증권파동 재판조작 미국무부 비밀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