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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좌파들의 첫 대통령 - DJ측 장례식에 부통령이나 국무장관 조문요구 - 위키리크스 외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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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대사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좌파들의 첫 대통령이라고 보고했으며 DJ측은 장례식에 조 바이든 부통령이나 힐리러 클린턴 국무장관의 조문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직후 주한미국대사관은 DJ의 일생을 보고한 전문에서 DJ의 출생부터 사망까지를 시간대별로 비교적 상세히 보고하고 DJ가 한국민주화와 남북관계를 개선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고 평가하면서도 대통령당선에 대해 '좌파들의 첫 대통령이 됐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19일자 전문을 살펴보면 '한국의 제15대 대통령'이란 항목을 보면 '아시아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돼 경제개혁과 남북관계에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언급한뒤 '그의 승리는 좌파들의 첫 대통령이 됐으며 첫번째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고 평가했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그의 일대기를 정리하면서 '좌파들의 첫 대통령'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DJ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김대중 전대통령측은 김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8월 18일보다 나흘앞선 8월 14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담당을 만나 조 바이든 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조문단장으로 와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제 미국측은 바이든부통령이나 클린턴국무장관이 아닌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등 9명을 조문단으로 보냈었습니다 

  


이 전문은 또 김대중 전대통령의 험난한 정치역정을 소개하면서 1971년 대통령선거이후 정치적 박해의 타겟이 됐으며 체포-투옥외에도 5번의 암살시도에서 생존했다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전문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 동경에서 납치됐으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당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측은 또 이전문에서 사형선고직후 워싱턴이 개입, 한국정부가 김대중 전대통령의 미국망명을 허용했다고 밝혀 미국측이 깊이 개입했음을 시인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남북화해무드조성, 한국민주화과정에서의 리더쉽등은 노벨상수상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3년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수억달러의 현금과 경제협력이 평양에 제공됏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두 아들과 측근들이 부정부패로 체포되기도 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김대통령은 퇴임후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종종 선거에서 킹메이커의 역할을 했으며 큰 어른으로서 진보진영에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5월 총선을 기점으로 전라도지역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퇴색했으며 당시 민주당공천을 받은 김근식, 이광철후보가 무소속의 정동영, 신건후보에게 대패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2009년 5월 노무현대통령의 자살도 노무현게 정치인들이 다시 힘을 받음으로서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역동적인 달변가이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국민주화에 한획을 긋는 역사적 역할을 햇으며 햇볕정책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