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뜸이 길었다. 정운찬 총리 퇴진 여부 말이다. 정 총리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퇴진 의사를 밝혔고, 이명박(MB) 대통령도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6·2 지방선거 직후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지 두 달 만이다. 그동안 정 총리는 참으로 보기 안쓰러웠다. 매일 아침 총리실에 출근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했지만 총리로서의 위엄은 빛이 바랜 상태였다. 곧 경질될 거란 소문만 들쑥날쑥한 채 계속 가는 건지, 그만두는 건지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영(令)이 설 리 없었다.
원본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597/4348597.html?ctg=2001&cloc=home|showcase|main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총리직에서 퇴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 대통령이 사의를 물리쳤는지, 아니면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명확한 공식 언급은 없었다. 그사이 청와대 일각에선 곧 경질될 거라고 하고, 총리실 주변에선 그런 청와대 쪽을 향해 눈을 흘기는 형국이라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정 총리가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면 자리 욕심이란 말이 나오고,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중요한 정책조율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장 공무원들은 장관이 바뀌면 주요 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며 손을 놓았다. 이 대통령이 다시 들고나온 친(親)서민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총체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닌데 행정 공백(空白) 상태가 지속됐다.
사실 정 총리는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열심히 했다. 비록 그 결과가 추진한 방향과는 다르게 나타났지만 역대 총리 중에선 가장 책임감 있게 일을 많이 한 총리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될 만하다. 수도를 분할하는 세종시 문제는 그가 총리에 임명됨으로써 본격적으로 토론이 시작된 사안이다. 수도 분할에 따른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그 대안으로 수정안을 제시했으며, 이해당사자와 반대파를 상대로 열성적으로 설득 노력을 벌였다. 계란 세례를 맞으면서까지 해당 지역을 수십 차례 방문하는 등 전국을 돌며 세종시 수정안 전도사 역할을 수행했다.
특정 국정 현안을 놓고 정 총리처럼 올인해 매달린 총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종시 수정안이 끝내 관철되지 못한 것은 우리 정치권의 비이성적 논의 구도와 포퓰리즘이란 높은 벽 때문이지, 결코 그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수정안 자체에 현격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세종시 논란이 불러온 지역·정파 간 갈등 확산 등이 큰 후유증으로 남긴 했지만, 수도 분할 같은 중차대한 국가적 대역사를 한 차례 더 집중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가 적지 않다. 정 총리에게 ‘세종시 반대 총리’라는 별명이 붙더라도 이는 불명예가 아닌,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두 달간의 ‘엉거주춤 총리’는 결국 이 대통령의 작품인 셈이다. 정 총리가 처음 사의를 표명했을 때 눈 딱 감고 접수했어야 했다. 세종시 부결로 정 총리의 역할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MB는 비록 7·28 재·보선에서 승리해 체면을 살렸지만 지난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리더십에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집권 후반기를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분위기의 일대 쇄신이 절실했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개편은 지방선거 패배 직후, 조금 양보해도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을 때가 적기(適期)였다. 그때 대대적 인적 쇄신을 단행했더라면 보다 빨리 정국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MB는 정말 신중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지만,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 신중함이다. 뭘 그리도 고르고, 재고, 따질 게 많은지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제때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듯, 정치 또한 실기하지 말고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기를 놓치면 역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인사가 그렇다. 뜸들이기가 너무 길다. 취임 첫해 촛불시위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3개 부처 장관을 바꾸는 데 1개월 반, 지난해 재·보선 패배 뒤 개각 땐 무려 4개월을 끌었다. 사람을 쓰는 일에 신중한 것은 좋지만 이렇게 소문만 내고 질질 끄는 것은 내각만 무력화하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실책이다. 대중의 호기심이 시들해져 버리니 참신성이 반감되고, 새 체제가 던질 수 있는 긴장감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식탁 앞 기도가 길면 음식이 식어버려 맛을 잃는 이치와 같다.
『논어』에서 공자는 ‘두 번 생각하면 족하다(再斯可矣)’고 가르친다. ‘세 번씩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것(三思而後行)’은 신중한 게 아니라 망설임이요, 옹졸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사도 그렇고, 정책 결정도 그렇고 지나친 신중함은 득보다 실이 많은 법이다. 후속 개각만이라도 너무 뜸들이지 마시라.
원본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597/4348597.html?ctg=2001&cloc=home|showcase|main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총리직에서 퇴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 대통령이 사의를 물리쳤는지, 아니면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명확한 공식 언급은 없었다. 그사이 청와대 일각에선 곧 경질될 거라고 하고, 총리실 주변에선 그런 청와대 쪽을 향해 눈을 흘기는 형국이라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정 총리가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면 자리 욕심이란 말이 나오고,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중요한 정책조율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장 공무원들은 장관이 바뀌면 주요 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며 손을 놓았다. 이 대통령이 다시 들고나온 친(親)서민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총체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닌데 행정 공백(空白) 상태가 지속됐다.
사실 정 총리는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열심히 했다. 비록 그 결과가 추진한 방향과는 다르게 나타났지만 역대 총리 중에선 가장 책임감 있게 일을 많이 한 총리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될 만하다. 수도를 분할하는 세종시 문제는 그가 총리에 임명됨으로써 본격적으로 토론이 시작된 사안이다. 수도 분할에 따른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그 대안으로 수정안을 제시했으며, 이해당사자와 반대파를 상대로 열성적으로 설득 노력을 벌였다. 계란 세례를 맞으면서까지 해당 지역을 수십 차례 방문하는 등 전국을 돌며 세종시 수정안 전도사 역할을 수행했다.
특정 국정 현안을 놓고 정 총리처럼 올인해 매달린 총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종시 수정안이 끝내 관철되지 못한 것은 우리 정치권의 비이성적 논의 구도와 포퓰리즘이란 높은 벽 때문이지, 결코 그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수정안 자체에 현격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세종시 논란이 불러온 지역·정파 간 갈등 확산 등이 큰 후유증으로 남긴 했지만, 수도 분할 같은 중차대한 국가적 대역사를 한 차례 더 집중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가 적지 않다. 정 총리에게 ‘세종시 반대 총리’라는 별명이 붙더라도 이는 불명예가 아닌,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두 달간의 ‘엉거주춤 총리’는 결국 이 대통령의 작품인 셈이다. 정 총리가 처음 사의를 표명했을 때 눈 딱 감고 접수했어야 했다. 세종시 부결로 정 총리의 역할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MB는 비록 7·28 재·보선에서 승리해 체면을 살렸지만 지난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리더십에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집권 후반기를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분위기의 일대 쇄신이 절실했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개편은 지방선거 패배 직후, 조금 양보해도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을 때가 적기(適期)였다. 그때 대대적 인적 쇄신을 단행했더라면 보다 빨리 정국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MB는 정말 신중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지만,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 신중함이다. 뭘 그리도 고르고, 재고, 따질 게 많은지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제때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듯, 정치 또한 실기하지 말고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기를 놓치면 역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인사가 그렇다. 뜸들이기가 너무 길다. 취임 첫해 촛불시위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3개 부처 장관을 바꾸는 데 1개월 반, 지난해 재·보선 패배 뒤 개각 땐 무려 4개월을 끌었다. 사람을 쓰는 일에 신중한 것은 좋지만 이렇게 소문만 내고 질질 끄는 것은 내각만 무력화하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실책이다. 대중의 호기심이 시들해져 버리니 참신성이 반감되고, 새 체제가 던질 수 있는 긴장감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식탁 앞 기도가 길면 음식이 식어버려 맛을 잃는 이치와 같다.
『논어』에서 공자는 ‘두 번 생각하면 족하다(再斯可矣)’고 가르친다. ‘세 번씩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것(三思而後行)’은 신중한 게 아니라 망설임이요, 옹졸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사도 그렇고, 정책 결정도 그렇고 지나친 신중함은 득보다 실이 많은 법이다. 후속 개각만이라도 너무 뜸들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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