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혼외아들 의혹 첫 보도 직후 잠적했던 임씨는 나흘(10일) 뒤 “내가 낳은 아들은 채 전 총장의 아들이 아니다”고 전면 부인하는 내용의 편지를 해당 언론사에 보낸 뒤 또다시 잠적했다. 임씨는 보름 전부터 자신의 친척들과 함께 K아파트에서 지내왔다. 이곳 주차장에는 주씨의 에쿠스 승용차와 임씨 소유의 회색 벤츠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아파트 주민 김모(63)씨는 “주씨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어 알려진 게 별로 없다”며 “추석을 전후해 못 보던 벤츠 차량이 왔고 그 이후로 움직이지 않아 의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5일 전쯤 마트에서 산 물건을 가득 담은 비닐봉투를 양손에 들고 올라간 여자 2명 말고는 주씨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아파트 안에 인기척은 있었지만 취재진이 수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 전화와 주씨 휴대전화로도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날 낮 12시30분쯤 임씨와 친척들이 있는 집 안에서 격한 목소리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높은 톤의 중년 여성(A씨)과 경상도 억양이 강하고 더 나이가 든 것 같은 여성(B씨) 간 대화였다. 울부짖듯 고성을 지르는 A씨가 주로 말을 하고 B씨가 맞장구를 치는 형태였다.
“무응답 하라는 거다… 내 인생은? 한 달 동안 가만 있으라고?”(A씨)
“….”(B씨)
“내 정체성 망가져…. 내가 살아가는 건 그거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잖아요”(A씨)
이어 대화 중인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듯한 A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를 받더라도 이런저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세요.”(A씨)
취재진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내가 행동하다 보면 노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세요. 나는 여기서 나가야겠고, 니가 워딩은 하든지 하라고, 그대로 얘기하겠다. 직설적으로…. 그 인간 얘기 듣고 행동 취할 거야. 난 언론에 노출될 거야. 여권도 있잖아. 비자 받아서 미국도 갈 거야.”(A씨)
잠시 멈췄다가 대화가 이어졌다.
“그 인간이 지금 천하의 거짓말쟁이가 돼서 제정신이 아닌 거야…. 무엇보다 나쁜 건 자기 자식 부정한 거라고….”(A씨)
“퇴임식? 뭐가 그리 영광스럽노. 딸? 왜 눈물은 흘리노.”(B씨)
“가증스러워.”(A씨)
“부산에 와서 얼마나 XX을 떨었나.”(B씨)
실제 A씨와 B씨가 누구인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 상황을 종합해 보면 채 전 총장의 지난달 30일 퇴임식과 전 가정부 이모(여)씨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채 전 총장의 반박을 보고 분노한 임씨와 친척 간 대화일 가능성이 크다.
대화의 당사자가 임씨와 친척이 맞다면 임씨는 친척 중 누군가를 통해 채 전 총장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채 전 총장 측에서 아무 대응도 하지 말고 한 달간 칩거해 있으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채동욱 "숨으라고 한 적 없다”=이에 대해 채 전 총장은 측근을 통해 “내가 임씨와 연락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한 달간 숨으라는 얘기를 할 수가 있겠느냐”며 "자기 아들임을 부정했다는 부분도 내가 아니라 실제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채모(11)군에 대해서도 친자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BBK 재판때 MB변호인으로 활동했던 정동수변호사[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코트라 단장]등이 태양광 관련 사기혐의로 피소된 가운데 외교통상부는 바로 이 태양광 관련회사 마티네에너지를 현대중공업등 대기업에 소개시킴으로써 한국기업의 미국진출을 지원했다며 자신들의 책자에 자원외교 성공사례로 소개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외교통상부가 지난 2010년 12월 31일 펴낸 442페이지의 책자 '통상마찰 기업애로 해소 사례집'에 따르면 이 책자 254페이지부터 256페이지까지 3페이지에 걸쳐 '뉴욕-우리나가 기업의 미국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진출 지원' 이라는 제목하에 마티네에너지 지원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이 책자에서 2010년 2월 주뉴욕총영사관 상무관[지식경제부 뉴욕주재관] 이 미국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M사가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참여기업을 모집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이회사 고위 의사결정자와 수차례 접촉하고 현대중공업에 사업의 경제적 효과와 위험요인을 설명하고 적극적이면서도 신중한 입찰참여전략을 조언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M사는 바로 태양광사기혐의로 피소된 마티네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외교통상부는 주뉴욕총영사관의 적극적 중재와 정보제공조치로 양사가 양해각서체결등을 거쳐 2010년 8월 175메가와트, 7억달러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외교통상부는 당초 현대중공업이 M사로 부터 비공식으로 프로젝트 참여의사를 타진받았으나 관련정보 부족, 수주경혐 미흡, 발생가능 리스크에 대한 우려등으로 인해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지연시키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M사는 의사결정이 지연되자 타국기업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한국기업의 비지니스관행에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마티네에너지사가 현대중공업에 프로젝트 참여를 제의했으나 현대중공업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자 마티네사가 뉴욕총영사관에 접근해 정보를 흘리면서 총영사관을 움직였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마티네가 총영사관을 움직였음은 외교통상부책자 255페이지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공관조치사항이라는 소제목하에 뉴욕총영사관은 프로젝트관련 정보입수직후 지식경제부와 코트라등에 프로젝트의 개요, 중요성, 위험요인등을 보고하고 적극적인 수주지원대책을 추진했고 본부가 당사자기업들을 수차례 접촉해 상호간의 의견차해소를 지원하고 협상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애로사항의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돼 있습니다,
특히 뉴욕총영사관은 문제발생시 공동협의를 통한 해결을 약속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조치결과 현대중공업은 참여의향서 제출, 사업계획설명등 필요조치를 신속히 추진해 2010년 6월 마티네와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언론에는 2010년 4월 18일 마티네와 현대중공업, LG전자가 MOU를 체결했다고 보도됐습니다만 만약 외교통상부 책자 내용이 맞다면 이또한 마티네사가 현대중공업등과 MOU체결이 안된 상태에서 언론플레이를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같은해 8월 7억불, 175 메가와트규모의 태양광건설 본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최종 EPC계약 [설계-기자재조달-시공] 체결을 위한 세부사항을 협의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외교통상부는 본계약이 체결됐고 EPC계약을 남겨놓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만 사실은 EPC 계약이 본계약이며 현대중공업과 마티네사간의 본계약은 무산됐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이 사례가 우리기업이 미국내 대형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주 공급자로 참여하는 사실상 최초의 사례라며 미국의 대규모 그린프로젝트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외교통상부가 이 책자를 발간한 것은 2010년 12월 31일, 아리조나주 지역언론이 마티네사 마이클 피노스회장이 1988년 금광사기를 저지른 범법자라는 사실을 보도한 것은 그보다 4개월전인 2010년 8월이었습니다.
이미 마티네사 관련자가 사기범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총영사관이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자칫하면 현대중공업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고 결국 제스솔라등을 비롯한 국내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외교통상부가 한국기업이 미국의 대규모 그린프로젝트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제때 적절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함으로써 태양광 사기극의 들러리를 선 셈이 됐습니다.
물론 해외의 고급정보를 신속히 입수해 이를 기업에 알려주고 정부가 적절한 지원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언론보도를 제대로 챙겼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스솔라측은 마티네측이 이 책자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이 검증받은 회사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 마티네사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CEO가 BBK사건때 MB변호를 담당했고 코트라 단장을 역임한 정동수 변호사[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이며 이 회사 설립자가 유력여당정치인의 인척이라고 스스로 밝힌 김승진 이었기 때문에 뉴욕총영사관이 이처럼 원활한 협조를 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이에 앞서 2008년 4월 이명박대통령의 첫 방미시에도 SK불법비자금 5억달러를 관리했던 다니엘 윤씨를 아무런 검증없이 차세대 지도자 10명중 1명으로 선정, 이대통령을 면담케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벌들의 해외은닉비자금 관리인 전력을 가진 윤씨의 펀딩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뒤에도 국제금융전문가로 국회의원들에게 윤씨를 소개하는등 문제를 야기했었습니다.
이럴때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았느냐, 열심히 하려다 일이 이렇게 됐는데 그같은 사실이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 누가 선뜻 나서서 열성적으로 일하겠는가, 그냥 해외파견기간동안 조용히 있다가 돌아가지, 열심히 일한 사람 문제삼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같은 상황도 이해합니다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조금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박정희, 이후락뿐만 아니라 박종규도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 하원윤리위가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계좌는 박종규가 미국쌀 수입관련 커미션등을 관리했던 계좌였기 때문에 이 계좌또한 박정희 정권차원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입니다.
미 하원윤리위는 코리아게이트 청문회에서 박동선의 로비를 조사하던중 한때 박동선이 쌀중개권을 상실했던 사실을 밝혀내고 그 중개권을 다시 쟁취하는 과정을 살펴보다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비밀계좌를 발견했습니다.
박동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하면서 1971년 박종규가 정치자금명목으로 관리했던 쌀중개 커미션중 일부인 19만달러를 돌려받게 됩니다. 박동선은 김형욱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등에게 이 돈이 미의원들에게 전달될 돈이라고 말했고 김형욱, 이후락이 중재에 나서 19만달러를 되찾은 것입니다. 1970년 박종규가 받은 쌀 커미션은 약 80만달러로 추정되지만 로비자금 19만달러만 박동선에게 되돌려 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동선이 19만달러를 인출하는 과정입니다. 김형욱은 박종규로 부터 서류 한장을 전달받아 박동선에게 전했으며 바로 이 서류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19만달러를 인출해도 된다는 인출지시서였습니다. 이 한장의 서류로 박종규도 박정희 정권 비자금 명목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관리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박동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 조달청이 발급한 쌀중개인 지정서와 스위스은행 예금인출서를 들고 미국으로 온뒤 자신의 조지타운대학 동창이자 부하직원인 류재신에게 예금인출서를 주며 스위스로 보냈습니다. 류재신은 스위스로 날라가 해당 스위스 은행에 이 서류를 제시하고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한 것입니다.
박종규 스위스계좌관련 류재신증언록 - 1977년 10월 21일 증언
류재신은 1977년 10월 21일 미 하원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스위스 비밀계좌의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하는 과정을 상세히 증언했으며 이는 하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1권 192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류재신은 스위스에서 예금을 인출할때 인출서의 서명란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행히도 그 서명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류재신은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서명란에 딱 한글자의 한자가 적혀 있었으며 그 한자는 'JIN'[진] 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류재신의 이같은 증언은 박동선이 1978년 4월 4일 하원윤리위원에서 밝힌 내용과도 일치하며 이 박동선의 증언은 하원윤리위 '한국영항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2권 80페이지에 수록돼 있습니다. 김형욱또한 상원윤리위 청문회에서 1978년 7월 10일 자신이 박동선이 19만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과정을 증언했으며 이 증언도 상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부속보고서 2권 1108페이지부터 1110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하단 첨부파일 참조]
박종규가 관리하던 이 스위스 비자금계좌도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박종규가 쌀커미션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명목하에 고위층허락을 받고 박동선에게서 쌀중개권을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계좌는 고위층이 그 존재를 알았던 정치자금 관련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인출서에 나타나는 서명 '진'은 누구의 서명일까요, 하원윤리위원회도 끝내 이 서명이 누구의 서명인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이 계좌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계좌라던 사실은 밝혀냈습니다. 박종규가 관리한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 이 계좌도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조 의원은 지난 24일 송파구청에 공문을 보내 원활한 의정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김미경 교수가 10년간 보유했던 서울 문정동 아파트의 계약 자료를 요구했다.
조 의원 쪽이 보내온 공문에는 이 아파트의 동·호수만 적혀 있을 뿐 인적사항은 없었지만 송파구청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많은 자료 제공을 요구하고 관례적으로 '왜 필요한지'를 묻지 않기 때문에 26일 조 의원 쪽에 관련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인계약서는 매매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공개될 수 없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 14조는 '청구된 정보의 공개는 청구인 본인 또는 그 대리인에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4조에는 '국회로부터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증언의 요구를 받거나 국가기관이 서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증언할 사실이나 제출할 서류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6일 밤 한 언론은 검인계약서를 공개하면서 김 교수가 다운계약서를 썼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고, 안 후보는 27일"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들께 사과드린다"며 "정말 앞으로 더 엄중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안철수의 핵심브레인으로 떠오른 호창성씨에게 투자할 당시의 회사는 등록이 취소된 상태[SURRENDER]이며 호씨는 지난 2010년말 똑같은 아이템으로 새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호씨가 새로 창업한 비키인크라는 회사가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싱가폴과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했지만 비키 또는 VIKI라는 단어가 들어간 법인이 한국에 없는 것으로 확인돼 한국 사무실이 존재한다면 직원들의 임금에 대한 비용처리, 세금 납부등이 적법하게 처리됐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노건호씨는 호창성씨가 운영하던 GLOBAL TONGUE INC 에 2007년 중반 박연차씨로 부터 받은 불법자금 일부인 1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이 회사가 사실상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반면 호창성씨는 노건호씨가 투자했던 GLOBAL TONGUE INC와 똑같은 아이템으로 2010년말 새 회사를 캘리포니아에 설립,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비키닷컴 웹사이트 확인결과 호씨의 새 회사 이름은 VIKI. INC [비키 인크]였으며 오늘 캘리포니아주 국무부 확인결과 이 법인은 지난 2010년 11월 12일 캘리포니아주 국무부에 등록을 마쳤으며 법인번호는 C3333479 였습니다. 이 회사는 2007년 당시 호씨가 노건호씨로 부터 10만달러를 투자받을 때와 완벽하게 똑같은 사업아이템이지만 호씨가 어떤 이유에선지 완전히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버린 것입니다.
호창성법인 등기부 - 비키 인크 [2012년 9월 24일 확인]
웹사이트도 GLOBAL TONGUE INC 당시 wwwiviikii.net 에서 새 회사의 웹사이트는 www.viki.com 으로 변경됐지만 사업아이템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으로 동일했습니다.http://www.viki.com/
노건호씨가 호씨의 회사인 GLOBAL TONGUE INC에 투자한 10만달러에 대해 투자수익을 회수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아직 투자수익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GLOBAL TONGUE INC라는 회사자체가 사라짐으로써 투자수익회수는 불가능해졌으며 이를 조금이라도 회수하려 한다면 지루한 법정싸움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호씨가 만약 회사이름만 변경하려 한다면 캘리포니아주법상 기존 GLOBAL TONGUE INC의 법인등록을 유지하면서 회사이름 변경이 가능하며 이 경우 기존명칭하의 모든 계약이 새 법인이름으로 승계되게 되지만 호씨가 별도의 새 법인을 설립해 버림으로써 GLOBAL TONGUE INC 와 새 회사는 전혀 무관한 회사가 돼 버렸습니다.
호씨는 새 법인 설립직후인 2010년 12월 8일 비키법인명의로 4백30만달러, 2011년 10월 21일 SK등으로 부터 2천만달러를 투자받았다고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밝히고 있으며 2011년 테크노크런치라는 IT잡지가 수여하는 크런치 어워드 '베스트 인터내셔널 스타트업' Best International Startup 부분 상을 받았습니다. 회원들이 드라마와 영화등을 자발적으로 자국어로 번역, 입력하는 방식이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합니다. 국내 언론사들이 해마다 특정상품을 심사해 명품 브랜드등으로 선정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선정되는 종류의 상입니다.
비키닷컴은 웹사이트를 통해 2010년 12월 론칭된 회사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블룸버그비지니스위크등 기업정보제공회사들은 이 회사가 2007년 설립된 회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기업정보제공회사들은 글로벌텅의 후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비키닷컴은 2010년 12월 론칭된 회사라고만 소개하며 글로벌텅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비키닷컴의 최고경영자[CEO]는 호씨가 아니라 Mr. Razmig Hovaghimian 로 알려져 있으며 싱가폴, 샌프란시스코,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만 국내 사무소 소재지는 기재돼 있지 않았으며 법인등기조회결과 국내에는 VIKI INC는 물론 비키 라는 단어가 포함된 법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싱가폴또한 싱가폴정부의 법인조회사이트를 통해 VIKI 라는 단어가 들어간 법인을 검색한 결과 폐쇄법인을 포함, 102개의 법인이 검색됐으며 이중 84개는 VIKING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법인이었으며 VIKI 로 시작되는 법인 18개중 현재 정상등록을 유지한 법인은 4개였으나 이들 회사는 무역회사또는 엔지니어링등의 회사였습니다.
아마도 비키인크는 싱가폴과 한국에 비키가 아닌 다른 법인명으로 사무실을 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비키인크나 비키닷컴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만약 법인을 설립하지 않았다면 한국에 있다는 R&D센터 직원들의 임금지급등과 관련한 회계처리와 세금납부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비용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개인사업자의 경우에는 업주의 급여가 비용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과세기준액이 2-3천만원이 넘어갈 경우 법인사업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원 임금도 임금이지만 호씨가 이 회사의 창업자이며 공동대표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호씨의 급여는 세법상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호씨가 노건호씨로 부터 투자받은 자금 10만달러는 노씨가 박연차에게서 받은 불법자금의 일부이며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도 투자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하는등 '참신한 청년창업 전문가'라는 안후보 캠프와의 설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호씨가 노건호씨의 스탠포드대 MBA동창으로 노씨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아는 상태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이 투자자금이 부정한 방법으로 조성된 것임을 알았다는 것으로 '참신한 청년창업전문가'라기 보다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대통령 아들의 후광을 입으려 했음은 물론 부정한 돈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호씨는 안철수의 대선정책공약을 만드는데 핵심역할을 할 정책 네트워크 '내일'포럼의 멤버로 어제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내일'포럼 첫 회의에 참석했으며 온라인 TV서비스 업체인 비키 창업자로 청년창업전문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검찰수사결과 노건호씨가 호씨회사에 투자한 자금은 박연차에게서 받은 불법자금중 일부였습니다.
호씨는 지난 2007년 7월 16일 GLOBAL TONGUE INC 라는 법인을 설립, 캘리포니아주 주정부에 등록했으며 법인등기부상 회사소재지는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 였습니다.
호씨가 설립한 이 회사는 비키 [ www.viikii.net] 라는 동영상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등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2009년 당시 이 사이트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저작권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유투브등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링크시켜 소개시켜주고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였습니다.
현재 2009년당시의 이회사 도메인 주소를 클릭하면 당초 도메인은 사라지고 VIKI.COM 이라는 곳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노건호씨는 2009년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호창성씨, 데이비드 S 윤씨, 오르고스에서 일하는 정모, 이모, 박모씨등을 친구를 등록하기도 했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1962년 4월 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에게 사전통보했으며 버거대사는 이 통보를 받은뒤 박정희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1962년 4월 28일 국무부에 보고한 4페이지짜리 비밀전문에 따르면 4월 27일 한국의 외무부장관이 베트남대통령의 요청으로 한국이 5월 11일부터 두달간 일정으로 17명의 군사전문가를 베트남에 파견한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국민이 경향신문의 특종보도로 베트남 군사고문단 파견소식을 접한 것은 1962년 5월 12일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그보다 2주일 앞서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셈입니다
이 전문은 국무부외에도 주베트남미국대사관과 태평양사령부에도 전달됐으며 버거대사는 외무부장관이 박정희의장의 지시를 받아 군사전문가 베트남 파견사실을 미국에 사전통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외무부장관은 한국의 시찰단이 군사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되며 5월 11일 베트남으로 출발, 두달간 머물 예정이지만 두명은 조기에 귀환할 수 있으며 일부는 결과에 따라 2개월이상 머물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시찰단은 전문가 8명, 보좌관 3명, 통역관 3명, 통신장교 3명으로 구성되며 반공조직, 정보기관, 게릴라의 전력평가, 야전진지의 상태[공병], 군수물자관리, 의료현황등 6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파견자 명단은 추후 전달한다고 돼 있습니다.
외무부장관은 또 베트남대통령이 수중폭파전문가, 건식[DRY FOOD]기술전문가, 대공방어전문가등도 요청했으나 이들의 파견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외무부장관은 베트남대통령이 월맹진영의 선전공세를 우려, 한국의 군사전문가 파견을 비밀에 붙여달라고 요구했다며 버거대사에게 보안을 당부하고 군사전문가중 일부는 군에서, 일부는 중정요원으로 구성되며 군인들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무부장관은 장관자신이 월남대사직 마치고 귀국하면서 베트남대통령에게 이임인사를 할때 베트남대통령이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고 최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동남아를 방문, 베트남대통령을 만났을때도 이같은 사안이 논의됐으며 김종필이 귀국뒤 멜로이유엔군사령관에게도 이 문제를 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버거대사는 이 전문에서 멜로이 사령관과 이 문제를 의논한 결과 한국군전문가를 월남에 파견하는 것은 유엔사 승인이 없어도 되며 내일 아침 김종필을 만나기로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버거대사는 한국인들의 잘 의도된 이같은 사전통보의 동기가 무엇인지, 우리의 승인을 원하는 것인지 여부를 모르겠다며 워싱턴 본부의 지시가 있을때까지 외무부장관에게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조간 '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
경향신문 1962년 5월 12일자 석간, 박병권국방장관 해명담화
한편 경향신문은 1962년 5월 12일자 조간에 '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이라는 제목의 1면 탑기사를 통해 건군이래 처음으로 육군장성을 단장으로 한 고급장교 10여명으로 구성된 군사고문단이 11일 오후 2시 공군특별수송기편으로 월남으로 떠났으나 혁명정부는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특종보도했습니다.
또 경향신문 보도로 월남파병우려가 일자 박병권 국방부장관은 이날 오후 1시 군사고문단파견보도와 관련, 군사고문관이 아니라 상례적인 군사시찰을 목적으로 파견된 것이라는 공식담화를 발표하며 군사고문단이 아니라고 부인하게 됩니다.
월남파병은 박정희의장이 1961년 11월 케네디대통령을 만나 월남파병을 미국에 먼저 제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됐고 국방부장관이 단순한 시찰이라고 부인했지만 사실은 바로 이 시찰단 파견이 월남파병의 시초였습니다.
윌리암 마지스트레티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1963년 6월 19일 작성한 비밀문서를 통해 6월 18일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이 4대의혹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격돌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스트레티 부대사는 6월 19일 자신의 집에서 김재춘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보좌관 한종호등과 오찬을 함깨 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재춘이 증권파동 관련자 재판에서 군검찰의 구형량이 검찰이 아닌 김형욱-길재호등에 의해 결정됐다고 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김재춘은 이날 마지스트레티를 만난 자리에서 증권파동사건 결심공판 하루전인 6월 18일 오전 증권파동관련 군법회의 재판관과 검사들이 김형욱에게 불려갔으며 이 자리에서 김형욱과 길재호등이 윤응상등 증권파동 관련자들의 형량을 결정,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형욱등은 증권파동 주범인 윤응상에게 징역 7년, 서재식에게 징역 5년, 유원식에게 징역 1년 6개월, 천병규에게 징역 3년 6개월, 강성원 5년, 이영근 1년 등을 구형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며 김재춘은 이같은 행위는 대한민국 군법회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마지스트레티에게 지적했습니다
김재춘은 이날 오후 이같은 사실을 알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찾아가 증권파동 관련자구형을 김형욱등이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구형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격력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또 김종필이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만큼 그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김재춘에게 조사를 약속했으나 다음날인 6월 19일 아침 박정희가 자신에게 전화해 검토결과 별 문제가 없다며 김형욱등이 논의한 대로 구형한다고 통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516 쿠데타이후 박정희군사정부시절 정상적 사법체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으며 재판이 쿠데타주체세력의 뜻대로 좌지우지되는 무법천지였음을 의미합니다. 당시는 계엄령상태였기 때문에 민간인도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며 그나마 군법회의 재판관이나 군검찰도 얌심과 법률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쿠데타주체세력의 지시를 앵무새처럼 피고인에게 전달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특히 박정희가 군검찰이 아니라 김형욱-길재호등이 구형량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승인했다는 것은 사법체제의 근간을 철저히 무시하는 박정희의 반민주적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며 이같은 박정희의 인식이 결국 사법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인혁당사건등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당시 김형욱은 최고회의 운영위원장, 길재호는 법사위원이었으며 이들이 증권파동관련자의 구형량을 결정한 다음날인 1963년 6월 19일 오전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는 증권파동사건 결심공판을 통해 윤응상에게 징역 7년, 서재식 징역 5년, 천병규 징역 3년 6월, 강성원 5년등, 전날 김형욱등이 결정한 대로 구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 김종필의 최측근인 이영근 중앙정보부 행정차장은 김형욱등이 전날 결정한 구형량은 1년이었으나 이날 결심공판에서 3년이 구형됐으며 이는 김종필의 측근에게 지나치게 낮은 형을 구형한다는 김재춘의 항의를 박정희가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재춘은 또 이날 면담에서 김종필의 4대의혹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으며 김종필이 새나라자동차수입등을 통해 해외에 부정한 자금을 축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권파동은 워커힐사건, 파친코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등 이른바 '김종필 중앙정보부'가 공화당 창당자금마련등을 위해 저지른 4대의혹사건의 하나로 중앙정보부가 증권업자 윤응상등과 공모해 통일, 일흥, 동명등 3개 증권회사를 설립, 주가를 조작함으로써 증권시장이 마비되고 5천여명의 개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은 사건입니다.
김재춘은 이날 자유민주당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민주공화당에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김재춘은 박정희-김종필의 자문역할을 하는 김용태가 공화당 재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한일은행 전무인 김종필의 형 김종락이 공화당 정치자금 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종필은 박정희가 이끄는 차기정부하에서 김종필이 귀국하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최고회의 내부의 온건론자들은 박정희가 이끄는 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락 망명시도, 성 김 대사 아버지 김기완의 재산의혹, 걸프사 공화당정치헌금증언 사전조율,
서울지하철 리베이트 실수령자 논란등 담아
‘시크릿오브코리아’의 저자 안치용이 오늘 발간된 그의 책 ‘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타커스간, 상권 도청- 로비 312쪽,하권 부패- 망명 340쪽]을 통해 미국이 박정희집권시절에 청와대를 도청한 것은 사실이며 박정희가 타고 다니던 방탄 리무진조차 CIA가 제공한 차였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그는 미국이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 철수등에 대한 박정희의 복심을 알기 위해 청와대를 도청하다 불법대미로비사실을 포착했으나 도청사실이 밝혀질 것을 우려해 수사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포드대통령이 단안을 내려 전면수사에 착수했다며 관련증거를 공개했다.
그가 책에서 공개한 증거는 키신저등 두사람에게만 보고됐던 박정희와 미의원의 대화내용등이 기록된 1971년 하반기의 FBI정보메모, 도청발각우려에도 불구하고 포드대통령을 설득해 수사에 착수하는 과정을 밝힌 키신저의 1978년 4월 20일 미의회 증언속기록,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 정보메모작성자의 의회증언등이다.
이 FBI정보메모는 한국에 사상 처음 공개된 것으로, 청와대가 민주당에 수십만달러 헌금을 지시했다, 미국 000의원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박동선을 대미로비총책으로 임명하고 쌀중개인자격을 부여하라고 말했다는 등의 내용과 함께 극도로 민감한 정보소스를 통해 입수한 정보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지침을 담고 있다.
또 키신저는 1975년 2월 하비브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부터 한국로비가 합법적 로비가 아닌 의원매수사건이라는 보고를 받고 포드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하비브에게 추가정보수집을 지시했으며 1975년 10월 하비브가 종합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극도로 민감한 정보입수방법때문에 정보수집기관이 수사에 극력 반대하자 키신저가 포드대통령을 설득, 결싴을 받아냄으로써 1975년 11월 법무부가 전면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사진외 파일 하단 첨부- FBI정보메모 3건, 1978년 3월 21일 존 미첼 전 검찰총장 증언록, 1978년 4월 20일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 증언록]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 1978년 4월 20일 키신저 FBI메모관련 증언록 2
FBI 정보메모 내용
1971년 9월 30일
하원의원 보좌관 2명이 한국 중앙정보부와 연계돼 있다
1971년 11월 24일
박동선이 쌀중개커미션으로 하원의원에게 돈을 줬다.
박동선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지시아래 활동하고 있으나 중앙정보부의 유급 요원은 아니다.
한국정부는 미국내 미국인 및 한국인 언론인을 조종하기 위해서 큰 돈을 뿌렸다.
한국대통령관저인 청와대가 민주당에 수십만달러를 헌금하라고 지시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하원의원 보좌관은 한국중앙정보부의 조종을 받고 있다.
1972년 2월 3일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으려 했던 하원의원이 박동선이 미국내 로비활동을 전체적으로 총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쌀 구입의 에이전트로 임명돼야 한다고 박정희대통령에게 말했다
하비브대사가 박동선을 외국인 에이전트등록법에 의거, 에이전트로 등록시키려 하고 있다.
*3건 전문 모두 ‘민감한 정보소스를 통해 입수됐으므로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음
키신저 증언록 – 불법대미로비 수사착수 경위
1975년 2월 하비브 동아태차관보가 민감한 정보입수방법을 통해 한국의 의회로비가 합법적 로비가 아니라 의원을 매수하는 불법로비임을 키신저에게 보고
1975년 2월 키신저가 포드대통령에게 보고하자 포드가 추가정보 입수를 지시함으로써 하비브가 정보수집기관을 지휘, 정보수집
1975년 10월 하비브, 키신저에게 추가보고서 제출,
1975년 10월 정보수집기관이 정보입수방법의 문제로 말미암아 수사기관이첩 불가입장표명
1975년 10월 키신저가 포드대통령에게 상황설명하고 수사필요성역설해 재가받음
1975년 11월 법무부[FBI]에 정보이첩과 동시에 전면수사지시
또 박정희가 타던 방탄 리무진인 캐딜락 프리트우드 68이 미국 CIA가 제공한 차라는 충격적 사실도 공개했다. 지난 1976년 하원 정보위원회가 CIA의 수의계약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CIA가 박정희에게 방탄리무진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뉴욕타임스가 1976년 1월 27일 이를 보도하자 CIA가 뉴욕타임스 보도당일, 하원 정보위원회가 CIA와의 사전합의를 어기고 이 정보를 유출했다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 책은 그 서한등도 물증으로 제시하고 미국이 청와대뿐 아니라 박정희의 차량까지 도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외 파일 하단 첨부 - 하원 정보위원회 회의록내 CIA 항의서한, 1976년 1월 27일자 뉴욕타임스]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 1976년 1월 27일자, 하원정보위원회에 '박정희 방탄차 CIA 제공' 정보유출을 항의하는 CIA 서한
안씨는 워싱턴포스트가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왕비의 사촌인 존 리만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보좌원]으로 부터 청와대도청사실을 확인받음으로써 코리아게이트특종을 터트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책은 청와대도청사실이 미 언론에 대서특필됐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정권은 미국에 단 한마디 항의도 못하고 ‘박정희가 떨고 있다’며 제발 도청을 부인해달라고 애결복걸했던 사실도 미 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밝혀내고 이는 주권국가이기를 포기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각각 3백여페이지의 상하권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FBI정보메모[파일첨부], 박정희 리무진관련 CIA 서한[파일첨부], 박정희의 미국불신이유를 설명한 국무부 1급비밀 보고서, 청와대도청을 부인해달라는 박정희정권의 절규가 담긴 국무부 비밀전문, 박동선의 쌀커미션수표와 장부, 다이어리, 박동선의 집에서 압수된 ‘대미외교의 방침’,’대미외교’’미 국회의원 사절단 방한’’의원동향보고서’등 대미로비관련문서,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박동선 활동 평가서[파일첨부],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1962년 김종필방미계획서’, 로비자금을 받기전 파산직전에 처한 김한조의 재정상태와 로비자금을 받은 직후 돈을 물쓰듯 썼음을 입증하는 의회보고서, 백설작전과 관련한 중앙정보부 지령문, 김한조에 대한 신뢰자 무너져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망명자 439호 중정요원 김상근의 다이어리, 김상근의 복귀를 애원하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서한, 의회로비를 해명하는 김동조 전 주미대사의 사신, 박동선과 수지 박 톰슨과의 관계를 입증하는 면담메모, 박정희의 김형욱청문회증언저지작전 전말을 보여주는 중앙정보부 비밀전문, 망명자 486호 중정요원 손호영이 공개한 중앙정보부작성 ‘76년도 대미공작방안’[파일첨부],김형욱의 외화밀반입, 재산상태를 입증하는 미 관세청과 시티은행의 문건, 김형욱의 재산도피를 입증하는 은행송금전표, 1970년 김종필에게 만달러가 전달된 은행전표, 이후락과 관계된 스위스비밀계좌입금전표, 이후락 망명시도를 시시각각 보고한 국무부 비밀전문, 김기완 전 주일공사의 재산상태를 보여주는 의회보고서, 걸프사 정치헌금관련 국무부 비밀전문, 서울지하철 리베이트 수표등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80여매의 비밀문서등이 사진으로 첨부됐다
안씨는 이 같은 비밀문서를 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청문회, 하원 윤리위원회, 상원 윤리위원회등 코리아게이트를 직접 조사한 3개 청문회의 보고서와 부속책자는 물론 1975년 하원 외교위 인권청문회, 1976년 하원 정보위원회, 1978년 상원 정보위원회, 1975년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 1981년과 1982년 하원의 한국쌀도입관련 청문회의 보고서와 부속책자, 그리고 코리아게이트관련 재판서류등을 통해 입수했다고 밝혔다.
안씨는 프레이저청문회의 경우 종합보고서가 1권이지만 증거와 증언등을 담은 부속책자가 10권, 4천페이지에 육박하는등 청문회마다 박정희시대 한미관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증거서류가 각각 수백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960년대후반부터 1970년대중반까지 박정희 정권의 대미로비에 나선 배경과 로비의 실체,그에 따른 중앙정보부 요원의 망명, 김형욱의 청문회증언내용과 김형욱 증언저지 실패로 망명한 중정요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김한조로비와 관련한 중앙정보부의 지령, 김형욱 증언저지를 위해 중정본부와 미국내 중정요원이 주고받은 비밀전문등도 모두 공개했다. 또 이후락의 스위스 비밀계좌와 망명실패기, 주한미국대사 아버지의 비밀등도 은행서류와 국무부 비밀전문, 의회보고서등을 통해 밝혔다.
또 공화당에 대한 걸프사의 4백만달러 헌금, 걸프사의 증언에 대해 청와대가 사전에 증언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최근 공개된 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입증한다. 서울지하철 객차와 관련한 리베이트의 실체도 관련 수표를 통해 하나하나 짚어간다.
김대중납치사건당시 미국내 중정책임자인 이상호 주미공사를 비롯해 미국내 중정요원 대다수가 DJ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날, 또는 비슷한 시기에 근무지를 동시에 이탈, 미국에서 출국했다가 납치사건이후에 미국에 돌아옴으로써 FBI가 일본요원뿐 아니라 미국요원들도 DJ 납치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968년 1월 발생한 청와대기습사건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대응으로 박정희가 미국을 불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박정희정권 18년동안의 박정희와 미국과의 관계를 본다면 1968년이 가장 큰 전환점이며 이때 시작된 갈등이 증폭되면서 1979년 박정희시해로 마무리된다고 지적햇다. 따라서 박정희를 암살하겠다는 1968년 1월 북한의 청와대기습작전은 1979년 10월 12년만에 사실상 작전성공으로 마무리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을 불신하면서 삼선개헌, 유신등을 추진했고 이는 미의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킴으로서 원조등이 줄어들자 행정부만을 상대로 한 정상적인 외교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 의회를 직접 설득하겠다며 로비에 나섰다고 대미로비배경을 밝혔다.
또 1970년대 재미공관 공직자중 많은 수가 근무가 끝나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재현 주미공보관장은 가장 극단적 방법으로 망명을 택했고 다른 공직자들은 귀임발령이 나면 사표를 내는 식으로 미국에 잔류했다는 것이다. 이중 일부는 미국에 살기 위한 방편으로 청문회등에 출석, 한국을 비방하기도 했음을 증언록등을 통해 밝혀냈다. 이 책은 1973년 망명한 고위공직자 이재현이 1975년 인권청문회, 1977년 상하원의 코리아게이트청문회에 단골 출석했다며 이재현이 유신정권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망명이라는 험로를 택했다고 하지만 주변정황은 그의 진의를 의심케한다고 지적했다. 프레이저청문회가 이재현이 망명한지 4년이 지났음에도 영주권을 받지 못한 것은 행정부의 잘못임을 지적하는 내용을 보고서에 남겨 준 것은 그의 청문회 출석이유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 책은 한국의 안보현실상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현실이 그렇다면 미국의 한국정책결정과정에 반드시 한국이 참여해야 한다는게 박동선의 지론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동선이 이권만 챙긴 단순한 쌀장사정도로 과소평가됐지만 쌀이권의 이면에 한국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계거물들이 있음을 정확히 꿰뚫어본 준비된 로비스트라고 평가했다. 한국에 쌀을 많이 수출해야 의원 자신들의 이권도 확보되기 때문에 한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역학관계를 박동선이 일찌감치 눈치챈 것이다. 대통령, 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각료들과 미의회 지도자등 박동선의 거미줄인맥은 눈부실 정도라고 밝혔다. 이 책은 미의원들의 증언과 증거들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 있으며 박동선로비의 절반이 쌀이권로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박동선의 집에서 압수된 로비관련 자필보고서, 박동선의 로비활동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평가보고서등도 공개했고 1971년 DJ가 국회에서 쌀수입에 따른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박동선이 DJ 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음도 밝혀냈다.
자칭 한국을 제2의 한국동란에서 구출했다고 말하는 또 한명의 로비스트 김한조는 로비자금 대부분을 착복한 사람이었음을 관련증거를 토대로 하나하나 입증하고 있다. 로비에 나서기전 은행예금잔고가 65달러였던 김한조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고 자기를 과대포장하며 수시로 돈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60만달러를 받은 김한조는 경비사용내역이라며 120달러짜리 식당 영수증 하나만을 제시했고 하원의원 5명이 자신의 전위대리고 말했지만 그중 3명은 얼굴도 모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영희 중앙일보 특파원이 김한조의 됨됨이를 정확히 간파하고 박정희가 김한조 때문에 쩔쩔 매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 백설작전으로 명명된 김한조로비와 관련된 중앙정보부의 지령문, 김한조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439호 중정요원 김상근의 다이어리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박정희가 김한조에게 이용당한 것은 박근혜가 사이비목사 최태민에게 이용당한 것과 닮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욱은 코리아게이트관련 청문회에서 박정희의 사생활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높였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청문회는 김형욱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 그의 재산등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거액송금서류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특히 김형욱 설득에 나섰다가 망명한 486호 중정요원 손호영이 공개한 중앙정보부 비밀전문은 숨막히는 김형욱 증언저지공작의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전했고 대북, 대주재국, 대교포공작등으로 분류된 중앙정보부작성 ‘76년도 대미공작방안’도 공개했다. 특히 박정희가 김형욱의 의회증언을 극력 저지한 것은 ‘최고권력자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손호영의 의회증언과 함께 김형욱의 증언에서 최고권력자의 사생활을 제외시키는 ‘독빼기’가 성공함에 따라 증언저지에 나섰던 민병권등은 김형욱의 의회증언에도 불구하고 문책은 커녕 무임소장관에서 교통부장관으로 영전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책은 성 김 주한미국대사 아버지 김기완에 대해 주일공사라는 직책으로 말미암아 김대중 납치사건에 운명적으로 가담한 불운한 중정요원이라고 평가한다. 역설적으로 엄청난 비밀공작에 참여했다는 것은 김기완에게 안전판으로 작용했고 돈문제와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소문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책이 전한 김기완의 재산에 관한 프레이저보고서내용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걸프가 공화당에 4백만달러를 헌금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책이 전한 내용중 더욱 큰 충격은 박정희가 걸프헌금은 나는 모르는 일이며 김성곤이 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걸프의 의회증언에 앞서 걸프에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국무부전문은 박정희가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을 잘 보여준다. 또 서울지하철 객차도입당시 일본종합상사들이 리베이트로 지급한 수표를 공개하고 당시 권력핵심은 물론 국회에서조차 밀려난 김성곤에게 이 수표가 전달됐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걸프의 정치헌금과 서울지하철 객차 리베이트가 밝혀졌을때는 김성곤은 이미 숨진 뒤였다며 그래서 김성곤이 희생양이라는 김형욱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분석했다.
안씨는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등이 하버드대에서 출판한 ‘박정희시대’가 긍정적인 면에 치중한 ‘화장한 박정희시대’라면 이 책은 그 이면을 있는 그대로 담은 ‘생얼굴의 박정희시대’라며 이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 대미로비의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때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지난 3월 '시크릿오브코리아 대한민국 대통령-재벌의 X파일'을 출간했고 지난 2009년 8월말부터 시크릿오브코리아 라는 블로그를 통해 MB 사위 조현범의 하와이부동산 불법매입, MB 사돈 조현준, 조현상의 미국 부동산 불법매입, 노무현 대통령의 딸 노정연의 13억원 환치기등을 밝혀내는등 전현직 대통령의 친인척과 재벌들의 비리를 파헤쳤다.
스티븐스대사가 리비아 뱅가지에서 영사관 직원들을 모두 대피시킨뒤 끝까지 남아 비밀문서를 파기하다 순직했다는 것은 월남전당시 주월한국대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을 주미대사관옥상 헬리포트에서 헬기로 철수시킨뒤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월맹에 체포돼 5년간 옥고를 치른 이대용주월공사를 연상케 합니다
철저한 사명감으로 공직에 임했던 스티븐스 대사, 이대용 공사, 두 분의 행동은 영원히 후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스<사진> 미국 대사를 비롯한 미국인 4명이 사망한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에 대한 공격은 두 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에 대한 공격은 지난 11일 오후 10시쯤 시작됐다. 무장 세력은 약 15분 만에 영사관 외곽 경계를 뚫고 내부 건물에 진입한 뒤 총을 쏘며 건물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스티븐스 대사는 미 국무부 정보 담당인 션 스미스,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보안 관계자 한 명과 함께 기밀문서를 파기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휴대용 로켓포가 건물 지붕을 때리면서 연기와 불길이 솟았다고 CBS방송이 13일 전했다.
스티븐스 대사와 함께 있던 보안 관계자는 일단 건물 밖으로 나온 뒤 다른 보안요원들을 데리고 현장에 돌아왔다. 스미스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들은 건물 내부에 연기가 자욱한 데다 불길이 거세져 스티븐스 대사를 찾지 못한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나중에 현지인들에게 발견돼 벵가지 의료센터로 이송됐지만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사이 약 40명의 영사관 직원은 사복을 입은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아 도로와 연결된 쪽문을 통해 영사관에서 빠져나온 뒤 1.6㎞ 정도 떨어진 안가(安家)로 이동했다.
두 번째 공격은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된 지 수 시간 뒤 안가에 피신한 영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과 리비아 보안군이 막 도착했을 때 시작됐다. 상대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안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영사관 내부에 '첩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와니스 엘샤리프 리비아 내무부 차관이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두 번째 공격에서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전직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요원 글렌 도허티와 타이론 우즈가 사망했다. 전직 네이비실 요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도허티는 지난달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내전 동안 전국 각지에 흩어진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등을 수거해 폐기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영사관을 공격한 무장 세력이 소총·기관총과 휴대용 로켓포로 중무장했다고는 하지만 영사관이 불과 15분 만에 함락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사관에는 30여명의 경비 병력이 있었고,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9·11에 맞춰 테러가 발생할 경우를 상정해 대비훈련까지 끝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증인들에 따르면 영사관의 현지인 경비대는 애초부터 영사관을 보호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사관 근처에 사는 회계사 알리 페토리는 "보안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공격이 시작되자) 모두 달아나 버렸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스가 14일 전했다. 현지 치안 업무를 맡고 있는 리비아 방패여단의 위삼 부흐메이드 사령관은 "경비병들 스스로도 영화로 인해 기분이 상했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영사관 공격을 방조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가 파기하려고 했던 기밀문서 가운데 일부는 무장 단체의 손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리비아 내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안가로 사용하는 건물 위치와 미국에 협조적인 리비아인들의 명단 등이 포함돼 있어 자칫 이들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인디펜던스가 전했다.
미국의 한 통일교 전문 사이트는 문선명 총재의 사망전날인 지난 2일 유부녀인 문총재의 딸 인진씨가 통일교 신도인 한 외국인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지난 5월 1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병원에서 혼외 아들을 출산했다며 출생증명서까지 공개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이 사이트는 출생증명서를 자신들의 사이트는 물론 SCRIBD에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단종교를 추적하는 사이트로 통일교에서 탈퇴한 신도등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사이트는 산모와 외국인 남성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의 외국인 통일교 신도들 사이에는 문총재의 딸 혼외출산설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http://howwelldoyouknowyourmoon.tumblr.com/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행한 이 출생증명서는 5월 1일 낮 12시 45분 문총재의 딸 I씨가 노르웨이출신 남성과의 사이에서 남자아이를 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증명서에는 산모가 한국 용산구에서 1965년 8월 14일 출생했으며 이름이 티아라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또 주거지로 매사추세츠주 렉싱턴의 한 주택이었습니다. http://www.scribd.com/doc/105244622/In-Jin-Moon-Ben-Lorentzen-Son-Auston-Birth-Certificate]
인진씨는 문성명 총재의 둘째딸로 박모씨와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통일교가 최근 각 신문에 게재한 장례관련광고의 유족명단에 이들 부부와 5명의 자녀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인진씨의 남편 박씨는 박보희씨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또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산모의 생일은 인진씨의 생일과 일치했으며 출생지인 서울 용산구는 통일교의 본거지인 용산구 한남동 통일교 연수원이 있는 곳입니다.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주거지또한 전화번호부 확인결과 인진씨와 그 남편 박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의 전화번호부인 whitepage.com에는 이 집에 I씨와 남편 박씨는 물론 5명의 자녀가 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은행에 버젓이 계좌를 개설했으며 미국이 지난 2005년 유엔과 공동으로 북한계좌에 대해 금융제재를 실시한 이후에도 이 계좌가 폐쇄되지 않았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또 지난 2007년까지 HSBC 멕시코에 북한인 계좌 16개가 개설돼 있었으며 예금잔액은 2백34만6천달러였던 것으로 미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상설조사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상원 국토안보위 상설조사위원회는 오늘 '돈세탁-마약-테러자금에 대한 미국의 취약점'이란 청문회를 열고 HSBC의 위반사례를 상세히 지적하고 대책을 논의햇습니다
오늘 청문회와 동시에 공개된 340페이지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조선무역은행[FTB]이 HSBC의 미국법인인 HBUS, 쉽게 말하면 미국내에서 영업하는 HSBC에 계좌를 개설하고 있었으며 이 계좌는 지난 2010년 4월 28일까지 폐쇄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 계좌는 지난 2007년이후에는 단 한번도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HSBC 멕시코도 지난 2005년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부터 2년여가 지난 2007년까지 북한계좌를 폐쇄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HSBC의 멕시코법인인 HSBC 멕시코[HBMX], 즉 멕시코에서 영업하는 HSBC는 지난 2007년 5월 내부보고서를 통해 북한인고객명의로 된 달러화 전용계좌가 9개 있으며 그 잔액은 4만6천달러라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인고객명의로 된 달러화및 페소화 통합계좌가 7개 있으며 잔액은 미화로 2백30만달러라고 명시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주석을 통해 북한인고객 92명이 페소화전용계좌 137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잔액은 69만7천달러정도였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는 노 전 대통령이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오로라씨에스를 설립하고 주식을 인수했다"며 "이후 일부 주식이 재우씨의 아들인 호준씨 등의 명의로 바뀌었으나 재우씨가 계속해서 전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호준씨 등을 실제 소유자로 볼 수 없으므로 국가의 압류ㆍ매각명령에 대해 이들의 이의청구는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앞서 노 전 대통령이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120억원을 재우씨에게 맡겼다며 재우씨가 국가에 반납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2001년 확정했다.
이어 국가는 재우씨가 이 돈으로 오로라씨에스를 설립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며 주식 압류ㆍ매각명령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이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오로라씨에스 주식 60%의 명의를 갖고 있는 호준씨 등은 자신이 실질주주라며 재우씨를 실질 주주로 보고 내려진 압류ㆍ매각명령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이의소송을 냈다.
앞서 노 전 대통령도 오로라씨에스의 실질 주주가 동생이나 조카가 아닌 자신이라며 주주지위확인 등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한 바 있다.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 카페에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총재의 법정진술서가 지난 18일 공개됐습니다
통일교 재산싸움으로 잘 알려진 여의도 파크윈 재판과 관련해 문선명 총재가 지난 1월 26일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라고 합니다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 카페에 공개된 문서에 진술인 이름이 ***으로 돼 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진술서 작성자를 알 수 있습니다
1954년 5월 1일 통일교를 창시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돼 있으므로 그 본인은 문선명 총재입니다
진술서
본인
***은 1954년 5월 1일 통일교를 창시하고, 1963년 10월 28일 통일교 활동을 지원하고 통일교회자산을 등록 관리하기
위하여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이라는 재단법인 (이하 ‘유지재단’이라고 합니다)을 설립하였습니다.
본인은 1971년경 박보희 박사를 통해 미국에 통일교를 지원하는 조직으로,
Unification
Church in International (이하 UCI라 합니다)을 설립하였습니다
유지재단은 물론이고 UCI역시 모두 통일교의 활동을 위하여 존재하는 조직이었고, 이러한
연유로 수십년간 전 세계 통일교로부터의 헌금을 통해 그 사업이나 활동을 진행하여 왔습니다.
곽정환은 본인의 3남인 문현진의 장인이자, 최근까지 오랫동안 통일교 내에서 본인이
가장 신임하였던 자로서, 통일교 세계회장 및 선교본부장, 천주평화연합
세계회장, 초종교 초국가연합 회장, 워싱턴타임즈 회장, 선문축구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선문학원 이사장, 가정당 총재, 유지재단 밎
UCI이사장 등 주요직책을 두루 역임하였습니다.
곽정환은 법적인 직위 여하에 불구하고
사실상 본인의 대행자로서 많은 중요한 업무를 실질적으로 책임졌던 자입니다.
본인은 여의도 세계선교본부 건립사업과
센트럴시티, 일성건설 등 주요회사 인수도 곽정환에게 모두 일임하여 진행한 바 있습니다. 특히 곽정환은 통일그룹의 유동성위기로 인해 주요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유지재단 이름으로는 세계선교본부 건립이나 센트럴시티 등 인수를 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서 외국계 이름으로 이들 사업을 진행한다고 본인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여의도 세계선교본부 부지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통일그룹 계열사들에게 담보로 제공되어, 경매에 넘어갈 처지에 있을 때에도 곽정환은 외국회사들
이름으로 경매를 막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통일교 자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허락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외국계회사들은 본인은 잘 알지 못하며, 다만
곽정환이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Y22를 비롯한 외국계 회사가, 통일교와 상관없는 외국계 투자자라고 하는 것은 본인이 전혀 보고 받지 못한 사실입니다. 더구나 2006년 4월 26일 Y22를 UCI에 기증한 사실도 본인은 전혀 보고받지 못하였으며,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곽정환으로부터 여의도 세계선교본부 건립산업의 소유주는 통일교 한국 유지재단이며, 다만 외부에 이를 드러낼 수 없어 외견상으로는 외국계 회사가 소유주인 것처럼 되어 있다고 보고 받았을 뿐입니다.
본인은 2005년 1월 초순 세 아들에게 통일교의 각 부분을 나누어 역할을
분담하여 준 바가 있습니다. 즉 경제권에 있어서 3남인
현진에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을, 4남인 국진에게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양을, 그리고 7남인 형진에게는 종교적 차원에서 전세계 통일교회를 책임지도록
역할 분담을 해 주었습니다. 다만 여의도 세계선교본부 건립사업은 참부모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통일교의
본부를 건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유지재단의 일이었지만, 본인의 대행자로서 곽정환이 지난
수년간 해오던 것이었으므로 곽정환이 계속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큰 사업이 하늘의 천법과 섭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섭리의 실행을 위한 조치를 담당한 자는 마땅히 지상의 법과 질서에 맞게 진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006년초 본인은 여의도 세계선교본부사업과 관련하여 곽정환의 지시를 받아 일하고 있던
폴 로저스가 섭리적 뜻에 따라 동양을 책임 맡은 자이자 세계선교본부건립사업의 소유주인 유지재단의 이사 문국진에게 성실한 보고는 고사하고 오히려 매우 무례하게 행동한 사실을
보고받고 2006년 2월12일 안시일 훈독회에서 곽정환을 크게 질책하였으며 여의도
세계선교 본부 건립사업은 문국진에게 이관하여 진행하도록 곽정환에게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곽정환은 세계선교 본부의
건립사업에 수천억원의 세금 (기반시설 부담금)이 부과될
수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계속 프로젝트를 맡아야 한다고 하여 2006년 4월 24일 미국 뉴욕 이스트가든(공관)에서 본인부부와 현진, 국진, 본인의 보좌관인 김효율과 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부록하면 이 자리에서 현진 자신이 한국의
유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본인이 2005년초에
이미 정해준 사항과 다른 것이어서 당초 계획대로 문국진이 유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는 것으로 정해주었습니다. 이어
문현진이 세계 본부건립 사업에 부과되는 수천억원의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곽정환이 그 사업을 계속 관리하여야 한다고 하여,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여의도 세계본부
개발 회사의 소유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그 소유권을 어디로 옮겨야 한다는 것과 같은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또한 본인이 그러한 내용을 지시한 적도 없습니다.
본래의 계획대로 세계선교본부를 건립하여
참부모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통일교회와 이를 지원하는 유지재단에 귀속되도록 하면 되는 것이므로 적어도 섭리적으로는 이러한 변경을 초래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전세계 모든 통일가의 염원에 따라
그 섭리적 중심인 대한민국의 여의도 성지에 세계선교본부를 짓고 이를 통해 통일교의 백년대계를 섭리적으로 안착시키는 것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당시 곽정환이 그렇게 강조했던 세금관련 보고가 사실과는 동 떨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세계선교본부는 어느 특정인에
의해 사적으로 소유되거나 처분되어서는 아니되는, 통일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섭리적 공적 자산입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통일교인들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헌금을 하였고, 마침내
오랜 염원과 기도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고 본인은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2007년 봄 세계선교본부 기공식 때 곽정환의 감격 어린 보고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발 대행사인 Y22가 우리 것이고 99년이 아니라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돌려준다고 곽정환은 본인에게 몇 차례 보고하였으며, 본인 역시 지상의 모든 건물을 토지 소유주인 한국유지재단에 궁극적으로 귀속케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지, 토지 임대료를 받고자 함은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것은 섭리적으로 차라리 나대지로 두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곽정환이 어떻게 이러한 섭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된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각 나라의 공적 자산을 궁극적으로 각
나라에서 책임지고 소유 관리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고 타당하다는 것이 본인과 우리 통일교인 전체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참부모의 나라이자 전세계 통일교의 중심국가인 한국에 지어지는 통일교 세계선교본부는 당연히 한국에 있는 유지재단이 소유, 관리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곽정환은 본인과 전체 통일교인의 염원과 뜻을 저버리고, 세계선교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세운 회사의 소유권을 임으로 UCI로
넘기더니, 이제 와서는 이를 팔아치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Y22를 비롯한 외국계 회사는 세계선교본부를 짓기 위한 법적인 틀에 사용되도록 한 것이지, 공적
자산을 곽정환이 마음대로 도둑질 해가는 도구로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 통일교는 매우 힘든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본인이 수십년간 최 측근으로 믿고 의지하던 곽정환이 본인을 기망하고, 나아가 본인의 3남 문현진을 내세워 UCI를 통일교로부터 앗아가고, 섭리사적으로 소중한 수많은 공적 자산을 팔아 치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의도 세계선교본부 건립의 희망마저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이에 본인은 2010년 5월경 ‘참부모님 선포문’을
통해 문현진과 그 장인된 곽정환은 미국 UCI와 여의도 세계선교본부를 포함한 모든 공적자산을 반환하라고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자산은 본인 개인의 것도 아니고, 문현진이나
곽정환의 것도 아닙니다. 전체 통일교인들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 입니다.
본인은 통일교의 모든 자산을 때와 장소에
맞게 각각 책임자를 세워 공적 자산으로써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곽정환이 그 아들과 사위들로 그룹을 만들어 UCI를
점령하고 통일교의 자산을 사유화하는 행태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허나 이는 하늘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어서 뉘우치고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하늘로 되돌려 용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포문을 냈던 것이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 어서 뉘우치고 통일가의 품으로
돌아오기 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신고하지 않고 취득한 외국 부동산을 몰수ㆍ추징하도록 한 구 외국환거래법 제30조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헌재는 “취득하려는 해외부동산에 대한 자발적 신고는 국제수지의 균형과 통화가치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라며 “미신고 해외부동산 취득을 방지하고 그 취득에 관한 경제적 유인을 금지해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미신고 해외부동산 취득행위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법률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재산권 등 사익이 국제수지의 균형과 통화가치의 안정을 통한 건전한 외국환거래질서 확립이라는 공익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없으므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 부사장은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외국환은행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 외국환거래법을 어기고 2008년 8월 미국 하와이주 호눌룰루의 콘도를 약 262만 달러(한화 약 26억원 상당)에 구입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SHANGHAI, May 23, 2012 -- /PRNewswire/ --Hanwha SolarOne Co., Ltd. ("SolarOne" or the "Company") (Nasdaq: HSOL), a vertically integrated manufacturer of silicon ingots, wafers and photovoltaic cells and modules, today announced that it will release its unaudited financial results for the first quarter of 2012 before the market opens on Wednesday, May 30, 2012. On the same day, management will host a conference call to discuss the results at 8:00 AM Eastern Daylight Time (8:00 PM Shanghai time).
Conference Call
Mr. Ki-Joon HONG, Chairman and CEO; Mr. Hee Cheul KIM, President, Mr.Dong Kwan KIM, Chief Strategy Officer; and Mr. Jung Pyo SEO, Chief Financial Officer, will discuss the results and take questions following the prepared remarks.
The dial-in details for the live conference call are as follows:
- U.S. Toll Free Number:
+1 866 519 4004
- U.S. New York local number:
+1 718 354 1231
- International Dial-in Number:
+65 6723 9381
- China Dial-in Number:
800 819 0121
400 620 8038
Passcode: HSOL
A live webcast of the conference call will be available on the investor relations section of the Company's website at: www.hanwha-solarone.com. A replay of the webcast will be available for one month.
A telephone replay of the call will be available for seven days after the conclusion of the conference call. The dial-in details for the replay are as follows:
Hanwha SolarOne Co., Ltd. (NASDAQ: HSOL) is a vertically-integrated manufacturer of silicon ingots, wafers, PV cells and modules. Hanwha SolarOne offers high-quality, reliable products and services at competitive prices. Partnering with third-party distributors, OEM manufacturers, and systems integrators, Hanwha SolarOne serves the utility, commercial, government, and residential markets. The Company maintains a strong presence worldwide, with employees located throughout Europe, North America and Asia, and embraces environmental responsibility and sustainability, with an active role in the voluntary photovoltaic recycling program. Hanwha Group,Hanwha SolarOne's largest shareholder, is active in solar project development and financing, and plans to produce polysilicon in the future. For more information, please visit:http://www.hanwha-solarone.com.
김경준이 다스에게 백40억원을 송금한 스위스은행의 계좌내역을 공개하라는 미국법원 명령을 11개월째 이행하지 않음으로서 백40억원송금과정에서 바로 이 계좌를 둘러싼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더욱 힘을 얻고 있습니다
3백71억원 승소판결을 받은 옵셔널벤처스도 김경준측으로 부터 계좌내역을 받기 위해 지난 14일에도 '김경준은 크레딧스위스뱅크에 편지를 보낸 사실이 없다'는 한국 법무부의 해명서를 법원에 제출하는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엄청난 비밀을 가진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이 지난해 2월 BBK사건과 관련, 다스에게 백40억원을 송금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같은해 6월 20일 김경준에게 스위스은행의 알렉산드리아계좌 상세내역을 30일내에 옵셔널벤처스에 제공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
그러나 김경준은 11개월이 지난, 오늘 현재까지 '법무부가 자신의 서신발송을 저지하고 있다'며 법원의 스위스계좌공개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방법원은 김경준이 갖가지 이유를 대며 법원의 스위스계좌공개명령을 이행하지 않자 지난해 11월 22일 김경준은 법원명령을 이행할 때까지 매 3주마다 진행상황을 보고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
이에 따라 김경준은 지난해 12월 26일 자신이 스위스은행에 보냈다는 육필편지를 법원에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1월 15, 2월 7일, 2월 28일, 3월 20일, 4월 10일등 매 3주마다 스위스은행에 편지를 보냈으나 스위스은행으로 부터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편지사본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김경준은 지난해 12월 26일 첫 편지에서는 스위스은행의 답신이 지연되고 있다고 법원에 밝혔으나 올해 1월 15일 편지에서는 자신이 스위스은행에 보낸 편지가 교도소에서 발송되지 않는 것 같다며 한국 법무부측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보고서를 제출했었습니다.
이처럼 스위스은행 계좌가 공개되지 않는 직접적 이유는 첫째, 김경준의 답변대로 스위스은행이 자신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거나. 둘째, 김경준이 스위스은행에 보내는 편지를 발송했으나 한국법무부가 편지발송을 막고 있거나, 세째 김경준이 아예 스위스은행에 계좌내역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가능성등 세가지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스위스은행이 은행계좌 주인인 김경준의 요청을 거부할 수는 없으므로 첫번째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또 한국교도소가 자신이 스위스은행에 보낸 편지의 발송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두번째 이유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법무부는 지난 2월 김경준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김경준측이 크레딧스위스은행에 편지를 발송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고 옵셔널벤처스측은 법무부 자료를 공증받아 지난 14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한국 법무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김경준이 스위스은행에 계좌내역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결국 김경준은 미국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력을 다해서 스위스은행 계좌의 공개를 저지하고 있으며 이는 이 알렉산드리아 계좌에 BBK를 둘러싼 엄청난 비밀이 묻혀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2월1일 김경준이 다스와의 협상을 통해 다스에게 백40억원을 돌려주고 그뒤 에리카 김이 자진 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은 것을 둘러싸고 뒷거래설이 나돌았으며 시크릿오브코리아는 그 뒷거래가 바로 이 계좌와 관련됐을 것이라고 밝혔었습니다만 김경준이 이 계좌공개를 극력 저지함으로써 그 같은 추정에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경준의 스위스계좌 공개 거부는 표면적으로는 김경준의 결사저지로 나타나지만 이는 김씨만의 뜻이 아니라 이 계좌가 공개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을 또 다른 관련자들의 입김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당사자들이 '이심김심'으로 이 계좌 공개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경준이 스위스은행에 개설한 '알렉산드리아'명의의 계좌에는 3천만달러 상당이 입금돼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지난해 2월 다스에 백40억원[약 천3백만달러]를 송금함과 동시에 스위스 검찰이 계좌동결을 해제함으로써 얼마가 됐든 간에 나머지 돈을 김경준이 합법적으로 인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리카 김은 김경준측과 다스과 백40억원 송금에 합의할 시점인 2010년 11월말, 자신의 집을 지킬수 있다는 모종의 확신을 갖고 4년간 체납했던 저택에 대한 재산세를 한꺼번에 냈으며, 지난해 2월 25일 한국에 자진귀국,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방법원이 백40억원 송금사실을 알고 전부 조사를 시작하자 나흘만에 파산신청을 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1일 김경준의 스위스계좌에서 다스로 백40억원이 송금된 직후부터 에리카 김이 한국에 귀국한 2월 25일사이에 이 계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계좌의 거래가 밝혀지는 순간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지만 김경준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정확히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이를 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호종금과 마이애셋자산운용등이 지난 2009년 1억5천만달러에 매입했던 뉴욕 맨해튼 AIG빌딩을 지난해 12월말 2억6천5백50만달러에 매각, 1억1천5백50만달러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뉴욕시 등기소 조회결과 금호종금[최대주주:우리사모투자전문회사]은 영우앤어소시에이츠등과 특수목적법인 샨이글사를 설립, 지난 2009년 8월 26일 뉴욕 맨해튼 월스트릿의 AIG 빌딩 본관[66층]과 별관[19층]등 2개 건물을 샨이글사명의로 1억5천만달러에 매입했었으며 지난해 7월 AIG 별관을 두개 건물[지번]로 분할, 뉴욕시 승인을 받은 뒤 본관과 별관등 3개건물을 지난해 7월부터 12월말까지 3차례에 걸쳐 모두 2억6천5백50만달러에 매각했습니다. 금호종금은 부동산 투자금 대부분을 마이애셋자산웅용주식회사에 부동산펀드를 설립, 조달했었으며 새마을금고중앙회등이 이 펀드에 투자했었습니다.
[AIG빌딩 매입증서 원문파일 하단 첨부]
AIG 빌딩 매각내역을 등기서류를 통해 살펴보면 샨이글사는 맨해튼 70파인스트릿의 66층짜리 AIG 본관건물[41BLOCK 1LOT]을 지난해 12월 22일 메트로로프트매니지먼트사에 2억5백만달러에 매각하고 올해 1월 3일 등기를 마쳤습니다. 이때 매도자를 대표해 샨이글사의 매니저자격으로 김대현씨가 서명했습니다. [AIG빌딩 매도증서 원문파일 하단 첨부]
샨이글사는 이 빌딩 매도증서에 서울 여의도 마이애셋자산운용으로 샨이글사 주소를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샨이글사는 별관매각에 앞서 지난해 4월 7일 뉴욕시에 맨해튼 72월스트릿의 19층짜리 AIG별관건물[40BLOCK 1LOT]을 두개 지분으로 분할해 달라고 요청, 같은해 6월 29일 승인을 받음으로써 이 별관은 73파인스트릿[40BLOCK 1001LOT]와 72 월스트릿[40BLOCK 1002LOT]로 나눠졌습니다. [AIG별관 지번분리 승인서류 원문 하단 첨부]
AIG 별관 1 매도증서
AIG 별관 2 매도증서
샨이글사는 AIG별관 건물중 73.3%를 차지하는 72월스트릿[40-1002]건물을 지난해 7월 12일 4천6백만달러에 베스트워크홀딩사에 매각했으며 매도자자격으로 이상만 마이애셋 부동산본부 팀장이 서명했습니다. 또 AIG별관 건물중 26.7%를 차지하는 73파인스트릿[40-1001, 19층전체건물증 서쪽부분 8층까지]건물을 지난해 10월 27일 1천4백50만달러에 베스트워크홀딩사에 팔았으며 매도자 자격으로 권세현씨가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IG별관 2개동 매도증서 원문파일 하단 첨부]
정리하자면 금호종금과 마이애셋등은 AIG본관 건물을 지난해 12월 22일 2억5백만달러에, AIG별관건물 2개동은 지난해 7월과 10월 6천50만달러에 매각하는등 AIG건물 전체를 2억6천5백50만달러에 매각, 1억1천5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세금-법률비용등 미포함]
금호종금등은 또 AIG 본관 매각때 6백20만달러, AIG별관 2개동 매각때 백84만달러등 약 8백5만달러의 양도세를 뉴욕시와 뉴욕주와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호종금은 지난 2009년 8월 컨소시엄을 구성, 운영비포함 2천4백억원[2억달러상당]을 조성해 1억5천만달러에 AIG빌딩을 매입했었습니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7월 금호종금이 AIG별관을 매각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IG별관은 지번이 분할된뒤 지난해 7월과 10월 각각 매각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금호증금과 마이애셋등은 AIG 빌딩을 매입 2년만에 매각함으로써 70%이상의 수익[제세공과금-법률비용등 제반비용미포함]을 올렸습니다만 이 부동산펀드 투자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수익금이 돌아갔는지 굼금합니다
지난 3일 오후 밀항을 위해 배에 타기 직전 해경에 체포된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은 조직폭력배의 도움을 받아 밀항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TV조선은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 세 명이 김 회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포함, 김 회장의 밀항을 도운 조직폭력배의 모습이 담긴 CC(폐쇄회로)TV 화면을 단독 입수해 9일 보도했다. 김 회장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 아닌 필리핀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TV조선의 보도내용.
미국이 지난해 미국내 스파이활동을 적발하기 위해 모두 1,745건의 감청영장을 신청했으며 법원은 단 한건의 감청영장도 기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30일자로 조셉 바이든 연방상원의장에게 보낸 '2011년 방첩활동보고서' 통해 지난 1978년 제정된 '외국정보기관 감시법'과 2005년 제정된 '애국법'에 근거해 미국벙부기관이 스파이활동 감시를 위해 지난해 모두 1,745건의 감청영장, 전자감시영장등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는 이 보고서에서 지난해 외국정보기관감시법원[FISC]에 물리적 감시, 전자감시등을 포함해 모두 1,745건의 영장을 신청했으며 이중 1,676건은 전자감시[감청등]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외국정보기관감시법원은 1,676건의 전자감시영장중 정부가 스스로 영장을 철회한 2건을 제외하고는 단 한건의 영장도 기각하지 않고 백%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FBI는 애국법의 NSL[국가안보문서]조항에 의거, 미국인 1만6,511명에 대한 신원조회를 실시했다고 법무부는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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