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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09. 9. 1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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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남편 아닌 예술가 김진규의 고뇌 담고 싶었죠"

'내 운명의 별 김진규'로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받은 김보애씨
당시 배우 참고증언 듣고 영화 관련 기록까지 확인
"연기 열정 놀라웠던 배우 김진규 예술관 세웠으면…"

"나 자신이 김진규를 14년 세월을 부대끼며 살았던 남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로서의 김진규, 밤새 대본을 외우고 손수 화장을 하며 하루에도 몇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했던 그의 고뇌를 담고 싶었습니다."

'2009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보애(72)씨는 고희의 나이가 무색하게 청바지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김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훌륭한 작품이 많았을 텐데 정말 내 글이 대상으로 뽑힌 게 맞냐"면서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김보애씨는 김진규가 전 부인이자 '한국의 그레타 가르보'로 불린 당대의 여배우 이민자와 이혼한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어렵게 살던 시기에 그를 만나 열아홉에 결혼한다. 두 사람은 아이 넷을 낳았으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이혼했다. "남편은 술만 먹으면 손찌검을 했어요. 여자 관계도 복잡했었고." 이후 김씨는 음식점을 경영하며 4남매를 키우고, 김진규는 영화제작자와 감독으로 활동하다 혈액암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김보애씨는“나이 먹으며 눈물이 완전히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이번 논픽션을 쓰면 서 밤마다 무던히도 울었다”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김씨는 "남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배우로서 김진규의 열정은 정말 놀라웠다"고 누차 강조했다. 《벙어리 삼룡》을 찍을 땐 집에 와서도 벙어리 흉내를 냈고, 산에서 구르는 신을 찍으며 허리를 크게 다쳐 평생 고생했다. 이번 논픽션을 쓰기 위해 만난 고(故) 유현목 감독(지난 6월 작고)은 "누가 뭐래도 배우는 김진규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남현 박암 장동휘 이민자 박노식 도금봉 최무룡 같은 당대의 배우들과 신상옥 편거영 임원식 등 유명 영화감독들이 수시로 언급되는 김씨의 글은 자연스레 한국 현대영화계의 풍경을 보여준다. 주연급 배우들이 싸구려 여관방에서 잠을 자고, 촬영 현장에서 감독에게 두들겨 맞으며, 제작자에게 끌려 다니다시피 하는 당시 '스타'들의 열악한 현실도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김씨는 참고증언을 위해 원로 여배우 최은희 윤인자 등을 만났고 영화 개봉 연도나 주연배우, 시대상황 등 사실 관계를 정확히 하기 위해 관련자의 도움을 받았다.

작품의 후반부엔 김씨가 음식점 '세보'를 경영하며 만난 인물들과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락 비서실장이 던진 냉면 그릇을 맞고 면발을 뒤집어쓴 일, 19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보안사 준위가 던진 유리잔에 이마가 찢겨 4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던 일도 나온다.

또 사상계에 '오적(五賊)'을 써서 도피중이던 시인 김지하가 얼근하게 취해 찾아온 일화도 들어있다. "어느날 밤 늦게 찾아온 그가 '누님, 우리 오늘 밤에는 굿판이나 한번 벌입시다'더니 촛불을 켜고 막걸리를 사방에 뿌리며 이렇게 외쳐대는게 아니겠어요. '에이! 세보에 드나드는 온갖 잡놈들! 그 중에서도 잡아서 주리를 틀 오적놈들! 어서 그놈들을 잡아가시고 이 나라의 민주 귀신 좀 내려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동생, 그렇게 되면 장사는 어떻게 하라고. 오적 중에서도 괜찮은 놈들도 있어'하며 말렸죠. 그랬더니 김지하씨는 '아 얘기가 그렇게 되나, 나쁜 오적은 다 잡아가지고 괜찮은 오적 놈들은 살려주시게! 훠이'하더라구요."

김보애씨는 "'김진규 예술관'이 세워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1000만 관객이 드는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배우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게 무척 아쉽거든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