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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우암각사건 - 2009년 유럽망명설까지 : 새로운 이야기군요

“개XX, 어린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해.”
2009년 4월 말, 김정남이 분노하며 언급한 내용들이 우리 한국의 정보망에 들어왔다. 마카오에 있던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싱가포르로 몸을 피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정남씨는 왜 분노했을까. ‘어린 놈’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그는 왜 달아나듯 싱가포르로 가야 했을까.

고위급 출신 탈북자는 이른바 ‘우암각 사건’을 배경으로 꼽았다.
“지난해 4월 초 평양 중구역의 한 안가로 국가보위부 수색팀이 들이닥쳤어요. 안가의 이름은 우암각인데 납치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살던 고급주택이었습니다. 부부가 탈출한 뒤 초대소로 사용돼 오다 1997년께부터 김정남의 활동무대가 됐어요. 해외에 살면서 평양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 성혜림(2002년 사망)이 살던 본가보다는 우암각을 즐겨 찾아 계속 ‘비밀 파티 정치’를 벌여왔거든요. 아버지의 흉내를 낸 파티인데 실제론 김정남 지지세력들의 모임이었던 겁니다.”

원본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64/4221164.html?ctg=1000&cloc=home|showcase|main

우암각을 급습한 보위부는 관리원 몇 명을 연행했다.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의 핵심은 ‘파티에 참석한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김정남 측근이 누군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최측근의 전화를 받은 정남씨는 서둘러 싱가포르로 도피했다.

그로부터 5년 전인 2004년 10월에도 정남씨는 동생 김정은에게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이종사촌 누이 김옥순을 방문하고 있던 정남씨에게 오스트리아 당국은 “당신을 암살하려는 북한인의 계획을 파악했다”고 통보해준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에 우암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남씨가 느끼는 공포는 컸을 것이라고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그때부터 정남씨의 머리에 망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계 경쟁으로 결코 가까워질 수 없던 이복 형제 ‘정은과 정남’의 관계는 우암각 사건으로 분명해졌다. 정남의 완벽한 패배. 그는 엎드려야 했다. 도피처 싱가포르에서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와 고모부인 장성택(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남편) 노동당 행정부장에게 도움을 청해 우선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해외 언론과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계 문제에 관심이 없다. 조용히 살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언급을 반복했다. 이런 언급은 평양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속으론 분을 삭히지 못하고 신정희·이혜경·서영라 등 부인과 내연녀, 오스트리아에 사는 이종사촌 누나 김옥순 같은 사람들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특히 김정남씨는 지난해부터 정은을 ‘멍청한 어린애’라고 비꼬며 ‘후계 자격이 없다’는 식의 말을 해왔다고 마카오의 지인들이 전하고 있다. 자격이 없는 이유 중엔 이른바 ‘혈통의 비밀’도 포함돼 있다. 김정은의 생모가 그동안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의 처 고영희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비서출신인 김옥이라는 얘기다. 다만 김정남씨는 4일 기자와 만날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마카오의 김정남 지인들은 다음과 같이 정남씨의 사석 발언들을 소개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김옥은 80년께 기쁨조로 발탁됐다. 곧 김정일의 건강관리 담당 서기가 됐고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다. 김옥은 84년 남자 아이를 출산했는데, 이 아이가 정은이다.(북한은 지난해 부터 정은을 82년생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이는 고영희(2004년 사망)의 아들로 꾸며지고, 맡겨졌다.” 다른 고위급 탈북자도 “정남씨의 얘기가 맞다. 정은의 출생 비밀을 아는 사람은 장성택ㆍ김경희 등 김정일의 가족과 오극렬 같은 극소수 핵심 실세다. 김옥은 고영희 생존 시에도 김 위원장의 해외 방문을 수행하고 자녀들의 사생활을 도와왔다. 고영희 사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런 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김옥은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 및 국방위원회 간부로 임명됐으며 당·군 인사에도 관여한다는 설이 제기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고 했다.

김정남은 90년대 중반까진 선두 후계자였다. 김일성 전 주석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부자의 사진을 찍어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인정하는 상징 조작을 했듯, 김정일도 정남씨와 함께 백두산을 무대로 사진을 찍었다. 승승장구하던 정남은 96년 이모 성혜랑의 미국 망명으로 위기에 처한 듯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5월 일본 밀입국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당시 정남은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갖고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다 추방됐다. 이후 베이징과 마카오에서 칩거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평양을 방문하는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아버지의 질책이 두려워 칩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아버지 방식의 통치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직격탄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날렸고 이 때문에 아버지와 거리가 생겼다는 게 고위급 출신 탈북 인사의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정남씨는 당·군·내각 등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외곽 작업을 계속했다. 돈이 풍성했을 때는 고급 롤렉스 시계를 사서 돌리기도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남씨는 장성택과 오극렬의 후원을 받았다. 다음은 이 소식통의 증언. “장성택이 김정남을 지지한 것은 단순히 고모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성택이 79년 월권혐의로 강선제강소 초급 당비서로 좌천되었을 때 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 김정일에게 건의해 복권된 인연으로 시작한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고모 김경희도 정남에게 애정을 듬뿍 줬다. 오극렬의 후원은 그의 아들 오세욱이 김정남씨와 맺은 어릴 때부터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북한엔 중국의 태자당과 비슷한 봉화조라는 게 있는데 오세욱은 그 집단의 리더이며 ‘평양의 왕발’로 소문난 인물이다.”

그러나 평양을 벗어난 김정남의 힘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공간을 정은이 치고 들어갔다.

김정은은 2006년께 평양 음악대학 확장공사를 지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샛별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2008년 9월 김정일이 쓰러졌을 때 김씨 가문의 속사정을 아는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일 사후 김정남을 후원하는 장성택과 김정은을 지지하는 ‘김옥과 김옥의 후원자인 이제강 노동당 제1부부장(6월 2일 사망)’ 사이에서 후계를 둘러싼 다툼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돌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김정일이 그해 12월께부터 정은을 ‘청년대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지난해 초부터 군과 특히 보위부 등의 안전기관 시찰 시 김정은을 대동하며 당ㆍ정ㆍ군 실세들의 충성맹세를 받아냄으로써 후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또 김정일은 장성택과 이제강에게 “정은을 도우라“는 뜻을 전했으며, 좌천될 위기에 처한 장성택이 구제된 것도 김경희 부장이 ‘정은을 후계자로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버지와 실세들의 도움으로 군과 보위부를 장악한 김정은은 김정남 세력에 대해 본격적인 ‘가지 치기’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우암각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의 무력’이라고 부르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보유한 작전부장 오극렬은 정찰총국 신설이라는 조직개편으로 거세시켰다. 지난해 2월께 북한에선 대남공작기관이 개편되고 정찰총국이라는 거대 공작 기관이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오극렬이 지휘하던 특수부대(3만 병력)가 정찰총국에 통합된다. 오극렬은 명목상 국방위 부위원장이긴 하지만 실제론 무력화된 것이다.

이 같은 ‘정은과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정남으로 하여금 ‘망명 카드’를 꺼내게 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도는 배경이다.

마카오에서 김정남씨가 권력에서 밀려난 뒤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북한 상황에 대한 언급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교민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해 더는 업무를 잘 보지 않는다. 나를 혼낼 사람(김 위원장을 의미)도 이젠 기진했다” “과거 아버지가 모든 일을 보실 때는 (북한이) 아무리 강경해도 모종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또 “북한이 외부에 대고는 문제가 없는 척하지만 사실은 상황이 통제불능이다. 군과 보위부 등이 각자 충성 경쟁한답시고 서로 열을 내지만 아무 내실이 없다”고도 했다.

김정남씨는 한 외국 인사에게 “장성택이 권력 술수는 뛰어나지만 지금은 군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지금 장성택이 이렇다 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자기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만들려 할 것이다. 정은이도 장성택이 내세우고 있는 거고 사실상 장 앞에서는 까불 수 없다. 아버지가 내일이라도 죽으면 정은은 끝난다”는 말도 했다. 그는 “북의 장래를 10년 전만 해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매번 갈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앞으로 5년이 변수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마카오 시내 알티라 호텔 10층 승강기 앞에서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김정남씨. ‘모자에서 신발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는 교민들의 말처럼 정남씨는 랄프로렌 셔츠, 페라가모 스웨이드 로퍼 차림이었다. 모자, 셔츠, 청바지, 신발까지 블루 톤으로 색상을 통일한 패션 감각이 돋보였다. 마카오=신인섭 기자

홍콩·마카오=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