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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2.12.14 김형욱 및 장남 김정한, 비서 이백희등 측근 사진 2매
  2. 2011.12.05 김재규, 김형욱 의회증언뒤에도 설득편지 '금번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 :1977년 7월 26일 김재규친필편지사본
  3. 2009.11.05 이후락 외동딸 부부, 75년 첫 구입 - 부정축재 환수당한 80년부터 급증
  4. 2009.11.04 김형욱 차남, '형 정한 유언장 존재 잘 알았다' 법정 진술
  5. 2009.11.04 김형욱 외동딸, '큰 오빠 정한도 유언장 존재사실 알았다' 법정 진술 (2)
  6. 2009.11.04 김형욱 며느리, '유언장 존재 사실 몰랐다' 법정 진술
  7. 2009.11.03 '김형욱에게 돈 빌려준 사람 다 나오시오' 채권자신고 광고
  8. 2009.10.31 이후락 사망- 직계가족 미국부동산 '상상초월' 최소 3천만달러 상회 (12)
  9. 2009.10.28 김형욱 부인 김영순씨, 1981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 지정 판결
  10. 2009.10.28 김형욱 유족, 1981년 4월 유언장 집행 재판청구
  11. 2009.10.25 김형욱 유언장 증인 3명은 누구인가? '이백'은 이백희씨 (5)
  12. 2009.10.25 김형욱 유언장 원문 : 아내와 3자녀에게 나눠주되 만약 모두 죽으면 '이백'에게 맡긴다 (10)
  13. 2009.10.22 10.26 사건 관련 미 국무부 및 CIA 관련 전문
  14. 2009.10.12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4)
  15. 2009.10.12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9)
  16. 2009.10.11 김형욱 실종 직전-직후 김영순명의 땅 구입 - 회고록 협상 대가인가? (4)
  17. 2009.10.07 최초확인- 뉴욕 웨체스터서 김형욱 소유 대형쇼핑센터 발견 [현시가 천5백만달러] (6)
  18. 2009.10.05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19. 2009.10.05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9)
  20. 2009.09.20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8)
  21. 2009.09.11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15)
  22.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0
  23.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9
  24.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8
  25.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7 (2)
  26.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6
  27. 2009.09.05 日서 김대중 납치 영화 'KT'케이티 추모상영
  28. 2009.09.05 김대중 납치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영화 'KT' (1)
  29.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5
  30.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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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이 저에게 전달한 김형욱 딸 김신혜 결혼식때의 사진입니다.

아래왼쪽 첫번째 김형욱 장남 고 김정한씨, 아래두번째 김형욱 비서 [처가친척] 김용길(현 김길 목사.현재 한국체류)
위 왼쪽 첫번째 김형욱 비서 고 이백희씨, 위 두번째 김형욱 비서 이모씨


 

연미복 차림의 김형욱 뒤로 이후락의 옆모습이 보이고 10,26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얼굴이 보입니다.

 

2009/09/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어디 있소, 아는 것 없소' 국무부 비밀해제문서 1

2009/09/0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이게 바로 김형욱 사망 판결문

2009/09/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0/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미국 법원, 김형욱 사망판결 근거는 무엇인가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10/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직전-직후 김영순명의 땅 구입 - 회고록 협상 대가인가?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원문 : 아내와 3자녀에게 나눠주되 만약 모두 죽으면 '이백'에게 맡긴다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증인 3명은 누구인가? '이백'은 이백희씨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부인 김영순씨, 1981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 지정 판결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족, 1981년 4월 유언장 집행 재판청구

2009/11/03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에게 돈 빌려준 사람 다 나오시오' 채권자신고 광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며느리, '유언장 존재 사실 몰랐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외동딸, '큰 오빠 정한도 유언장 존재사실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차남, '형 정한 유언장 존재 잘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3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비밀은 없다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국 주식투자내역서 [원장]

 

 


분류없음2011.12.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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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김형욱친필편지

김재규, 김형욱 친필편지 '금번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 1977년 7월 26일 김형욱설득편지
근계
유영수씨와 백태하씨로 부터 소식 잘 전달 하였습니다, 그동안도 건안하신지요?
세상사 여의치 않음이 상례라고는 하나 금번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다소나마 김형을 위해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여 왔었는데 저의 뜻이 그렇게 무산되고 말았다는 것은 정말 원통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여권연장문제와 부인께서 한국을 내왕하는 문제는 제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또 대장부의 신의를 걸고 보장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인께서 사과와 문안을 겸해 각하 알현을 원한다면 제가 책임지고 주선토록 하겠습니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들은 유영수씨로 부터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내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7월 26일
서울에서
김재규 배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1977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하원 프레이저소위원회 증언이후에도 김전부장에게 사신을 보내 설득을 계속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지난 1977년 6월 22일 김형욱 전 부장이 프레이저소위원회에 출석, 증언을 함으로써 그간의 증언저지시도가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약 한달뒤인 같은해 7월 26일 김 전부장에게 다시 설득편지를 보내는등 김형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중앙정보부가 한자로 인쇄된 편지지를 사용한 김재규 부장은 '금번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 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부장이 언급한 '금번 사건'은 1977년 6월 22일 김형욱 전 부장이 프레이저소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재규부장은 김형욱을 '김형' 이라고 지칭하며 '김형을 위해 도움되려고 노렸했는데 제 뜻이 무산되니 원통하기 그지 없다'며 심한 배신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김부장은 (김형욱) 자녀들의 여권연장문제와 부인(신영순)의 한국내왕문제에 대해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직을 걸고, 또 대장부로서 신의를 걸고 보장하겠다고 김형욱을 설득했습니다

김부장은 또 한발 더 나아가 부인(신영순)이 박정희 대통령 면담을 희망하면 자신이 책임지고 주선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김재규 부장이 언급한 유영수, 백태하는 김형욱을 설득하기 위한 메신저로 유영수씨는 뉴욕에서 PR회사를 운영하던 교포이며, 백태하는 육사 8기로 김형욱의 동기생으로 1961년 516때 한강다리를 넘었던 사람입니다

특이 이 백태하는 516 당일 아침 당시 박정희등 혁명군이 장도영 육참총장등 육본 수뇌부를 설득하는 회의석상에서
권총을 뽑아든 장본인이며 김형욱은 혁망과 우상 1권에서 자신이 당시 백태하를 진정시켰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김형욱과 막역한 사이로 추정됩니다

김재규는 이 편지를 보내기 전에도 1977년 1월 17일, 그리고 1977년 2월 14일 김형욱에게 친필 사신을 보내 박정희 비방활동 중지등을 요청했었습니다만 김재규의 시도는 무산되고 김형욱은 1977년 6월 22일 프레이저청문회에 서고 말았습니다

김형욱은 1977년 6월 22일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1977년 7월 11일 프레이저소위 조사관의 조사에 응한 외에도 김재규의 7월 26일 사신이 전달된 뒤인 이듬해인 1978년 7월 20일과 1978년 8월 15일 두차례 더 증언에 나섬으로써 김재규의 사신설득작전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1차 1977년 1월 17일 편지 일부
각하께서는 그 친구가 돌아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자유롭게 왕복한다면 남이 봐도 좋고 본인은 얼마나 떳떳하겠느냐, 또 돌아와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원하는 중책도 맡기지 라고 하시더군요 김상근망명이라는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김전부장님께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신다면 이 얼마나 의의가 깊은 일이겠습니까

2차 1977년 2월 14일 편지 일부
백의종군한 충무공은 지금은 민족의 성웅으로서 모든 동포의 추앙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사필귀정을 신념으로 삼고 지금까지 지켜온 김전부장님의 침묵을 귀국이라는 행동으로서 깰때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싱긋이 웃으며 김포공항의 트랩을 내리는 김전부장님의 그리운 모습을 바라며


김재규김형욱편지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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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직계가족의 미국 부동산 내역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부동산 관련 서류 일부를 복사해 왔습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 정리에 시간이 걸리므로 일단 시기를 나눠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970년대입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정명신이
미국에 첫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 1975년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부부는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를 주고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22 LESLIE PLACE 주택을 매입합니다



이들 부부는 이 주택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7년 7월 26일 9만5천달러에 매도합니다

이들 부부는 테너플라이 주택 매도에 앞서
1977년 2월 1일 뉴저저주 크레스킬 주택을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15만3천달러로 1년 3개월전 테너플라이 주택매입때보다
약 2배정도 많은 금액이며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입니다



이들 부부는 뉴저지주 알파인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합니다

과연 1970년대 중후반 8만여달러, 15만여달러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까
1970년대가 미국이민자들에게 허용된 외환반출한도가 70달러에 시작해
백달러로 늘었다가 2백달러까지 가능했다고 하니 매우 큰 돈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부동산 거래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2건 매입, 1건 매도 였습니다

매우 특이한 것은 이들 외동딸 부부의 부동산 거래가 1980년 초부터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매입건수는 물론이고 한건당 금액도 크게 늘어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을 계기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때인 1980년 5월 16일 김종필 이후락등을 연행합니다 

약 한달간의 조사뒤 1980년 6월 중순 이후락이 1백94억원정도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후부터 이후락 직계가족, 외동딸 부부와 장남 부부의
미국내 부동산 매입이 크게 늘어납니다 

신군부는 분명히 탈탈 털어 조사해 백94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는데
이후락 직계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미국내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말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된 돈일수도 있고
혹시 신군부가 이후락의 부정축재액을 축소해 백94억원만 발표하고
군부등에 이후락씨등의 영향력을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
일부는 그대로 돌려준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습니다 

만약 부정축재액중 백94억원만 환수하고 일부는 다시 돌려주었다면
또 다른 일부를 신군부가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이며
부정축재 조사를 담당한 전두환등이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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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며느리, 외동딸에 이어
차남 김정우도 법정진술을 하게 됩니다

김정우는 외동딸과 같은 날인 2003년 9월 12일 작성된 진술서를 통해
외동딸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형 정한이 유언장 존재를 너무도 잘 알았으며
그동안 한번도 이의를 제가한 적이 없었다 등의 내용입니다

또 형이 결혼뒤 분가했지만 1988년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까지
알파인과 포트리등 집에서 5분 , 많게는 15분 거리에 살아서
매우 친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언장 복사본 문제에 대해서도 김형욱 실종뒤
변호사가 두터운 종이뭉치를 나눠 줘서
왜 이런 걸 주나 하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형이 유언장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큰 며느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형이 유언장 내용을 알았지만 재산에 대해 한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2남 진술 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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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결국 법정소송으로 이어졌고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2003년 7월 3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자 외동딸등 가족들도 2003년 9월 진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쟁점은 '장남 정한이 죽기 전까지 유언장 존재사실을 몰라서 상속을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소송이 진행되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며느리의 주장에 맞서
외동딸 신해는 2003년 9월 12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주된 내용은 '큰 오빠가 유언장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재산분배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피고인 어머니 김영순을 옹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딸 진술 -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1979년 아버지 김형욱이 실종된 당시 나는 19살의 틴에이저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들과 엄마등 우리가족은 매우 친밀했지만 실종사건이 더욱 우리를 결속시켰다
-실종당시인 1979년 큰 오빠는 미혼이었고 1980년 결혼했다
-당시 우리가족변호사인 알란 싱거변호사가 끊임없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싱거 변호사가 큰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했다
-아버지 김형욱도 1975년 유언장 작성뒤 내용을 가족에게 알렸고 그뒤 저녁식사자리에서도 
  유언장내용을 언급했다, 당시 나는 14살 이었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유언장내용은 아버지의 재산 50%는 어머니가, 나머지 50%는 우리 3남매가 가진다는 것이었다
-실종뒤 싱거변호사등으로 부터 유언장 복사본을 받았다
-실종뒤 사망판결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가 전가족이 법원에 출두할 것을 명령해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법원에 갔다
-한국내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받기위한 소송을 통해 큰 오빠의 부인은 2003년 4월 26만1천여달러를 받았다
-내 일생동안 단 한번도 큰 오빠가 재산분배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차남 김정우의 법정 진술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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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1년 5월 12일부터 유언장 집행자가 돼
김형욱 재산 관리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21년이 지난 2002년 9월 장남 김정한이 죽게 되자
큰 며느리등 장남 가족과 김영순 사이에 재산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는 남편이 생전에 유언장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며
이는 시어머니 김영순씨가 유언장 집행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2003년부터 뉴저지 버겐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원고 며느리 피고 김영순씨의 법정공방이 시작됩니다

2003년 7월 3일 원고인 큰 며느리는 재판부에 자신의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며느리 진술 5매 -
이 진술서에서 큰 며느리는
- 시어머니 김영순이 유언장 집행자로서 유언장에 기록된 상속인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 시어머니 김영순은 직장을 다닌 적이 없고 소득소스가 전혀 없다
- 김형욱은 한국의 중정부장으로서 1977년 의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1978년 6월 30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김형욱이 7만5천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 이 기사는 김형욱이 시티뱅크 뉴욕에 2천만달러, 해외은행에 6백만달러등을 예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형욱 본인은 3백50만달러만 인정했지만
- 시어머니 김영순은 1983년부터 알파인 저택 신축을 시작했고 가치는 1천만달러에 이른다
- 시어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 한예로 뉴저지 테너플라이 P모 은행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방문해 세이프티박스에 10만달러를 넣어두었으나
  그뒤 남편이 확인했을때는 5만달러밖에 없었다
- 스위스 은행에 막대한 자금이 예치돼 있다
- 알파인저택은 김형욱 재산으로 건축된 것이다
- 남편과 김정우 김신해등 3자녀가 동일하게 김형욱 재산에 대해 16.65%를 가질 권리가 있다
는 등의 진술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형욱의 2남 김정우와 외동딸 김신해는 2003년 9월 12일 며느리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게 됩니다

2남과 외동딸의 진술도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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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0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된뒤
상속절차에 돌입합니다

이에 따라 1981년 5월 28일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역신문 'THE VALLEY STAR'에
김형욱 채권자 신고를 접수하는 광고를 게재합니다

'PUBLIC NOTICE' 란 제목의 이광고는 19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유산법원 판사의
명령에 따라 김형욱 또는 형욱 김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은 뉴저지 알파인에 사는
김영순또는 유족의 변호사에게 청구하시오' 라고 돼 있습니다

이 광고의 FEE는 6.16 달러였으며
해당신문사의 광고게재사실확인서도 첨부, 법원에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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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남북 공동성명의 주역,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등으로 잘 알려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조금전 한국시간 2009년 10월 31일 오전 숨졌다고 합니다

이후락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주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지작업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했을때 '청산가리를 품고 갔다'고 증언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차례 공직을 이용한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후락의 별세로 '85년 영욕의 세월'등 그의 공과가 자세하게 알려지고 있으므로
저는 그의 직계가족들의 미국 부동산 내역에 대해 알리고자 합니다

이후락의 별세에 대해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겠지만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등을 지낸 간과할 수 없는 공인이며,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므로
엄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부동산 내역을 공개합니다

한국인의 미국 부동산 소유를 추적해 보면 미국 부동산 소유가
한국의 권력부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형욱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그뒤 김형욱이 실각한뒤에는
그 뒤를 잇는 이후락이 나타나고 그 뒤에는 10 26의 주역들이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인물은 이후락으로 그의 직계가족,
즉 자녀들의 미국부동산 매입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김형욱과 한국의 재벌일가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 알파인에 호화주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 맨해튼의 대형빌딩, 퀸즈의 빌딩, 최근에는 뉴저지주 엣지워터의 대지와 주택을 구입하는등
부동산 규모는 최소한 3천만달러에서 5천만달러에 달합니다

이후락의 가족중 외동딸과 사위, 그리고 이미 작고한 큰 아들과 생존한 며느리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차근 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포털사이트등에서 살펴보면 이후락은 아들만 3명을 둔 것으로 나타나지만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이 외동딸 명신이 정화섭씨와 결혼했고 이들 부부는 적어도 1975년부터 미국에 체류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부부가 가장 먼저 소유한 부동산은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의 주택입니다

주소지는 22 LESLIE PLACE, TENAFLY, NJ로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 에 이 주택을 구입합니다

이후락사위 테너플라이 1975
이후락씨 딸 부부는 또 1980년 8월 25일 하와이 호눌룰루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가장 인접한 ILAKAI APARTMENT [이라카이 아파트]를 매입합니다

와이키키 서쪽 해변앞 콘도는 약 10채 정도로 그중에서 해변과 가장 가깝고
가장 먼저 세워진 콘도가 바로 이 이라카이 아파트이며
이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것이 노재헌, 조현상,한병기등이 구입한 THE WATERMARK 콘도입니다

이들 부부가 구입한 콘도는 이라카이 아파트 1426호였으며 매입가격은
1980년 당시로는 큰 돈인 34만2천달러 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9만9천여달러를 다운페이먼트로 선지불한뒤 남지 24만2천여달러를
3년에 걸쳐 지불했습니다

한진 일가등과 함께 이후락씨 직계가족이 사실상 하와이 투자의 원조인 셈입니다

이들 부부의 당시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였으며
이 주택은 이들부부의 소유였습니다
이 집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하와이 15 003 1174541
현재 이들 외동딸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뉴저지 알파인에 있습니다

이 주택의 주소는 PO BOX 295, TAMARACK ROAD, ALPINE, NJ 로
알파인 다른 주택들처럼 번지 없이 사서함 번호로 표시됩니다
지적도상으로는 알파인 블록 22 랏 25입니다

대지가 2에이커, 약 2천4백여평인 이 주택의 가격은 3년전인 2006년 뉴저지 버겐카운티 정부가
고시한 공시가격만 3백78만천9백달러 입니다

공시가격이 시세에 한참 못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현시세가 최소 6백만달러가
넘는다는 것이 부동산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후락 사위 알파인 주택
또 이들부부는 MMGK LLC 라는 법인을 설립해 지난 2007년 4월 13일
뉴저지주 에지워터의 땅을 구입합니다
매입계약서에 기재된 MMGK LLC의 주소는 바로 이들부부의 알파인 집 주소입니다

이땅의 매입가격은 무려 6백90만달러 였으며 양도세만 8만9백여달러에 달했습니다

이후락 사위 엣지워러 2007
그이전인 1987년 이들 부부는 MONDA ASSOCIATES 라는 법인을 설립해
1987년 8월 24일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빌딩을 매입합니다

이 빌딩의주소는 172 MADISON AVE, NEW YORK, NY 으로
매입가격은 무려 7백20만달러 였습니다

이후락사위 메디슨 건물 매입 1987
이 빌딩을 팔때 위임장서류를 통해 MONDA ASSOCIATE의 주인이
이후락의 외동딸 부부 정화섭-정명신[이명신] 임이 드러났으며, 매도서류에도 정화섭이라는 이름과 서명이 있으며
2002년 4월 2일 매도시 가격은 8백97만5천달러 였습니다

이 빌딩은 2007년 다시 다른 주인에게 팔리는데 그때 가격이
천5백90만달러였으므로 현시가가 천 7백만달러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후락사위 메디슨 건물 매도 2002
이들 부부는 또 이 빌딩 매입직전에 뉴욕 퀸즈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인
플러싱 메인스트릿에 빌딩을 매입합니다

빌딩 매입일자는 1987년 6월 10일이며
빌딩주소는 59-10 MAIN STREET,
매입시 법인이름은 M.G.&K ASSOCIATES 였습니다

매입가격은 2백20만달러 였습니다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입 1987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도 1994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도시 위임장 1994

이후락씨 외동딸 부부는 이외에도 수십차례의 거래를 통해 주택과 빌딩을 사고 팔았습니다
이후락씨 외동딸 부부의 일부 부동산이 이정도입니다

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큰 아들과 작은 아들도 미국에 부동산이 있으며
아들의 부인이 몇달전 한국에서 상장 기업체를 인수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계약서 스캔등이 끝나는 대로 그 내역을 차근차근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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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출판사가 출판한 정풍 6권 '김종필과 이후락의 떡고물' 이란 책에 따르면

"이후락씨는 자신이 중앙정보부자에 재직할때 사위인 정화섭을 1972년12월
국제문제 담당 국장으로 임명했다 박정희의 질책을 받고 물러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정유회사인 G사가 1969년 8월 21일 스위스 유니언은행 서정귀씨[이후락 사돈] 명의로
2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송금하자 유니언은행은 이돈의 입금사실이 기재된 구좌명세서를
 1969년 9월 2일 이후락의 사위인 정화섭에게 발송함으로써 
이후락씨 사위인 정씨가 이후락씨의 부정축재 자금을 관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 30년전인 1979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는
이듬해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덮기 위해 부정축재자 조사에 나서
1980년 6월 19일 권력형 부정축재자 10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부정축재액은 김종필이 2백16억원, 이후락은 백94억원, 이세호 백 11억원등이었습니다
이후락과 관련해 1977년 로스앤젤레스에 빌딩을 매입했다는 소문에 대해 계엄사령부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이부분은 고위관리를 헐뜯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충 이러한 부분과 함께 부정축재 내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LA의 빌딩 매입소문을 듣고 확인을 진행중이지만
아직은 사위나 며느리 이름의 빌딩 매입 계약서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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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실종과 관련, 김영순씨가 1981년 4월 22일 유언장 집행인 자격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뉴저지 버겐카운티 상속 법원은 1981년 5월 12일 김영순씨를 유언장집행은으로 지정합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 상속법원은 이날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에 의거, 김영순을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한다고 판결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서류 5매 -
이에 따라 김영순은 같은 날 상속법원앞으로 유언장 집행인 지정을 받아들인다는 문서를
자필 서명해 제출합니다

이 재판과정에서는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유언장에 대한 증언을 하고
이 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는 진술서를 작성, 자필 서명해 제출합니다

이에 따라 이 날짜로 김영순은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으로 유언장 집행에 돌입,
유산상속을 시작합니다

김영순은 유산법에 따라 김형욱으로 부터 채권이 있는 사람들의 신고를 받기 위해
광고를 내기도 합니다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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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씨와 정한 정우 신해등 김형욱씨 유족 4명은 1979년 10월 김형욱이 실종되자
1980년 11월 김씨에 대한 사망판결을 구하는 재판을 청구, 1981년 4월 8일
뉴저지주 지방법원으로 부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법적인 사망판결을 받습니다

이에 따라 1975년 1월 작성된 유언장에서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됐던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은 1981년 4월 22일 유산문제등을 담당하는 재판부인
뉴저지 버겐카운티 SURROGATE COURT 에 상속절차 진행을 위한 유언장 집행인 판결을 구하는 
재판을 청구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정리 서류 -
이 서류는 김영순과 3자녀의 이름이 열거돼 있으며 유언장 원본등이 첨부돼 있습니다 

또 유언장 작성 증인 3명중 한명인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법원요청이 있을 경우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김형욱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재산 내역란은 공란으로 돼 있습니다 

이 서류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김형욱 미국 망명전인 1970년부터 이들 가족을 대리했고
1977년 하원 청문회출석,1979년 실종뒤 사망판결 재판과정에서도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던
ALAN D SINGER 변호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속절차 재판에서 유족들은 ALAN D SINGER 변호사를 배제하고  뉴저지 최대 법무법인으로 꼽히는 
W.G & S 법인을 대리인으로 택했습니다 

변호인이 바뀌게 된 것은 유족들이 SINGER 변호사에게 모종의 부탁을 했으나
SINGER 변호사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합니다 

유족들은 또 20일뒤인 1981년 5월 12일 상속법원에 김영순씨 명의의 서류를 다시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정리 - 유언장에 따르면 자녀들이 21세가 될때까지 김씨부인이 모든 재산을 관리토록 돼 있으나
이 서류에 따르면 1981년 현재 이들자녀들은 모두 21세 이상의 성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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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 1월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의 증인은 3명입니다

메리로 알려진 외국인 1명과 이담풍씨, 그리고 유봉섭씨가 그들입니다

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봉섭씨는 김형욱의 아내 김영순씨의 사촌 여동생 남편입니다
유봉섭씨는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명중 가장 중요한 증인은 이담풍씨입니다

이 이담풍씨가 바로 김형욱이 아내 김영순이 숨질 경우 유언장 집행과
자녀양육인으로 지정한 '이백'의 남편입니다

유언장에서 이백으로 등장한 사람은 전 중정요원 이백희씨로
미국이름은 버나드 입니다

스위스와 홍콩, 베트남등에서 근무한 이백희씨는 베트남 근무당시
사우스 베트남 즉 자유월남의 트란 반 투엔씨의 딸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이백희씨의 장인 트란 반 투엔은 1955년부터 1963년까지 월남의 정보부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로
1965년에는 부수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김형욱 유언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트란 반 투엔은 1975년 월남패망직전에 영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월남을 탈출해
홍콩으로 도피합니다

이백희씨는 중정근무당시 외국인인 이담풍씨의 결혼문제로 고민했고
중정내에서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김형욱이 '고위급인사의 사위가 되면
고급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쾌히 승락함으로써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그뒤 김형욱 미국 망명뒤 김형욱의 부름을 받고 '은혜를 갚는다'는 각오로
미국에서 합류, 김형욱의 미국생활, 특히 스위스 은행 심부름등을 맡게 됩니다

이담풍씨는 미국에 온뒤 뉴욕 퍼처스소재 펩시콜라회사에서 재무소프트웨어담당
고위기술고문으로 일하다 현재 은퇴한 상태입니다

이백희씨의 딸은 존스홉킨스대학과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뒤 변호사자격을 취득,
뉴욕소재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 5월 윌리암 하워드 타프트 전 미국대통령의 
4대손으로 예일대를 졸업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16일 동아일보 자매지 주간동아에 이백희씨 관련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었습니다 

내일은 1981년 김형욱 유언장 집행과정과 관련서류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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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 [분류 전체보기] - 미국법원 청와대살해설-오작교작전 근거로 김형욱 조기사망선고 - 이게 재판증거 불어문건 원문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자신의 실종 또는 죽음등을 미리 예견한 탓인지 1973년 4월 5일 미국에 들어온뒤
약 1년 8개월정도가 지난 75년 1월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테너플라이 트라팔가 자택에서 작성된 이 유언장은
유언내용을 담은 6매의 유언장과 증인 3명의 서명 1매등 모두 7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유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동산, 부동산, 부채등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50%를
나의 아내 김영순에게 주라

나머지 50%는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딸 김신해등 자녀에게 주라
즉 3 자녀에게 내 자산의 각각 16.65%씩을 주라
 
자녀들이 21세 성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 김영순이 관리한다

유언장 집행과 자녀 양육은 아내 김영순에게 맡긴다

만약 나의 아내가 유언장 집행을 하지 못할 경우 '이백'에게 유언장 집행을 맡긴다
또 신탁재산의 관리인으로 '이백'을 지정하며
내 아내 김영순이 사망할 경우 자녀 양육을 '이백'에게 맡긴다

6장의 유언장을 대충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김형욱 유언장 7매 -
그 다음 맨뒷장에는 유언장 증인 3명의 이름과 주소 서명이 기재돼 있습니다

메리 앨런 멜버리, 이담풍, 유봉섭씨등 3명입니다
이들은 김형욱이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트라팔가 주택에서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서명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979년 10월 김형욱 실종뒤 1981년 4월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되고
그해 5월 김영순은 뉴저지 법원에서 이 유언장을 근거로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내일은 이 유언장의 증인 3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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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 으로 잘 알려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한 국무부와 CIA 전문. 즉 국무부의 비밀훈령,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 CIA 본부와 한국지부간의 문서등을 한번 정리하고 분석해 보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돼 극히 짧은 기간 10월 19일경부터 11월2일 정도까지의 전문들만 올려봅니다
글라이스틴대사가 11월 2일께 국무부로 보고한 '미국이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은 군사정권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라는 전문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또 박정희 사망, 박정희 암살등으로 사건을 표현했지만 '제거' 즉  'REMOVAL OF PRESIDENT PARK'라는 표현도 사용한 대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정부를 책임질 대통령대행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정일권 전총리도 물망에 오른다는 내용도 있네요
1026 전부터, 특히 약 1주일전부터 주한 미대사관 특히 글라이스틴대사의 행보가 빨라지며 박준규 공화당 당의장, 태완선 유정회회장, 이철승, 고흥문, 김영삼등을 빈번히 만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약간 '고집불통'으로 본 듯한 내용도 있고 한 야당정치인은 한국을 움직이는 4대 파워로
학생, 국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을 꼽았군요
전문을 원본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올렸습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26을 거쳐 1212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 승자의 기록을 전할 사람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지만
패자의 진실을 남길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212 당일밤 전두환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대통령을 압박해 정승화 총장 연행에 재가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재가 현장에 배석했던 사람은 전두환쪽을 제외하고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이 유일합니다 
사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안가도 최광수 비서실장의 처가쪽 집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중앙정보부에
매도한 집입니다
최광수 비서실장의 용기있는 증언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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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 천5백만-35백만달러 추정

-워싱턴 포스트, 26백만달러추정

-버겐레코드, 5백만달러 추정

-이백희씨, 김형욱본인 35백만달러 주장

-과거사위 보고서, 프레이저청문회 천5백만-2천만달러 추정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박정희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김형욱

과연 정권안보만을 지키는 선에서 그쳤을까, 그렇지 않다

 

김형욱은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의 큰 권력을 가졌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데다 정보기관의 역대 수장중 최장기간 재직한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이권에 관여했음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여러가지 이권중 가장 큰 이권은 차관도입에 따른 커미션

이 커미션이 꼬박 꼬박 스위스등에 개설된 은행으로 예치돼 정권유지비용으로도 사용됐지만

일부는 개인 치부에 이용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김형욱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그의 재산을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프레이저 청문회, 미국언론보도,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등의 자료를 보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는 1978 12 8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미국은행인 시티뱅크에 2천만달러, 아마도 스위스은행인듯한 해외계좌에 6백만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니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26백만달러라고 추정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이 기사에서 김형욱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비공개청문회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350만달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김형욱의 은행기록을 확인한 결과 78년이전 수년간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에 도박비용으로 지급된 돈이 백40만달러였다는 사실도 게재했다

 

정리하면 김형욱 본인인정액이 350만달러지만 스위스와 미국의 예금 추정액은 26백만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형욱 사망선고 재판과정을 담은 뉴저지주 일간신문 버겐레코드에도 김형욱재산에 대한 언급이 있다

 

버겐레코드는 1981 3 31일자 신문에서 김형욱이 법적으로 사망판결을 받음으로써 천5백만달러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이 부인 김영순과 세자녀에게 상속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는 김형욱 재산을 천5백달러에서 2천만달러정도로 추산했다

 

이보고서에 따르면 프레이저위원회는 조사결과 김형욱이 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이라고 기재했다.

 

또 프레이저위원회 조사에서 뉴욕은행에 4백만-5백만달러의 정기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1977 6월까지 친지들의 사업구좌를 이용해 한국에서 재산을 계속 반출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이외에도 1973년 부산과 인천항을 통해 2차례에 걸쳐 반출했다고 한다

 

주간동아도 2005 816일자에서 김형욱 측근 L씨의 주장을 인용, 김형욱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주장한다.

L씨는 이제 고인이 된 이백희씨로 김형욱의 측근중 측근이며 그의 장인이 월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월남의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부수상까지 지냈었다

주간동아는 이백희씨 친구의 말을 인용, 김형욱이 자기 입으로 자기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보도와 프레이저청문회등을 참고하면 김형욱의 재산은 최저 천5백만달러에서 최대 35백만달러로 추정된다

또 재산환수소송등을 통해 삼선동주택과 신당동 대지 일부를 돌려받았음을 감안하면 재산은 이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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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 알파인에 최소 6백만달러 대저택소유

-김형욱 실종뒤 알파인에 대저택 신축

-포트리등에 콘도 여러채 - 자녀들에게 집 한채씩

-김형욱 명의 부동산 거의 없어

-유산상속판결은 부동산보다 스위스예금이 목적

 

 

호화주택 구입, 대형쇼핑센터 매입등을 통해 사전에 미국에 기반을 굳힌뒤 망명길에 올랐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1979 10 7일 파리에서 김형욱이 사라진뒤에도 김형욱 유족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본명 신영순] 1982 5 21일 뉴저지 포트리에 콘도 한채를 매입합니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 콘도, 이 콘도는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 초입 포트리의 번화가에 있는 콘도로 정확한 주소는 1600 CENTER AVE, FORT LEE, NJ 입니다

김영순은 9만천740달러[91,740USD]에 매입한 하이트맨하우스 콘도의 5E 호를 4년여뒤인 1986 2 28 145천달러[145,000USD]에 매도함으로써 약 50%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김형욱 유족들의 재산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알파인의 대저택

이 저택은 뉴저지주 팰리세이트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2번출구에서 빠진뒤 클로스터로 내려가는 급경사 오른편 언덕 깊숙한 곳 막다른 집입니다


MARIE MAJOR DRIVE로 알려진 이 길에서 김형욱의 저택은 2차선도로의 맨 마지막 집이며 실제 저택은 웅장한 철제 대문에서 작은 언덕을 따라 20미터 정도 올라가야 됩니다.

지적도상 블록[BLOCK] 81.05, [LOT] 1입니다


김형욱이 실종 직전 또 다른 알파인 집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살면서 이 집이 도로 아래쪽에 있어 누가 차를 타고 가다 수류탄만 굴려도 죽는다며 불안에 떨었던 점을 감안, 아마도 도로보다 한참 위쪽의 집을 택한 것 같습니다

 

또 이 집의 2차선 도로가 끊기게 되는 마지막에 있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이 집앞을 지나다닐 일이 없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차단된 집입니다

 

잘 생긴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집은 길가에서는 쉽게 규모조차 짐작되지 않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등을 통해서만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의 부지는 2에이커, 2448평이며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실외수영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직전인 1979 8 10일 김형욱이 파리를 다녀오게 되고 보름뒤인 8 24일 부인 신영순 명의로 1725백달러를 주고 이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뒤 1981 5월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로 유산상속인이 된뒤 1982년 이 집의 신축공사에 들어가 1984년 완공과 함께 입주하게 됩니다

 

이 집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채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시돼 있는 것은 물론 뉴저지주 세무국 서류에서도 주소가 없는 사서함 번호만 기재돼 있습니다

 

이 집은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 지난 2002 9 5일 장남 김정한이 사망하자 20일뒤인  9 26김영순신탁[KIMYOUNGSOON TRUST]으로 소유권이 바뀐다

 

김영순에서 김영순신탁으로 이 집이 양도될때의 가격은 단돈 1달러,

김영순신탁의 관리인[TRUSTEE]은 김형욱의 차남인 김정우 변호사[제임스 김]와 딸 김신해씨로 지정돼 있습니다


뉴저지주 세무국은 지난 2006년이래 2009년까지 세금부과를 위한 이 집의 공시가격을 매년 변동없이 239만달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지가 백80만달러, 건물이 539천여달러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장가격은 최소한 6백만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뉴저지주 세무국 자료에 따르면 알파인지역의 부동산은 지적도상 상가와 주택을 모두 포함해 정확히 8백채, 이중 3백만달러에서 천만달러 주택이 즐비하고 이 저택도 그 중의 한채인 것이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뉴저지주 법원에서 이 집의 건축비용이 1982년당시 최소 2백만달러를 넘어서며 융자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김형욱 유족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큰 돈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은 김형욱 실종 1년뒤인 1980년 결혼하게 되고 1985년 외동딸 신해씨가 결혼하게 됩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등기소 서류에 따르면 김신해씨와 남편 한상철씨는 1985 9 16일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를 부부공동명의로 구입합니다

 

이 콘도의 주소지는 200 OLD PALISADES ROAD, 호수는 PH-4. 호수에서 알 수 있듯 PH는 펜트하우스 즉 그 콘도의 최고 꼭대기 층이며 매입가격은 489천달러였습니다

 

매매계약서에서 이름을 드러낸 한상철씨는 5공당시 **실장을 지낸 모인사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1989 8 25일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합의에 따라 이 콘도가 김신해씨 단독 소유로 바뀌게 됩니다



그뒤 김신해씨는 1995 5 2일 이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50만달러에 매도합니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매입했던 김영순은 1989 5 9일 뉴저지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알려져 있는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입니다

 

이 콘도의 주소는 1512 PALISADES AVENUE, FORT LEE NJ. 호수는 15L호로

 매입가격은 483천여달러[483,485 USD] 였습니다

 

5년뒤인 1994 4 18일 김영순은 약 16만달러 손해를 본 328천달러[328,000 USD]에 이 콘도를 팔아치웁니다



부동산 시세가 많이 하락한 것입니다

 

그 이듬해인 1995 9월 장남 김정한도 아트리움콘도 한채를 매입하면 매입가격은 김영순의 매도가격과 비슷한 35만달러였습니다

 

장남 김정한이 김형욱 실종뒤 크게 상심해 방황하자 플로리다주에서 자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도록 도움을 준 김영순은 2001 8 15일 자신이 51%, 장남 정한이 49%의 지분을 가지는 조건으로 알파인 처치 스트릿에 단독주택 한채를 사줍니다

 

1.22에이커 대지의 이 주택 매입가는 99만달러로 장남집과 김영순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1분거리.

그러나 2002 9 5일 장남 정한이 죽자 그후 2년뒤인 2004 8 13일 이 집을 1535천달러[1,535,000 USD]에 매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순씨와 큰 며느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 큰 며느리는 자녀 3명과 함께 몹시도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김형욱 유족은 김형욱 실종뒤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사고 팔게 되고 현재는 알파인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김형욱관련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점은 김형욱이 거의 모든 부동산을 부인 김영순 소유로 함으로써 자신은 철저하게 숨겼다는 점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의 두번째 집인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의 주택을 구입할 당시인 1974 8월 김영순과 함께 융자서류에 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부동산 서류였습니다

 

아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실종 1 6개월만인 1981 4월 뉴저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사망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유산 상속입니다.

 

김형욱 명의의 부동산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영순이 유산상속인으로 지정된 것은 부동산보다는 미국과 스위스에 예치됐던 예금을 갖게 됐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정부가 오는 12월 스위스은행인 UBS로부터 미국 거부 4천여명의 계좌 내역을 넘겨받는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과연 김형욱의 스위스계좌가 베일을 벗을지 주목됩니다

내일은 미국언론보도등을 근거로 김형욱의 재산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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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73년 미국 도피에 앞서 71년 호화주택을 구입하고 72년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제반 계약서와 함께 공개했었습니다

오늘은 김형욱의 두번째 집 매입을 물론 김형욱 실종 직전인 79년 8월과 실종 50일뒤인 79년 11월 부인 명의로
나대지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계약서등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김형욱 실종 전후의 2건의 토지거래는 한국정부와 김형욱간에 타결됐던 회고록 포기의 댓가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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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

 

김형욱은 또 미국 도착 14개월뒤 1974 8 21일 뉴저지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27만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합니다

 

대지가 1.5에이커 천8백평 규모로 2009년 현재 이집의 공시주택가격은 220만달러상당입니다

 

27만달러짜리 저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비교대상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1976 11 30일자에 박정희가 권좌에서 내려올 경우 미국 피난처라는 소문이 있다고 언급했던 박정희의 큰 딸 박재옥의 뉴욕 저택입니다

 

뉴욕타임스에 중세 성모먕의 붉은 벽돌집으로 묘사된 이 주택은 김형욱일가 소유 쇼핑센터가 있는 웨체스터 스카스데일에 있으며 1976 8 17일 박재옥이 구입할 당시 매입가격이 205천달러였습니다

 

김형욱이 1974년 알파인에 구입한 주택은 27만달러, 박정희 딸 박재옥이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난뒤에 구입한 중세성을 방불케하는 주택이 205천달러였으니 가히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재옥 주택구입내역은 이미 이 블로그에 게재돼 있습니다]

 

이 알파인 하이우드플레이스에는 김형욱 집을 포함한 모두 7채의 주택이 있었는데 7채 주택모두 등기부 등본에 조차 하이우드플레이스라고만 기재돼 있을뿐 넘버는 없다고 돼 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집입니다

 

우편물은 우체국 사서함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일반인에게 익숙한 주소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등기부 등본에 정확한 지번을 알려주는 블록과 로트가 기재돼 있어 지적도를 통해서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화주택이기는 했지만 조국을 배신한 김형욱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김형욱과 잘 아는 한 재미동포는 이 하이우드플레이스 주택이 도로를 기준으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김형욱은 차를 타고 가다 누가 수류탄만 하나 굴려도 나는 산산조각이 난다며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망명 1 8개월여가 지난 1975 1, 김형욱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비운이 닥칠 것을 예감했음인지 자신의 사망 실종때 부인 김영순과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이 유언장의 주소가 60 트라팔가로드로 돼 있는 것을 보면 김형욱이 1974 8월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 주택을 구입했지만 적어도 1975 1월이후 새 집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고록 출판저지과정에서 돈거래 유추가능한 부동산 거래 발견

김형욱 실종 한달보름전 뉴저지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김형욱 실종 두달도 안돼 뉴욕주 라클랜드에 주택용지 7개 필지 매입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 회고록 출판 저지를 위해 돈이 오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도 회고록 포기에 따른 대가가 백50만달러라고 기재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2백만달러라고 서술된 부분도 있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형욱 사망선고 관련공판에서 유족들은 김형욱이 정태동 당시 주미공사와 1979년 7월 회고록 포기에 따른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관련 기록을 보면 결국 '회고록 포기대가는 2백만달러, 1979년 7월부터 10월까지 매달 50만달러 지급, 
마지막 50만달러가 지급되는 10월에 원고와 교환한다'가 골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관련 문서를 통해서도 김형욱이 돈을 받았음을 추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김형욱은 1979 10 7일 파리에서 실종되기 이전 그해 8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파리를 방문하고 이때 회고록 포기 대가의 일부분이 직접 또는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입금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9 8 10일 김형욱 파리방문뒤 8 24일 알파인 부지 매입

 

김형욱이 1979 8 10일 파리를 방문한 직후인 8 24일 김영순은 지금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 주택의 부지를 사들입니다

 

알파인 언덕의 한 도로 맨마지막 막다른 곳인 이 대지는 2에이커 2450평규모로 부지 매매가는 1725백달러였습니다

 

즉 김형욱이 1979 8월 파리에서 돌아오자 마자 땅을 사들인 것입니다

 

김형욱 실종 두달안된 11 29일 라클랜드카운티 주택부지 매입

 

이상한 거래는 또 있습니다

 

김형욱이 10 7일 실종된뒤 채 두달도 지나지 않은 11 29일 김영순은 뉴욕주 라클랜드 카운티 오렌지타운에 7필지의 주거용 부지를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양도세를 역으로 계산할 경우 2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남편 실종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또 다시 부동산을 구입한 것입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김형욱이 밀반출한 재산일 수도 있지만 회고록 포기댓가로 건네진 돈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1982년 한국서 재산몰수전후 미국 부동산도 일부 현금화

 

한국정부는 김형욱이 망명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1977 12월 반국가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1982 3월 궐석재판을 통해 김형욱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과 함게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합니다

 

김형욱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되자 김영순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미국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를 현금화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김영순은 가장 큰 부동산인 쇼핑센터의 매도에 나섭니다

 

1972 4월 구입한 그린버그쇼핑센터의 소유주였던 제심부동산회사는 1982 2 810달러에 이 쇼핑센터를 김영순에게 넘기고 김영순은 같은 날 이 쇼핑센터를 팔아버립니다

 

제심부동산회사가 대형쇼핑센터를 10달러에 김영순에게 넘긴 것은 김영순이 실제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쇼핑센터의 매도금액은 양도세를 역추적할 경우 백70만달러 현금에 모기지 375천달러를 넘김으로써 약 21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의 재산몰수분위기에 놀라 급하게 처분하면서 손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현재 이 쇼핑센터는 웨체스터카운티의 대대적인 재개발로 변두리 상권으로 전락했지만 버겐카운티가 2008년 고시한 공시가격만 천10만달러,

실제 가격은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한달여뒤인 3 30일에도 1979 11 29일 김형욱 실종 약 두달뒤에 매입했던 뉴욕주 라클랜드카운티 오렌지타운의 주거용 부지 7필지도 235천달러에 매각합니다

 

미국법원, 김형욱 실종 1 6개월만에 법적 사망 판결

김형욱 유족이 사망입증 결정적 증거 제시한 듯

한국정부 유족달래기 상속위해 사망증거 제공설도

 

이에 앞서 김영순과 그의 자녀 김정한 김정우 김신해등은 김형욱 실종 1 1개월만인 1980 11 18일 뉴저지법원에 김형욱의 법률적 사망 판결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소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 다음해 3 30일 공판을 끝내고 4 8일 김형욱은 법적으로 사망했음을 선고받게 됩니다

 

실종 1 6개월만에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미국 실정법상 실종자의 경우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나야 사망을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의 사망선고가 유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유산의 상속입니다

1975년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망선고가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법원은 어떤 근거로 실종 1 6개월밖에 안된 김형욱에 대해 사망을 선고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재판부가 김형욱이 사망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얻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이후 한국정부는 가족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여러가지로 고심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유산이라도 빨리 상속받게 해주자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형욱에 대한 법적인 사망선고가 필요했고 재판부를 납득시킬수 있는 사망증거를 한국정부가 김형욱 유족들에게 전달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은 철저히 숨기고 부동산 대부분을 부인명의로 구입했으므로

부동산 보다는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예금 때문에 사망선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박정권을 등졌던 김형욱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망명준비 만큼은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동백림작전만큼이나 철저했던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김형욱 실종이후의 알파인 대저택 신축, 크고 작은 콘도 매입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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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1972년 1월 알란 싱거 변호사와 김용길[현이름 김길]을 내세워 제심리얼티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김형욱,

제심부동산회사는 1972 1월 법인설립 두달여만인 같은해 4 3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대형쇼핑센터를 구입합니다


그 자신이 미국으로 도망치기 1년여전의 일입니다 
 

1972 4월이면 김형욱이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무렵입니다

 

김형욱이 해외로 밀반출한 부정축재재산이 1971 1월 테너플라이 주택구입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데 이어 마침내 뭉텅이돈이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린버스쇼핑센터는 극장, 연회장, 슈퍼마켓 2, 패스트푸드점등 완비, 현시세 천5백만달러

 

그린버그쇼핑센터 [GREENBURGH SHOPPING CENTER] 로 이름지어진 이 쇼핑센터의 정확한 주소는 77-97 크놀우드 로드, 와잇플레인, [77-97 KNOLLWOOD ROAD, WHITEPLAINS NY 10607]이었습니다

 

쇼핑센터가 규모가 있다보니 77 크놀우드로드라는 지번부터 97 크놀우드로드까지 여러 개의 지번이 이어져 있고 주차가능대수가 5백대에 이릅니다

 

웨체스터 카운티가 지난 40년간 대변모를 거듭하면서 이제 이 쇼핑센터는 다운타운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 쇼핑센터로 전락했지만 쇼핑센터의 규모는 11.5에이커, 대지 만4천평규모로 10여개의 대형 상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쇼핑몰 구입당시 제심부동산회사는 178만달러의 기존 은행융자 잔금을 그대로 안은채 현금으로 798천달러를 지불, 결국 72년 당시 매입가가 260만달러에 달합니다

당시 미국이민자 1인당 해외반출허용한도가 70달러에서 막 백달러로 상향조정됐던 시점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상상이 쉽지 않은 거액입니다

김형욱 본인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했든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이 대형쇼핑센터 구매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웨체스터카운티당국이 세금부과를 위해 고시한 2008년 이 쇼핑센터의 마켓밸류는 천10만달러 [10,135,135 달러], 실제 시장가는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CVS AP 로 잘알려진 대형식품점이 입주해 있으며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도 눈에 뜁니다

 

또 상영관 4개를 갖춘 클리어뷰 시네마 극장,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완비한 식당 로얄 팰리스, 피자레스토랑 피자브류등이 입주해 40년전 위용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외에도 술판매점인 리커스토어, 세탁소, 건축설계업체등 모두 12개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어 극장과 대형 슈퍼마켓, 패스트푸드점, 식당등 구색을 제대로 갖춘 쇼핑몰이었습니다

 

이 쇼핑센터가 김형욱이 실제 주인임은 법인 등록서류에서도 미뤄 짐작되지만 결정적으로 1973년 8월
부인 신영순이 사장직책으로 서명된 법인서류에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이 실종되고 한국에서 김형욱 재산 몰수가 추진되자 깜짝 놀란 김영순은 미국 부동산의 현금화를
추진합니다

1982년 2월 8일 제심법인은 실제 주인인 김영순 개인에게 이 쇼핑센터를 0달러에 넘기고
같은 날 김영순은 이 쇼핑센터를 70만달러에 팔게 되며 은행융자 미상환액 375천달러도 함께 넘깁니다

 


융자미상환액으로 미뤄볼 때 10년간 백40만달러를 갚은 것으로 한달에 무려 만2천달러라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도 감당하기 힘든 거액을 상환한 셈입니다

 

김형욱이 뉴욕주 웨체스터에 쇼핑센터를 구입한 것은 그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가 웨체스터에서 활동해 이 지역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웨체스터는 스카스데일, 용커스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뉴저지주 알파인등에는 못미치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망명 피난처로 거론됐던 집도 바로 이 웨체스터에 있습니다

 

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다


김형욱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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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김형욱은 1971년 1월 4일 부인명의로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데 이어 72년에도 준비를 늦추지 않습니다

김형욱은 1971 5월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지만 이때도 미국망명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2 1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형욱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습니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 [JESIM REALTY CORP]

제심은 부부나 동기간에 힘을 합쳐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제심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1972 1 18일 김형욱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칩니다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등기소에 제심법인관련서류를 신청, 2주일뒤 등기소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었습니다

 

1972 1 18일 법인설립 서류에는 김형욱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형욱의 처가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김용길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용길은 1960년대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했으며 아마도 김형욱은 친척 김용길을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부동산회사가 김형욱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서류였습니다

1973 8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제심부동산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을 한 서류.

 


대리인으로서 이 법인의 지배인역할을 맡은 알란 디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가 신영순, 싱거변호사가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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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심부동산회사의 존재를 알고 법인등록번호를 어렵사리 찾은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법인서류를 신청할 때만 해도 과연 서류가 제대로 보존돼 있을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또 이 법인과 김형욱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할 만한 서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주간 가슴졸이며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서 작은 서류 폴더하나를
통째로 건네 받았습니다

등기소 사무실 앞 열람용 책상에 앉아서 보라며 그냥 서류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폴더를 열때의 떨리는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첫 등록서류에서 알란 싱거변호사와 김용길의 이름을 찾았고
세번째 서류에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프레지던트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등진, 조국을 등진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와 부정축재의 단서가 드러난 문서였습니다

문서를 조심조심 복사한뒤 가방 깊숙이 넣고 존경하는 선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 찾았습니다 완벽한 입증관계가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 올해 5월 중순 첫 방문했던 웨체스터 등기소는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지 못해
그 큰 건물을 세바퀴나 돌며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낯선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물에는 입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큰 길 건너편 법원건물을 통해
겸색을 받아 들어간뒤 구름다리를 통해 등기소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1-2주에 한번씩 들릴때마다 아주 익숙하게 입구를 찾고
저처럼 처음오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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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한 대로 김형욱 실종 30년을 맞아 김형욱 관련 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과정을 추적합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일단 치밀한 망명준비 과정을 각종 서류와 함께 전하고 유언장, 유언장의 증인, 김형욱일가의 기구한 사연등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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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71년 이전부터 부동산구입 망명준비

-1971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매입

-1972 4월 법인명의 대형쇼핑센터 매입

 

30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망명이전부터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물론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하는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6년여를 중정부장에 재직하다 1969 10월 해임된뒤 국회의원등을 지내다 1972 10월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1973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1973 4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73 1 5일 시무식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인명의의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형욱은 수차례의 간청끝에 간신히 해외여행 승낙을 받아 4 15일 대만으로 출국, 중간에 미국행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경유지인 일본공항에서 중앙정보부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등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미국 망명 결심시점을 1973 3, 빠르게 잡더라도 1972 10월 유신선포에 따른 국회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습니다

 

1973 3월 김종필이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고 외화밀반출을 했다는 것이 1973 3월설이요, 1972 10 17일 해외국정감사도중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그때부터 영어회화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 1972 10월 결심설입니다

 

1971 1 4일 김영순명의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 매입

165천달러짜리 주택 당시 1인당 이민자 외화허용환도가 백달러

 

그러나 김형욱 일가가 부동산등을 구입하며 미국정부에 제출한 계약서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최소한 1971년이전부터 치밀한 미국 망명을 추진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약서 사진 참조]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은 자신의 부인 신영순[미국 서류에서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의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영순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 1 4일이며 주택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이 81, 매입가는 16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이민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정착금이 1인당 1백달러였으니 165천달러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업에 종사한 한 재미동포는 ‘1971년보다 10년지난 1980년대초까지도 한인이민자들이 구입한 집들이 3-4만달러였다며 1971 165천달러라면 호화주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공교롭게도 지난 2007 3월 한국정부가 3백만달러를 주고 구입, 현재 모 공사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형욱이 1971년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습니다 [한국정부 2007년 3월 3백만달러 주택구입 계약서등은 이미 이 블로그에 공개돼 있습니다]

내일은 김형욱이 망명이전에 설립한 법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글 싣는 순서는 - 김형욱 부인명의 법인 설립 - 법인명의로 망명 1년6개월전 대형쇼핑센터 매입
- 김형욱 79년 8월 파리방문직후 현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 김형욱 실종 50일뒤 김형욱부인 나대지 7필지 구입 등의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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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지난 30년전 1979년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공동묘지에서 지난 5월 초순 그의 묘를 발견했습니다

516 혁명이후 박정희 정권의 지킴이 역할을 하다 중정부장자리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망명,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박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던 김형욱.

박정권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 지난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30년만에 
결국 공동묘지의 한켠에 누워 있는 그를 찾았습니다 

이 공동묘지는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등 그의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집에서 
약 2.5마일 거리에 있었습니다 


묘비에는 KIM 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IN LOVING MEMORY' 란 단어아래 
왼쪽에는 김형욱을 의미하는 'HYUNG W'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 신영순을 의미하는 'YOUNG S SHIN'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김형욱의 이름아래 그의 생일인 음력 1925년 1월 16일을 의미하는 '음 JAN 25 1925' 란 글이 눈에 띄고 
아래에는 그의 실종일로 기억되는 1979년 10월 7일 'OCT 7 1979'이 새겨져 있습니다 

부인 신영순은 아직 생존해 있어 출생일자만 적혀 있었습니다

한때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그후로도 오랬동안 '기구한 실종'으로
인구에 회자됐던 김형욱, 그의 묘비에는 'IN LOVING MEMORY'  라는 짧은 3단어가 전부였습니다 


김형욱의 옆에는 그의 큰 아들 정한이 함께 묻혔습니다 
10대 초반 김형욱을 따라 사냥을 갔다 발목지뢰를 밟아 발목을 다쳤고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졌던
김정한은 그의 아버지 김형욱 실종이후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다 2002년 9월 세상을 등졌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를 찾아서 물어봤었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는 가족등 이해관계인이 아닌 이상 아무 것도 답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과연 이 무덤속에 김형욱 시신의 일부라도 묻혀 있는지, 아니면 가족들이 그의 추모를 위해서 
가묘를 만들었는지는 가족만이 알고 있습니다 


김형욱과 육사 8기 동기생으로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을 역임했던 방준모 전 실장에게 전화했었습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전실장은 너무 놀라 말문을 잊지 못하면서 '그곳이 어디냐, 잘잘못을 떠나서 동기생으로,
또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로서 그의 무덤앞에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간헐적으로 미국정부 여러문서를 통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미국망명을 준비했는지등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안치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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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RI Working Paper No. 20
Korean Scandal, or American Scandal?
by Bruce Cummings

미국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에 일가견을 가진 학자로 평가되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
시키고대 역사학 교수이자 노스웨스턴대학 국제비교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문제에 대해 조금은 삐딱[?]한 시각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브루스 커잉스교수가 자신의
기고문에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1996년 5월 샌프란시스코대학 일본정책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워킹페이퍼 제20권에 '한국의 스캔들 또는 미국의 스캔들'이란 기고를 했습니다

기고내용은 생략하고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커밍스는 껄끄러웠던 한미관계를 언급하다 김형욱 이야기를 들고 나옵니다

커밍스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대충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의 중요한 증인인 김형욱이 지난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됐다,
첫째 김형욱은 파리에서 살해돼 그의 목이 외교 파우치를 통해 박정희에게 보내졌거나
둘째 서울로 극비리에 압송돼 청와대 지하 사격장에서 박정희에 의해 2발의 총에 맞아 살해됐다'

아래가 바로 이부분을 언급한 원문입니다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12/12/09 - [분류 전체보기] - 2008년에도, 2009년에도 최재경 주소지는 타워팰리스-재산신고누락이냐? 공짜냐?[주진우 소송장 원문]

2012/12/05 - [최재경 ] - 삼성장학생 최재경, 삼성채권수사하며 이학수등 모두 불기소-그때는 몰랐는데 약국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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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while the key witness before Congressman Fraser's committee, the former KCIA Director Kim Hyung Wook (who had defected to the U.S. and who testified under threat of perjury in the U.S. and "under a threat of death" from Korea[24]), was reportedly kidnapped in Paris in 1979 and (1) had his head cut off and sent to Park Chung Hee in the diplomatic pouch, or (2) was secretly shipped back to Seoul where Park personally executed him "by shooting him twice at point-blank range" in the basement of the Blue House.[25] Not surprisingly no high Korean official has come forward to testify about Korean wrongdoing in the U.S. since then.

Meanwhile, the American CIA has refused to allow former employees to publish what they know about Koreagate because of the "identifiable damage to the national security" that would result.[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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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파리현지 살해설과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동시에 제기한 것입니다
사실 이 2가지 가설은 김형욱 실종뒤부터 프랑스와 일본 미국등에서 나돌던 소문으로
한국에서도 1985년께부터 기사화되기도 했던 가설입니다
그러나 나름 한국문제에 일가견이 있다는 학자가 주장했다는 점이 관심을 끄는 이윱니다

커밍스는 기고문 본문에서는 2가지 가설을 제시했지만 기고문 주석에서 청와대 지하에서
살해됐다는 2번째 가설에 더욱 방점을 찍습니다

커밍스는 이 2가지 가설이 1981년 3월 31일 발행된 뉴저지주 일간지 버겐레코드에서 인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커밍스는 김형욱 가족의 변호사가 자신의 친구의 형이라며 법원에서 2번째 즉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받아들였다고 적었습니다

사실 이날은 김형욱의 시롲에 따른 사망판결을 받기 위한 심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김형욱의 처 신영순과 그의 3자녀가 사망판결을 구하기 위한 재판을 청구했던 것이지요
커밍스가 자기 친구의 형이라고 말한 변호사는 바로 알란 싱거 변호사로
김형욱 망명이전부터 김형욱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변호사입니다
김형욱은 이 변호사와 함께 이미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치밀한
망명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미국정부에 보관된 각종 서류에서 밝혀집니다만
이부분은 서류와 함께 다시 공개하겠습니다

결국 커밍스는 중정요원이 김형욱을 납치해 대한항공 비행기[화물기?]에 태워 서울로 압송한뒤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이 있는 가운데 박정희가 '너는 배신자다'라는 말과 함께
처단했다는 주장을 펼친 셈입니다

아래는 커밍스 교수가 기고문 말미에 제시한 주석이며 기고문 원문을 화면창으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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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New York Times, June 24, 1977.
25. The Bergen Record, March 31,1981. (The Bergen Record is a newspaper published in Bergen, New Jersey.) A
lawyer for Kim's wife, who happens to be the brother of a friend of mine, succeeded in getting the court to declare Kim dead; the wife was waiting to gethold of his--very considerable--estate. The court accepted the second version ofKim's death.
26. New York Times, Dec. 22, 1979.


BRUCE CUMINGS REPORT ABOUT KIMHYUNWOOK 199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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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저도 자료스캔이 끝나는 데로 하나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안치용 백


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10-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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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9-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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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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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6-10 captured by 안치용 -
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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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김대중 납치영화 '케이티' 추모상영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고(故) 김대중 전대통령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케이티(KT)'가 일본에서 재상영된다.

   영화제작ㆍ배급사인 시네콰논(대표 이봉우)은 오는 12일부터 일주일간 도쿄 유라쿠초의 시네콰논에서 영화 '케이티'를 특별 상영한다고 4일 밝혔다.

   이 영화는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다룬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원작 소설 '납치'를 원작으로 2002년에 개봉된 액션스릴러로 제목 '케이티(KT)'는 작전명 'Killing The Target'의 약자다.

   작품은 일본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최일화가 김 전 대통령 역을, 김갑수가 김대중 납치사건을 지휘하는 한국대사관 일등 서기관 역을 맡았다.

   영화 제작에는 한일 합작으로 총 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영화는 지난 2002년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와 함께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됐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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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일본영화 KT

 

오래전부터 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김형욱 전 중정부장 실종사건등이 관심이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한번 당시 사건을 찾아보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김대중 납치 사건 보고서 전문을 구해 블로그에 옮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검색도중 우연챦게 접한 일본영화 KT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영화 KT는 이 사건에 일본 자위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아주 깊숙히 관련돼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세가지다 첫째 박정희가 지시했다 둘째 납치가 아닌 살해작전이었다 세째 일본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런 메세지에다 첩보요원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부차적인 메세지다 
 

그동안 우리가 알기로는 자위대 출신 정보요원들이 사설 흥신소를 차려 디제이의 소재를 알려주는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영화가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탄탄한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있어 다시 한번 자위대 관여범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하나 과감하게 자위대의 관여를 영화로 그린 감독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꼭 한번 이 영화를 보고 현대사의 비극을 되짚어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짧은 감상을 말하라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면서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과 무거움이 엄습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KT로 일본인인 사카모토 준지가 감독한 영화로 138분 길이이며

김갑수 최일화등 한국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의 특징은 납치를 당한 디제이 입장이 아니라 납치를 실행하며 갈등하고 절규하는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어쩔수 없이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본 자위대원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중정요원들을 미화 내지는 호의적으로 그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준지 감독이 디제이 납치에 자위대 관여사실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스파이 비밀경찰이면서도 인간으로서 어쩔수 없이 겪게 되는 번민과 갈등, 그리고 절규를 잘 전달했다는 생각이다

 

일본 자위대에서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도미타 삼좌는 이제 그늘속에 사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전역을 희망하지만 자위대 고위층에서는 그에게 가계를 열고

중앙정보부 KCIA를 지원하라고 명령한다

 

자위대 간부는 일광욕을 하고 싶다는 도미타에게 그늘속에서 일할 때 국가와 국민이 행복하다는 선배장교의 말로 설득을 하고 결국 도미타는 현역 자위대 대원들과 함께 흥신소를 차린다

 

도미타 삼좌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여러 차례의 업무협조를 통해 잘 아는 사이.

 

여기서 잠깐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을 살펴보면 박정희의 암묵적 지시에 의해 이후락이 이철희를 통해 지시하고 김기완 주일 공사- 김동운 1등 서기관 한국의 제임스 본드라 불리던 윤진원등이 사건을 실제 주도한 핵심인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바로 김동운 1등 서기관.

 

김차운이 도미타에게 도저히 디제이를 찾을 수가 없다며 소재파악을 부탁하고 그 와중에 디제이 진영에서는 살해위협이 진행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는다

 

이 제보의 당사자는 뒤에 밝혀지지만 바로 이 작전 가담을 명령받은 중정요원으로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 목숨을 걸고 제보를 하게 되지만 결국 제보사실이 드러나면서 동요요원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김차운이 마땅챦아하는 도미타에게 내 목숨이 걸린 일이며 조직의 일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일이라고 설득하고 협조를 약속받는다

 

71년 대선때 트럭테러로 다리를 절게 된 디제이는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일본에서 유신독재 타도에 나선다

 

김기완 공사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동경의 중정 안가에서 중정요원 6명을 모아놓고 기필고 과업을 완수할 것을 다짐한다

 

이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김차운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한다

 

이 회의에서 김대중의 입을 막는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김차운은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목이라며 간접적으로 박정희의 살해지시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동백림사건때는 납치해 한국으로 데려가서 문제였지만 여기서 없애버리면 된다며 강경론을 편다

 

어렵게 소재파악을 마치고 감시에 나서게 되지만 일본 경시청에서 디제이를 미행하는 중정요원들의 사진을 촬영함에 따라 다시 2명의 요원이 교체됐고 새로 투입된 요원은 임무수행에 갈등하다 이호 주일대사에게 이를 직보한다

 

이호대사가 김기완을 불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김기완은 나도 수차례 만류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김차운등은 1973 8 9일 디제이가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기로 했다며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게 되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됨으로 그 전에 디제이를 납치 살해하기로 하고 요원들과 함께 최종 도상연습을 마친다

 

또 도미타에게도 8 8일이 디데이라며 마지막까지 함께 해 달라며 2천만엔을 전달한다

 

도미타는 깜짝 놀라 마지막까지 라니 무슨 말이냐고 하자 김차운은 끌어다 주면 뒷처리는 우리가 하겠소라며 자위대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한다

 

김차운은 도미타가 결심하지 못하자 자신의 세 자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가 문제가 있어 성형수술을 꼭 시켜주고 싶다고 말하는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도미타의 협조를 끌어낸다

 

도미타가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는 암살이 실패하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죽는다는 김차운의 말

 

결국 도미타는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암살계획이 착착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이에 갈등하는 중정요원이 디제이 인터뷰기사를 실은 신문기자에게 접근해 다시 한번 중정의 디제이 암살계획을 제보한다

 

일본의 포르노극장에서 중정요원은 기자를 은밀히 접촉, 내용을 전달하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이 기사가 다른 잡지에 게재된다

 

디제이를 미행해 납치하려던 중정요원들은 현장에서 이 기사를 접하고 다시 한번 철수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번은 디제이를 미행하다 경시청에 사진이 찍히게 되고 한번은 모든 요원을 동원해 결행할 준비를 마쳤지만 납치계획을 실은 기사 때문에 중단하는 것이다

 

도미타는 마침내 2천만엔 수표를 받아들이며 가담을 결심한다

도미타의 가담 결심은 김차운에 대한 의리와 우정이 가장 큰 이유지만 수표를 받은 것은 그가 사랑하던 한국여자, 학생운동을 하다 중정에 끌려가 고문으로 큰 흉터를 남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수술비용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여자는 수표를 거부하게 되고 나중에 도미타는 다시 그 수표를 김차운에게 돌려주게 된다

 

잡지에 암살기사가 게재된뒤 김차운은 요원내 배신자를 찾게 되고 요원들을 동원 디제이 암살 예행연습이라며 그 배신자를 죽이고 시신을 절단해 유기하게 한다

 

각 요원에게 마취 절단 등을 시키던 김차운은 피를 모두 빼내고 절단하려다 도저히 못하겠다며 구역질을 하며 돌아서는 요원의 목을 붙잡고 이제는 돌아설 수 없다고 말한다

 

하수구 시설이 있는 방에서 비닐천막위에 사람을 누이고 절단을 하고 한 요원을 수도호스를 들고 피를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바로 이날 중정암살계획을 보도했던 기자는 다시 극장에서 중정요원을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살해당한 중정요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드디어 1973 8 7, 암살실행 하루전 최종점검에 나선다

김기완 주일공사는 제군들 내일 반드시 신병을 확보하도록이라는 말로 엄염을 내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자위대의 역할은 소재파악에서 끝났지만 이 영화에서의 자위대의 역할을 여기서 더 깊숙이 들어간다

 

끝까지 가달라던 김차운의 말에 따라 도미타, 자위대 정보장교 도미타도 호텔에서 함께 디제이를 납치하게 된다

 

이들은 잘 아는 데로 디제이와 양일동 통일당 당수가 만난뒤 방을 나올 때 디제이를 납치하기로 했고 이 경우 목격자는 디제이뿐이라서 디제이만 살해하면 완전범죄라는 구상을 한다

 

그러나 의외의 인물, 디제이의 먼 친척동생인 김경인 의원이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김차운은 디제이를 호텔복도에서 납치하려다 김경인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게 되고 디제이가 납치된 방으로 돌아와 침대를 걷어차고 벽을 주먹으로 치면서 절규한다 실패를 절감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작전변경이다 차에 실어

감독은 이 말을 통해 디제이납치가 아니라 디제이 살해가 당초 계획이었음을 알리려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일본경시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발견, 한국정부를 압박한다

 

자위대가 깊숙히 관여해 사실상 납치를 묵인해 주었으면서도 바로 이 지문을 근거로얼르고 달래고 빰치는 식으로 한국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이 지문에 대해 이 영화는 김동운 즉 극중 김차운이 의도적으로 지문을 남긴 것으로 해석한다

 

지문이 발견돼 신원이 확인되면 한국정부등에서 작전에 실패해도 이름이 알려지고 신원이 확인된 이상 자신을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김차운이 지문을 남겼다는 것이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고 아마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들은 우여곡절끝에 마취된 디제이를 호텔주차장으로 끌고 나와 차에 싣고 오사카로 향하게 되고 자위대원 도미타는 납치 승용차 앞좌석에 앉아 검문검색에 대비한다

 

자위대원이 용금호가 있는 기다리는 부두까지 동행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첫 주장이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일본어에 능하다 하더라도 경찰 검문등을 당할 경우에는 당황해서 탄로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일본인 1명을 동승시킨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뒤늦게 납치를 알게 된 재일동포 청년은 자신의 소홀로 디제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엉엉 소리내어 울게 된다

 

한편 부두로 가기전 미행을 눈치채고 안가로 가면서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전화를 건다

 

김차운의 전화를 받은 김기완은 당초 살해작전이 실패했음을 알고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살든 죽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반드시 살려시 돌려보내라고 말한다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이제 어떻게 하실겁니까라고 묻자 김기완은 이제부터는 나보다는 자네를 먼저 생각하게라고 말한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후배를 생각하는 말같다, 당신 살길만 생각하라는 말이다

 

김차운과 전화를 끝낸 김기완도 위협을 직감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즉시 미국으로 가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자신과 딸을 초청해 달라고 당부한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후일 김기완은 미국에서 살게 되고 [망명인지는 모르겠음] 김형욱의 코치로 한국정부에 디제이 납치사건을 폭로하겠다고 협박, 한국정부로 부터 거액을 챙기게 됩니다  

 

한편 김차운은 통화뒤 야음을 틈타 도미타와 함께 용금호에 가기 위한 통선부두에 도착하는데 느닷없이 검은 승용차가 굉음을 내고 달려온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위대의 도미타 부하수사관들,

본부로 연행해 오라는 명령이라며 더 이상 관여하면 안된다고 설득한다

 

도미타는 중정요원들과 작별을 고하게 되고 오사카로 오는 도중 2천만엔 수표를 돌려받았던 김차운은 자신이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도미타에게 수표를 자신이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중정요원들은 코만 내놓은채 얼굴을 비롯해 디제이 몸전체를 테이프로 둘둘 말아싼뒤 통선으로 한시간가량 달려 용금호에 오르고 용금호가 전속력으로 일본 외해로 도망치는 속에서 갑판아래쪽에서는 디제이를 수장시키기 위해 무거운 추를 메달기 시작한다

 

디제이는 이제는 때릴 필요도 없다 때리지 마라 하느님 상어에게 몸둥아리 반이 먹히더라도 살아나게 해서 한국을 민주화시킬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바로 이때 한 중정요원이 추를 메달면서 디제이의 발등에 손가락으로 안심이라는 글을 쓴다

 

이 중정요원은 갑자기 총을 빼들어 김차운등에게 겨누며 이사람을 죽이면 안됩니다 ,. 김선배님 상호 죽이는 일은 그만합시다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은 네놈이 배신자구나, 남산 지하 5층에서 이 세상 하직할 준비나 해라고 외치다 헬기 소리라 들리면서 방심하는 틈을 타 배신자로 낙인찍은 중정요원을 총으로 제압한다[디제이의 생환뒤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은 없어 '픽션'으로 추정]

그뒤 김차운은 갑판으로 뛰어올라와 헬기를 향해 총을 발사하며 너희들이 무얼 알느냐 상관하지 마라 돌아가, 참여할 권리가 없어 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이 헬기에 총을 쏠 동안 헬기에서는 모르쓰전신을 통해 용금호에 무전을 보낸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

 

역사의 전환점이다 만약 이때 수장됐다면 한국 현대사는 다시 쓰였을 것이다

헬기, 비행기부분에 대해서는 디제이는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중정요원들은 완강히 부인한 부분이다

 

장면이 바뀌고 자위대로 연행된 도미타

 

도미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자위대에 이용당했음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가게 즉 흥신소를 열어 중정을 지원하라고 명령했던 간부는 권총 한정을 도미타에게 내민다 총알은 한발만 들었네라는 말과 함께

 

자결하라는 의마다

 

그러나 도미타는 일본 자위대는 미군의 제2중대다, 일본은 미국의 엘로몽키다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며 자신은 자결하지 않을 것이라며 쓸쓸히 자위대를 떠난다

 

조직에서 버림받은 도미타의 등뒤로 자네는 이미 흥신소 차리기 전날 전역한 것으로 처리했네, 자네 몸은 스스로 지키도록이라는 냉정한 말만 들려온다

 

디제이는 부산을 거쳐 결국 6일만에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다

 

도미타는 자위대에서 나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우정을 발휘한다

 

김차운이 보험을 든다며 지문을 남긴 것을 의식, 사건현장에 김차운의 지문이 있음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림으로써 김차운의 목숨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다

 

도미타는 중정 암살계획을 보도한 기자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며 보도를 부탁하고 자신은 이미 시골에 숨어 지내겠다고 작별인사를 ㅎ나다

 

그러면서 도미타는 다시 이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단서를 남긴다

 

일본 자위대 최고위간부가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라고

결국 그래서 자위대가 디제이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관여했다는 배경설명이다

 

시골 깊숙한 것으로 잠적한 도미타, 자위대는 도미타의 행적을 찾지 못하다 납치사건 약 3개월뒤인 11 2일 마침내 그를 찾는다

 

도미타의 한국인 애인이 도미타가 있는 시골을 방문하게 되고 자위대가 그뒤를 밟은 것.

 

도미타는 사랑하는 여인을 마중하기 위해 시골 간이역으로 나간다
간이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간이역은 만남과 헤어짐이요 설렘이자 아픔이다 

도미타에게 간이역은 헤어짐이요 아픔이었다
그가 경멸했던 것들과의 영원한 헤어짐.

영화는 도미타가 총에
맞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마침 이날은 일본이 이사건이 한일 양국간에 원만히 마무리됐음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상이 이영화줄거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전제하에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가담한 일본정부를 강력히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자위대의 백% 깊숙한 개입을 알게 됩니다

더구나 이영화가 일본에서 제작, 상영됐음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국민을 어떻게 취급할까요

 

조센징은 역시 바가야로. 말도 한마디 못하구나하지 않을 까요

 

사족입니다만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그늘에 살아가는 정보요원들의 터질듯한 고뇌를 잘 그려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갈등하면서도 일부는 목숨을 걸고 대항했고, 일부는 살기 위해서 무조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엄청난 정치적 음모속에 악역을 맡아야 했던 한일 정보요원들의 아픔이 어렴풋이 나마 드러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실감나게 느꼈다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꼭 한번 KT를 보시기 바랍니다

=====================================================================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관련 국정원 진상보고서는 자위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정 전문, 보고서등이 수록돼 있어 한번
살펴볼 가치는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분은 이블로그 과거사 의혹 진상보고서 편을 참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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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저도 자료스캔이 끝나는 데로 하나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안치용 백

큰 화면이나 자료 다운로드는 화면창 아래 파일명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제보도 환영합니다
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5-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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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4-10 captured by 안치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