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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09.10.12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4)
  2. 2009.10.12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9)
  3. 2009.10.07 최초확인- 뉴욕 웨체스터서 김형욱 소유 대형쇼핑센터 발견 [현시가 천5백만달러] (6)
  4. 2009.10.06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5. 2009.10.05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6. 2009.10.05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9)
  7. 2009.09.19 박정희 - 대통령 딸 미국집을 한국정부가 사들이다 (25)
  8. 2009.09.11 김형욱이 만든 양지팀, 국정원팀과 친선경기 [펌]
  9. 2009.09.11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15)
  10.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0
  11.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9
  12.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8
  13.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7 (2)
  14.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6
  15. 2009.09.05 김대중 장남 김홍일 남산 고문후유증으로 파킨스씨병 [한겨레 21] (3)
  16. 2009.09.05 日서 김대중 납치 영화 'KT'케이티 추모상영
  17. 2009.09.05 김대중 납치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영화 'KT' (1)
  18.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5
  19.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4
  20.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3
  21.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2
  22.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
  23. 2009.09.02 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일본영화 KT (1)
  24. 2009.08.31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5-5
  25. 2009.08.30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4-5
  26. 2009.08.30 국정원 접촉 숨긴 한국인 스파이체포 : FBI에 거짓 진술 한국인 간첩 기소
  27. 2009.08.29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3-5
  28. 2009.08.28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2-5
  29. 2009.08.28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1-5
  30. 2009.08.26 김대중 납치사건에 일본 자위대 관여-중정 협조자 양모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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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 천5백만-35백만달러 추정

-워싱턴 포스트, 26백만달러추정

-버겐레코드, 5백만달러 추정

-이백희씨, 김형욱본인 35백만달러 주장

-과거사위 보고서, 프레이저청문회 천5백만-2천만달러 추정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박정희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김형욱

과연 정권안보만을 지키는 선에서 그쳤을까, 그렇지 않다

 

김형욱은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의 큰 권력을 가졌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데다 정보기관의 역대 수장중 최장기간 재직한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이권에 관여했음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여러가지 이권중 가장 큰 이권은 차관도입에 따른 커미션

이 커미션이 꼬박 꼬박 스위스등에 개설된 은행으로 예치돼 정권유지비용으로도 사용됐지만

일부는 개인 치부에 이용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김형욱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그의 재산을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프레이저 청문회, 미국언론보도,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등의 자료를 보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는 1978 12 8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미국은행인 시티뱅크에 2천만달러, 아마도 스위스은행인듯한 해외계좌에 6백만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니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26백만달러라고 추정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이 기사에서 김형욱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비공개청문회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350만달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김형욱의 은행기록을 확인한 결과 78년이전 수년간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에 도박비용으로 지급된 돈이 백40만달러였다는 사실도 게재했다

 

정리하면 김형욱 본인인정액이 350만달러지만 스위스와 미국의 예금 추정액은 26백만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형욱 사망선고 재판과정을 담은 뉴저지주 일간신문 버겐레코드에도 김형욱재산에 대한 언급이 있다

 

버겐레코드는 1981 3 31일자 신문에서 김형욱이 법적으로 사망판결을 받음으로써 천5백만달러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이 부인 김영순과 세자녀에게 상속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는 김형욱 재산을 천5백달러에서 2천만달러정도로 추산했다

 

이보고서에 따르면 프레이저위원회는 조사결과 김형욱이 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이라고 기재했다.

 

또 프레이저위원회 조사에서 뉴욕은행에 4백만-5백만달러의 정기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1977 6월까지 친지들의 사업구좌를 이용해 한국에서 재산을 계속 반출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이외에도 1973년 부산과 인천항을 통해 2차례에 걸쳐 반출했다고 한다

 

주간동아도 2005 816일자에서 김형욱 측근 L씨의 주장을 인용, 김형욱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주장한다.

L씨는 이제 고인이 된 이백희씨로 김형욱의 측근중 측근이며 그의 장인이 월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월남의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부수상까지 지냈었다

주간동아는 이백희씨 친구의 말을 인용, 김형욱이 자기 입으로 자기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보도와 프레이저청문회등을 참고하면 김형욱의 재산은 최저 천5백만달러에서 최대 35백만달러로 추정된다

또 재산환수소송등을 통해 삼선동주택과 신당동 대지 일부를 돌려받았음을 감안하면 재산은 이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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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 알파인에 최소 6백만달러 대저택소유

-김형욱 실종뒤 알파인에 대저택 신축

-포트리등에 콘도 여러채 - 자녀들에게 집 한채씩

-김형욱 명의 부동산 거의 없어

-유산상속판결은 부동산보다 스위스예금이 목적

 

 

호화주택 구입, 대형쇼핑센터 매입등을 통해 사전에 미국에 기반을 굳힌뒤 망명길에 올랐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1979 10 7일 파리에서 김형욱이 사라진뒤에도 김형욱 유족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본명 신영순] 1982 5 21일 뉴저지 포트리에 콘도 한채를 매입합니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 콘도, 이 콘도는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 초입 포트리의 번화가에 있는 콘도로 정확한 주소는 1600 CENTER AVE, FORT LEE, NJ 입니다

김영순은 9만천740달러[91,740USD]에 매입한 하이트맨하우스 콘도의 5E 호를 4년여뒤인 1986 2 28 145천달러[145,000USD]에 매도함으로써 약 50%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김형욱 유족들의 재산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알파인의 대저택

이 저택은 뉴저지주 팰리세이트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2번출구에서 빠진뒤 클로스터로 내려가는 급경사 오른편 언덕 깊숙한 곳 막다른 집입니다


MARIE MAJOR DRIVE로 알려진 이 길에서 김형욱의 저택은 2차선도로의 맨 마지막 집이며 실제 저택은 웅장한 철제 대문에서 작은 언덕을 따라 20미터 정도 올라가야 됩니다.

지적도상 블록[BLOCK] 81.05, [LOT] 1입니다


김형욱이 실종 직전 또 다른 알파인 집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살면서 이 집이 도로 아래쪽에 있어 누가 차를 타고 가다 수류탄만 굴려도 죽는다며 불안에 떨었던 점을 감안, 아마도 도로보다 한참 위쪽의 집을 택한 것 같습니다

 

또 이 집의 2차선 도로가 끊기게 되는 마지막에 있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이 집앞을 지나다닐 일이 없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차단된 집입니다

 

잘 생긴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집은 길가에서는 쉽게 규모조차 짐작되지 않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등을 통해서만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의 부지는 2에이커, 2448평이며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실외수영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직전인 1979 8 10일 김형욱이 파리를 다녀오게 되고 보름뒤인 8 24일 부인 신영순 명의로 1725백달러를 주고 이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뒤 1981 5월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로 유산상속인이 된뒤 1982년 이 집의 신축공사에 들어가 1984년 완공과 함께 입주하게 됩니다

 

이 집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채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시돼 있는 것은 물론 뉴저지주 세무국 서류에서도 주소가 없는 사서함 번호만 기재돼 있습니다

 

이 집은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 지난 2002 9 5일 장남 김정한이 사망하자 20일뒤인  9 26김영순신탁[KIMYOUNGSOON TRUST]으로 소유권이 바뀐다

 

김영순에서 김영순신탁으로 이 집이 양도될때의 가격은 단돈 1달러,

김영순신탁의 관리인[TRUSTEE]은 김형욱의 차남인 김정우 변호사[제임스 김]와 딸 김신해씨로 지정돼 있습니다


뉴저지주 세무국은 지난 2006년이래 2009년까지 세금부과를 위한 이 집의 공시가격을 매년 변동없이 239만달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지가 백80만달러, 건물이 539천여달러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장가격은 최소한 6백만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뉴저지주 세무국 자료에 따르면 알파인지역의 부동산은 지적도상 상가와 주택을 모두 포함해 정확히 8백채, 이중 3백만달러에서 천만달러 주택이 즐비하고 이 저택도 그 중의 한채인 것이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뉴저지주 법원에서 이 집의 건축비용이 1982년당시 최소 2백만달러를 넘어서며 융자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김형욱 유족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큰 돈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은 김형욱 실종 1년뒤인 1980년 결혼하게 되고 1985년 외동딸 신해씨가 결혼하게 됩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등기소 서류에 따르면 김신해씨와 남편 한상철씨는 1985 9 16일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를 부부공동명의로 구입합니다

 

이 콘도의 주소지는 200 OLD PALISADES ROAD, 호수는 PH-4. 호수에서 알 수 있듯 PH는 펜트하우스 즉 그 콘도의 최고 꼭대기 층이며 매입가격은 489천달러였습니다

 

매매계약서에서 이름을 드러낸 한상철씨는 5공당시 **실장을 지낸 모인사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1989 8 25일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합의에 따라 이 콘도가 김신해씨 단독 소유로 바뀌게 됩니다



그뒤 김신해씨는 1995 5 2일 이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50만달러에 매도합니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매입했던 김영순은 1989 5 9일 뉴저지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알려져 있는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입니다

 

이 콘도의 주소는 1512 PALISADES AVENUE, FORT LEE NJ. 호수는 15L호로

 매입가격은 483천여달러[483,485 USD] 였습니다

 

5년뒤인 1994 4 18일 김영순은 약 16만달러 손해를 본 328천달러[328,000 USD]에 이 콘도를 팔아치웁니다



부동산 시세가 많이 하락한 것입니다

 

그 이듬해인 1995 9월 장남 김정한도 아트리움콘도 한채를 매입하면 매입가격은 김영순의 매도가격과 비슷한 35만달러였습니다

 

장남 김정한이 김형욱 실종뒤 크게 상심해 방황하자 플로리다주에서 자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도록 도움을 준 김영순은 2001 8 15일 자신이 51%, 장남 정한이 49%의 지분을 가지는 조건으로 알파인 처치 스트릿에 단독주택 한채를 사줍니다

 

1.22에이커 대지의 이 주택 매입가는 99만달러로 장남집과 김영순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1분거리.

그러나 2002 9 5일 장남 정한이 죽자 그후 2년뒤인 2004 8 13일 이 집을 1535천달러[1,535,000 USD]에 매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순씨와 큰 며느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 큰 며느리는 자녀 3명과 함께 몹시도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김형욱 유족은 김형욱 실종뒤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사고 팔게 되고 현재는 알파인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김형욱관련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점은 김형욱이 거의 모든 부동산을 부인 김영순 소유로 함으로써 자신은 철저하게 숨겼다는 점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의 두번째 집인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의 주택을 구입할 당시인 1974 8월 김영순과 함께 융자서류에 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부동산 서류였습니다

 

아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실종 1 6개월만인 1981 4월 뉴저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사망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유산 상속입니다.

 

김형욱 명의의 부동산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영순이 유산상속인으로 지정된 것은 부동산보다는 미국과 스위스에 예치됐던 예금을 갖게 됐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정부가 오는 12월 스위스은행인 UBS로부터 미국 거부 4천여명의 계좌 내역을 넘겨받는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과연 김형욱의 스위스계좌가 베일을 벗을지 주목됩니다

내일은 미국언론보도등을 근거로 김형욱의 재산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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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1972년 1월 알란 싱거 변호사와 김용길[현이름 김길]을 내세워 제심리얼티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김형욱,

제심부동산회사는 1972 1월 법인설립 두달여만인 같은해 4 3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대형쇼핑센터를 구입합니다


그 자신이 미국으로 도망치기 1년여전의 일입니다 
 

1972 4월이면 김형욱이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무렵입니다

 

김형욱이 해외로 밀반출한 부정축재재산이 1971 1월 테너플라이 주택구입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데 이어 마침내 뭉텅이돈이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린버스쇼핑센터는 극장, 연회장, 슈퍼마켓 2, 패스트푸드점등 완비, 현시세 천5백만달러

 

그린버그쇼핑센터 [GREENBURGH SHOPPING CENTER] 로 이름지어진 이 쇼핑센터의 정확한 주소는 77-97 크놀우드 로드, 와잇플레인, [77-97 KNOLLWOOD ROAD, WHITEPLAINS NY 10607]이었습니다

 

쇼핑센터가 규모가 있다보니 77 크놀우드로드라는 지번부터 97 크놀우드로드까지 여러 개의 지번이 이어져 있고 주차가능대수가 5백대에 이릅니다

 

웨체스터 카운티가 지난 40년간 대변모를 거듭하면서 이제 이 쇼핑센터는 다운타운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 쇼핑센터로 전락했지만 쇼핑센터의 규모는 11.5에이커, 대지 만4천평규모로 10여개의 대형 상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쇼핑몰 구입당시 제심부동산회사는 178만달러의 기존 은행융자 잔금을 그대로 안은채 현금으로 798천달러를 지불, 결국 72년 당시 매입가가 260만달러에 달합니다

당시 미국이민자 1인당 해외반출허용한도가 70달러에서 막 백달러로 상향조정됐던 시점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상상이 쉽지 않은 거액입니다

김형욱 본인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했든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이 대형쇼핑센터 구매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웨체스터카운티당국이 세금부과를 위해 고시한 2008년 이 쇼핑센터의 마켓밸류는 천10만달러 [10,135,135 달러], 실제 시장가는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CVS AP 로 잘알려진 대형식품점이 입주해 있으며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도 눈에 뜁니다

 

또 상영관 4개를 갖춘 클리어뷰 시네마 극장,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완비한 식당 로얄 팰리스, 피자레스토랑 피자브류등이 입주해 40년전 위용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외에도 술판매점인 리커스토어, 세탁소, 건축설계업체등 모두 12개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어 극장과 대형 슈퍼마켓, 패스트푸드점, 식당등 구색을 제대로 갖춘 쇼핑몰이었습니다

 

이 쇼핑센터가 김형욱이 실제 주인임은 법인 등록서류에서도 미뤄 짐작되지만 결정적으로 1973년 8월
부인 신영순이 사장직책으로 서명된 법인서류에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이 실종되고 한국에서 김형욱 재산 몰수가 추진되자 깜짝 놀란 김영순은 미국 부동산의 현금화를
추진합니다

1982년 2월 8일 제심법인은 실제 주인인 김영순 개인에게 이 쇼핑센터를 0달러에 넘기고
같은 날 김영순은 이 쇼핑센터를 70만달러에 팔게 되며 은행융자 미상환액 375천달러도 함께 넘깁니다

 


융자미상환액으로 미뤄볼 때 10년간 백40만달러를 갚은 것으로 한달에 무려 만2천달러라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도 감당하기 힘든 거액을 상환한 셈입니다

 

김형욱이 뉴욕주 웨체스터에 쇼핑센터를 구입한 것은 그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가 웨체스터에서 활동해 이 지역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웨체스터는 스카스데일, 용커스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뉴저지주 알파인등에는 못미치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망명 피난처로 거론됐던 집도 바로 이 웨체스터에 있습니다

 

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다


김형욱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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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지 오늘로 꼭 30년입니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준모 전 감찰실장을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제가 캠코더가 준비돼 있지 않아 방 전실장의 대면인터뷰 허용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통해 인터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14/05/22 - [분류 전체보기] - 방준모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21일 미국 뉴저지서 별세




동영상 편집과 동영상 올리기등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 짧은 육성을 올리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군요
앞으로 숙달되면 좀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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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김형욱은 1971년 1월 4일 부인명의로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데 이어 72년에도 준비를 늦추지 않습니다

김형욱은 1971 5월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지만 이때도 미국망명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2 1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형욱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습니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 [JESIM REALTY CORP]

제심은 부부나 동기간에 힘을 합쳐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제심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1972 1 18일 김형욱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칩니다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등기소에 제심법인관련서류를 신청, 2주일뒤 등기소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었습니다

 

1972 1 18일 법인설립 서류에는 김형욱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형욱의 처가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김용길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용길은 1960년대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했으며 아마도 김형욱은 친척 김용길을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부동산회사가 김형욱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서류였습니다

1973 8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제심부동산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을 한 서류.

 


대리인으로서 이 법인의 지배인역할을 맡은 알란 디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가 신영순, 싱거변호사가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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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심부동산회사의 존재를 알고 법인등록번호를 어렵사리 찾은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법인서류를 신청할 때만 해도 과연 서류가 제대로 보존돼 있을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또 이 법인과 김형욱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할 만한 서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주간 가슴졸이며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서 작은 서류 폴더하나를
통째로 건네 받았습니다

등기소 사무실 앞 열람용 책상에 앉아서 보라며 그냥 서류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폴더를 열때의 떨리는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첫 등록서류에서 알란 싱거변호사와 김용길의 이름을 찾았고
세번째 서류에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프레지던트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등진, 조국을 등진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와 부정축재의 단서가 드러난 문서였습니다

문서를 조심조심 복사한뒤 가방 깊숙이 넣고 존경하는 선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 찾았습니다 완벽한 입증관계가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 올해 5월 중순 첫 방문했던 웨체스터 등기소는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지 못해
그 큰 건물을 세바퀴나 돌며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낯선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물에는 입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큰 길 건너편 법원건물을 통해
겸색을 받아 들어간뒤 구름다리를 통해 등기소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1-2주에 한번씩 들릴때마다 아주 익숙하게 입구를 찾고
저처럼 처음오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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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한 대로 김형욱 실종 30년을 맞아 김형욱 관련 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과정을 추적합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일단 치밀한 망명준비 과정을 각종 서류와 함께 전하고 유언장, 유언장의 증인, 김형욱일가의 기구한 사연등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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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71년 이전부터 부동산구입 망명준비

-1971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매입

-1972 4월 법인명의 대형쇼핑센터 매입

 

30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망명이전부터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물론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하는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6년여를 중정부장에 재직하다 1969 10월 해임된뒤 국회의원등을 지내다 1972 10월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1973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1973 4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73 1 5일 시무식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인명의의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형욱은 수차례의 간청끝에 간신히 해외여행 승낙을 받아 4 15일 대만으로 출국, 중간에 미국행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경유지인 일본공항에서 중앙정보부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등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미국 망명 결심시점을 1973 3, 빠르게 잡더라도 1972 10월 유신선포에 따른 국회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습니다

 

1973 3월 김종필이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고 외화밀반출을 했다는 것이 1973 3월설이요, 1972 10 17일 해외국정감사도중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그때부터 영어회화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 1972 10월 결심설입니다

 

1971 1 4일 김영순명의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 매입

165천달러짜리 주택 당시 1인당 이민자 외화허용환도가 백달러

 

그러나 김형욱 일가가 부동산등을 구입하며 미국정부에 제출한 계약서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최소한 1971년이전부터 치밀한 미국 망명을 추진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약서 사진 참조]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은 자신의 부인 신영순[미국 서류에서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의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영순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 1 4일이며 주택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이 81, 매입가는 16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이민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정착금이 1인당 1백달러였으니 165천달러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업에 종사한 한 재미동포는 ‘1971년보다 10년지난 1980년대초까지도 한인이민자들이 구입한 집들이 3-4만달러였다며 1971 165천달러라면 호화주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공교롭게도 지난 2007 3월 한국정부가 3백만달러를 주고 구입, 현재 모 공사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형욱이 1971년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습니다 [한국정부 2007년 3월 3백만달러 주택구입 계약서등은 이미 이 블로그에 공개돼 있습니다]

내일은 김형욱이 망명이전에 설립한 법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글 싣는 순서는 - 김형욱 부인명의 법인 설립 - 법인명의로 망명 1년6개월전 대형쇼핑센터 매입
- 김형욱 79년 8월 파리방문직후 현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 김형욱 실종 50일뒤 김형욱부인 나대지 7필지 구입 등의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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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 전 현직 대통령 자녀들의 미국 부동산 쇼핑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516 쿠테타[516 혁명]를 통해 정권을 장악, 18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을 가난에서 구해낸 최고의 대통령이란 긍정적 평가이면에
세차례에 걸친 군사정권 탄생의 서막을 열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등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2012/09/17 - [대통령 후보] - [박정희X파일]'4대의혹' 재판도 사전조작- 박정희 승인하에 김형욱-길재호가 구형량 결정 :미대사관 면담보고서


2017/04/20 - [분류 전체보기] - 김평우변호사, 간통죄로 피소됐었다 - UCLA명예교수-국제번호인단 설립시기등도 허위- [문]간통죄로 피소됐나 [답]옛날 옛날의 이야기고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첫번째 부인이었던 김호남 여사와의 사이에 딸 박재옥을,
두번째 부인이었던 육영수여사와의 사이에 근혜, 근영, 지만등 1남2녀를 두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조금은 마음에 쬔한 딸이었던 박재옥을 한병기와 맺어주었고
한병기는 약관 30세에 미국 뉴욕 총영사관 영사에 이어 칠레, 유엔대표부, 캐나다 대사등을 역임하고
제8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아깝게도?  71년 당선된뒤 유선선포로 1년만에 국회가 해산됩니다]


지금부터 한병기 - 박재옥 부부의 미국 뉴욕 부동산에 대한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언니의 이야기기도 합니다

박정희의 큰 사위 한병기는 1976년 45세 나이에 주유엔대표부 대사에 임명됩니다
뉴욕에 있는 유엔대표부는 특1급 대사자리로 외교부의 최고 베테랑 외교관이 나가는 자리입니다만
한병기는 외교관등 공직과 민간기업등을 오락가락하다 대통령 맏사위여서인지
기라성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유엔대사가 된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미국정부에 보관된 문서를 살펴보면
한병기 박재옥 부부는 1976년 8월 17일 뉴욕주 스카스데일에 붉은 벽돌집을 사게 됩니다
이 집의 서류상 주인은 한재옥 [HAN JAE OCK], 구입가격은 20만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 이민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외화반출한도가 1인당 2백달러였던 시기입니다

뉴욕타임스는 1976년 11월 30일 뉴욕타임스는 KCIA 중앙정보부의 미국 조직 개편등을 다룬 장문의 기사에서
한병기 박재옥 부부의 집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미스터 한은 최근 뉴욕 스카스데일에 20만5천달러짜리 집을 샀다, 한인사회에서는 중세 성[샤토] 모양의
이 붉은 벽돌집은 박정희 대통령이 실각할 경우 망명처로 사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박정희가 권좌에 있으니)확인될
성질의 문제는 아니지만'

NYTIMES ARTICLE ABOUT KCIA 197611 -

뉴욕에서는 '한병기가 관사를 샀다' '박대통령을 위한 집이다' 등의 소문으로 이집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직접 서류를 조사해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은 이 집이 대통령 딸의 소유로 돼 있었고
더구나 이를 한국정부, 그러니까 정부 예산으로 다시 사들였다는 것입니다

돈은 누가 냈는지 알수 없겠으나 관사가 개인이름으로 구입될 수 없는 만큼 큰 딸이 소유권자인 것은
'박정희 망명처' 소문의 어렴풋한 근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첨부서류 세부분중 맨 윗부분]  

한병기 박재옥 주택관련 문서목록 -
더 이상한 것은 그 이듬해 발생합니다 
집을 구입한지 10개월도 되지 않아 박재옥은 이 집을 팔아버립니다 

매도계약시점은 1977년 5월 11일,
특히 놀라운 것은 이 집의 구입자가 바로 대한민국 정부라는 것입니다[첨부서류 세부분중 가운데 부분]
첨부서류를 보면 'REPUBLIC OF KOREA' 가 SECOND PARTY 즉 매입자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큰 딸 집을 한국정부가 정부예산을 투입, 사들인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샀다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석연챦은 거래인 것 만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한병기가 이해에 캐나다대사로 발령받으데다 뉴욕타임스에 '박정희 망명처' 운운하는 
기사가 게재되자 집을 처분하게 됐고 손쉽게
'한국정부가 사라' 이렇게 한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대목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계약서를 구입하지 못하고 해당정부기관으로 부터 거래 요약본만 입수한 상태라
정확한 매매금액은 알 수 없습니다 [조만간 등기소에서 계약서가 오는데로 다시 게재하겠습니다]

한국정부는 그뒤 20년간 이 집을 보유하고 있다가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1997년 10월 17일 이 집은 한 미국인 부부에게 매도합니다[첨부서류 마지막부분]

여기에서 하나 궁금한 것은 박재옥에게 주택을 구입한 대한민국 정부가
20년동안 이 집을 어떻게 사용했나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유엔대표부에서 관사로 이용했지 않나 추측합니다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일 것입니다

또 한가지 여담입니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자신의 맏사위를 유엔으로 보냈을까
단순히 좋은 자리라는 이유만으로 보낸 것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것은 바로 김형욱과 한병기와의 관계
당시 이들을 잘 아는 뉴욕 동포는 김형욱이 다른 사람말은 잘 듣기 않았지만
유독 한병기에게만은 고분고분했다고 합니다

김형욱은 한병기 부임 이듬해인 1977년 6월 22일 프레이저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겸사겸사 딸부부를 보냈다는 야사같은 이야깁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병기는 1977년 다시 캐나다대사로 옮겨가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김형욱과의 친분을 엿볼수 있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김형욱이 1977년 혹은 1978년 겨울 모변호사와 함께 캐나다 대사인 한병기를 만나러 갑니다
비행기가 아니라 차로 가게 됩니다 제가 아는 뉴욕동포가 직접 운전을 하고 떠났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뉴욕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위험한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는 거죠
다행히 작은 사고 였지만 둘의 관계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어쨌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도 어김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미국에 주택을 구입했고
그 주택을 한국정부에 석연챦게 되팔았습니다 

계약서가 도착하면 계약서 작성 당시의 변호사등을 알 수 있으며 잘하면 저간의 사정도 엿볼수 있습니다
추후 계약금액등을 다시 한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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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09.09.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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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팀 올드스타들, 국정원팀과 친선경기>(종합)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1960년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만들었던 '양지팀'의 올드 스타들이 국정원 직원들로 구성된 축구팀 구룡회와 친선경기를 벌인다.

양지팀은 1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을 찾아 청사 운동장에서 후배들과 기량을 겨룬다.

이번 친선경기에는 주장인 허윤정(72)씨와 `원조 스트라이커'로 유명한 이회택(64)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 김호(65) 전 대전 감독, 김정남(66) 전 울산 감독 등이 총출동한다.

이들 외에도 박이천 인천 부단장과 김기복 실업축구연맹 부회장, 정규풍 한국중등축구연맹 부회장을 비롯해 김삼락, 조정수, 정병탁, 이영근, 서윤찬, 골키퍼 이세연, 이준옥, 오인복 등 총 15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일선에서 조기축구회와 실버축구단 멤버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데다 양지팀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 중앙 부처 공무원 대회에 참가해온 구룡회와 멋진 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양지팀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이 8강 신화를 이룬 것에 자극을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듬해 1월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주도 하에 급조됐다.

당시 1950년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던 고(故) 최정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육, 해, 공군에 복무 중이던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부훈에 따라 팀 이름을 지었던 양지팀은 1967년 메르데카컵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도 정작 북한과 대결하지 못한 채 1970년 3월 창단을 주도했던 김형욱 부장이 실각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2003년부터 국정원 구룡회와 교류를 해왔던 양지팀의 올해 모임은 특별하다.


내년이 양지팀 제2대 감독을 맡았던 고(故) 김용식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1985년 타계한 김용식 선생은 국가대표팀 코치로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뒤 1960년대까지 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수차례 역임한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로 2005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양지팀 주장인 허윤정씨는 "내년은 김용식 선생이 태어나신지 100년이 되기 때문에 올해 모임은 의미가 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인을 기릴 여러 가지 방안을 이번 모임에서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chil8811@yna.co.kr

[관련기사]

▶ <월드컵축구> 치열했던 '코리언 더비'

▶ <월드컵축구> `양지팀' 대선배들의 따끔한 충고

▶ 월드컵예선 남북 대결에 `양지팀' 스타 총출동

▶ <사람들> 흉상 선 `영원한 축구인' 이회택

▶ <이회택 "우리 때는 100일 해외원정도 했어">

<실시간 뉴스가 당신의 손안으로..연합뉴스폰> <포토 매거진>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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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RI Working Paper No. 20
Korean Scandal, or American Scandal?
by Bruce Cummings

미국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에 일가견을 가진 학자로 평가되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
시키고대 역사학 교수이자 노스웨스턴대학 국제비교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문제에 대해 조금은 삐딱[?]한 시각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브루스 커잉스교수가 자신의
기고문에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1996년 5월 샌프란시스코대학 일본정책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워킹페이퍼 제20권에 '한국의 스캔들 또는 미국의 스캔들'이란 기고를 했습니다

기고내용은 생략하고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커밍스는 껄끄러웠던 한미관계를 언급하다 김형욱 이야기를 들고 나옵니다

커밍스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대충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의 중요한 증인인 김형욱이 지난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됐다,
첫째 김형욱은 파리에서 살해돼 그의 목이 외교 파우치를 통해 박정희에게 보내졌거나
둘째 서울로 극비리에 압송돼 청와대 지하 사격장에서 박정희에 의해 2발의 총에 맞아 살해됐다'

아래가 바로 이부분을 언급한 원문입니다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12/12/09 - [분류 전체보기] - 2008년에도, 2009년에도 최재경 주소지는 타워팰리스-재산신고누락이냐? 공짜냐?[주진우 소송장 원문]

2012/12/05 - [최재경 ] - 삼성장학생 최재경, 삼성채권수사하며 이학수등 모두 불기소-그때는 몰랐는데 약국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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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while the key witness before Congressman Fraser's committee, the former KCIA Director Kim Hyung Wook (who had defected to the U.S. and who testified under threat of perjury in the U.S. and "under a threat of death" from Korea[24]), was reportedly kidnapped in Paris in 1979 and (1) had his head cut off and sent to Park Chung Hee in the diplomatic pouch, or (2) was secretly shipped back to Seoul where Park personally executed him "by shooting him twice at point-blank range" in the basement of the Blue House.[25] Not surprisingly no high Korean official has come forward to testify about Korean wrongdoing in the U.S. since then.

Meanwhile, the American CIA has refused to allow former employees to publish what they know about Koreagate because of the "identifiable damage to the national security" that would result.[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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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파리현지 살해설과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동시에 제기한 것입니다
사실 이 2가지 가설은 김형욱 실종뒤부터 프랑스와 일본 미국등에서 나돌던 소문으로
한국에서도 1985년께부터 기사화되기도 했던 가설입니다
그러나 나름 한국문제에 일가견이 있다는 학자가 주장했다는 점이 관심을 끄는 이윱니다

커밍스는 기고문 본문에서는 2가지 가설을 제시했지만 기고문 주석에서 청와대 지하에서
살해됐다는 2번째 가설에 더욱 방점을 찍습니다

커밍스는 이 2가지 가설이 1981년 3월 31일 발행된 뉴저지주 일간지 버겐레코드에서 인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커밍스는 김형욱 가족의 변호사가 자신의 친구의 형이라며 법원에서 2번째 즉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받아들였다고 적었습니다

사실 이날은 김형욱의 시롲에 따른 사망판결을 받기 위한 심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김형욱의 처 신영순과 그의 3자녀가 사망판결을 구하기 위한 재판을 청구했던 것이지요
커밍스가 자기 친구의 형이라고 말한 변호사는 바로 알란 싱거 변호사로
김형욱 망명이전부터 김형욱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변호사입니다
김형욱은 이 변호사와 함께 이미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치밀한
망명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미국정부에 보관된 각종 서류에서 밝혀집니다만
이부분은 서류와 함께 다시 공개하겠습니다

결국 커밍스는 중정요원이 김형욱을 납치해 대한항공 비행기[화물기?]에 태워 서울로 압송한뒤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이 있는 가운데 박정희가 '너는 배신자다'라는 말과 함께
처단했다는 주장을 펼친 셈입니다

아래는 커밍스 교수가 기고문 말미에 제시한 주석이며 기고문 원문을 화면창으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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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New York Times, June 24, 1977.
25. The Bergen Record, March 31,1981. (The Bergen Record is a newspaper published in Bergen, New Jersey.) A
lawyer for Kim's wife, who happens to be the brother of a friend of mine, succeeded in getting the court to declare Kim dead; the wife was waiting to gethold of his--very considerable--estate. The court accepted the second version ofKim's death.
26. New York Times, Dec. 22, 1979.


BRUCE CUMINGS REPORT ABOUT KIMHYUNWOOK 199605 -

* 참고자료 다운로드를 원하실때는 참고자료 화면창 아래 파일명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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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저도 자료스캔이 끝나는 데로 하나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안치용 백


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10-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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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저도 자료스캔이 끝나는 데로 하나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안치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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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제보도 환영합니다
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9-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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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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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8-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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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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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7-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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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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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6-10 captured by 안치용 -
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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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의 비극도 남산에서 [2009.09.02. 제776호]
이태희
[특집] 고문받던 지하 벙커서 자살 기도하다 중정 요원들에게 짓밟혀 신경 손상…
“제때 치료 못 받아 파킨슨병 얻어”
» 8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진행요원들이 헌화·분향을 마친 장남 김홍일 전 의원(휠체어에 탄 이)을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로 옮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을 반년 앞둔 2002년 9월의 일이다. 당시 서울 동교동에 짓고 있던 자택이 ‘초호화 주택’이라고 한나라당이 들고 나섰다. 연면적 199평의 규모도 그렇지만, 초점은 엘리베이터에 맞춰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그 가족은 이를 두고 속을 끓였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 까닭 때문이었다. 의문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했던 김 전 대통령과 팔순을 넘은 부인 이희호씨는 실내에서도 가끔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다. 맏아들 김홍일(61) 전 의원도 당시부터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2001년부터 악화된 파킨슨병이 온몸의 근육을 옥죄기 시작한 탓이다. 김 전 대통령 가족에게 휠체어는 그간 살아온 역사와 삶의 무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기간에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김홍일 전 의원의 등장이었다. 2006년 9월 의원직 상실 당시까지 넉넉한 체구이던 그가, 3년 만에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상한 얼굴로 나타나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문으로 조작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8월20일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80년 5·17 내란음모 사건으로 조사기관에 끌려가 허리와 등, 신경 계통을 많이 다쳤고 그것 때문에 파킨슨병을 얻은 것으로 안다. 최근까지 침대에 누워 생활하다가 병세가 조금 좋아져 앉아서 생활했다. 말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종 순간에 “아.버.지”라며 세 음절을 겨우 토해냈다는 김홍일 전 의원. 최경환 비서관이 말한 조사기관은 1980년의 중앙정보부였다. 그 비극의 시작은 29년 전, 80년 5월 ‘남산’으로 돌아간다.

<한겨레21>은 당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였던 김상현·김옥두 전 의원과 유족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김홍일·김옥두 전 의원이 남긴 기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인동출판사)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황을 재구성했다.

1980년 5월14일, 서울과 대구, 광주, 청주 등 전국의 주요 도시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몰려나왔다. 6만여 명의 학생들은 거리에서 ‘계엄령 해제’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다음날인 5월15일, 이제는 10만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다. 1979년 10월2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이후, 거리에 선 이들은 민주화가 드디어 시작될 것이란 기대감에 들떴다. 전두환 계엄사령관을 중심에 둔 신군부가 이런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을 모른 채. 5월17일 밤 10시,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김대중씨를 비롯해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정치인과 학생운동 지도자, 노동조합 간부, 종교인 등 26명을 체포했다.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 소요를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였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시작이었다.




김옥두·권노갑·한화갑도 옆방에서 고문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일부다. “5월17일 밤 10시, ‘문을 열라’며 대문을 장총 개머리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문을 부수고 군인 몇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단 한마디로 ‘가자’고 했다. 나는 ‘가자고 하면 가겠지만, 총을 치우라’고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만약 나와 경호원들이 저항을 하면 총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나를 끌고 갔다.”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은 ‘지하 벙커’라고 불리던 ‘제6별관’이었다. (지금은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앞의 ‘서울종합방재센터’ 건물로 쓰이는 곳이다.)

» 1980년 9월, 신군부가 조작한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앞줄 오른쪽 두 번째)의 모습. 재판부는 이때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진 한겨레 자료

회고는 이어진다. “중앙정보부 지하로 끌려온 이후로는 매일같이 잠을 못 자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들었다. 중앙정보부 지하에는 취조실이 나란히 있어서 옆방에서 누군가 고문을 당하는지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듣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내 귓가에 집요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로 내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 알고 보니 모두 나와의 관계를 추궁당하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행된 직후, 동교동 자택에서는 맏아들 김홍일씨와 비서 김옥두·권노갑·한화갑 등이 연행됐다. 제6별관 지하 2층, 김대중 전 대통령 옆에서 고문받고 있던 이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김홍일 전 의원이 남긴 기록의 일부다. “끌려온 첫날, 군복을 던져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하얀 벽은 구멍이 뻥뻥 뚫린 방음벽이었다. 세면대와 소변기, 책상 둘이 있었다. 수사관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두들겨팼다.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뜨니 새 얼굴이다. 담당이 대여섯 명 되는 것 같았다. ‘니가 김대중이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 어차피 송장으로 나갈 테니까 피차 힘들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답해!’ 사흘 동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월15일 서울역 집회 배후자임을 시인하라고 윽박질렀다. 내 이름은 ‘빨갱이 새끼’였다. 연청 사무실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쓴 메모를 (간첩이 쓰는) 난수표로 인정하라고 했다. 사정없이 구타하지만, 급소는 교묘하게 피했다. 수치감과 모멸감을 받으며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쳤다. ‘죽여달라고? 허허, 이놈이, 여기서는 죽는 것이 가장 호강하는 거야. 너 좋으라고 죽여줘?’ 카메라가 보였다. 만약 내가 자백을 하면 ‘봐라, 김대중이 아들이 말했다’고 악용하려는 것일 거다. 나는 혹여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의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책상에 올라가 머리를 시멘트 바닥으로 처박고 뛰어내렸다. 이때 목을 다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 인용)

시멘트 바닥으로 머리 처박고 뛰어내려

<한겨레21>과 만난 김옥두 전 의원의 증언이다.

“중정 요원들이 김홍일 의원한테는 ‘니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쓰라’ ‘니 아버지가 밤마다 이북 방송을 듣는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고문했다. 김홍일 의원은 ‘차라리 죽여라’고 반항했지만,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구타를 당했다. 결국 고문 열흘째인가 잠시 감시가 소홀한 틈에 책상에서 고개를 박고 뛰어내리고,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중정 요원들이 치료해주기는커녕 더 때렸다. 허리와 전신을 짓밟았다. 그때 목과 허리의 신경을 다쳤다. 그걸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니까 결국 파킨슨병이 왔다. 지난 16대 의원(2000~2004년) 때부터 보행이 불편했고, 17대 의원(2004~2006년) 할 때는 미국을 오가며 수술도 여러 번 받았다. 지금은 차라리 조금 좋아진 상태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는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퇴행성 질환이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속적인 외부의 충격과 고문을 받은 이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한겨레>의 초대 사장을 지냈던 청암 송건호 선생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중정에 끌려가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어 8년간의 투병 끝에 지난 2001년 12월 타계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이 병을 앓고 있다. 김홍일 전 의원은 올해 초·중순에는 최경환 비서관의 말대로 휠체어에도 앉지 못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단다.

김옥두 전 의원도 다리를 절고 있었다. 고문 후유증 때문이라고 했다. 의전·총무·수행비서를 겸하고 있던 김 전 의원은 비서들 중에서도 가장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다. 김옥두 전 의원은 “매일 각목으로 두드려맞았지만,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각목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군홧발로 짓밟을 때였다”며 “유신정권 때도 중정 지하 벙커에 끌려가 고문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잔인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악질적인 요원들은 때리던 몽둥이를 입 안에 밀어넣고 휘젓거나, 집게로 혓바닥을 빼곤 했다. 완전히 벗긴 상태에서 성기를 플라스틱 자로 때리는 수치스럽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한마디로 ‘인간 백정’들이었다”며 치를 떨었다.

김옥두 전 의원의 증언은 이어진다. “고문하면서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것을 인정하라’ ‘김대중이 학생들에게 돈을 줘서 데모를 조종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김대중을 도와준 경제인이 누구냐’ ‘연결된 군부는 누구냐’ ‘학원(대학생)과 연결된 끈을 불라’고 했다. 김대중 선생님을 용공으로 몰아 사형시키기 위해 모든 비서진과 지인들을 잡아서 고문했다.”

김상현 전 의원의 증언이다. 김상현 전 의원도 5월17일부터 안기부 지하 벙커에서 고문당하고 있었다. “5월18일부터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5월 말부터 ‘정동년을 아느냐’고 했다. 모른다고 하면 무조건 때렸다. ‘김대중이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두 차례에 걸쳐 300만원과 200만원씩 모두 500만원을 주고, 광주로 가서 학생과 깡패들을 동원해 폭동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를 수립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동년이란 전남대 복학생이 80년 4월에 동교동을 방문한 방명록 기록을 찾아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동년을 통해 ‘광주 사태’를 일으켰다고 짜맞춘 것이었다. 그 정동년이를 내가 동교동에 소개했다고 조작하기도 했다. 정동년씨는 당시 고문에 못 이겨 이런 허위 사실을 모두 인정했고,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신군부는 이렇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족과 비서, 그리고 애꿎은 젊은이들을 남산으로 끌고 가 인정사정 없는 고문과 허위 진술을 통해 ‘김대중이 광주 사태를 일으켰다’고 조작했다. 그 목표는 ‘내란음모죄’의 성립이었다. 사형 구실이었다.

허위 자백한 정동년씨 두 차례 자살 기도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의 일부다. “1980년 9월17일 오전 10시, 육군본부 대법정.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군법무관 양신기 중령이 판결 이유 요지와 양형 이유를 6분 만에 낭독하고 나자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문응식 재판관(육군소장)이 일어섰다.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긴장된 몇 초가 흘러갔다. ‘김대중… 사형!’ 긴장을 깨트리는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퍼졌다.”

돌이켜보면, 신군부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 조사요원들은 김홍일과 김옥두, 김상현 전 의원에게 ‘네 아버지를, 네가 모시던 정치 지도자를 죽일 혐의를 만들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황폐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정신적 지도자를 죽이고’ 자신이 대신 살고 싶을 만큼. 김홍일 전 의원의 신경은 고문으로 끊어진 게 아니라, ‘대신 아버지를 죽이라’는 악마의 목소리에 새카맣게 타버린 것은 아닐까.

서울종합방재센터의 지하실에서 지금은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역사와 기억이 담긴 건물까지 없애야 할까.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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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김대중 납치영화 '케이티' 추모상영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고(故) 김대중 전대통령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케이티(KT)'가 일본에서 재상영된다.

   영화제작ㆍ배급사인 시네콰논(대표 이봉우)은 오는 12일부터 일주일간 도쿄 유라쿠초의 시네콰논에서 영화 '케이티'를 특별 상영한다고 4일 밝혔다.

   이 영화는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다룬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원작 소설 '납치'를 원작으로 2002년에 개봉된 액션스릴러로 제목 '케이티(KT)'는 작전명 'Killing The Target'의 약자다.

   작품은 일본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최일화가 김 전 대통령 역을, 김갑수가 김대중 납치사건을 지휘하는 한국대사관 일등 서기관 역을 맡았다.

   영화 제작에는 한일 합작으로 총 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영화는 지난 2002년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와 함께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됐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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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일본영화 KT

 

오래전부터 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김형욱 전 중정부장 실종사건등이 관심이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한번 당시 사건을 찾아보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김대중 납치 사건 보고서 전문을 구해 블로그에 옮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검색도중 우연챦게 접한 일본영화 KT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영화 KT는 이 사건에 일본 자위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아주 깊숙히 관련돼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세가지다 첫째 박정희가 지시했다 둘째 납치가 아닌 살해작전이었다 세째 일본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런 메세지에다 첩보요원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부차적인 메세지다 
 

그동안 우리가 알기로는 자위대 출신 정보요원들이 사설 흥신소를 차려 디제이의 소재를 알려주는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영화가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탄탄한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있어 다시 한번 자위대 관여범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하나 과감하게 자위대의 관여를 영화로 그린 감독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꼭 한번 이 영화를 보고 현대사의 비극을 되짚어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짧은 감상을 말하라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면서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과 무거움이 엄습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KT로 일본인인 사카모토 준지가 감독한 영화로 138분 길이이며

김갑수 최일화등 한국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의 특징은 납치를 당한 디제이 입장이 아니라 납치를 실행하며 갈등하고 절규하는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어쩔수 없이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본 자위대원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중정요원들을 미화 내지는 호의적으로 그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준지 감독이 디제이 납치에 자위대 관여사실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스파이 비밀경찰이면서도 인간으로서 어쩔수 없이 겪게 되는 번민과 갈등, 그리고 절규를 잘 전달했다는 생각이다

 

일본 자위대에서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도미타 삼좌는 이제 그늘속에 사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전역을 희망하지만 자위대 고위층에서는 그에게 가계를 열고

중앙정보부 KCIA를 지원하라고 명령한다

 

자위대 간부는 일광욕을 하고 싶다는 도미타에게 그늘속에서 일할 때 국가와 국민이 행복하다는 선배장교의 말로 설득을 하고 결국 도미타는 현역 자위대 대원들과 함께 흥신소를 차린다

 

도미타 삼좌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여러 차례의 업무협조를 통해 잘 아는 사이.

 

여기서 잠깐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을 살펴보면 박정희의 암묵적 지시에 의해 이후락이 이철희를 통해 지시하고 김기완 주일 공사- 김동운 1등 서기관 한국의 제임스 본드라 불리던 윤진원등이 사건을 실제 주도한 핵심인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바로 김동운 1등 서기관.

 

김차운이 도미타에게 도저히 디제이를 찾을 수가 없다며 소재파악을 부탁하고 그 와중에 디제이 진영에서는 살해위협이 진행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는다

 

이 제보의 당사자는 뒤에 밝혀지지만 바로 이 작전 가담을 명령받은 중정요원으로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 목숨을 걸고 제보를 하게 되지만 결국 제보사실이 드러나면서 동요요원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김차운이 마땅챦아하는 도미타에게 내 목숨이 걸린 일이며 조직의 일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일이라고 설득하고 협조를 약속받는다

 

71년 대선때 트럭테러로 다리를 절게 된 디제이는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일본에서 유신독재 타도에 나선다

 

김기완 공사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동경의 중정 안가에서 중정요원 6명을 모아놓고 기필고 과업을 완수할 것을 다짐한다

 

이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김차운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한다

 

이 회의에서 김대중의 입을 막는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김차운은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목이라며 간접적으로 박정희의 살해지시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동백림사건때는 납치해 한국으로 데려가서 문제였지만 여기서 없애버리면 된다며 강경론을 편다

 

어렵게 소재파악을 마치고 감시에 나서게 되지만 일본 경시청에서 디제이를 미행하는 중정요원들의 사진을 촬영함에 따라 다시 2명의 요원이 교체됐고 새로 투입된 요원은 임무수행에 갈등하다 이호 주일대사에게 이를 직보한다

 

이호대사가 김기완을 불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김기완은 나도 수차례 만류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김차운등은 1973 8 9일 디제이가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기로 했다며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게 되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됨으로 그 전에 디제이를 납치 살해하기로 하고 요원들과 함께 최종 도상연습을 마친다

 

또 도미타에게도 8 8일이 디데이라며 마지막까지 함께 해 달라며 2천만엔을 전달한다

 

도미타는 깜짝 놀라 마지막까지 라니 무슨 말이냐고 하자 김차운은 끌어다 주면 뒷처리는 우리가 하겠소라며 자위대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한다

 

김차운은 도미타가 결심하지 못하자 자신의 세 자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가 문제가 있어 성형수술을 꼭 시켜주고 싶다고 말하는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도미타의 협조를 끌어낸다

 

도미타가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는 암살이 실패하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죽는다는 김차운의 말

 

결국 도미타는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암살계획이 착착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이에 갈등하는 중정요원이 디제이 인터뷰기사를 실은 신문기자에게 접근해 다시 한번 중정의 디제이 암살계획을 제보한다

 

일본의 포르노극장에서 중정요원은 기자를 은밀히 접촉, 내용을 전달하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이 기사가 다른 잡지에 게재된다

 

디제이를 미행해 납치하려던 중정요원들은 현장에서 이 기사를 접하고 다시 한번 철수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번은 디제이를 미행하다 경시청에 사진이 찍히게 되고 한번은 모든 요원을 동원해 결행할 준비를 마쳤지만 납치계획을 실은 기사 때문에 중단하는 것이다

 

도미타는 마침내 2천만엔 수표를 받아들이며 가담을 결심한다

도미타의 가담 결심은 김차운에 대한 의리와 우정이 가장 큰 이유지만 수표를 받은 것은 그가 사랑하던 한국여자, 학생운동을 하다 중정에 끌려가 고문으로 큰 흉터를 남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수술비용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여자는 수표를 거부하게 되고 나중에 도미타는 다시 그 수표를 김차운에게 돌려주게 된다

 

잡지에 암살기사가 게재된뒤 김차운은 요원내 배신자를 찾게 되고 요원들을 동원 디제이 암살 예행연습이라며 그 배신자를 죽이고 시신을 절단해 유기하게 한다

 

각 요원에게 마취 절단 등을 시키던 김차운은 피를 모두 빼내고 절단하려다 도저히 못하겠다며 구역질을 하며 돌아서는 요원의 목을 붙잡고 이제는 돌아설 수 없다고 말한다

 

하수구 시설이 있는 방에서 비닐천막위에 사람을 누이고 절단을 하고 한 요원을 수도호스를 들고 피를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바로 이날 중정암살계획을 보도했던 기자는 다시 극장에서 중정요원을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살해당한 중정요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드디어 1973 8 7, 암살실행 하루전 최종점검에 나선다

김기완 주일공사는 제군들 내일 반드시 신병을 확보하도록이라는 말로 엄염을 내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자위대의 역할은 소재파악에서 끝났지만 이 영화에서의 자위대의 역할을 여기서 더 깊숙이 들어간다

 

끝까지 가달라던 김차운의 말에 따라 도미타, 자위대 정보장교 도미타도 호텔에서 함께 디제이를 납치하게 된다

 

이들은 잘 아는 데로 디제이와 양일동 통일당 당수가 만난뒤 방을 나올 때 디제이를 납치하기로 했고 이 경우 목격자는 디제이뿐이라서 디제이만 살해하면 완전범죄라는 구상을 한다

 

그러나 의외의 인물, 디제이의 먼 친척동생인 김경인 의원이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김차운은 디제이를 호텔복도에서 납치하려다 김경인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게 되고 디제이가 납치된 방으로 돌아와 침대를 걷어차고 벽을 주먹으로 치면서 절규한다 실패를 절감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작전변경이다 차에 실어

감독은 이 말을 통해 디제이납치가 아니라 디제이 살해가 당초 계획이었음을 알리려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일본경시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발견, 한국정부를 압박한다

 

자위대가 깊숙히 관여해 사실상 납치를 묵인해 주었으면서도 바로 이 지문을 근거로얼르고 달래고 빰치는 식으로 한국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이 지문에 대해 이 영화는 김동운 즉 극중 김차운이 의도적으로 지문을 남긴 것으로 해석한다

 

지문이 발견돼 신원이 확인되면 한국정부등에서 작전에 실패해도 이름이 알려지고 신원이 확인된 이상 자신을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김차운이 지문을 남겼다는 것이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고 아마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들은 우여곡절끝에 마취된 디제이를 호텔주차장으로 끌고 나와 차에 싣고 오사카로 향하게 되고 자위대원 도미타는 납치 승용차 앞좌석에 앉아 검문검색에 대비한다

 

자위대원이 용금호가 있는 기다리는 부두까지 동행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첫 주장이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일본어에 능하다 하더라도 경찰 검문등을 당할 경우에는 당황해서 탄로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일본인 1명을 동승시킨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뒤늦게 납치를 알게 된 재일동포 청년은 자신의 소홀로 디제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엉엉 소리내어 울게 된다

 

한편 부두로 가기전 미행을 눈치채고 안가로 가면서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전화를 건다

 

김차운의 전화를 받은 김기완은 당초 살해작전이 실패했음을 알고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살든 죽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반드시 살려시 돌려보내라고 말한다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이제 어떻게 하실겁니까라고 묻자 김기완은 이제부터는 나보다는 자네를 먼저 생각하게라고 말한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후배를 생각하는 말같다, 당신 살길만 생각하라는 말이다

 

김차운과 전화를 끝낸 김기완도 위협을 직감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즉시 미국으로 가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자신과 딸을 초청해 달라고 당부한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후일 김기완은 미국에서 살게 되고 [망명인지는 모르겠음] 김형욱의 코치로 한국정부에 디제이 납치사건을 폭로하겠다고 협박, 한국정부로 부터 거액을 챙기게 됩니다  

 

한편 김차운은 통화뒤 야음을 틈타 도미타와 함께 용금호에 가기 위한 통선부두에 도착하는데 느닷없이 검은 승용차가 굉음을 내고 달려온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위대의 도미타 부하수사관들,

본부로 연행해 오라는 명령이라며 더 이상 관여하면 안된다고 설득한다

 

도미타는 중정요원들과 작별을 고하게 되고 오사카로 오는 도중 2천만엔 수표를 돌려받았던 김차운은 자신이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도미타에게 수표를 자신이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중정요원들은 코만 내놓은채 얼굴을 비롯해 디제이 몸전체를 테이프로 둘둘 말아싼뒤 통선으로 한시간가량 달려 용금호에 오르고 용금호가 전속력으로 일본 외해로 도망치는 속에서 갑판아래쪽에서는 디제이를 수장시키기 위해 무거운 추를 메달기 시작한다

 

디제이는 이제는 때릴 필요도 없다 때리지 마라 하느님 상어에게 몸둥아리 반이 먹히더라도 살아나게 해서 한국을 민주화시킬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바로 이때 한 중정요원이 추를 메달면서 디제이의 발등에 손가락으로 안심이라는 글을 쓴다

 

이 중정요원은 갑자기 총을 빼들어 김차운등에게 겨누며 이사람을 죽이면 안됩니다 ,. 김선배님 상호 죽이는 일은 그만합시다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은 네놈이 배신자구나, 남산 지하 5층에서 이 세상 하직할 준비나 해라고 외치다 헬기 소리라 들리면서 방심하는 틈을 타 배신자로 낙인찍은 중정요원을 총으로 제압한다[디제이의 생환뒤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은 없어 '픽션'으로 추정]

그뒤 김차운은 갑판으로 뛰어올라와 헬기를 향해 총을 발사하며 너희들이 무얼 알느냐 상관하지 마라 돌아가, 참여할 권리가 없어 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이 헬기에 총을 쏠 동안 헬기에서는 모르쓰전신을 통해 용금호에 무전을 보낸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

 

역사의 전환점이다 만약 이때 수장됐다면 한국 현대사는 다시 쓰였을 것이다

헬기, 비행기부분에 대해서는 디제이는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중정요원들은 완강히 부인한 부분이다

 

장면이 바뀌고 자위대로 연행된 도미타

 

도미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자위대에 이용당했음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가게 즉 흥신소를 열어 중정을 지원하라고 명령했던 간부는 권총 한정을 도미타에게 내민다 총알은 한발만 들었네라는 말과 함께

 

자결하라는 의마다

 

그러나 도미타는 일본 자위대는 미군의 제2중대다, 일본은 미국의 엘로몽키다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며 자신은 자결하지 않을 것이라며 쓸쓸히 자위대를 떠난다

 

조직에서 버림받은 도미타의 등뒤로 자네는 이미 흥신소 차리기 전날 전역한 것으로 처리했네, 자네 몸은 스스로 지키도록이라는 냉정한 말만 들려온다

 

디제이는 부산을 거쳐 결국 6일만에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다

 

도미타는 자위대에서 나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우정을 발휘한다

 

김차운이 보험을 든다며 지문을 남긴 것을 의식, 사건현장에 김차운의 지문이 있음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림으로써 김차운의 목숨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다

 

도미타는 중정 암살계획을 보도한 기자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며 보도를 부탁하고 자신은 이미 시골에 숨어 지내겠다고 작별인사를 ㅎ나다

 

그러면서 도미타는 다시 이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단서를 남긴다

 

일본 자위대 최고위간부가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라고

결국 그래서 자위대가 디제이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관여했다는 배경설명이다

 

시골 깊숙한 것으로 잠적한 도미타, 자위대는 도미타의 행적을 찾지 못하다 납치사건 약 3개월뒤인 11 2일 마침내 그를 찾는다

 

도미타의 한국인 애인이 도미타가 있는 시골을 방문하게 되고 자위대가 그뒤를 밟은 것.

 

도미타는 사랑하는 여인을 마중하기 위해 시골 간이역으로 나간다
간이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간이역은 만남과 헤어짐이요 설렘이자 아픔이다 

도미타에게 간이역은 헤어짐이요 아픔이었다
그가 경멸했던 것들과의 영원한 헤어짐.

영화는 도미타가 총에
맞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마침 이날은 일본이 이사건이 한일 양국간에 원만히 마무리됐음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상이 이영화줄거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전제하에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가담한 일본정부를 강력히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자위대의 백% 깊숙한 개입을 알게 됩니다

더구나 이영화가 일본에서 제작, 상영됐음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국민을 어떻게 취급할까요

 

조센징은 역시 바가야로. 말도 한마디 못하구나하지 않을 까요

 

사족입니다만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그늘에 살아가는 정보요원들의 터질듯한 고뇌를 잘 그려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갈등하면서도 일부는 목숨을 걸고 대항했고, 일부는 살기 위해서 무조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엄청난 정치적 음모속에 악역을 맡아야 했던 한일 정보요원들의 아픔이 어렴풋이 나마 드러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실감나게 느꼈다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꼭 한번 KT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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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관련 국정원 진상보고서는 자위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정 전문, 보고서등이 수록돼 있어 한번
살펴볼 가치는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분은 이블로그 과거사 의혹 진상보고서 편을 참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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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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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2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3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4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5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6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7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8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9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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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자위대 그리고 일본영화 KT

 

오래전부터 김대중 납치-살해기도사건과 김형욱 전 중정부장 실종사건등이 관심이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한번 당시 사건을 찾아보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김대중 납치 사건 보고서 전문을 구해 블로그에 옮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검색도중 우연챦게 접한 일본영화 KT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영화 KT는 이 사건에 일본 자위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아주 깊숙히 관련돼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세가지다 첫째 박정희가 지시했다 둘째 납치가 아닌 살해작전이었다 세째 일본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런 메세지에다 첩보요원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부차적인 메세지다 
 

그동안 우리가 알기로는 자위대 출신 정보요원들이 사설 흥신소를 차려 디제이의 소재를 알려주는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영화가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탄탄한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있어 다시 한번 자위대 관여범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하나 과감하게 자위대의 관여를 영화로 그린 감독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꼭 한번 이 영화를 보고 현대사의 비극을 되짚어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짧은 감상을 말하라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면서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과 무거움이 엄습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KT로 일본인인 사카모토 준지가 감독한 영화로 138분 길이이며

김갑수 최일화등 한국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의 특징은 납치를 당한 디제이 입장이 아니라 납치를 실행하며 갈등하고 절규하는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어쩔수 없이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본 자위대원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중정요원들을 미화 내지는 호의적으로 그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준지 감독이 디제이 납치에 자위대 관여사실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스파이 비밀경찰이면서도 인간으로서 어쩔수 없이 겪게 되는 번민과 갈등, 그리고 절규를 잘 전달했다는 생각이다

 

일본 자위대에서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도미타 삼좌는 이제 그늘속에 사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전역을 희망하지만 자위대 고위층에서는 그에게 가계를 열고

중앙정보부 KCIA를 지원하라고 명령한다

 

자위대 간부는 일광욕을 하고 싶다는 도미타에게 그늘속에서 일할 때 국가와 국민이 행복하다는 선배장교의 말로 설득을 하고 결국 도미타는 현역 자위대 대원들과 함께 흥신소를 차린다

 

도미타 삼좌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여러 차례의 업무협조를 통해 잘 아는 사이.

 

여기서 잠깐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을 살펴보면 박정희의 암묵적 지시에 의해 이후락이 이철희를 통해 지시하고 김기완 주일 공사- 김동운 1등 서기관 한국의 제임스 본드라 불리던 윤진원등이 사건을 실제 주도한 핵심인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바로 김동운 1등 서기관.

 

김차운이 도미타에게 도저히 디제이를 찾을 수가 없다며 소재파악을 부탁하고 그 와중에 디제이 진영에서는 살해위협이 진행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는다

 

이 제보의 당사자는 뒤에 밝혀지지만 바로 이 작전 가담을 명령받은 중정요원으로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 목숨을 걸고 제보를 하게 되지만 결국 제보사실이 드러나면서 동요요원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김차운이 마땅챦아하는 도미타에게 내 목숨이 걸린 일이며 조직의 일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일이라고 설득하고 협조를 약속받는다

 

71년 대선때 트럭테러로 다리를 절게 된 디제이는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일본에서 유신독재 타도에 나선다

 

김기완 공사와 김차운 1등 서기관은 동경의 중정 안가에서 중정요원 6명을 모아놓고 기필고 과업을 완수할 것을 다짐한다

 

이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김차운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한다

 

이 회의에서 김대중의 입을 막는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김차운은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목이라며 간접적으로 박정희의 살해지시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동백림사건때는 납치해 한국으로 데려가서 문제였지만 여기서 없애버리면 된다며 강경론을 편다

 

어렵게 소재파악을 마치고 감시에 나서게 되지만 일본 경시청에서 디제이를 미행하는 중정요원들의 사진을 촬영함에 따라 다시 2명의 요원이 교체됐고 새로 투입된 요원은 임무수행에 갈등하다 이호 주일대사에게 이를 직보한다

 

이호대사가 김기완을 불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김기완은 나도 수차례 만류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김차운등은 1973 8 9일 디제이가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기로 했다며 자민당에서 연설을 하게 되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됨으로 그 전에 디제이를 납치 살해하기로 하고 요원들과 함께 최종 도상연습을 마친다

 

또 도미타에게도 8 8일이 디데이라며 마지막까지 함께 해 달라며 2천만엔을 전달한다

 

도미타는 깜짝 놀라 마지막까지 라니 무슨 말이냐고 하자 김차운은 끌어다 주면 뒷처리는 우리가 하겠소라며 자위대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한다

 

김차운은 도미타가 결심하지 못하자 자신의 세 자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가 문제가 있어 성형수술을 꼭 시켜주고 싶다고 말하는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도미타의 협조를 끌어낸다

 

도미타가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는 암살이 실패하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죽는다는 김차운의 말

 

결국 도미타는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암살계획이 착착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이에 갈등하는 중정요원이 디제이 인터뷰기사를 실은 신문기자에게 접근해 다시 한번 중정의 디제이 암살계획을 제보한다

 

일본의 포르노극장에서 중정요원은 기자를 은밀히 접촉, 내용을 전달하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이 기사가 다른 잡지에 게재된다

 

디제이를 미행해 납치하려던 중정요원들은 현장에서 이 기사를 접하고 다시 한번 철수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번은 디제이를 미행하다 경시청에 사진이 찍히게 되고 한번은 모든 요원을 동원해 결행할 준비를 마쳤지만 납치계획을 실은 기사 때문에 중단하는 것이다

 

도미타는 마침내 2천만엔 수표를 받아들이며 가담을 결심한다

도미타의 가담 결심은 김차운에 대한 의리와 우정이 가장 큰 이유지만 수표를 받은 것은 그가 사랑하던 한국여자, 학생운동을 하다 중정에 끌려가 고문으로 큰 흉터를 남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수술비용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여자는 수표를 거부하게 되고 나중에 도미타는 다시 그 수표를 김차운에게 돌려주게 된다

 

잡지에 암살기사가 게재된뒤 김차운은 요원내 배신자를 찾게 되고 요원들을 동원 디제이 암살 예행연습이라며 그 배신자를 죽이고 시신을 절단해 유기하게 한다

 

각 요원에게 마취 절단 등을 시키던 김차운은 피를 모두 빼내고 절단하려다 도저히 못하겠다며 구역질을 하며 돌아서는 요원의 목을 붙잡고 이제는 돌아설 수 없다고 말한다

 

하수구 시설이 있는 방에서 비닐천막위에 사람을 누이고 절단을 하고 한 요원을 수도호스를 들고 피를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바로 이날 중정암살계획을 보도했던 기자는 다시 극장에서 중정요원을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살해당한 중정요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드디어 1973 8 7, 암살실행 하루전 최종점검에 나선다

김기완 주일공사는 제군들 내일 반드시 신병을 확보하도록이라는 말로 엄염을 내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자위대의 역할은 소재파악에서 끝났지만 이 영화에서의 자위대의 역할을 여기서 더 깊숙이 들어간다

 

끝까지 가달라던 김차운의 말에 따라 도미타, 자위대 정보장교 도미타도 호텔에서 함께 디제이를 납치하게 된다

 

이들은 잘 아는 데로 디제이와 양일동 통일당 당수가 만난뒤 방을 나올 때 디제이를 납치하기로 했고 이 경우 목격자는 디제이뿐이라서 디제이만 살해하면 완전범죄라는 구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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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이 말을 통해 디제이납치가 아니라 디제이 살해가 당초 계획이었음을 알리려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일본경시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발견, 한국정부를 압박한다

 

자위대가 깊숙히 관여해 사실상 납치를 묵인해 주었으면서도 바로 이 지문을 근거로얼르고 달래고 빰치는 식으로 한국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이 지문에 대해 이 영화는 김동운 즉 극중 김차운이 의도적으로 지문을 남긴 것으로 해석한다

 

지문이 발견돼 신원이 확인되면 한국정부등에서 작전에 실패해도 이름이 알려지고 신원이 확인된 이상 자신을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김차운이 지문을 남겼다는 것이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고 아마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들은 우여곡절끝에 마취된 디제이를 호텔주차장으로 끌고 나와 차에 싣고 오사카로 향하게 되고 자위대원 도미타는 납치 승용차 앞좌석에 앉아 검문검색에 대비한다

 

자위대원이 용금호가 있는 기다리는 부두까지 동행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첫 주장이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일본어에 능하다 하더라도 경찰 검문등을 당할 경우에는 당황해서 탄로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일본인 1명을 동승시킨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뒤늦게 납치를 알게 된 재일동포 청년은 자신의 소홀로 디제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엉엉 소리내어 울게 된다

 

한편 부두로 가기전 미행을 눈치채고 안가로 가면서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전화를 건다

 

김차운의 전화를 받은 김기완은 당초 살해작전이 실패했음을 알고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살든 죽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반드시 살려시 돌려보내라고 말한다

 

김차운은 김기완에게 이제 어떻게 하실겁니까라고 묻자 김기완은 이제부터는 나보다는 자네를 먼저 생각하게라고 말한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후배를 생각하는 말같다, 당신 살길만 생각하라는 말이다

 

김차운과 전화를 끝낸 김기완도 위협을 직감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즉시 미국으로 가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자신과 딸을 초청해 달라고 당부한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후일 김기완은 미국에서 살게 되고 [망명인지는 모르겠음] 김형욱의 코치로 한국정부에 디제이 납치사건을 폭로하겠다고 협박, 한국정부로 부터 거액을 챙기게 됩니다  

 

한편 김차운은 통화뒤 야음을 틈타 도미타와 함께 용금호에 가기 위한 통선부두에 도착하는데 느닷없이 검은 승용차가 굉음을 내고 달려온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위대의 도미타 부하수사관들,

본부로 연행해 오라는 명령이라며 더 이상 관여하면 안된다고 설득한다

 

도미타는 중정요원들과 작별을 고하게 되고 오사카로 오는 도중 2천만엔 수표를 돌려받았던 김차운은 자신이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도미타에게 수표를 자신이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중정요원들은 코만 내놓은채 얼굴을 비롯해 디제이 몸전체를 테이프로 둘둘 말아싼뒤 통선으로 한시간가량 달려 용금호에 오르고 용금호가 전속력으로 일본 외해로 도망치는 속에서 갑판아래쪽에서는 디제이를 수장시키기 위해 무거운 추를 메달기 시작한다

 

디제이는 이제는 때릴 필요도 없다 때리지 마라 하느님 상어에게 몸둥아리 반이 먹히더라도 살아나게 해서 한국을 민주화시킬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바로 이때 한 중정요원이 추를 메달면서 디제이의 발등에 손가락으로 안심이라는 글을 쓴다

 

이 중정요원은 갑자기 총을 빼들어 김차운등에게 겨누며 이사람을 죽이면 안됩니다 ,. 김선배님 상호 죽이는 일은 그만합시다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은 네놈이 배신자구나, 남산 지하 5층에서 이 세상 하직할 준비나 해라고 외치다 헬기 소리라 들리면서 방심하는 틈을 타 배신자로 낙인찍은 중정요원을 총으로 제압한다[디제이의 생환뒤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은 없어 '픽션'으로 추정]

그뒤 김차운은 갑판으로 뛰어올라와 헬기를 향해 총을 발사하며 너희들이 무얼 알느냐 상관하지 마라 돌아가, 참여할 권리가 없어 라고 울부짖는다

 

김차운이 헬기에 총을 쏠 동안 헬기에서는 모르쓰전신을 통해 용금호에 무전을 보낸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

 

역사의 전환점이다 만약 이때 수장됐다면 한국 현대사는 다시 쓰였을 것이다

헬기, 비행기부분에 대해서는 디제이는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중정요원들은 완강히 부인한 부분이다

 

장면이 바뀌고 자위대로 연행된 도미타

 

도미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자위대에 이용당했음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가게 즉 흥신소를 열어 중정을 지원하라고 명령했던 간부는 권총 한정을 도미타에게 내민다 총알은 한발만 들었네라는 말과 함께

 

자결하라는 의마다

 

그러나 도미타는 일본 자위대는 미군의 제2중대다, 일본은 미국의 엘로몽키다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며 자신은 자결하지 않을 것이라며 쓸쓸히 자위대를 떠난다

 

조직에서 버림받은 도미타의 등뒤로 자네는 이미 흥신소 차리기 전날 전역한 것으로 처리했네, 자네 몸은 스스로 지키도록이라는 냉정한 말만 들려온다

 

디제이는 부산을 거쳐 결국 6일만에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다

 

도미타는 자위대에서 나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우정을 발휘한다

 

김차운이 보험을 든다며 지문을 남긴 것을 의식, 사건현장에 김차운의 지문이 있음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림으로써 김차운의 목숨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다

 

도미타는 중정 암살계획을 보도한 기자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며 보도를 부탁하고 자신은 이미 시골에 숨어 지내겠다고 작별인사를 ㅎ나다

 

그러면서 도미타는 다시 이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단서를 남긴다

 

일본 자위대 최고위간부가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라고

결국 그래서 자위대가 디제이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관여했다는 배경설명이다

 

시골 깊숙한 것으로 잠적한 도미타, 자위대는 도미타의 행적을 찾지 못하다 납치사건 약 3개월뒤인 11 2일 마침내 그를 찾는다

 

도미타의 한국인 애인이 도미타가 있는 시골을 방문하게 되고 자위대가 그뒤를 밟은 것.

 

도미타는 사랑하는 여인을 마중하기 위해 시골 간이역으로 나간다
간이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간이역은 만남과 헤어짐이요 설렘이자 아픔이다 

도미타에게 간이역은 헤어짐이요 아픔이었다
그가 경멸했던 것들과의 영원한 헤어짐.

영화는 도미타가 총에
맞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마침 이날은 일본이 이사건이 한일 양국간에 원만히 마무리됐음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상이 이영화줄거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전제하에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가담한 일본정부를 강력히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자위대의 백% 깊숙한 개입을 알게 됩니다

더구나 이영화가 일본에서 제작, 상영됐음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국민을 어떻게 취급할까요

 

조센징은 역시 바가야로. 말도 한마디 못하구나하지 않을 까요

 

사족입니다만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그늘에 살아가는 정보요원들의 터질듯한 고뇌를 잘 그려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갈등하면서도 일부는 목숨을 걸고 대항했고, 일부는 살기 위해서 무조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엄청난 정치적 음모속에 악역을 맡아야 했던 한일 정보요원들의 아픔이 어렴풋이 나마 드러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실감나게 느꼈다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꼭 한번 KT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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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관련 국정원 진상보고서는 자위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정 전문, 보고서등이 수록돼 있어 한번
살펴볼 가치는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분은 이블로그 과거사 의혹 진상보고서 편을 참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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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5-5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독일 거주 예술가와 학자등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한국과 독일간 외교분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8일 멧돼지 김형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며 본인이 직접 대대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억지 조작이 많았지요 완전 조작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극심한 과대포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응로, 윤이상, 김중태, 현승일, 황성모, 임석진씨등 무려 백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약 10년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산하의 경호실 요원도 포함돼 있었고 김형욱이 이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박종규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눈 일도 있었습니다 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윤이상씨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씨도 동백림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와 사실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2007년 국정원은 진상조사 발표를 통해 어느정도 사실인 점도 있지만 좀 과장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확대과장이다 이런 결론인데요 보고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자료들을 보시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백림사건 보고서 전문은 모두 5개의 파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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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4-5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독일 거주 예술가와 학자등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한국과 독일간 외교분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8일 멧돼지 김형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며 본인이 직접 대대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억지 조작이 많았지요 완전 조작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극심한 과대포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응로, 윤이상, 김중태, 현승일, 황성모, 임석진씨등 무려 백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약 10년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산하의 경호실 요원도 포함돼 있었고 김형욱이 이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박종규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눈 일도 있었습니다 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윤이상씨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씨도 동백림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와 사실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2007년 국정원은 진상조사 발표를 통해 어느정도 사실인 점도 있지만 좀 과장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확대과장이다 이런 결론인데요 보고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자료들을 보시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백림사건 보고서 전문은 모두 5개의 파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4-5 -
CURRENT ISSUE2009.08.3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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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검차이 2007년 7월 19일 FBI에 거짓 진술을 한 한국인 스파이를 간첩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국정원과의 접촉사실을 숨기고 FBI 에 거짓 정보를 제공한 혐의입니다


SOUTH KOREAN SPY ARRESTED IN NY, FBI REPO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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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3-5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독일 거주 예술가와 학자등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한국과 독일간 외교분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8일 멧돼지 김형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며 본인이 직접 대대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억지 조작이 많았지요 완전 조작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극심한 과대포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응로, 윤이상, 김중태, 현승일, 황성모, 임석진씨등 무려 백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약 10년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산하의 경호실 요원도 포함돼 있었고 김형욱이 이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박종규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눈 일도 있었습니다 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윤이상씨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씨도 동백림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와 사실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2007년 국정원은 진상조사 발표를 통해 어느정도 사실인 점도 있지만 좀 과장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확대과장이다 이런 결론인데요 보고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자료들을 보시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백림사건 보고서 전문은 모두 5개의 파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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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2-5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독일 거주 예술가와 학자등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한국과 독일간 외교분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8일 멧돼지 김형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며 본인이 직접 대대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억지 조작이 많았지요 완전 조작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극심한 과대포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응로, 윤이상, 김중태, 현승일, 황성모, 임석진씨등 무려 백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약 10년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산하의 경호실 요원도 포함돼 있었고 김형욱이 이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박종규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눈 일도 있었습니다 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윤이상씨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씨도 동백림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와 사실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2007년 국정원은 진상조사 발표를 통해 어느정도 사실인 점도 있지만 좀 과장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확대과장이다 이런 결론인데요 보고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자료들을 보시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백림사건 보고서 전문은 모두 5개의 파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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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1-5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독일 거주 예술가와 학자등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한국과 독일간 외교분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8일 멧돼지 김형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며 본인이 직접 대대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억지 조작이 많았지요 완전 조작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극심한 과대포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응로, 윤이상, 김중태, 현승일, 황성모, 임석진씨등 무려 백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약 10년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드나들며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산하의 경호실 요원도 포함돼 있었고 김형욱이 이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박종규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눈 일도 있었습니다 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윤이상씨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씨도 동백림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와 사실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2007년 국정원은 진상조사 발표를 통해 어느정도 사실인 점도 있지만 좀 과장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확대과장이다 이런 결론인데요 보고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자료들을 보시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백림사건 보고서 전문은 모두 5개의 파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백림사건 EAST BERLIN KOREA ESPIONAGE KCIA REPORT AN CHI YONG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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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전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에 일본 자위대 출신들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36년전인 1973년 8월 백주대낮에 일본 동경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묵적 지시아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중정요원을 동원해 저질렀으며 미국 CIA의 압력등으로 살해를 포기하고 서울로 압송한 사건입니다

지난 2007년 국정원 진상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묵적 지시를 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의 결론만 내려졌을뿐 아직 그 지휘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는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입니다

오늘 일본 산케이신문은 바로 이 사건에 일본 육상자위대원 출신들로 구성된 흥신소, 일종의 사설 탐정회사가 관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밀리언 자료 리서치라는 회사는 중앙정보부의 요청을 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적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이 회사 대표인 올해 75살의 쓰보야마씨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위대 정보분서에서 일하다 주일 한국 대사관 김동운 1등 서기관을 소개받아 이 일에 개입하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김동운 일등 서기관은 아래 사진 증거자료에서 보듯 납치사건에 가담한 인물입니다

쓰보야마대표는 자위대를 그만둔뒤 김대중 소재파악 팀장 역할을 하며 거주지 확인, 활동자금원조사, 한민통등 일본 지원조직 동향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서기관은 신문기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쓰보야마씨에게 김대중 소재파악부탁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쓰보야마시는 납치 직전 김대중 전대통령 소재파악에 성공했고 결정적으로 중정의 납치 살해공작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김서기관은 납치사건 바로 직후인 1973년 8월 중순 [김대중은 8월 13일 서울 도착]에 사토라는 가명으로 쓰보야마씨에게 입단속을 시도했던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일본 자위대 출신의 사설탐정회사외에도 이미 중앙정보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적을 상세히 파악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앙정보부 협조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은 그가 바로 김전대통령과 함께 야당활동을 한 야당의 거물정치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래 서류에 분명히 드러납니다만 중정이 양00 이라는 사람을 조종해 귀국토록한다고 돼 있습니다
당시 납치현장에는 야당 당수를 지낸 양 모와 김대중 전대통령의 친척인 야당의원 김모씨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김씨는 바로 이 양당 당수 양 아무개를 만나러 갔다가 납치된 것은 우연의 일치 일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었지만 우리는 누가 이 엄청난 사건을 지시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떡을 만지다보니 떡고물이 묻었다는 이후락, 우리가 생각하기엔 떡고물이 아니라 방앗간 전체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의 부정축재를 하고 한때 미국으로 망명을 기도했던 이후락의 입을 열게 해야 합니다

또 범행가담자의 진솔한 양심선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떴고 가해자 일부도 세상을 등진 마당에 살아있는 이후락과 범행가담자들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참회해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납치 살해기도사건 국정원 보고서 전문 5권은 바로 이 블로그 andocu.tistory.com 의혹사건 진상보고서 전문 코너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