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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2.12.14 김형욱 및 장남 김정한, 비서 이백희등 측근 사진 2매
  2. 2009.11.05 이후락 외동딸 부부, 75년 첫 구입 - 부정축재 환수당한 80년부터 급증
  3. 2009.11.04 김형욱 차남, '형 정한 유언장 존재 잘 알았다' 법정 진술
  4. 2009.11.04 김형욱 외동딸, '큰 오빠 정한도 유언장 존재사실 알았다' 법정 진술 (2)
  5. 2009.11.04 김형욱 며느리, '유언장 존재 사실 몰랐다' 법정 진술
  6. 2009.11.03 '김형욱에게 돈 빌려준 사람 다 나오시오' 채권자신고 광고
  7. 2009.10.28 김형욱 부인 김영순씨, 1981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 지정 판결
  8. 2009.10.28 김형욱 유족, 1981년 4월 유언장 집행 재판청구
  9. 2009.10.25 김형욱 유언장 증인 3명은 누구인가? '이백'은 이백희씨 (5)
  10. 2009.10.25 김형욱 유언장 원문 : 아내와 3자녀에게 나눠주되 만약 모두 죽으면 '이백'에게 맡긴다 (10)
  11. 2009.10.22 10.26 사건 관련 미 국무부 및 CIA 관련 전문
  12. 2009.10.12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4)
  13. 2009.10.12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9)
  14. 2009.10.11 김형욱 실종 직전-직후 김영순명의 땅 구입 - 회고록 협상 대가인가? (4)
  15. 2009.10.07 최초확인- 뉴욕 웨체스터서 김형욱 소유 대형쇼핑센터 발견 [현시가 천5백만달러] (6)
  16. 2009.10.05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17. 2009.10.05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9)
  18. 2009.09.20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8)
  19. 2009.09.11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15)
  20.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0
  21.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9
  22.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8
  23.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7 (2)
  24. 2009.09.07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6
  25. 2009.09.05 日서 김대중 납치 영화 'KT'케이티 추모상영
  26.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5
  27.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4
  28.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3
  29.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2
  30. 2009.09.05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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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이 저에게 전달한 김형욱 딸 김신혜 결혼식때의 사진입니다.

아래왼쪽 첫번째 김형욱 장남 고 김정한씨, 아래두번째 김형욱 비서 [처가친척] 김용길(현 김길 목사.현재 한국체류)
위 왼쪽 첫번째 김형욱 비서 고 이백희씨, 위 두번째 김형욱 비서 이모씨


 

연미복 차림의 김형욱 뒤로 이후락의 옆모습이 보이고 10,26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얼굴이 보입니다.

 

2009/09/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어디 있소, 아는 것 없소' 국무부 비밀해제문서 1

2009/09/0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이게 바로 김형욱 사망 판결문

2009/09/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0/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미국 법원, 김형욱 사망판결 근거는 무엇인가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10/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직전-직후 김영순명의 땅 구입 - 회고록 협상 대가인가?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원문 : 아내와 3자녀에게 나눠주되 만약 모두 죽으면 '이백'에게 맡긴다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증인 3명은 누구인가? '이백'은 이백희씨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부인 김영순씨, 1981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 지정 판결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족, 1981년 4월 유언장 집행 재판청구

2009/11/03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에게 돈 빌려준 사람 다 나오시오' 채권자신고 광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며느리, '유언장 존재 사실 몰랐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외동딸, '큰 오빠 정한도 유언장 존재사실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차남, '형 정한 유언장 존재 잘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3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비밀은 없다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국 주식투자내역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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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직계가족의 미국 부동산 내역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부동산 관련 서류 일부를 복사해 왔습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 정리에 시간이 걸리므로 일단 시기를 나눠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970년대입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정명신이
미국에 첫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 1975년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부부는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를 주고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22 LESLIE PLACE 주택을 매입합니다



이들 부부는 이 주택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7년 7월 26일 9만5천달러에 매도합니다

이들 부부는 테너플라이 주택 매도에 앞서
1977년 2월 1일 뉴저저주 크레스킬 주택을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15만3천달러로 1년 3개월전 테너플라이 주택매입때보다
약 2배정도 많은 금액이며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입니다



이들 부부는 뉴저지주 알파인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합니다

과연 1970년대 중후반 8만여달러, 15만여달러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까
1970년대가 미국이민자들에게 허용된 외환반출한도가 70달러에 시작해
백달러로 늘었다가 2백달러까지 가능했다고 하니 매우 큰 돈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부동산 거래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2건 매입, 1건 매도 였습니다

매우 특이한 것은 이들 외동딸 부부의 부동산 거래가 1980년 초부터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매입건수는 물론이고 한건당 금액도 크게 늘어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을 계기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때인 1980년 5월 16일 김종필 이후락등을 연행합니다 

약 한달간의 조사뒤 1980년 6월 중순 이후락이 1백94억원정도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후부터 이후락 직계가족, 외동딸 부부와 장남 부부의
미국내 부동산 매입이 크게 늘어납니다 

신군부는 분명히 탈탈 털어 조사해 백94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는데
이후락 직계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미국내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말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된 돈일수도 있고
혹시 신군부가 이후락의 부정축재액을 축소해 백94억원만 발표하고
군부등에 이후락씨등의 영향력을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
일부는 그대로 돌려준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습니다 

만약 부정축재액중 백94억원만 환수하고 일부는 다시 돌려주었다면
또 다른 일부를 신군부가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이며
부정축재 조사를 담당한 전두환등이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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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며느리, 외동딸에 이어
차남 김정우도 법정진술을 하게 됩니다

김정우는 외동딸과 같은 날인 2003년 9월 12일 작성된 진술서를 통해
외동딸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형 정한이 유언장 존재를 너무도 잘 알았으며
그동안 한번도 이의를 제가한 적이 없었다 등의 내용입니다

또 형이 결혼뒤 분가했지만 1988년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까지
알파인과 포트리등 집에서 5분 , 많게는 15분 거리에 살아서
매우 친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언장 복사본 문제에 대해서도 김형욱 실종뒤
변호사가 두터운 종이뭉치를 나눠 줘서
왜 이런 걸 주나 하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형이 유언장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큰 며느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형이 유언장 내용을 알았지만 재산에 대해 한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2남 진술 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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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결국 법정소송으로 이어졌고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2003년 7월 3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자 외동딸등 가족들도 2003년 9월 진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쟁점은 '장남 정한이 죽기 전까지 유언장 존재사실을 몰라서 상속을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소송이 진행되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며느리의 주장에 맞서
외동딸 신해는 2003년 9월 12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주된 내용은 '큰 오빠가 유언장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재산분배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피고인 어머니 김영순을 옹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딸 진술 -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1979년 아버지 김형욱이 실종된 당시 나는 19살의 틴에이저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들과 엄마등 우리가족은 매우 친밀했지만 실종사건이 더욱 우리를 결속시켰다
-실종당시인 1979년 큰 오빠는 미혼이었고 1980년 결혼했다
-당시 우리가족변호사인 알란 싱거변호사가 끊임없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싱거 변호사가 큰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했다
-아버지 김형욱도 1975년 유언장 작성뒤 내용을 가족에게 알렸고 그뒤 저녁식사자리에서도 
  유언장내용을 언급했다, 당시 나는 14살 이었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유언장내용은 아버지의 재산 50%는 어머니가, 나머지 50%는 우리 3남매가 가진다는 것이었다
-실종뒤 싱거변호사등으로 부터 유언장 복사본을 받았다
-실종뒤 사망판결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가 전가족이 법원에 출두할 것을 명령해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법원에 갔다
-한국내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받기위한 소송을 통해 큰 오빠의 부인은 2003년 4월 26만1천여달러를 받았다
-내 일생동안 단 한번도 큰 오빠가 재산분배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차남 김정우의 법정 진술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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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1년 5월 12일부터 유언장 집행자가 돼
김형욱 재산 관리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21년이 지난 2002년 9월 장남 김정한이 죽게 되자
큰 며느리등 장남 가족과 김영순 사이에 재산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는 남편이 생전에 유언장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며
이는 시어머니 김영순씨가 유언장 집행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2003년부터 뉴저지 버겐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원고 며느리 피고 김영순씨의 법정공방이 시작됩니다

2003년 7월 3일 원고인 큰 며느리는 재판부에 자신의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며느리 진술 5매 -
이 진술서에서 큰 며느리는
- 시어머니 김영순이 유언장 집행자로서 유언장에 기록된 상속인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 시어머니 김영순은 직장을 다닌 적이 없고 소득소스가 전혀 없다
- 김형욱은 한국의 중정부장으로서 1977년 의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1978년 6월 30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김형욱이 7만5천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 이 기사는 김형욱이 시티뱅크 뉴욕에 2천만달러, 해외은행에 6백만달러등을 예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형욱 본인은 3백50만달러만 인정했지만
- 시어머니 김영순은 1983년부터 알파인 저택 신축을 시작했고 가치는 1천만달러에 이른다
- 시어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 한예로 뉴저지 테너플라이 P모 은행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방문해 세이프티박스에 10만달러를 넣어두었으나
  그뒤 남편이 확인했을때는 5만달러밖에 없었다
- 스위스 은행에 막대한 자금이 예치돼 있다
- 알파인저택은 김형욱 재산으로 건축된 것이다
- 남편과 김정우 김신해등 3자녀가 동일하게 김형욱 재산에 대해 16.65%를 가질 권리가 있다
는 등의 진술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형욱의 2남 김정우와 외동딸 김신해는 2003년 9월 12일 며느리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게 됩니다

2남과 외동딸의 진술도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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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0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된뒤
상속절차에 돌입합니다

이에 따라 1981년 5월 28일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역신문 'THE VALLEY STAR'에
김형욱 채권자 신고를 접수하는 광고를 게재합니다

'PUBLIC NOTICE' 란 제목의 이광고는 19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유산법원 판사의
명령에 따라 김형욱 또는 형욱 김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은 뉴저지 알파인에 사는
김영순또는 유족의 변호사에게 청구하시오' 라고 돼 있습니다

이 광고의 FEE는 6.16 달러였으며
해당신문사의 광고게재사실확인서도 첨부, 법원에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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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실종과 관련, 김영순씨가 1981년 4월 22일 유언장 집행인 자격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뉴저지 버겐카운티 상속 법원은 1981년 5월 12일 김영순씨를 유언장집행은으로 지정합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 상속법원은 이날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에 의거, 김영순을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한다고 판결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서류 5매 -
이에 따라 김영순은 같은 날 상속법원앞으로 유언장 집행인 지정을 받아들인다는 문서를
자필 서명해 제출합니다

이 재판과정에서는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유언장에 대한 증언을 하고
이 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는 진술서를 작성, 자필 서명해 제출합니다

이에 따라 이 날짜로 김영순은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으로 유언장 집행에 돌입,
유산상속을 시작합니다

김영순은 유산법에 따라 김형욱으로 부터 채권이 있는 사람들의 신고를 받기 위해
광고를 내기도 합니다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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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씨와 정한 정우 신해등 김형욱씨 유족 4명은 1979년 10월 김형욱이 실종되자
1980년 11월 김씨에 대한 사망판결을 구하는 재판을 청구, 1981년 4월 8일
뉴저지주 지방법원으로 부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법적인 사망판결을 받습니다

이에 따라 1975년 1월 작성된 유언장에서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됐던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은 1981년 4월 22일 유산문제등을 담당하는 재판부인
뉴저지 버겐카운티 SURROGATE COURT 에 상속절차 진행을 위한 유언장 집행인 판결을 구하는 
재판을 청구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정리 서류 -
이 서류는 김영순과 3자녀의 이름이 열거돼 있으며 유언장 원본등이 첨부돼 있습니다 

또 유언장 작성 증인 3명중 한명인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법원요청이 있을 경우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김형욱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재산 내역란은 공란으로 돼 있습니다 

이 서류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김형욱 미국 망명전인 1970년부터 이들 가족을 대리했고
1977년 하원 청문회출석,1979년 실종뒤 사망판결 재판과정에서도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던
ALAN D SINGER 변호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속절차 재판에서 유족들은 ALAN D SINGER 변호사를 배제하고  뉴저지 최대 법무법인으로 꼽히는 
W.G & S 법인을 대리인으로 택했습니다 

변호인이 바뀌게 된 것은 유족들이 SINGER 변호사에게 모종의 부탁을 했으나
SINGER 변호사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합니다 

유족들은 또 20일뒤인 1981년 5월 12일 상속법원에 김영순씨 명의의 서류를 다시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정리 - 유언장에 따르면 자녀들이 21세가 될때까지 김씨부인이 모든 재산을 관리토록 돼 있으나
이 서류에 따르면 1981년 현재 이들자녀들은 모두 21세 이상의 성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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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 1월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의 증인은 3명입니다

메리로 알려진 외국인 1명과 이담풍씨, 그리고 유봉섭씨가 그들입니다

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봉섭씨는 김형욱의 아내 김영순씨의 사촌 여동생 남편입니다
유봉섭씨는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명중 가장 중요한 증인은 이담풍씨입니다

이 이담풍씨가 바로 김형욱이 아내 김영순이 숨질 경우 유언장 집행과
자녀양육인으로 지정한 '이백'의 남편입니다

유언장에서 이백으로 등장한 사람은 전 중정요원 이백희씨로
미국이름은 버나드 입니다

스위스와 홍콩, 베트남등에서 근무한 이백희씨는 베트남 근무당시
사우스 베트남 즉 자유월남의 트란 반 투엔씨의 딸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이백희씨의 장인 트란 반 투엔은 1955년부터 1963년까지 월남의 정보부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로
1965년에는 부수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김형욱 유언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트란 반 투엔은 1975년 월남패망직전에 영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월남을 탈출해
홍콩으로 도피합니다

이백희씨는 중정근무당시 외국인인 이담풍씨의 결혼문제로 고민했고
중정내에서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김형욱이 '고위급인사의 사위가 되면
고급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쾌히 승락함으로써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그뒤 김형욱 미국 망명뒤 김형욱의 부름을 받고 '은혜를 갚는다'는 각오로
미국에서 합류, 김형욱의 미국생활, 특히 스위스 은행 심부름등을 맡게 됩니다

이담풍씨는 미국에 온뒤 뉴욕 퍼처스소재 펩시콜라회사에서 재무소프트웨어담당
고위기술고문으로 일하다 현재 은퇴한 상태입니다

이백희씨의 딸은 존스홉킨스대학과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뒤 변호사자격을 취득,
뉴욕소재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 5월 윌리암 하워드 타프트 전 미국대통령의 
4대손으로 예일대를 졸업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16일 동아일보 자매지 주간동아에 이백희씨 관련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었습니다 

내일은 1981년 김형욱 유언장 집행과정과 관련서류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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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 [분류 전체보기] - 미국법원 청와대살해설-오작교작전 근거로 김형욱 조기사망선고 - 이게 재판증거 불어문건 원문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자신의 실종 또는 죽음등을 미리 예견한 탓인지 1973년 4월 5일 미국에 들어온뒤
약 1년 8개월정도가 지난 75년 1월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테너플라이 트라팔가 자택에서 작성된 이 유언장은
유언내용을 담은 6매의 유언장과 증인 3명의 서명 1매등 모두 7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유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동산, 부동산, 부채등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50%를
나의 아내 김영순에게 주라

나머지 50%는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딸 김신해등 자녀에게 주라
즉 3 자녀에게 내 자산의 각각 16.65%씩을 주라
 
자녀들이 21세 성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 김영순이 관리한다

유언장 집행과 자녀 양육은 아내 김영순에게 맡긴다

만약 나의 아내가 유언장 집행을 하지 못할 경우 '이백'에게 유언장 집행을 맡긴다
또 신탁재산의 관리인으로 '이백'을 지정하며
내 아내 김영순이 사망할 경우 자녀 양육을 '이백'에게 맡긴다

6장의 유언장을 대충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김형욱 유언장 7매 -
그 다음 맨뒷장에는 유언장 증인 3명의 이름과 주소 서명이 기재돼 있습니다

메리 앨런 멜버리, 이담풍, 유봉섭씨등 3명입니다
이들은 김형욱이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트라팔가 주택에서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서명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979년 10월 김형욱 실종뒤 1981년 4월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되고
그해 5월 김영순은 뉴저지 법원에서 이 유언장을 근거로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내일은 이 유언장의 증인 3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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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 으로 잘 알려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한 국무부와 CIA 전문. 즉 국무부의 비밀훈령,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 CIA 본부와 한국지부간의 문서등을 한번 정리하고 분석해 보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돼 극히 짧은 기간 10월 19일경부터 11월2일 정도까지의 전문들만 올려봅니다
글라이스틴대사가 11월 2일께 국무부로 보고한 '미국이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은 군사정권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라는 전문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또 박정희 사망, 박정희 암살등으로 사건을 표현했지만 '제거' 즉  'REMOVAL OF PRESIDENT PARK'라는 표현도 사용한 대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정부를 책임질 대통령대행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정일권 전총리도 물망에 오른다는 내용도 있네요
1026 전부터, 특히 약 1주일전부터 주한 미대사관 특히 글라이스틴대사의 행보가 빨라지며 박준규 공화당 당의장, 태완선 유정회회장, 이철승, 고흥문, 김영삼등을 빈번히 만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약간 '고집불통'으로 본 듯한 내용도 있고 한 야당정치인은 한국을 움직이는 4대 파워로
학생, 국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을 꼽았군요
전문을 원본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올렸습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26을 거쳐 1212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 승자의 기록을 전할 사람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지만
패자의 진실을 남길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212 당일밤 전두환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대통령을 압박해 정승화 총장 연행에 재가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재가 현장에 배석했던 사람은 전두환쪽을 제외하고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이 유일합니다 
사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안가도 최광수 비서실장의 처가쪽 집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중앙정보부에
매도한 집입니다
최광수 비서실장의 용기있는 증언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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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 천5백만-35백만달러 추정

-워싱턴 포스트, 26백만달러추정

-버겐레코드, 5백만달러 추정

-이백희씨, 김형욱본인 35백만달러 주장

-과거사위 보고서, 프레이저청문회 천5백만-2천만달러 추정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박정희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김형욱

과연 정권안보만을 지키는 선에서 그쳤을까, 그렇지 않다

 

김형욱은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의 큰 권력을 가졌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데다 정보기관의 역대 수장중 최장기간 재직한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이권에 관여했음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여러가지 이권중 가장 큰 이권은 차관도입에 따른 커미션

이 커미션이 꼬박 꼬박 스위스등에 개설된 은행으로 예치돼 정권유지비용으로도 사용됐지만

일부는 개인 치부에 이용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김형욱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그의 재산을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프레이저 청문회, 미국언론보도,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등의 자료를 보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는 1978 12 8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미국은행인 시티뱅크에 2천만달러, 아마도 스위스은행인듯한 해외계좌에 6백만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니 김형욱의 은행예금이 26백만달러라고 추정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이 기사에서 김형욱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비공개청문회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350만달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김형욱의 은행기록을 확인한 결과 78년이전 수년간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에 도박비용으로 지급된 돈이 백40만달러였다는 사실도 게재했다

 

정리하면 김형욱 본인인정액이 350만달러지만 스위스와 미국의 예금 추정액은 26백만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형욱 사망선고 재판과정을 담은 뉴저지주 일간신문 버겐레코드에도 김형욱재산에 대한 언급이 있다

 

버겐레코드는 1981 3 31일자 신문에서 김형욱이 법적으로 사망판결을 받음으로써 천5백만달러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이 부인 김영순과 세자녀에게 상속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는 김형욱 재산을 천5백달러에서 2천만달러정도로 추산했다

 

이보고서에 따르면 프레이저위원회는 조사결과 김형욱이 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이라고 기재했다.

 

또 프레이저위원회 조사에서 뉴욕은행에 4백만-5백만달러의 정기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1977 6월까지 친지들의 사업구좌를 이용해 한국에서 재산을 계속 반출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이외에도 1973년 부산과 인천항을 통해 2차례에 걸쳐 반출했다고 한다

 

주간동아도 2005 816일자에서 김형욱 측근 L씨의 주장을 인용, 김형욱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주장한다.

L씨는 이제 고인이 된 이백희씨로 김형욱의 측근중 측근이며 그의 장인이 월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월남의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부수상까지 지냈었다

주간동아는 이백희씨 친구의 말을 인용, 김형욱이 자기 입으로 자기 재산이 35백만달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보도와 프레이저청문회등을 참고하면 김형욱의 재산은 최저 천5백만달러에서 최대 35백만달러로 추정된다

또 재산환수소송등을 통해 삼선동주택과 신당동 대지 일부를 돌려받았음을 감안하면 재산은 이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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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 알파인에 최소 6백만달러 대저택소유

-김형욱 실종뒤 알파인에 대저택 신축

-포트리등에 콘도 여러채 - 자녀들에게 집 한채씩

-김형욱 명의 부동산 거의 없어

-유산상속판결은 부동산보다 스위스예금이 목적

 

 

호화주택 구입, 대형쇼핑센터 매입등을 통해 사전에 미국에 기반을 굳힌뒤 망명길에 올랐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1979 10 7일 파리에서 김형욱이 사라진뒤에도 김형욱 유족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본명 신영순] 1982 5 21일 뉴저지 포트리에 콘도 한채를 매입합니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 콘도, 이 콘도는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 초입 포트리의 번화가에 있는 콘도로 정확한 주소는 1600 CENTER AVE, FORT LEE, NJ 입니다

김영순은 9만천740달러[91,740USD]에 매입한 하이트맨하우스 콘도의 5E 호를 4년여뒤인 1986 2 28 145천달러[145,000USD]에 매도함으로써 약 50%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김형욱 유족들의 재산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알파인의 대저택

이 저택은 뉴저지주 팰리세이트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2번출구에서 빠진뒤 클로스터로 내려가는 급경사 오른편 언덕 깊숙한 곳 막다른 집입니다


MARIE MAJOR DRIVE로 알려진 이 길에서 김형욱의 저택은 2차선도로의 맨 마지막 집이며 실제 저택은 웅장한 철제 대문에서 작은 언덕을 따라 20미터 정도 올라가야 됩니다.

지적도상 블록[BLOCK] 81.05, [LOT] 1입니다


김형욱이 실종 직전 또 다른 알파인 집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살면서 이 집이 도로 아래쪽에 있어 누가 차를 타고 가다 수류탄만 굴려도 죽는다며 불안에 떨었던 점을 감안, 아마도 도로보다 한참 위쪽의 집을 택한 것 같습니다

 

또 이 집의 2차선 도로가 끊기게 되는 마지막에 있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이 집앞을 지나다닐 일이 없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차단된 집입니다

 

잘 생긴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집은 길가에서는 쉽게 규모조차 짐작되지 않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등을 통해서만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의 부지는 2에이커, 2448평이며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실외수영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직전인 1979 8 10일 김형욱이 파리를 다녀오게 되고 보름뒤인 8 24일 부인 신영순 명의로 1725백달러를 주고 이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뒤 1981 5월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로 유산상속인이 된뒤 1982년 이 집의 신축공사에 들어가 1984년 완공과 함께 입주하게 됩니다

 

이 집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채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시돼 있는 것은 물론 뉴저지주 세무국 서류에서도 주소가 없는 사서함 번호만 기재돼 있습니다

 

이 집은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 지난 2002 9 5일 장남 김정한이 사망하자 20일뒤인  9 26김영순신탁[KIMYOUNGSOON TRUST]으로 소유권이 바뀐다

 

김영순에서 김영순신탁으로 이 집이 양도될때의 가격은 단돈 1달러,

김영순신탁의 관리인[TRUSTEE]은 김형욱의 차남인 김정우 변호사[제임스 김]와 딸 김신해씨로 지정돼 있습니다


뉴저지주 세무국은 지난 2006년이래 2009년까지 세금부과를 위한 이 집의 공시가격을 매년 변동없이 239만달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지가 백80만달러, 건물이 539천여달러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장가격은 최소한 6백만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뉴저지주 세무국 자료에 따르면 알파인지역의 부동산은 지적도상 상가와 주택을 모두 포함해 정확히 8백채, 이중 3백만달러에서 천만달러 주택이 즐비하고 이 저택도 그 중의 한채인 것이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뉴저지주 법원에서 이 집의 건축비용이 1982년당시 최소 2백만달러를 넘어서며 융자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김형욱 유족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큰 돈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은 김형욱 실종 1년뒤인 1980년 결혼하게 되고 1985년 외동딸 신해씨가 결혼하게 됩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등기소 서류에 따르면 김신해씨와 남편 한상철씨는 1985 9 16일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를 부부공동명의로 구입합니다

 

이 콘도의 주소지는 200 OLD PALISADES ROAD, 호수는 PH-4. 호수에서 알 수 있듯 PH는 펜트하우스 즉 그 콘도의 최고 꼭대기 층이며 매입가격은 489천달러였습니다

 

매매계약서에서 이름을 드러낸 한상철씨는 5공당시 **실장을 지낸 모인사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1989 8 25일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합의에 따라 이 콘도가 김신해씨 단독 소유로 바뀌게 됩니다



그뒤 김신해씨는 1995 5 2일 이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50만달러에 매도합니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매입했던 김영순은 1989 5 9일 뉴저지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알려져 있는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입니다

 

이 콘도의 주소는 1512 PALISADES AVENUE, FORT LEE NJ. 호수는 15L호로

 매입가격은 483천여달러[483,485 USD] 였습니다

 

5년뒤인 1994 4 18일 김영순은 약 16만달러 손해를 본 328천달러[328,000 USD]에 이 콘도를 팔아치웁니다



부동산 시세가 많이 하락한 것입니다

 

그 이듬해인 1995 9월 장남 김정한도 아트리움콘도 한채를 매입하면 매입가격은 김영순의 매도가격과 비슷한 35만달러였습니다

 

장남 김정한이 김형욱 실종뒤 크게 상심해 방황하자 플로리다주에서 자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도록 도움을 준 김영순은 2001 8 15일 자신이 51%, 장남 정한이 49%의 지분을 가지는 조건으로 알파인 처치 스트릿에 단독주택 한채를 사줍니다

 

1.22에이커 대지의 이 주택 매입가는 99만달러로 장남집과 김영순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1분거리.

그러나 2002 9 5일 장남 정한이 죽자 그후 2년뒤인 2004 8 13일 이 집을 1535천달러[1,535,000 USD]에 매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순씨와 큰 며느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 큰 며느리는 자녀 3명과 함께 몹시도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김형욱 유족은 김형욱 실종뒤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사고 팔게 되고 현재는 알파인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김형욱관련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점은 김형욱이 거의 모든 부동산을 부인 김영순 소유로 함으로써 자신은 철저하게 숨겼다는 점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의 두번째 집인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의 주택을 구입할 당시인 1974 8월 김영순과 함께 융자서류에 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부동산 서류였습니다

 

아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실종 1 6개월만인 1981 4월 뉴저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사망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유산 상속입니다.

 

김형욱 명의의 부동산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영순이 유산상속인으로 지정된 것은 부동산보다는 미국과 스위스에 예치됐던 예금을 갖게 됐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정부가 오는 12월 스위스은행인 UBS로부터 미국 거부 4천여명의 계좌 내역을 넘겨받는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과연 김형욱의 스위스계좌가 베일을 벗을지 주목됩니다

내일은 미국언론보도등을 근거로 김형욱의 재산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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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73년 미국 도피에 앞서 71년 호화주택을 구입하고 72년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제반 계약서와 함께 공개했었습니다

오늘은 김형욱의 두번째 집 매입을 물론 김형욱 실종 직전인 79년 8월과 실종 50일뒤인 79년 11월 부인 명의로
나대지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계약서등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김형욱 실종 전후의 2건의 토지거래는 한국정부와 김형욱간에 타결됐던 회고록 포기의 댓가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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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

 

김형욱은 또 미국 도착 14개월뒤 1974 8 21일 뉴저지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27만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합니다

 

대지가 1.5에이커 천8백평 규모로 2009년 현재 이집의 공시주택가격은 220만달러상당입니다

 

27만달러짜리 저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비교대상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1976 11 30일자에 박정희가 권좌에서 내려올 경우 미국 피난처라는 소문이 있다고 언급했던 박정희의 큰 딸 박재옥의 뉴욕 저택입니다

 

뉴욕타임스에 중세 성모먕의 붉은 벽돌집으로 묘사된 이 주택은 김형욱일가 소유 쇼핑센터가 있는 웨체스터 스카스데일에 있으며 1976 8 17일 박재옥이 구입할 당시 매입가격이 205천달러였습니다

 

김형욱이 1974년 알파인에 구입한 주택은 27만달러, 박정희 딸 박재옥이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난뒤에 구입한 중세성을 방불케하는 주택이 205천달러였으니 가히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재옥 주택구입내역은 이미 이 블로그에 게재돼 있습니다]

 

이 알파인 하이우드플레이스에는 김형욱 집을 포함한 모두 7채의 주택이 있었는데 7채 주택모두 등기부 등본에 조차 하이우드플레이스라고만 기재돼 있을뿐 넘버는 없다고 돼 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집입니다

 

우편물은 우체국 사서함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일반인에게 익숙한 주소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등기부 등본에 정확한 지번을 알려주는 블록과 로트가 기재돼 있어 지적도를 통해서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화주택이기는 했지만 조국을 배신한 김형욱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김형욱과 잘 아는 한 재미동포는 이 하이우드플레이스 주택이 도로를 기준으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김형욱은 차를 타고 가다 누가 수류탄만 하나 굴려도 나는 산산조각이 난다며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망명 1 8개월여가 지난 1975 1, 김형욱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비운이 닥칠 것을 예감했음인지 자신의 사망 실종때 부인 김영순과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이 유언장의 주소가 60 트라팔가로드로 돼 있는 것을 보면 김형욱이 1974 8월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 주택을 구입했지만 적어도 1975 1월이후 새 집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고록 출판저지과정에서 돈거래 유추가능한 부동산 거래 발견

김형욱 실종 한달보름전 뉴저지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김형욱 실종 두달도 안돼 뉴욕주 라클랜드에 주택용지 7개 필지 매입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 회고록 출판 저지를 위해 돈이 오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도 회고록 포기에 따른 대가가 백50만달러라고 기재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2백만달러라고 서술된 부분도 있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형욱 사망선고 관련공판에서 유족들은 김형욱이 정태동 당시 주미공사와 1979년 7월 회고록 포기에 따른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관련 기록을 보면 결국 '회고록 포기대가는 2백만달러, 1979년 7월부터 10월까지 매달 50만달러 지급, 
마지막 50만달러가 지급되는 10월에 원고와 교환한다'가 골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관련 문서를 통해서도 김형욱이 돈을 받았음을 추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김형욱은 1979 10 7일 파리에서 실종되기 이전 그해 8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파리를 방문하고 이때 회고록 포기 대가의 일부분이 직접 또는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입금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9 8 10일 김형욱 파리방문뒤 8 24일 알파인 부지 매입

 

김형욱이 1979 8 10일 파리를 방문한 직후인 8 24일 김영순은 지금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 주택의 부지를 사들입니다

 

알파인 언덕의 한 도로 맨마지막 막다른 곳인 이 대지는 2에이커 2450평규모로 부지 매매가는 1725백달러였습니다

 

즉 김형욱이 1979 8월 파리에서 돌아오자 마자 땅을 사들인 것입니다

 

김형욱 실종 두달안된 11 29일 라클랜드카운티 주택부지 매입

 

이상한 거래는 또 있습니다

 

김형욱이 10 7일 실종된뒤 채 두달도 지나지 않은 11 29일 김영순은 뉴욕주 라클랜드 카운티 오렌지타운에 7필지의 주거용 부지를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양도세를 역으로 계산할 경우 2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남편 실종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또 다시 부동산을 구입한 것입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김형욱이 밀반출한 재산일 수도 있지만 회고록 포기댓가로 건네진 돈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1982년 한국서 재산몰수전후 미국 부동산도 일부 현금화

 

한국정부는 김형욱이 망명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1977 12월 반국가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1982 3월 궐석재판을 통해 김형욱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과 함게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합니다

 

김형욱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되자 김영순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미국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를 현금화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김영순은 가장 큰 부동산인 쇼핑센터의 매도에 나섭니다

 

1972 4월 구입한 그린버그쇼핑센터의 소유주였던 제심부동산회사는 1982 2 810달러에 이 쇼핑센터를 김영순에게 넘기고 김영순은 같은 날 이 쇼핑센터를 팔아버립니다

 

제심부동산회사가 대형쇼핑센터를 10달러에 김영순에게 넘긴 것은 김영순이 실제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쇼핑센터의 매도금액은 양도세를 역추적할 경우 백70만달러 현금에 모기지 375천달러를 넘김으로써 약 21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의 재산몰수분위기에 놀라 급하게 처분하면서 손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현재 이 쇼핑센터는 웨체스터카운티의 대대적인 재개발로 변두리 상권으로 전락했지만 버겐카운티가 2008년 고시한 공시가격만 천10만달러,

실제 가격은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한달여뒤인 3 30일에도 1979 11 29일 김형욱 실종 약 두달뒤에 매입했던 뉴욕주 라클랜드카운티 오렌지타운의 주거용 부지 7필지도 235천달러에 매각합니다

 

미국법원, 김형욱 실종 1 6개월만에 법적 사망 판결

김형욱 유족이 사망입증 결정적 증거 제시한 듯

한국정부 유족달래기 상속위해 사망증거 제공설도

 

이에 앞서 김영순과 그의 자녀 김정한 김정우 김신해등은 김형욱 실종 1 1개월만인 1980 11 18일 뉴저지법원에 김형욱의 법률적 사망 판결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소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 다음해 3 30일 공판을 끝내고 4 8일 김형욱은 법적으로 사망했음을 선고받게 됩니다

 

실종 1 6개월만에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미국 실정법상 실종자의 경우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나야 사망을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의 사망선고가 유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유산의 상속입니다

1975년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망선고가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법원은 어떤 근거로 실종 1 6개월밖에 안된 김형욱에 대해 사망을 선고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재판부가 김형욱이 사망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얻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이후 한국정부는 가족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여러가지로 고심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유산이라도 빨리 상속받게 해주자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형욱에 대한 법적인 사망선고가 필요했고 재판부를 납득시킬수 있는 사망증거를 한국정부가 김형욱 유족들에게 전달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은 철저히 숨기고 부동산 대부분을 부인명의로 구입했으므로

부동산 보다는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예금 때문에 사망선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박정권을 등졌던 김형욱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망명준비 만큼은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동백림작전만큼이나 철저했던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김형욱 실종이후의 알파인 대저택 신축, 크고 작은 콘도 매입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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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1972년 1월 알란 싱거 변호사와 김용길[현이름 김길]을 내세워 제심리얼티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김형욱,

제심부동산회사는 1972 1월 법인설립 두달여만인 같은해 4 3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대형쇼핑센터를 구입합니다


그 자신이 미국으로 도망치기 1년여전의 일입니다 
 

1972 4월이면 김형욱이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무렵입니다

 

김형욱이 해외로 밀반출한 부정축재재산이 1971 1월 테너플라이 주택구입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데 이어 마침내 뭉텅이돈이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린버스쇼핑센터는 극장, 연회장, 슈퍼마켓 2, 패스트푸드점등 완비, 현시세 천5백만달러

 

그린버그쇼핑센터 [GREENBURGH SHOPPING CENTER] 로 이름지어진 이 쇼핑센터의 정확한 주소는 77-97 크놀우드 로드, 와잇플레인, [77-97 KNOLLWOOD ROAD, WHITEPLAINS NY 10607]이었습니다

 

쇼핑센터가 규모가 있다보니 77 크놀우드로드라는 지번부터 97 크놀우드로드까지 여러 개의 지번이 이어져 있고 주차가능대수가 5백대에 이릅니다

 

웨체스터 카운티가 지난 40년간 대변모를 거듭하면서 이제 이 쇼핑센터는 다운타운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 쇼핑센터로 전락했지만 쇼핑센터의 규모는 11.5에이커, 대지 만4천평규모로 10여개의 대형 상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쇼핑몰 구입당시 제심부동산회사는 178만달러의 기존 은행융자 잔금을 그대로 안은채 현금으로 798천달러를 지불, 결국 72년 당시 매입가가 260만달러에 달합니다

당시 미국이민자 1인당 해외반출허용한도가 70달러에서 막 백달러로 상향조정됐던 시점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상상이 쉽지 않은 거액입니다

김형욱 본인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했든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이 대형쇼핑센터 구매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웨체스터카운티당국이 세금부과를 위해 고시한 2008년 이 쇼핑센터의 마켓밸류는 천10만달러 [10,135,135 달러], 실제 시장가는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CVS AP 로 잘알려진 대형식품점이 입주해 있으며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도 눈에 뜁니다

 

또 상영관 4개를 갖춘 클리어뷰 시네마 극장,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완비한 식당 로얄 팰리스, 피자레스토랑 피자브류등이 입주해 40년전 위용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외에도 술판매점인 리커스토어, 세탁소, 건축설계업체등 모두 12개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어 극장과 대형 슈퍼마켓, 패스트푸드점, 식당등 구색을 제대로 갖춘 쇼핑몰이었습니다

 

이 쇼핑센터가 김형욱이 실제 주인임은 법인 등록서류에서도 미뤄 짐작되지만 결정적으로 1973년 8월
부인 신영순이 사장직책으로 서명된 법인서류에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이 실종되고 한국에서 김형욱 재산 몰수가 추진되자 깜짝 놀란 김영순은 미국 부동산의 현금화를
추진합니다

1982년 2월 8일 제심법인은 실제 주인인 김영순 개인에게 이 쇼핑센터를 0달러에 넘기고
같은 날 김영순은 이 쇼핑센터를 70만달러에 팔게 되며 은행융자 미상환액 375천달러도 함께 넘깁니다

 


융자미상환액으로 미뤄볼 때 10년간 백40만달러를 갚은 것으로 한달에 무려 만2천달러라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도 감당하기 힘든 거액을 상환한 셈입니다

 

김형욱이 뉴욕주 웨체스터에 쇼핑센터를 구입한 것은 그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가 웨체스터에서 활동해 이 지역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웨체스터는 스카스데일, 용커스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뉴저지주 알파인등에는 못미치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망명 피난처로 거론됐던 집도 바로 이 웨체스터에 있습니다

 

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다


김형욱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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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김형욱은 1971년 1월 4일 부인명의로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데 이어 72년에도 준비를 늦추지 않습니다

김형욱은 1971 5월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지만 이때도 미국망명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2 1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형욱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습니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 [JESIM REALTY CORP]

제심은 부부나 동기간에 힘을 합쳐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제심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1972 1 18일 김형욱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칩니다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등기소에 제심법인관련서류를 신청, 2주일뒤 등기소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었습니다

 

1972 1 18일 법인설립 서류에는 김형욱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형욱의 처가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김용길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용길은 1960년대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했으며 아마도 김형욱은 친척 김용길을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부동산회사가 김형욱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서류였습니다

1973 8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제심부동산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을 한 서류.

 


대리인으로서 이 법인의 지배인역할을 맡은 알란 디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가 신영순, 싱거변호사가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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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심부동산회사의 존재를 알고 법인등록번호를 어렵사리 찾은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법인서류를 신청할 때만 해도 과연 서류가 제대로 보존돼 있을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또 이 법인과 김형욱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할 만한 서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주간 가슴졸이며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서 작은 서류 폴더하나를
통째로 건네 받았습니다

등기소 사무실 앞 열람용 책상에 앉아서 보라며 그냥 서류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폴더를 열때의 떨리는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첫 등록서류에서 알란 싱거변호사와 김용길의 이름을 찾았고
세번째 서류에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프레지던트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등진, 조국을 등진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와 부정축재의 단서가 드러난 문서였습니다

문서를 조심조심 복사한뒤 가방 깊숙이 넣고 존경하는 선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 찾았습니다 완벽한 입증관계가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 올해 5월 중순 첫 방문했던 웨체스터 등기소는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지 못해
그 큰 건물을 세바퀴나 돌며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낯선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물에는 입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큰 길 건너편 법원건물을 통해
겸색을 받아 들어간뒤 구름다리를 통해 등기소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1-2주에 한번씩 들릴때마다 아주 익숙하게 입구를 찾고
저처럼 처음오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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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한 대로 김형욱 실종 30년을 맞아 김형욱 관련 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과정을 추적합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일단 치밀한 망명준비 과정을 각종 서류와 함께 전하고 유언장, 유언장의 증인, 김형욱일가의 기구한 사연등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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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71년 이전부터 부동산구입 망명준비

-1971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매입

-1972 4월 법인명의 대형쇼핑센터 매입

 

30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망명이전부터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물론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하는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6년여를 중정부장에 재직하다 1969 10월 해임된뒤 국회의원등을 지내다 1972 10월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1973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1973 4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73 1 5일 시무식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인명의의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형욱은 수차례의 간청끝에 간신히 해외여행 승낙을 받아 4 15일 대만으로 출국, 중간에 미국행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경유지인 일본공항에서 중앙정보부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등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미국 망명 결심시점을 1973 3, 빠르게 잡더라도 1972 10월 유신선포에 따른 국회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습니다

 

1973 3월 김종필이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고 외화밀반출을 했다는 것이 1973 3월설이요, 1972 10 17일 해외국정감사도중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그때부터 영어회화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 1972 10월 결심설입니다

 

1971 1 4일 김영순명의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 매입

165천달러짜리 주택 당시 1인당 이민자 외화허용환도가 백달러

 

그러나 김형욱 일가가 부동산등을 구입하며 미국정부에 제출한 계약서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최소한 1971년이전부터 치밀한 미국 망명을 추진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약서 사진 참조]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은 자신의 부인 신영순[미국 서류에서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의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영순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 1 4일이며 주택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이 81, 매입가는 16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이민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정착금이 1인당 1백달러였으니 165천달러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업에 종사한 한 재미동포는 ‘1971년보다 10년지난 1980년대초까지도 한인이민자들이 구입한 집들이 3-4만달러였다며 1971 165천달러라면 호화주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공교롭게도 지난 2007 3월 한국정부가 3백만달러를 주고 구입, 현재 모 공사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형욱이 1971년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습니다 [한국정부 2007년 3월 3백만달러 주택구입 계약서등은 이미 이 블로그에 공개돼 있습니다]

내일은 김형욱이 망명이전에 설립한 법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글 싣는 순서는 - 김형욱 부인명의 법인 설립 - 법인명의로 망명 1년6개월전 대형쇼핑센터 매입
- 김형욱 79년 8월 파리방문직후 현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 김형욱 실종 50일뒤 김형욱부인 나대지 7필지 구입 등의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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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지난 30년전 1979년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공동묘지에서 지난 5월 초순 그의 묘를 발견했습니다

516 혁명이후 박정희 정권의 지킴이 역할을 하다 중정부장자리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망명,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박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던 김형욱.

박정권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 지난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30년만에 
결국 공동묘지의 한켠에 누워 있는 그를 찾았습니다 

이 공동묘지는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등 그의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집에서 
약 2.5마일 거리에 있었습니다 


묘비에는 KIM 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IN LOVING MEMORY' 란 단어아래 
왼쪽에는 김형욱을 의미하는 'HYUNG W'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 신영순을 의미하는 'YOUNG S SHIN'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김형욱의 이름아래 그의 생일인 음력 1925년 1월 16일을 의미하는 '음 JAN 25 1925' 란 글이 눈에 띄고 
아래에는 그의 실종일로 기억되는 1979년 10월 7일 'OCT 7 1979'이 새겨져 있습니다 

부인 신영순은 아직 생존해 있어 출생일자만 적혀 있었습니다

한때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그후로도 오랬동안 '기구한 실종'으로
인구에 회자됐던 김형욱, 그의 묘비에는 'IN LOVING MEMORY'  라는 짧은 3단어가 전부였습니다 


김형욱의 옆에는 그의 큰 아들 정한이 함께 묻혔습니다 
10대 초반 김형욱을 따라 사냥을 갔다 발목지뢰를 밟아 발목을 다쳤고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졌던
김정한은 그의 아버지 김형욱 실종이후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다 2002년 9월 세상을 등졌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를 찾아서 물어봤었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는 가족등 이해관계인이 아닌 이상 아무 것도 답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과연 이 무덤속에 김형욱 시신의 일부라도 묻혀 있는지, 아니면 가족들이 그의 추모를 위해서 
가묘를 만들었는지는 가족만이 알고 있습니다 


김형욱과 육사 8기 동기생으로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을 역임했던 방준모 전 실장에게 전화했었습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전실장은 너무 놀라 말문을 잊지 못하면서 '그곳이 어디냐, 잘잘못을 떠나서 동기생으로,
또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로서 그의 무덤앞에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간헐적으로 미국정부 여러문서를 통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미국망명을 준비했는지등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안치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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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RI Working Paper No. 20
Korean Scandal, or American Scandal?
by Bruce Cummings

미국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에 일가견을 가진 학자로 평가되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
시키고대 역사학 교수이자 노스웨스턴대학 국제비교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문제에 대해 조금은 삐딱[?]한 시각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브루스 커잉스교수가 자신의
기고문에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1996년 5월 샌프란시스코대학 일본정책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워킹페이퍼 제20권에 '한국의 스캔들 또는 미국의 스캔들'이란 기고를 했습니다

기고내용은 생략하고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커밍스는 껄끄러웠던 한미관계를 언급하다 김형욱 이야기를 들고 나옵니다

커밍스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대충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의 중요한 증인인 김형욱이 지난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됐다,
첫째 김형욱은 파리에서 살해돼 그의 목이 외교 파우치를 통해 박정희에게 보내졌거나
둘째 서울로 극비리에 압송돼 청와대 지하 사격장에서 박정희에 의해 2발의 총에 맞아 살해됐다'

아래가 바로 이부분을 언급한 원문입니다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12/12/09 - [분류 전체보기] - 2008년에도, 2009년에도 최재경 주소지는 타워팰리스-재산신고누락이냐? 공짜냐?[주진우 소송장 원문]

2012/12/05 - [최재경 ] - 삼성장학생 최재경, 삼성채권수사하며 이학수등 모두 불기소-그때는 몰랐는데 약국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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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while the key witness before Congressman Fraser's committee, the former KCIA Director Kim Hyung Wook (who had defected to the U.S. and who testified under threat of perjury in the U.S. and "under a threat of death" from Korea[24]), was reportedly kidnapped in Paris in 1979 and (1) had his head cut off and sent to Park Chung Hee in the diplomatic pouch, or (2) was secretly shipped back to Seoul where Park personally executed him "by shooting him twice at point-blank range" in the basement of the Blue House.[25] Not surprisingly no high Korean official has come forward to testify about Korean wrongdoing in the U.S. since then.

Meanwhile, the American CIA has refused to allow former employees to publish what they know about Koreagate because of the "identifiable damage to the national security" that would result.[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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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파리현지 살해설과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동시에 제기한 것입니다
사실 이 2가지 가설은 김형욱 실종뒤부터 프랑스와 일본 미국등에서 나돌던 소문으로
한국에서도 1985년께부터 기사화되기도 했던 가설입니다
그러나 나름 한국문제에 일가견이 있다는 학자가 주장했다는 점이 관심을 끄는 이윱니다

커밍스는 기고문 본문에서는 2가지 가설을 제시했지만 기고문 주석에서 청와대 지하에서
살해됐다는 2번째 가설에 더욱 방점을 찍습니다

커밍스는 이 2가지 가설이 1981년 3월 31일 발행된 뉴저지주 일간지 버겐레코드에서 인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커밍스는 김형욱 가족의 변호사가 자신의 친구의 형이라며 법원에서 2번째 즉 청와대 지하 살해설을
받아들였다고 적었습니다

사실 이날은 김형욱의 시롲에 따른 사망판결을 받기 위한 심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김형욱의 처 신영순과 그의 3자녀가 사망판결을 구하기 위한 재판을 청구했던 것이지요
커밍스가 자기 친구의 형이라고 말한 변호사는 바로 알란 싱거 변호사로
김형욱 망명이전부터 김형욱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변호사입니다
김형욱은 이 변호사와 함께 이미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치밀한
망명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미국정부에 보관된 각종 서류에서 밝혀집니다만
이부분은 서류와 함께 다시 공개하겠습니다

결국 커밍스는 중정요원이 김형욱을 납치해 대한항공 비행기[화물기?]에 태워 서울로 압송한뒤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이 있는 가운데 박정희가 '너는 배신자다'라는 말과 함께
처단했다는 주장을 펼친 셈입니다

아래는 커밍스 교수가 기고문 말미에 제시한 주석이며 기고문 원문을 화면창으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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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New York Times, June 24, 1977.
25. The Bergen Record, March 31,1981. (The Bergen Record is a newspaper published in Bergen, New Jersey.) A
lawyer for Kim's wife, who happens to be the brother of a friend of mine, succeeded in getting the court to declare Kim dead; the wife was waiting to gethold of his--very considerable--estate. The court accepted the second version ofKim's death.
26. New York Times, Dec. 22, 1979.


BRUCE CUMINGS REPORT ABOUT KIMHYUNWOOK 199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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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년 10월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통째로 반영하는 사건입니다
올해로 김형욱이 실종된지 30년이 됩니다 하나씩 그동안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밝혀나갈까 합니다
우선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을 보기쉽게 10부분으로 나눠서 올려봅니다
생각보다는 자료가 상세해 실종사건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자료입니다
저도 자료스캔이 끝나는 데로 하나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안치용 백


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10-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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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9-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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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8-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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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6-10 captured by 안치용 -
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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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김대중 납치영화 '케이티' 추모상영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고(故) 김대중 전대통령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케이티(KT)'가 일본에서 재상영된다.

   영화제작ㆍ배급사인 시네콰논(대표 이봉우)은 오는 12일부터 일주일간 도쿄 유라쿠초의 시네콰논에서 영화 '케이티'를 특별 상영한다고 4일 밝혔다.

   이 영화는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다룬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원작 소설 '납치'를 원작으로 2002년에 개봉된 액션스릴러로 제목 '케이티(KT)'는 작전명 'Killing The Target'의 약자다.

   작품은 일본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최일화가 김 전 대통령 역을, 김갑수가 김대중 납치사건을 지휘하는 한국대사관 일등 서기관 역을 맡았다.

   영화 제작에는 한일 합작으로 총 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영화는 지난 2002년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와 함께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됐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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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 전문 2-10 captured by 안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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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2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3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4
2009/09/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5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6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7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8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9
2009/09/07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사건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전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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