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박근혜, 공약이행 어렵다는 정부판단 돌아봐야 - '팥으로 메주 쑤라는 격' :조선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일부 정부 부처들이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정부 부처가) 국민 입장에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과거 관행에만 기대는 데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박선규 대변인이 밝혔다. 박 대변인은 "복지 정책에 대해 재원(財源)상 어렵다, 이런 보도들이 나온다. 그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 측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4대 중증(重症) 질환 무료 진료, 0~5세 전면 무상 보육, 장애인 연금 확대 개편 등 4대 복지 공약에 임기 5년 동안 16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돈이 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보건복지부도 현재의 국가 재정 틀 속에서는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을 100%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런 복지부 입장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박 당선인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이 '설익은 정책을 공개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내비치자 인수위 업무 보고에 참석했던 공무원들이 귀가도 하지 않고 잠적해버린다고 한다. 인수위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취재하려는 보도진을 피하기 위해서다. 관료들은 당선인 말 한마디에 그렇게 민감하다.

공직사회가 대통령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움직이지 않는 레임 덕(lame duck) 현상은 대통령 힘이 떨어지는 임기 말에나 발생한다. 임기 초반 대통령이나 임기 시작을 기다리는 대통령 당선인이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하면 정부 부처는 그 지시를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는 법이다.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 공무원들의 인사(人事)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에 업무 보고를 하는 정부 부처 쪽에서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무리 무리를 해보려 해도 당선인이 원하는 답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그런 정부 반응을 '과거 관행에만 기대는'것으로 몰아붙이면 각 부처는 어떻게든 당선인 입맛에 맞는 방침을 만들어 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당선인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고 눈속임으로 덮어놓은 진짜 현실이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내며 나라 살림에 큰 부담으로 얹히게 마련이다. 공무원들이 박 당선인을 속이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속이게 되는 셈이다. 박 당선인은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정부 부처들이 대선 공약 이행이 어렵다고 하는 까닭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