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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이미 알려진 대로 미 국무부는 지난 1980년 2월 29일 WEEKLY STATUS REPORT-KOREA 라는 비밀전문을 통해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합니다
지난 1993년 비밀해제된 이 문건은 워싱턴 디시 국무부 본부에서 서울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보낸 4장짜리 문건입니다 [아래 전문 사본 참조]
이 문건 3페이지 5번 항목에 김형욱의 행방에 관해 언급됩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WHITHER KIM HYUNG WOOK ?
HAVE YOU LOST SLEEP LATELY WONDERING ABOUT THE FATE OF FORMER KCIA DIRECTOR KIM HYUNG WOOK,
LAST SEEN IN A PARIS GAMBLING DEN ON OCTOBER 9?. THE JAPANESE EMBASSY HERE HAS REPORTED TO US THE RESULT OF THE GOJ'S PERSISTENT INQUIRIES WITH THE PARIS POLICE. APPARENTLY KIM LEFT PARIS
OCTOBER 9 IN THE COMPANY OF ANOTHER KOREAN MALE BOUND FOR DHARAN VIA ZURICH. THERE THE NARRATIVE TAILS OFF. HOWEVER THE FRENCH POLICE HAVE RELUCTANTLY CLOSED THE FILE ON THE CASE.

간략하게 요점만 보면 '일본정부가 파리경시청에 끈질기게 요청한 결과 김형욱이 한국인 남성과 함께 10월 9일 스위스 쥬리히를 거쳐 사우디아라바이 다란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이 이를 미 국무부에 알려줬다.
하지만 파리경시청은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지못해 접었다 ' 이런 내용 같습니다

물론 물음표를 했지만 중요한 점 한가지는 김형욱이 10월 9일 실종됐다고 정리한 점입니다

미국 법원, 한국법원 모두 사망일자를 1979년 10월 7일로 판결했고 [실종에 따른 사망확인판결], 과거사위 조사, 언론보도등에도 10월 7일 최종목격됐다고 하는데 국무부 비밀전문은 약간 다른듯 합니다 

이 보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형욱이 10월 9일 한국인 남성과 함께 스위스를 거쳐 사우디 아라비아로 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미 10월 7일에 살해됐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이 보고는 잘못된 것일까
아마도 미국측이 직접 알아낸 것이 아니고 일본대사관이 알아낸 것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실종사건
진상확인을 위해서는 이 보고의 전말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거사위 진상조사보고서에는 파리주재 중앙정보부 파견관중 1명이 쥐리히-다란-서울 루트로 10월 10일경 서울로 귀국한 것이 확인됐으며 아마도 이때 김형욱의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첩보기관들의 주목을 받던 김형욱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작을 담당한 요원이 그의 여권을 이용해 서울로 귀임한다, 이런 조사결과는 조금 상식밖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시기 일본외교부의 비밀전문등을 검색한다면 정확한 보고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어를 원할하게 구사하는 분은 관련 전문을 일본 외교부 웹사이트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이를 공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79년 10월 이후에서 80년 2월정도까지 미국대사관과 일본외교부. 프랑스 대사관과 일본외교부 사이의 전문 정도만 훑어보면 가닥이 잡힐듯 싶습니다 ]

이 비밀전문의 존재사실만 알려졌을뿐 일반인이 전문사본을 접하기 힘든것 같아 이를 공개하며 몇자 적어봤습니다

1980년 2월 29일 국무부 비밀전문 파일 

DOS DOCU 190800229 TO SEOUL obtained ANCHIYO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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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 으로 잘 알려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한 국무부와 CIA 전문. 즉 국무부의 비밀훈령,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 CIA 본부와 한국지부간의 문서등을 한번 정리하고 분석해 보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돼 극히 짧은 기간 10월 19일경부터 11월2일 정도까지의 전문들만 올려봅니다
글라이스틴대사가 11월 2일께 국무부로 보고한 '미국이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은 군사정권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라는 전문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또 박정희 사망, 박정희 암살등으로 사건을 표현했지만 '제거' 즉  'REMOVAL OF PRESIDENT PARK'라는 표현도 사용한 대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정부를 책임질 대통령대행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정일권 전총리도 물망에 오른다는 내용도 있네요
1026 전부터, 특히 약 1주일전부터 주한 미대사관 특히 글라이스틴대사의 행보가 빨라지며 박준규 공화당 당의장, 태완선 유정회회장, 이철승, 고흥문, 김영삼등을 빈번히 만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약간 '고집불통'으로 본 듯한 내용도 있고 한 야당정치인은 한국을 움직이는 4대 파워로
학생, 국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을 꼽았군요
전문을 원본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올렸습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26을 거쳐 1212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 승자의 기록을 전할 사람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지만
패자의 진실을 남길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212 당일밤 전두환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대통령을 압박해 정승화 총장 연행에 재가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재가 현장에 배석했던 사람은 전두환쪽을 제외하고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이 유일합니다 
사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안가도 최광수 비서실장의 처가쪽 집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중앙정보부에
매도한 집입니다
최광수 비서실장의 용기있는 증언을 기대해 봅니다